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펠리와 정복과 혁명의 바깥의 물방울 – 사내와 폭력 3

형상과 배경 양쪽의 경계를 동시에 가르는 윤곽들

중력과 습기, 열기와 타자들에 잠식되어 짓물러가는 살에 대한 연민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때 그들은 그 모든 작용들을 서툴게 연민하는 체 하였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폭력이었다. 반성치 않는 폭력. 목적도 이유도 없는 폭력. 무위에 대한.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문양들로 그 무용한 형상들의 관계로 비로소 완벽한 충만성을 담지하는 추상회화처럼.

등이 굽은 여자, 죽은 아이를 피부 바깥에 서툴게 밀어넣고 배가 부른 여자와 몇몇의 사내는 그 층에 남았다. 사내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 몇이었지? 결국 그들은 몇이지? 그들은 언제나 복수였으므로, 언제나 홀로뿐인 복수들이었으므로 세는 행위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 등이 굽은 남자, 가슴이 쳐진 여자, 언청이 남자, 푸른 소년, 목이 짧은 남자, 검은 머리 여자,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몸인지도 모른다. 조각조각 나뉘어진 특징들을 이어 전체를 볼 여력은 그들에게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부분만을 보았고 거미줄과 실금으로 산산조각이 난 그들의 시야망에서는 그런 지각이 최선이었다. 사내는 노인의 뱃가죽 위에 죽은 채로 엉겨붙어 있는 아이의 불룩한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극간이, 망설임의 시간이 지독히 짧았던 저 아이는 고통과 회한에 서서히 바스라진, 조각난 시야가 아닌 온전하고 깨끗한 시야를 가진 채로 죽었을까? 저 애는 그들이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을까? 아주 어릴 적에는 그들도 저 아이처럼 선명한 풍경을 보았을까? 하지만 그는 어린시절을 떠올릴 수 없었다.

뒤집어진 눈들은 여직 그를 맹시하고 있었다. 사내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으나 검은 죽음의 눈들에게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굽어가는 등을 펴고, 고갈된 에너지를 억지로 뒤얽어가며 구석자리에서 거품을 문 채 사지를 흉하게 벌리고 드러누워 있는 집도의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려쳤다. 곧 그의 사지는 단단하게 굳을 것이고 살아 있는 동안 미친 듯이 살아남기 위해 흐르는 산소와 피는 그의 구원을 포기한 뒤 잠잠하게 그의 깨진 두개골 바깥으로 얌전히 분출될 것이며 그가 믿었던 의식, 자아, 영혼, 마음, 추억과 기대, 미래와 불안, 공포는 그의 몸 바깥으로 줄줄 흘러나가 공간 속을 맴돌 것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을 마음은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애액이 되어 시신의 살로부터, 그의 몸 어디에나 있는 틈새로부터 줄줄 새어나갈 것이다. 마음은 연장이 될 것이고 물질은 영혼과 뒤섞일 것이다. 그의 영혼을 신비롭게 만들던 21그램의 불가해한 물질-비물질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어쩌면 그 21그램의 신비는 오줌과 피, 뇌수 속에 섞여 있는지도 모르지.

집도의의 초록색 두건은 시뻘건 피로 번져가고 있었다. 사내는 묵묵하게 그 광경을, 초록색 천이 기묘한 색으로 젖어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직은, 그의 생을 유지하는 심장과 뇌, 혈류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는 살아서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가 막 여자의 배에서 집어서 꺼내었던 어린아이가 보았던 것과 같은 풍경을 지켜보고 있을까? 백열등에 고정된 시선, 형편없이 풀어져버린 동공 사이로 무참한 빛이 쏟아져 들어가는데도 그의 동공은 헐거워진 항문처럼 제대로 닫힐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피는 번져가고 있었다. 사내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신비로운 물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경련하는 몸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공기 중에서 이러한 우연찮은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벌레와 균들이 어떻게 그를 분해하고 흡수하고 소화시키며 변형시키는지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야, 하고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끝을 지켜볼 때가 아니야. 하고.

사내는 저를 따라오는 몇몇 이들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그 밀폐된 악취의 장으로 걸어들어갔다. 프론트로 걸어나갔을 때, 사내는 입구 여자의 사지가 그가 거울처럼 정 반대 방향으로 끔찍하게 뒤집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잉 메시지라도 쓰려 한 것일까, 도움이라도 요청하려 한 것일까. 사내는 다리와 팔을 기묘한 자세로 얽은 채 얼굴을 바닥에 짓누른 채로 죽어 있는 흉측한 시신을 자세히 관찰하였으나 거울처럼 뒤집혔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사내는 뒤집힌 검은 눈동자가, 최초의 검은 눈이 떨어지던 곳으로 걸어갔다. 다른 이들은 병원의 입구, 망가진 입구 여자의 곁에 남거나 그의 뒤를 따르거나 검은 숲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사내는 하늘이 거울처럼 뒤집혔다고 느꼈지만 천구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의 직감을 스스로에게도 증명할 수는 없었다. 구름이 반대 방향으로 이지러진 것 같다. 그러나 구름은 언제나 움직인다. 구름에 대고 맹세하는 일은 달이나 혹성에 대고, 별에 대고 기도하는 일보다도 멍청한 일이다.

사내는 산비탈 아래에 목이 꺾인 채로 누워 있는 검은 시체를 발견하였다. 최초의 눈동자는 사내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눈동자의 환영들은? 물방울 알알이 거울상처럼 비추어진 눈동자의 복제들 역시 사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사내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단 말인가?

사내의 뒤쪽에서 어정거리며 시체를 구경하던 군인들이 갑작스레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황토색의 털을 덥수룩하게 매단 짐승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송곳니와 평평한 어금니가 뒤섞여 있는 개와 같은 이빨을 드러낸 채 달겨오고 있는 짐승은 사슴처럼 보이고도 했고 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군인들은 땅 위에 바짝 엎드린 채로 머리를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에게 달겨드는 짐승의 모습을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요크셔테리어처럼 긴 황갈색 털이 머리와 가슴, 앞발을 뒤덮고 있었으나 등 뒤부터 뒷발까지의 가죽은 사슴처럼 매끈했다. 머리와 상반은 전체적으로 살찐 개나 몸집이 커다란 짐승처럼 부풀어 있었으나 하반은 상반에 생각없이 몰아넣은 탓에 살과 털의 양이 부족한 탓인지 어린 사슴만큼이나 가녀렸다. 그 탓에 균형을 잡기 어려운지 짐승은 앞으로 고꾸라질 듯 뒤뚱거리며 사내에게 달겨들었다. 사내는 피처럼 붉은 입 속에서 흐르는 침이 사내의 얼굴과 가슴팍, 손을 뒤덮도록 내버려 두었다. 킁킁거리며 검붉은 코를 움쩍거리던 짐승은 거대한 상반으로 사내를 밀어대다가 갑작스레 사내의 뒤쪽으로 돌진하며 사라졌다. 숲의 복수, 유령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엎드린 채 떨고 있는 군인들을 뒤로한 채 사내는 짐승에 달려나온 장소를 바라보았다.

시체가 사라졌어요.

사내의 뒤에서 어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슴-개가 시체의 한쪽 팔을 이로 물고 숲쪽으로 뛰어갔다는 것이었다.

걱정 말아요. 이젠 겁먹지 않을 테니. 무척이나 앳된 얼굴의 군인은 침잠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장신의 여자에게 동의를 구하듯 올려다보며 말했다.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어리석었어요. 대장님-사내는 누구의 대장도 아니었으나 그 애가 그렇게 부르는 일을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내는 그가 호수에 밀어넣었던 소년만큼이나 어린 군인이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지 의아해할 뿐이었다. 마치 거울처럼 소년과 닮은 아이였다. 소년과 닮았다면 그가 겁탈한 소녀와도. 검은 물처럼 일렁이는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과 요정처럼 뾰족한 귀, 호수의 밑바닥처럼 검푸른 피부, 거울 속 뒤집어진 반사상처럼, 수면에 비추어진 형상처럼 일그러진 얼굴- 깨달은 사람은 결코 쫓길 수 없다는 걸요. 깨달은 이들, 삶에 대한 갈망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한, 육체에 대한, 연민에 대한, 정념에 대한 갈망은 사랑과 육체와 연민과 정념, 삶에 속하는 이들의 감정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 같은 사람은 죽음을 갈망할 수밖에 없고 갈망하는 이상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이상 더 이상 삶조차도 우리를 쫓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대장님, 유령은요? 전 저 끔찍한 짐승이 유령이라고 생각한 걸요. 물론 전 더 이상 삶에도 죽음에도 쫓길 수 없지만 갑자기 의문이 들더군요. 유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광학적인 특성을 갖고 우리 두 눈에 비치고 세상에, 울부짖기까지 하는 유령은-게다가 그건 대장님을 밀쳐 넘어뜨리려고 했어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인 특성을 다 갖춘 것 같은 유령은 삶에 속한 건가요, 죽음에 속한 건가요?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미친 듯이 불안해졌던 거예요. 난 지금껏 우리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누구도 우릴 듣지 않고 누구도 우릴 보려 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우린 여전히 죽음을 쫓고 있고 죽음은 우리를 껴안아주지 않으니 우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대장님. 우리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들을 죽였잖아요. 그들은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었어요. 맞으면 멍이 들고 피가 나고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오줌과 똥을 질질 흘리고, 아, 그 악취를 어떻게 잊겠어요. 난 변에서 그렇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지, 달콤한 냄새가 그렇게 역겨울 수 있는지 몰랐어요.

우린 그 머리들을 유리창을 깨뜨리듯 깨뜨렸죠. 그들은 끝까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우리의 하소연을 제대로 들어 주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때리는 대로, 걷어차는 대로, 총을 쏘아갈기는 대로 넘어지고 으스러지고 망가졌어요. 그럼 우리도 물리적인 존재인 건가요? 광학적이고 촉각적인 존재인 건가요? 우리도 다른 물질처럼 장소를 점유하고 제 공간을 갖고 제 소리를 갖고 제 얼굴을 갖고 제 살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인 건가요? 우리도 아플 수 있고 비명할 수 있고 죽어갈 수 있는 존재인 건가요?

난 여왕님이 우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분은 처리할 일들이 많잖아요. 우리같은 놈팽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 여느때처럼 일을 하시다가, 일을 하시다가요, 소년병은 꺽꺽거리면서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이름들을 보았고 그 이름들을 다른 이름으로 착각하여 어딘가로 보냈고 또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관리들의 손 위에서 우리의 이름들, 착각된 이름들이 이곳저곳으로 쏘다녔고 그 사이에 다 해어져버린 이름은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고 그래서 장소 없이 이곳저곳 떠돌고 있는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우리를 보내더라도 그 누구의 오류도 아니게 되는 거니까요. 우리를 찾는 사람도 우리의 파병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우리가 이곳까지 오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가 광학적이고 촉지적인 존재였다면요. 유령도 물리적인 존재일 수 있는 거라면 우린 그들을 밀치고 울부짖고 유리창을 깨뜨리듯 우리를 여기까지 버린 그 중층의 문들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어딘가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거라면요. 그래서 모든 결정을 잘못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하고 소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난 죽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당신도 나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던 걸까요? 난 익사한 오필리어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그토록 간절한 사랑을 했던 건 아니었는데 난 누구에게도 순결을 맹세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배신당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난 내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었던 건가요?

사내는 어디까지가 소년의 목소리인지 어디까지가 그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년병은 다시 보니 무척이나 늙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오랫동안 물에 부푼 익사체처럼 쭈글쭈글했고 호수 속에서 수면을 가리며 피어오른 오필리어의 새하얀 속치마처럼 창백했다. 검은 물과 같은 눈동자만이, 물기가 차올라 일렁거리는 반짝이는 눈만이 소년과 닮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눈동자들은 어느 정도 검지 않던가? 사내는 언제라도 그를 습격할 듯 그의 틈새를 맹시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에겐 다른 죽음이 필요하지 않았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죽음뿐이었어. 수많은 은유와 환유, 상징들은 거짓일 뿐이지. 그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들의 끝은, 당신들의 끝은 사내의 끝이 될 수 없었다. 사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누구의 죽음도 아닌 사내 자신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야, 하고 사내는 다시 되뇌었다. 끝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끝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 같은 문장들을 근거도 이유도 목적도 없이 끊임없이 되뇌었다. 하나의 결론으로만 이어지는 순환적인 철학 속에서 헤엄치는 사상가처럼.

사내는 나무 넝쿨로 가려진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늪의 악취가 훅 풍겨오고 녹색의 여린 뿌리들이 사내의 손을 휘감았다. 늙은 소년과 여군이 사내의 뒤를 따랐다. 사내의 진입에 인간의 눈과 귀,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던 작은 생태계가 소란스레 움직였다. 나무덩쿨의 속살에서 잠들어 있던 진드기들과 난산을 예고하며 그들에게 짙은 얼룩을 드리우던 햇빛의 파장, 날짐승들만이 들을 수 있는 높은 음률로 대화하던 벌레들의 수다가 별안간 끊어졌으며 파리의 뱃속에 은밀하게 제 포자를 심던 이끼의 비밀스러운 겁탈 역시 멈추었다. 그들이 듣지 못하는 무수한 관계들의 파장이 그들의 등을 쓸며 스쳐지나갔다. 나무덩쿨로 가려진 산비탈의 안쪽 구멍은 쓰레기로 진창이 되어 있었다. 발치에 채일 정도로 어질러진 정도가 아니었다. 플라스틱 식기와 목이 뜯겨져나간 인형들, 죽처럼 우므러진 나무의 토막난 시신과 대칭이 깨진 채 나뒹굴고 있는 천칭의 유해, 사내는 썩어가는 식물에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가 풍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내는 쓰레기 산을 등반하듯 허우적거리며 올라갔다. 파프리카 스프가 사내의 군복을 더럽히고 녹아 문드러진 플라스틱 보석들이 사내의 얼굴에 늘러붙었다. 뒤따라오던 늙은 소년은 통조림 뚜껑에 발을 베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흐느끼고 있었다. 사내는 스스로도 쓰레기 산을 횡단하려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안으로, 안으로 계속 진입하여 들어갈 뿐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들에 뒤섞이며 사내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역겨움의 섬 속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이 사내를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사내는 쓰레기의 섬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다.

너무 깊이 들어왔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태양을 꿈꾸며 배회하다 가로등의 차가운 불빛으로 빨려들어가 헐떡대다가 뒈져버리는 나방들처럼 사내는 검은 눈에 쫓기다가 이곳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이 진창까지. 이 쓰레기 더미, 오르고 올라도 자꾸만 미끄러지는 역겨운 섬에, 정상을 정복하려 발을 휘저어도 편평하고 단단한 꼭대기의 지상이 아닌 끈적한 굴의 한복판으로 글을 깊숙이 파묻어버리는 끔찍한 늪 속에. 그는 밤을 활보하는 짐승들의 요람이 될 육체들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시신들을 데려와 여기에 묻었어야 했는데. 시체의 살을 파먹고 혈관을 무너뜨리고 체액을 빨아먹는 벌레들이 그의 주위에서 웅웅거리면서 삶의 비명을 토해냈다면 그는 부질없이 허우적거리는 발질을 그만두고 얌전히 생의 먹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플라스틱들의 늪에서 유일한 생이었고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늪의 한복판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썩어빠진 역겨운 스프를 코로 귀로 삼키고 푸른 곰팡이들이 피어나는 인형의 갈라진 입술에 입을 맞추어가며. 마침내 쓰레기 섬의 배를 가르고 내부로 들어갔을 때, 사내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길고 지긋지긋한 환각이 그의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과 눈썹, 골수 깊은 곳까지 갉아먹고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초의 실패를 경험했던 마술 무대 위에 있었다.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새끼 비둘기가 그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비둘기의 날개가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객석에서 무신경하게 쓰레기를 뒤지던 걸인이 고개를 들었다. 싯누런 치아와 쓰레기에 절은 악취, 그는 흉측한 치열을 그대로 내보이며 입을 벌렸다.

그는 한밤에 침입한 이방인들을 유령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내 역시 노인이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날 객석에 남겨두고 떠난 그의 실패의 목격자, 시퍼렇게 질려 죽어버린 새끼 비둘기가 그의 머리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증인, 최초의 살해의 목격자. 하지만 그를 뒤따라 쓰레기 산에서 빠져나온 여군은 다른 인물과 마주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경악한 듯 비명을 지르며 걸인의 냄새나는 몸을 끌어안았던 것이다.

그녀는 환희에 전율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제야, 이제야, 하며 여자는 중얼거렸다.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하며 여자는 어리둥절하게 유령에게 끌어안겨 있던 노인을 밀어내고 노인의 앞에 있던 투명한 관을 가리켰다. 안락사 장치예요. 자, 봐요. 이게 생리 식염수고 이쪽 노즐은 전신마취제, 이쪽엔 비소가 들어 있죠. 여자는 투명한 혈관처럼 늘어진 선에 연결된 긴 실린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는 얼룩처럼 보였다.

이분은, 여자는 노인의 비쩍 마른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죽음을 개발한 사람이에요.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 유령같은 도시에, 이 끔찍한 숲에 따라들어왔는지 이젠 당신도 알겠죠. 난 이 사람을 데려갈 거예요. 물론 안락사 장치도 같이. 이제 시덥잖은 전쟁놀이는 끝났어요. 여자는 거진 질식해 죽을 듯 파리하게 질린 노인을 애완 고양이를 다루듯 어루만지며 말했다. 코코펠리에 아직까지도 안락사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나요? 여왕이 숫자와 시간을 처음 합법화했을 때, 난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조금도 놀라지 않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난 수를 세기 시작했고 수를 곱하고 나누고 분절하고 부풀리며 이항시키는 온갖 수적인 작용들에 몰두했으니까요. 2×9와 6×3이 본질적으로 같은 어휘임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희열을 아직도 기억해요. 하지만 날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들은 2와 둘이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어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난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제 몸에 흘러가는 시간만을 인정하려 드는 작태를 견딜 수가 없었죠. 더군다나 도시에서요! 그 많은 사람들, 그 많은 몸들, 그 많은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의 공통된 시간 개념조차 합의하지 않고 방치해두다니. 기차는 승객들의 시간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운전수의 몸에 흐르는 시간에 따라서 움직였고 학교 수업은 교사의 시간에, 음식점은 주인의 시간에 맞추어 흘러갔죠. 분업이나 협업은 끔찍할 정도로 어려웠고 제대로 약속을 하여 만나는 일조차 어려웠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죠. 얼마든지 필연에 가까운 계획으로 바꿀 수 있는 만남을 순전히 우연에만 맡기면서도 그게 이상한 줄 몰랐다니까요.

난 시간을 언어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는 비명과 흐느낌, 신음뿐이지만, 우린 지금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음절들을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배열해가며 그것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고 의사소통을 하죠. 이 모든 과정은 지극히 자의적인 거예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진정 모어로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함께 쓸 수 있는 기호라는 건 그런 거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누구의 육체도 아니죠. 하지만 우리가 함께 기워서 만든 합성된 육체인 거예요. 우린 그 인공의 육체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표상되는 육체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이상한 소리들을 규칙에 따라 내뱉고 그걸 알아듣는 체 하는 거죠.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간도 언어와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우리 내장 속에서 우리 자신도 자각할 수 없는 속도로 제각기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움직임을 통일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요. 물론 언어를 만든다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목구멍 깊은 곳에 가지고 나온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나 교성의 소리를 없애버릴 순 없는 거죠. 울음을 교정하기 위해 개의 성대를 절제해내듯 우리 성대와 혀를 모두 잘라버리지 않는 이상 말이에요. 물론 난 이런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럼 우리는 발음상의 문제점이나 말의 중간중간 소통을 방해하는 자연적인 소음들이 몸 속에서 오물처럼 울컥울컥 새어나오는 걸 막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시겠듯이 아직은 때가 아니죠.

난 선구자로 태어나서 선구자로 자라오면서 내가 먼저 내다본 일들이, 내가 먼저 깨달은 것들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혁명가 여자가 실패한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사회의 변혁은 누군가의 행위로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선언도 폭력도 항쟁도 죽음도 하나의 제도, 살들의 거대한 기계장치를 바꿀 순 없어요. 여럿의 죽음, 여럿의 투쟁, 여럿의 관계, 여럿의 삶, 여럿의 철학이 제도를 바꾸는 거예요. 하지만 복수성은 단수들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죠. 그러니 혼자만의 죽음, 혼자만의 투쟁, 혼자만의 관계, 혼자만의 삶, 혼자만의 철학은 그냥 미치광이의 몽상일 뿐 실체화된 무엇도 만들어낼 수 없죠. 혼자들을 선형적으로 엮어놓는다고 해서 여럿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우린 여럿의 시간이 닥쳐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죽음, 혼자만의 숫자, 혼자만의 삶, 혼자만의 시계 속에서 미쳐가면서요.

어렸을 땐 나도 혁명을 하려 했어요. 시계를 만들었던 거예요. 지금 여왕이 선포한 시간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천구의 시계였어요. 난 성당 미사시간 전에 신부 몰래 숨어들어 장의자에 내가 만든 시계들을 무더기로 놓고 사라지곤 했어요. 난 자연적인 몸을, 신체의 시간을 거부한 죄로 잡혀갈지, 선구자로서 추앙받아 거대한 시계탑을 만드는 작업을 맡게 될지 몰라 다락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새까만 꿈의 영상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죠.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시계에 적힌 숫자들, 작은 바늘과 큰 바늘의 진동이 의미하고 지칭하는 것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 일이 자라나며 몇 번이고 반복되었어요. 그래요. 나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실패자에 불과해요. 내가 홀로 부르짖는 모든 말들은 시간 속에 파묻히고 난 내가 발견했던 환상적인 개념들을 모두 누군가의 공으로 양도할 수밖엔 없겠죠. 하지만 당신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선지한 건 반드시 누군가의 물결에 따라 도래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여자는 식물의 혈관처럼 투명한 관들이 줄줄이 매달린 장치에 드러누웠다. 사내가 처음 보았을 때 느꼈듯이, 기계장치는 매끄럽고 아름다운 관처럼 보였다.

여기에 누워서 보는 풍경이 사람들의 마지막 세계가 될 거예요. 하고 여자는 다시 허리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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