창녀의 무운시 3

여자는 화면을 가득 채운 영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활짝 열린 커다란 옷장의 실루엣. 정말 그것이었을까? 여자가 뒤늦게 채워넣은 절박한 기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모텔 주인 여자가, 시골 출신의 중년 여자가 어린이들을 위해 온몸에 분홍빛 클레이를 덕지덕지 바른 두 마리의 어린 돼지들과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한다고 나서는 무명 배우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리는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것이 정말이라면, 옷장 문이 아직도 열려 있고 29번 채널에서 그가 아직도 수술을 하고 있다면.

여자는 목을 매단 남자의 악몽을 꾼 이후로 다시는 TV를 보지 않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동화의 세계를 묻어 두었고 TV를, 편지를, 다른 곳에 대한 희망을, 불가능한 낙관을 잊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몸을 팔 수 없었으니까. 설령 몸을 내어 줄 수는 있어도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일, 어른의 거래를 하는 일은 불가능했으니까.

여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서글픔에 몸을 태아처럼 둥글게 웅크렸다. 머리를 버리고 와야 할까? 견딜 수 없이 많은, 역겨운 파리떼가 비좁은 모텔 방 안에 들끓고 있었다. 머리를 버리고 와야 할까? 그녀는 소년의 죽음을, 아니, 그의 무한한 생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를 넘어서 살 수 없었다. 고작해야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내부만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불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불행했고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슬펐다. 어릴 적에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행복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슬프기보다는 행복한 법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창녀들은 슬프고 불행한 법이었으니까 여자는 슬프고 불행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행복한 것일지도 몰랐다. 피상적인 슬픔과 불행 깊숙한 곳에 비밀스러운 쾌락과 행복, 경이와 환희가 움트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자는 행복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그녀가 행복해도 괜찮은 이유, 그녀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단 한 가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창녀이므로, 슬펐고 불행하였지만 창녀이므로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일까?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 둘은 여자에게 같은 것이었으므로. 두 개의 문장은 여자에게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불행과 행복은 모두 여자에게 모호한 것이었다. 결코 설명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가슴 속에서 펄떡거리는 심장의 구조와 학명을 모르는 채로 출혈하는 어린아이처럼, 물이 H2O임을 모르고 흐느끼는 짐승처럼, 그러나 알지 못하고 흘리는 투명한 피가 진실이듯 여자는 절박하게,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자는 29번 채널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 남자가 있는지, 그는 여자가 기억하는 그 남자가 맞는지, 그는 아직도 돼지의 살을 온몸에 덕지덕지 바른 채 사라져버린 늑대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해야 했다. 그가 아직도 오지 않는 편지와 환자와 늑대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러나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역겨운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문을 열었을 때 여자는 그곳이 이미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도는 소년의 노트에서 읽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끝없이 길었다. 잠긴 문들은 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의 셀 수 없이 많은 문들이 복도에 일렬로 서 있었다.

여자는 그녀가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쉬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숨을 내쉬는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숨을 들이쉰다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여자는 검은 복도를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복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미리 연출되어 있던 것처럼 여자는 그녀를 향해 활짝 열린 채로 멈추어 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세 개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엘리베이터는 그녀가 누른 가장 낮은 층부터 정지할 것이다 그보다 더 많거나 적은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꿈에서 가능한 맹목적인 순응으로 그 기묘하고 불가해한 규칙, 여자의 머릿속에 출력된 문장의 지시를 따라 세 개의 버튼을, 가장 아래층과 4층, 13층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최하층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멈춘 채 아가리를 열고 여자가 엘리베이터를 나서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여자가 나가기 전까지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닫히지 않을 것이었다. 여자는 의심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여자는 내렸다. 그녀가 내리기 전에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시간은 영원히 흐르지 않을 것이므로, 여자는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감으로써 시간의 태엽을 감아 작동시켰다.

원형의 무대, 벽의 한쪽 면에 원의 잘려나간 끝이 맞붙어 있는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배우들과 관객들이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여자의 꿈이었고 그녀와 같이 꿈을 꾸어줄 사람, 혹은 짐승, 혹은 벌레나 식물, 사물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여자는 흐느끼지 않으려 애쓰며 둥근 무대 위에 걸터앉았다. 조명조차 들어오지 않은 무대는 어두컴컴했지만 여자는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그녀의 꿈이었으니까. 누군가 그녀의 꿈에 틈입해주기를 여자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그녀의 꿈에 침입해주기를, 그녀의 몸 속에, 그녀의 실존 속에 들어와 그녀를 어루만져주기를, 그리고 함께 연극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기를.

여자는 기다렸으나 끝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마치 언제라도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눈을 뜨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소년의, 여름의 과일처럼 짓뭉개진 머리를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걷지 않아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은 커튼을 열어젖히고 골목을 향해 나 있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자 차가운 비가 비좁고 습한 내부로 쏟아져내렸다. 여자는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얇은 새틴 원피스를 벗고 맨몸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잿빛 비를 빨아들였다.

여자는 젖은 몸에 원피스를 걸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칼, 고기를 자를 때나 쓰는 칼,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아 물기도 얼룩도 없는 칼과 아직 읽어보지 않은 노트,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 소년이 끝내 내밀지 못했던 언어로 빼곡이 채워져 있을 공책을 들고 모텔방을 나섰다. 그것은 아주 즉각적으로 떠오른 착상이었다.

모텔의 조그마한 프런트, 유리로 가로놓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TV는 꺼진 상태였다. 여자의 희미한 왜상이 더러운 TV 화면 위에 어른거렸다. 모텔 밖 하늘은 녹빛의 시럽을 뿌려 섞어 놓은 잿빛이었고 구름들은 제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 둥글고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었다. 비가 여자의 몸을 녹여내듯 거세게 두드려왔다.

여자는 그녀의 구매자를 찾던, 그리고 은밀하며 과감한 방식으로 그녀를 전시하던 모텔 옆 골목으로 들어가 그 사람, 아직 정체도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곧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키가 컸으며 안와가 유독 오목했고 창백한 얼굴에 깊이 팬 주름들 틈으로 빗물이 고여들어 얼굴이 온통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를 닮았다. 하지만 여자는 그들이 완전히 닮지 않았음을,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닮은 것이 아님을, 그래서 여자는 그들을 혼동할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치맛단을 들추어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맨몸을 보여주었다. 그가 여자에게 다가와 흥정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의 젖은 맨살에 손을 가져다 대었을 때, 여자는 왼손이 희게 변할 때까지 세게 쥐고 있던 칼을 꺼내 남자의 목 아래 갖다대었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발버둥을 치는 것만으로 거대한 칼이 그의 엷은 목을 파고들어 찢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는 흐느낌을 감추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형편없이 헐떡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들어야 해. 내가 네게 부탁하지 않는 건 누구도 내 부탁을 들어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아무도 창녀가 쓴 시 같은 건, 죽은 고아 남자애가 쓴 일기 같은 건 읽어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넌 들어야 해. 넌 들을 수밖에 없을 거야. 살인자의 자백을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여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빗물에 젖어든 노트를, 형편없이 훼손되어가는 유서를 꺼내어 펼쳤다. 여자는 흐릿한 시야 때문에 글자를 읽을 수 없어 속눈썹이 닿을 정도로 노트를 눈 가까이 가져다 대고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가까이 문장을 가져다대고 읽고 있던 탓에 여자는 그녀가 읽고 있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가 협박하고 있는 남자, 배우가 되지 못한 교사와 무명 배우를 절망적으로 닮은 그 남자가 여자의 말을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읽었다.

아이들은 사육제의 동물 가면을 쓰고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쥐의 가면을 나누어 썼습니다. 알비노 쥐 시궁쥐 곰쥐 집쥐 생쥐 들쥐 물쥐 등줄쥐 붉은쥐의 가면들을 아이들은 썼습니다. 그들의 주둥이는 뾰족했고, 이빨은 뾰족했고, 그날을 위해 오래도록 자르지 않은 손톱도 뾰족했고, 수염도 뾰족했습니다.

아이들은 집회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만의 집회였으니까요. 아이들은 쥐의 가면을 쓴 아이들만을 초대했습니다. 부모님에게, 기숙사 사감에게 잡혀 방 안에 갇힌 아이들은 바깥에서 잠긴 창문을 깨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혹은 성냥으로 나무 문에 불을 지르고 재가 되어버린 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쥐의 가면을 잃어버린 아이는 집회에서 내쫓겼습니다. 그 애는 많이 울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육제는 쥐들의 축제였으니까요. 쥐의 가면을 쓰지 않은 아이는, 쥐의 머리를 쥐의 수염과 쥐의 이빨과 쥐의 살갗과 쥐의 눈과 쥐의 주둥이를 가지지 않은 아이는 쥐들의 연극을 할 수 없었습니다.

쥐의 가면을 쓴 아이들은 부드러운 손과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았습니다. 플룻을 부는 남자가 왔을 때 아이들은 계속 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른이었으니까. 그는 아이들과 함께 돌기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은 그를 쫓아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경쾌한 플롯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듯 가볍게 발을 구르며 옆으로 옆으로 돌았습니다. 사내가 원을 관통하고 앞으로 걸어갈 때 아이들은 홀린 것처럼 그를 따라갔습니다.

아이들은 최면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쥐들을 절멸시킨 플롯 부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쥐들을 아름답게 굽이치는 검은 강으로 이끌었고 쥐들은 그에게 이끌려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쥐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아이들은 그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따라 걸었습니다. 둥글게 돌면서 속이 뒤집히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그의 노래를 향해 춤을 추며 나아갔습니다. 그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아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시와도 같은 음악을 희망처럼 경쾌한 장조의 멜로디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천사를 의심없이 따라가는 망자들처럼 그를 따라갔습니다.

아이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날은 더없이 성공적인 사육제였습니다. 쥐들은 절멸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오래도록 생을 원했고 생에 대한 갈망은 영원히 해갈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기를, 생의 벌어진 물기에 주둥이를 박고 흐느끼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들은, 쥐들은 사내를 따라 걸었습니다. 사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쥐의 일족인지, 쥐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아이들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유일한 음악이었으니까. 남자는 살아 있었으니까. 그 풍요로운 호흡으로 끝없이 플롯을 불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은 그의 생을 따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들은 살고 싶었습니다.

살아 있었기 때문에 더 살고 싶었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터질 것 같은 호흡. 최초의 생을 앞두고 쥐들은 결연하게, 그리고 황홀하게 뛰어내렸습니다. 최후의 꽃잎처럼 벌어진 주둥이의 속은 붉고 젖어 있는 입은 살아 있었습니다. 반토막난 채 흰 내장을 줄줄 흘리며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바퀴벌레처럼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었던 생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살 수 없을 정도로 살아 있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리고 쥐들은.

사내는 미친 듯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포에 경련하면서 반지르르하게 젖어든 지친 얼굴, 그가 입고 있던 잿빛 양복도 형편없이 젖어 있었다. 여자는 그를 놓아 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여자를 믿지 못하는 듯 눈치를 보며 힘이 풀린 다리로 검은 웅덩이가 생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여자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자 그는 미친 듯이 기어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침과 땀, 오줌이 빗물과 함께 고여든 더러운 웅덩이에 태아처럼 웅크려 앉았다. 노트는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조금만 힘을 추어 펼치면 찢어져버릴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몇 사람에게나 더 읽힐 수 있을까? 그가 듣기는 했을까? 이야기를, 여자의 것이 아닌. 그래, 그것은 여자의 것조차 아니었다. 여자가 소년의 유작을 읽었던 까닭은 여자에게 그것을 대신 읽어줄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 불행을 넘어서는 범죄였고 그녀에게 절박한 것은 그녀에게 강제된 한 명의 청자였다.

차가운 비가 그녀의 배와 허벅지의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남자들은 항상 그녀를 떠나가는 것일까? 어째서 여자들은 그녀를 붙잡아주지 않는 것일까?

여자는 살인할 수 있기를 깊이 바랐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기를. 그래서 그의 목구멍 속에, 끔찍하게 절개된 그의 내부에 소년의 문장들을 쑤셔넣을 수 있기를. 그러면 경찰들은, 검시관들은, 검사들과 기자들은 소년의 언어를 살인자의 언어로 기억할 수 있겠지. 가엾게도 내동댕이쳐져 무해하게 죽어버린 죽음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서 날뛰는 충동적이고 위협적인 언어로 소년은 기억되겠지. 하지만 그것은 동시의 여자의 언어이기도 할 것이다.

여자는 이중의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소년의 언어를 훔치고 소년의 언어로 살해할 것이다. 길가를 떠도는 쥐새끼나 창녀들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죽음은 너무도 만연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테니까. 경찰들도 검시관들도 검사들도 의사들도 기자들도 그들의 죽음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언제나 병사 사고사 아사 자살하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너무 불결하고 비참하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에서 태어나 죽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부터, 죽음의 원주민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여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상 속에서도, 숨을 참고 진입한 세계에서도 여자는 살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생애 내내 단 하나의 생명도 살해해 보지 못한 것처럼 그녀는 주저할 것이고 풀어줄 것이다. 그가 여자의 울음을, 끔찍하게 떨리는 호흡 속에서 여자가 중얼거린 문장들을 제대로 들어주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여자는 그들 모두를 풀어주고 말 것이다.

그들을 붙잡아 두기에 여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기억되는 데에. 범죄를 고안하고 실행하는 데에. 관계를 맺는 데에,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여자는 끔찍이도 서툴렀고 심리학자들은 어릴 적 관계 맺기를 실패한 아이들은 영원히 실패한 관계만을 이어지지 않은 채 너덜거리는 절단만을 살아간다고 했다. 그것은 영원히 복구될 수 없는 실패라고 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실패할 것이었다.

6반 교실을 지나쳤던 순간 여자는 실패할 것을 앞으로도 무한히 실패할 것을 알았다. 소년은 그 자리에 유달리 검은 머리를 드러내보인 채 앉아 있었으나 여자는 그곳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아무런 두려움도 비참함도 없이 여자는 지나갈 것을, 그녀에게 얹어진 황홀한 포기에 몸을 내맡길 것을 선택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소년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 여자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교사 여자는 다시는 소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녀에게 심부름을 맡기지도 않았다. 소녀가 여자의 가방을 들고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때, 교실 바깥에서는 놀랍게도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29번 채널에서 들릴 법한 인공적인 효과음과도 같은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폭소가 들려왔다.

소녀가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이들은, 그리고 교사는 무방비하게 활짝 벌어진 입을 순식간에 다물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경멸도 증오도 애정도 없이 단단하고 불투명한, 무표정의 검은 눈들.

소녀가 여자에게 가방을 건네고 나자 여자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가방을 받아들고는 다시 소녀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아이들에게 중얼거리면서 행복하게 웃었다.

여자는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 역시 너무도 밝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오직 소녀만이 웃을 수 없었다. 소녀는 당혹감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으나 그들이 모두 웃고 있었기 때문에 입술을 깨물고 흐느낌을 참아야 했다.

소녀가 심부름을 간 사이, 교무실에서 교사 남자와 소녀가 아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소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자는 울고 있었는데, 여자는 비참과 절망에 흐느끼고 있었는데,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서글퍼 보였는데, 어째서 이렇게 다정하고 기분 좋은 소리로 웃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마치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듯이, 그들의 모든 장난을 악행을 용서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것일까?

소녀는 울고 싶었다. 그들이 모두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녀는 미친 듯이 흐느끼고 싶었다. 어째서 교사는 그들을 용서해버린 것일까? 칠판 지우개에 얼굴이 희게 변색된 채로, 더럽고 모욕적인 가루를 어깨와 머리칼에 흠뻑 뒤집어쓴 채로, 아직 그녀는 깨끗해지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녀는 더 절망하지 않는 것일까?

소녀는 6반으로 들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교사는 소녀가 교무실에 있는 그 짧은 사이 이미 소녀를 잊어버렸고, 마치 소녀가 전해준 가방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듯 교탁 한쪽에 올려놓고 쳐다도 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이미 소녀가 교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웃고 있었으니까. 소녀가 없이도 그들은 완전했고 이미 화해했으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결절과 불화 따위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소녀가 교실을 나가자마자 그들은 지금처럼 웃기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소녀는 6반으로 들어서야 했다. 소년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옆 책상 사이의 좁다란 복도에 앉아 그에게 29번 채널에 대한 이야기를 종알대야 했다.

그들이 웃고 있음을 알았다면 소녀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6반 뒷문을 열고 들어가 소년의 옆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속했다는 듯, 아니 그곳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소년의 옆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소녀의 몫도 자리도 없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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