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무운시 4

심부름을 다녀온 날부터 아이들은 소녀를 눈에 띄게 거북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소녀의 착각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소녀는 더 이상 전처럼 무람없이 아이들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그 애들이 29번 채널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치스러운 거리를 깨부수고 다가갈 정도로 그 애들에게 절박하게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절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거리뿐이었다.

대체 왜 웃었던 거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웃었던 거야. 마치 행복한 것처럼. 하지만 어떻게 너희가, 선생님이 행복할 수 있어? 분필가루를 머리와 얼굴과 어깨에 우스꽝스럽게 뒤집어쓴 채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어? 어떻게 웃을 수 있어?

소녀가 가까이서 지나가기만 해도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었다. 웃음의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소녀가 그들의 웃음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듯이. 어쩌면, 교사는 소녀를 그들의 웃음으로부터 내쫓기 위해 심부름을 시켰을지도 몰랐다. 소녀는 이미 웃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웃을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의도들, 의도들, 의도들이 소녀를 추방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이곳밖에는, 1반의 비좁은 한 구석밖에는 자리가 없었고 소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아이들은 소녀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갔다. 소녀를 대놓고 비웃거나 조롱하거나 발로 차 넘어뜨리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소녀의 책상과 의자는 그녀가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놓은 그대로였고, 소녀의 옷에 걸레물이 떨어져내리는 일도 없었다. 아마 아이들도 소녀를 피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내지 못한 것 같았다.

다만 수업 시간에 소녀가 떨어뜨린 지우개를 나서서 주워주거나, 청소 시간에 소녀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소녀의 의자를 대신 내려주거나, 소녀의 어깨에 붙은 머리칼을 떼어 주거나, 소녀가 바닥에 엎지른 우유를 함께 닦아주거나, 소녀가 수업 중에 갑작스럽게 흐느끼는, 책상에서 홀로 엎드려 잠드는, 체육 시간에 피구 금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 돌계단 그늘로 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유를 물어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29번 채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아이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소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소녀가 29번 채널에 대해, 클레이를 온몸에 바르고 동산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는 세 마리 돼지들과 결코 돌아오지 않는 늑대와 열린 옷장 속에 서서 환자를 기다리는 집도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아이들은 머리를 긁적대고 휘파람을 불고 옆에 붙어 있는 다른 아이들과 은밀하고 즐거운 시선을 교환하고 부자연스러운 하품을 해댔으므로, 그리고 소녀는 그러한 신호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치 없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소녀는 말을 하던 중간에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자리로 돌아가버리고는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여기거나 소녀를 붙잡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29번 채널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29번 채널은 존재하지 않는 채널이었다. 그들은 소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체육 시간에 소녀와 짝이 되어 공을 주고 받던 여자아이는 소녀를 앞에 두고 다른 친구들 조에 가 셋이서 함께 배구 연습을 했다. 소녀는 여자아이를 붙잡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녀는 그 애가 싫어할 것을 강요할 정도로 그 애를 미워하지 않았으니까. 여자아이 역시 특별히 소녀를 미워했거나 소녀를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서 다른 조에 끼어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에게는 소녀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었고 홀로 남겨질 소녀가 걱정될 정도로 소녀가 눈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소녀는 결코 아이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소녀에 대해 수군거리고 소녀를 경멸하고 소녀를 괴롭히고 소녀의 밥에 벌레를 섞어 놓고 소녀에게 오물을 먹이고 소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소녀의 실내화를 밟아 더럽히고 소녀의 턱을 물어뜯고 소녀의 귓속에 지우개가루를 뿌리고 소녀의 책상과 의자에 욕을 낙서해 놓고 칠판에 소녀의 얼굴과 가슴을 역겨운 극화체로 그려 놓고 소녀를 따라하며 고개를 수그리고 다니거나 다리를 저는 흉내를 내며 소녀를 흘겨보고 소녀에게 스치기만 해도 병이 옮았다고 울부짖을 정도로 소녀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소녀와 아이들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떠한 감정의 교환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의 정동 경제는 완전히 황폐화되어 끊겨 버렸다. 소녀는 그 애들을 향해 울부짖으며, 제발 나를 받아줘. 나와 이야기를 해줘. 29번 채널을 봐줘. 원의 비어 있는 자리에 나를 끼워줘, 하고 소리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거나 갈망하지 않았다.

그 애들 역시 소녀를 미워하지도 갈망하지도 않았다 소녀는 그토록 격렬한 감정의 표적이 될 법한 흐릿한 흔적조차 없었다. 소녀의 존재는 너무도 희박했고, 갈수록 희박해져서 더는 소녀 자신도 거울 속에서 소녀의 형체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소녀가 수업 중간에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터뜨리며 경련하고 고개를 떨구는 것을 아무도, 심지어는 소녀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고, 소녀는 간혹, 아니 끔찍할 정도로 자주 소년을 떠올렸지만 이제와 소년을 찾아갈 수는 없었다. 소녀는 혼자였고 적나라할 정도로 혼자였고 혼자이기 때문에 소년을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소년이 소녀를 찾아왔을 때, 소년이 혼자라는 이유 때문에 소녀는 소년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과학 시간에 소녀와 함께 쥐를 해부하기로 정해져 있었던 아이가 다른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간 탓에 소녀는 홀로 쥐를 죽이고 쥐의 턱 밑과 배를 갈라내고 쥐의 내장을 끄집어내어 잘 들지 않는 뭉툭한 의료용 가위로 너덜너덜하게 잘라내고 아니 찢어내고 흰 종이 위에 쥐의 기관들을, 해체되어 찢겨나간 이제는 흰 종이 표 위에 적혀 있는 이름, 기능과는 무관한 장기들을 테이프로 붙여야 했고 소녀는 선뜩할 정도로 붉은 핏물 때문에 황홀과 같은 현기증에 시달리며 쥐의 장기를 마치 하나의 매듭처럼 길게 늘러붙어 이어져 있는 그 놀랄 만큼 부드럽고 취약한 핏덩어리들을 마구잡이로 찢어발겼는데 그러고 나서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흰 칸들과 검은 줄을 보고서야 소녀는 절망적으로 뭉그러진 살점들 사이에서 심장과 간과 폐와 대장과 소장을 구분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에게 할당된 쥐, 눈부시게 희고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었던, 유달리 주둥이가 뭉툭하고 눈이 붉었던 그 실험용 쥐, 소녀가 직접 꼬리를 잡고 척추를 분리해내 질식시켰던 그 쥐는 이미 죽었고 그 쥐가 가진 생명은 하나뿐이었고 그 쥐가 가진 심장도 간도 폐도 대장도 소장도 모두 한 번뿐이었기에 이제 소녀는 영원히 다시 시작할 수 없었고 그녀는 뭉그러진 살점들 앞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그녀가 우는 것을 경악과 즐거움과 공포와 연민과 희열에 웃거나 구역질을 하는 아이들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소녀는 절박하게 쥐의 붉은 피와 장기들을 활짝 열린 채 텅 빈 뱃속으로 밀어넣었고 쥐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고 그녀가 돌려준 심장이 다시 박동하고 혈관들이 다시 피의 통로가 되고 폐가 호흡하기를 바라였고 그러나 쥐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고 소녀가 찢어발긴 장기들은 다시 되붙지도 회복하지도 않았고 소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꼈는데도 그녀의 울음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고 소녀는 이제 끝이라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교사는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역겨운 종이들을 걷어가는 것을 잊었고 소녀는 남몰래 쥐의 시체와 피와 진물에 역겹게 얼룩진 시험지를 거대한 푸른 쓰레기 봉투에 버렸고 소녀는 그녀가 버린 쥐의 속살을 그녀가 처음으로 파헤친 끔찍하게 붉은 심장을 다시는 찾지 못하였고 그녀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형체도 없이 으스러졌고 이제 그녀의 심장은 입 밖에서 출혈하고 있었고 그녀의 폐는 소장과 뒤섞여 뭉그러졌고 소녀는 그렇게 역겹고 절망적으로 뒤얽힌 채로 훼손된 채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었고 강렬하게 절박하게 당장 죽을 것처럼 그래서 터져나오는 생을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을 것처럼 살아 있었고 소녀는 쓰레기봉투 위로 역겨운 시체의 산 위로 찍찍거리며 힘겹게 기어오르는, 차마 해부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처분하고 삭제해버리기 위해 쓰레기 봉투에 산 채로 던져 넣었던, 아직은 상처 하나 없는 몸, 그러나 배가 잘려나간 쥐들의 내장과 가죽으로 끔찍하게 붉게 젖은 피투성이 몸으로 기어오르는 쥐를 발견하였고 소녀는 남몰래 그 쥐를 치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소녀의 치마 속이 새빨갛게 젖어들었으나 아무도 소녀에게 그녀가 무엇을 흘렸는지, 소녀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소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소녀는 붉게 젖어든 얼룩을 숨기지도 않은 채 주머니 속에서 찍찍거리면서 살아 있는, 피투성이의, 그러나 절망적으로 뜨겁고 헐떡거리는 생명을 더듬거렸다.

그 취약한 벌거숭이 몸이 애타게 헐떡인 숨, 쏟아버린 숨, 내뱉은 숨은, 한때 그의 영혼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가볍고 투명한 살은 다시는 그의 몸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한 번 내쉰 숨은 영원히 잃어버린 숨이다. 한 번 흘린 피는 영원히 잃어버린 피이며 한 번 흘린 눈물은 영원히 잃어버린 몸이다.

소녀는 미친 듯이 박동하는 그 작은, 델 듯이 뜨거운 몸이 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는 신을 연민하였다. 처음으로, 소녀는 신이 연민할만한 취약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죽을 만큼 불온한, 비의적인 발견이었다. 아무도 심지어는 황제나 대통령,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산 아름다운 여배우나 왕자마저도 신을 연민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피에 젖은 채 헐떡거리는 쥐, 소녀의 주머니 속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울부짖는 이 가여운 몸이, 버려진 살점을 헤치고 삶을 향해 기어오른 이 끔찍한 생명이 신이라는 것을 몰랐으니까. 신이 연민할 만큼 고통스럽고 징그럽고 무표정하며 역겹게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경멸적이며 모멸적인 취약성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천사의 고기를 먹은 소녀는 신 역시 고기라는 것을, 그 고기는 죽음보다도 깊이 살아 바들거리며 피를 뿜는 심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은 비참하고 가련한, 미친 여자였다. 신은 오로지 허우적거리면서 절박하고 날카로운 숨을 느끼기 위해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쥐들이었다. 신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신은 고기였고 고기가 아닌 사실은 없으니까. 사실은 모두 고기니까. 소녀는 신을 사랑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녀는 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피에 젖은 치마 속에서 쥐는 영원보다도 견고한, 그래서 하룻밤을 넘길 수 없는 한 순간을 살았다.

쥐가 두려움과 공포와 경련, 무엇보다도 생존과 생명에 대한 경이로운 환희에 차서 죽어버린 것을 소녀는 뒤늦게 발견했다. 소녀는 쥐를 애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쥐는 신이었고 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므로. 죽음 속에서 가장 붉게 만개하는 장미이므로. 신을 믿는 자들이 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듯 소녀는 쥐의 생명을 슬퍼하지 않았다. 다만 연민하였을 뿐이다. 소녀에게 슬픔과 연민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연민은 슬픔보다도 넓게 퍼져나가는, 증폭된 피의 향기, 심장의 박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슬픔처럼 소녀의 내부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치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그녀의 몸을 벗어나 희미하게 울렁거리는 연민을, 신의 존재를 느꼈다. 신은 여자의 고기였다. 그러니 신에게 원망할 필요도 감사할 필요도 없었다. 천사의 고기를 먹기 전부터 여자의 영혼은 고기였다. 그러므로 신은, 타자는 여자의 내부에 있었다. 결코 여자이지 못한 채로. 왜냐하면 여자는 여자의 고기를 속속들이, 외과의나 해부학자가 그리하듯 상세히 알지 못했으니까.

여자는 미지근한 빗물 속에 잠긴 채로 경계가 흐릿하게 지워지고 있는 먹과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툭, 하고 떨어지는 순간은 없었다. 그곳에는 추락이, 심연으로의 비상과도 같이 황홀한 도약이 없었다. 하늘이 무엇인지, 여자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가 무엇인지, 여자는 아직도.

남자를 죽여야 했을지도 몰랐다. 범죄를 영속화하기 위해. 그가 여자의 비밀을 안고 달아나기 전에.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죽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림이 박제가 아니듯, 푸른 물감에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경계에 대한 아득한 환상이 영속화에 대한 불가능한 희망이 아니듯, 오히려 와해와 무너짐, 그리하여 시간을 무너뜨리고 시간 속에 그 찰나의 불가능한 가능태 속에 깊이 침잠하는 일이듯, 죽음이 영원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죽음은 오히려 목적과 정향이 없는 탈태였다. 무너진 피부 바깥으로 잡을 수 없이 새어나가는 기억들, 미래를 향해 흘러나가는 작고 기름진 피거품들 거품들은 놀랄 만큼 질기고 단단하다.

여자의 벗은 몸, 축축한 고깃덩이 위로 떨어져내리는 거센 물방울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살갗이었음을, 그 모두가 고기였음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물방울은 고기다. 살아 있었던, 혹은 살아 있지 않은 기억의 결절과 합류점들. 남자는 여자를 신고하지 못할 것이다. 창녀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벌거벗은 미친 여자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그는 감히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여자의 비밀을 안고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잿빛 얼룩에 눅눅하게 젖어든 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가 소년처럼 글을 썼다면, 혹은 그림을 그렸다면, 직접 푸른 물감으로 손을 더럽히면서 그녀를 사로잡은 이미지를 그려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여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여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는 이미 모든 미래, 우발적인 접촉들로 짜여진 견고한 피의 성과 같은 세계를 예감하고 있었다. 현재로 무너져내리면서 끔찍이도 희미해진 존재, 그 절망적인 예감의 아득하고 애틋한 무게를, 당장 날아가버릴 듯 가벼운 속삭임을 여자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여자는 그녀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을, 그녀에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발생하여 고정된 우연들이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필연인 적 없는, 그러나 여자가 잃어버린 미래의 기억 속에서 이미 발생한 사건들이었다. 여자는 그것을 원망할 수 없었다. 하늘이 하늘임을 원망하지 않듯. 엷은 뿌리를 들썩거리며 해를 따라 육체를 이동하는 식물이 해를 원망하지 않듯. 선인장이 사막을 원망하지 않듯. 사막이 갈증을 원망하지 않듯. 그리고 신이 신성을 감사하지 않고 벌레가 생명을 감사하지 않고 책이 문장들을 감사하지 않고 푸름이 붉지 않음을 감사해하지 않듯, 여자는 그 무엇도 감사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것 그녀를 스쳐가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부딪혀 그녀의 표면을 이루는 그 무수한 상처들은 그녀에게 남거나 남지 않은, 그녀에게 고착되거나 떨어져나간, 아프거나 아프지 않은 흉터들은 여자의 것이며 동시에 여자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것이었다. 피부들은, 세계의 고기들은, 고기의 살갗들은 서로 접하고 있으므로. 인접하지 않은 경계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여자는 갑작스러운 구역질에 배를 부여잡았다 여자의 가슴이 얕게 들썩거렸다 나방을, 달을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가 갖지 못한 것을 토하는 일이 가능할까?

여자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여자일 수 없었던 허공을 토해내면서, 어쩌면 그것이 비어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나방들이, 날개와 다리, 겹눈과 표피로부터 떨어져나온 젖은 먼지들이 여자로부터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여자는 영영 그녀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여자가 상상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꿈 속에서 눈꺼풀 없는 눈으로 보았던 흐릿한 어둠의 분말들. 그곳에서 먼지처럼 퍼져나가던 빛의 분말들. 그것은 모두 누군가의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몸, 한 겹의 부드럽고 매끈한, 봉합된 피부가 아닌, 요철과도 같이 울룩불룩하고 미로처럼 구불거리는 끝도 논리도 정합성도 내부도 외부도 없는 표면들.

여자는 보내지 못했던 편지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검은 틈 밑으로 사라져버린 편지들에 대해, 우체통의 밑바닥은 끔찍한 심연과도 같아서 여자는 도저히 그 너머의 손을, 체온을 상상할 수 없었다. TV 화면은 볼이 델 듯 뜨거웠지만 당신의 손도 그렇게 뜨거웠을까?

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여자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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