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펠리와 정복과 혁명의 바깥의 물방울 – 사내와 폭력 4

안락사 기계에 대해 생각한 건 여왕이 즉위하고 시간과 숫자에 대해 처음으로 발표했을 때예요. 난 시간을 인공적으로 측량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면 당연히 죽음의 시간도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요. 마치 언어처럼 말이에요. 시간이나 숫자를 익힐 때처럼 혼란기를 겪을 필요도 없어요. 아주 간단하니까. 시계 바늘보다도 간단한 원리죠.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의 생김새와 의미를 외울 필요도 없으니까. 자, 이 바늘들을 하나씩 꽂고 생리식염수, 전신마취제, 비소를 순서대로 주입하면 돼요. 순서를 헷갈리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마취제보다 독을 먼저 흘려넣으면 더 이상 안락한 죽음이 될 수는 없을 테니. 그 정도도 헷갈려 하는 멍청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위험은 감수해야죠. 이제는 죽음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뿐이에요. 한시라도 빨리. 시간과 시계, 전쟁과 정복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졌듯이. 오해와 폭력, 살인에 익숙해졌듯이, 하고 여자는 검은 눈으로 사내를 쏘아보며 말을 마쳤다.

하지만 사내로서는 여자가 하는 말과 혁명에 대한 선언을, 선각과 혁명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로서는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처음부터 이야기하였듯 그들의 폭력에는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으므로.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어떠한 변화가 필연적이고 어떠한 죽음이 당연한지는 사내와 무관한 일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말대로 다가올 미래를 알아차리는 기민한 선각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여자는 소스라치며 죽음의 개발자라는, 죽음의 대수학자라는 냄새 나는 노인의 어깨를 붙잡고 그의 기계장치 아래로 숨기려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현상은 예언보다 강력하고 비참했다. 노인의 불균등한 치열과 말라빠진 혓바닥, 납작한 코와 주름 투성이의 얼굴은 이미 총탄의 폭발에 휘말려 사라지고 난 뒤였다.

사내가 기계장치에 총구를 가져다 대자 여자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면서 투명하고 납작한 관 속으로 들어가 투명한 혈관과 그를 잇는 침들을 손등 위에 거칠게 꽂았다. 짓이겨진 손등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여자를 말리지 않았다. 그들은 원하는 자리에 머물 것이다. 타인의 부서진 해골이든, 저 자신의 불협화음이든,

전부 죽여버려야 돼. 전부 죽어버려야 돼.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생물들은 전부 비정상적인 정신병에 감염된 거야. 페스트 같은 질병, 저 자신의 축복받은 죽음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려는 광증에. 들쥐들의 몸을 만져본 적이 있나요? 착실하게 죽음을 향해 박동하고 있는 그 뜨거운 살에 손을 얹어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눈부시게 빨리 죽고 그만큼 많은 질병들을 퍼뜨리고 말죠. 역겨운 것들, 빨리 죽고 빨리 나고 끊임없이 연속성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불연속적인 시간의 선영들. 난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못생기고 덩치가 컸어요. 고독과 불안을 내면에 잘 갈무리하고 변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아무도 내게 가면을 쓰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죠.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은 살과 단단히 달라붙은 흉측한 괴물의 가면뿐이었어요. 오래도록 벗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고 각질과 땀이 달라붙은. 매캐한 살의 가면 속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와도 닦아 주는 이는 없었죠. 날 위로해 주는 이도 없었고 연민하는 체하는 이도 없었어요. 큰 몸집과 흉측한 얼굴은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었죠. 실존에 지쳐버린 이들은 저 자신의 자폐에 몰두하거나 기형적으로 돌출된, 아름다움을 현화하는 성모상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병적인 우울을 외화하는 장애에 가까운 기형적 외모에 천착했어요.

그들은 날 조롱하고 멸시했어요. 날마다 얼굴을 씻어대도 본질에서부터 스멀스멀 비집고 나오는 역겨운 기름과 함께 돋아나는 피부 염증과 움푹 팬 모공들, 작은 눈과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온 광대뼈는 손쉬운 표적이었죠. 학창시절부터 학생들, 심지어는 교사들까지도 내 외모를 비웃으며 그들 내면의 불안을 달래었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매일 틈만 나면 거울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가면의 흉측한 낯을 속속들이 뜯어보면서 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명활동의 추악함을 잊었죠. 일그러진 얼굴을 들여다보는 동안에는 갈빗대 속에서 둥둥 울리며 혈관들을 찢어발길 듯 몸부림치는 심장과 뇌 속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산소의 거품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생의 규칙에 따라 꿈틀대며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는 무수한 세포들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어요. 가장 안온한 잠에 빠져들어 있을 때도, 침묵으로 존재의 수치를 가릴 때에도 수십조개의 세포들이 생이라는 조악한 목적을 위해 일시에 움쩍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미칠 듯이 혐오스러워요. 하지만 어릴 적엔 단순히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학생과 교사들의 조롱을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내 외면의 흉측함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의 수치스러운 역겨움을 잊을 수 있었어요. 날 조소하고 희화화하던 이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그들은 매일같이 너 같이 역겨운 년은 뒈져버려야 한다고 낄낄거리면서도 내게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던 거겠죠.

그들은 내가 끔찍한 병원균이라도 되는 양 굴었어요. 내 살과 맞닿은 책상과 의자, 교과서와 필통을 만지는 일조차 지독하게 싫어했죠. 못생김의 병이 옮는다고 말했어요. 난 매일같이 기도실에서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울었고-그러면서도 거울을 깨뜨려버리진 않았죠. 난 내 얼굴을 보지 않을 때면, 누군가 내 얼굴의 흉측함에 대해 상기시켜주지 않으면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거든요.- 그럼 신부님은 매번 내 머리와 이마를 쓰다듬으며 언젠가 내게도 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넌 겉보다 속이 아름다운 아이니까. 하고 말했죠.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깨달았죠. 내게 필요한 건 차라리 날 조롱하는 면면들이라고. 내 추악한 가면에 쏟아지는 비웃음이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누구도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이의 흉측함을 비웃지 않았어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조소하고 경멸하는 일도 없었죠.

난 군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그림자처럼 살았어요. 내가 개발한 시계와 숫자, 시간의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아무도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고 아무도 내 존재를 신경쓰지 않았어요.

사내는 여자의 엇갈리는 말을 들으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이곳까지 오며 한 번도 그녀의 끔찍하다는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지금도 유리관에 파묻힌 그녀의 낯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외출을 해 보았자 만날 이도 나눌 대화도 없었으니 난 자연스레 방 안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어요. 밖으로 나가 봤자 매번 같은 풍경과 똑같은 걸음걸이의 행인들 똑같은 가게들과 똑같은 차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으니까. 난 간혹 교회 기도실에 틀어박혀 울거나 집에서 울거나 할 뿐이었죠. 홀로 지내면서 난 외면이 아닌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더 끔찍하고 흉측한 건 외모가 아니라 피부 속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세포들이라는 걸, 온갖 오물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굴러다니고 있는 내장 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세포들은 죽음의 순간, 이전의 형상을 포기하는 순간 두 개로 분열하며 새로운 삶을 반복하죠. 그러니까 끔찍한 삶의 이면에는 수천, 수만, 수억 번의 죽음이 전제된 거예요. 몸 속에서 드글거리는 세포들은 매 순간 황홀한 죽음의 감각에 도취되어 계속해서 제 몸을 찢고 그 순간에 벌어지는 죽음의 충만함을 만끽하죠. 하지만 정작 그 무수한 죽음의 현장인 내 몸은 단 한 차례도 죽을 수 없어요. 한 번의 죽음, 그 한 번의 끝만이 내게는 이토록 절실한데. 난 세포들이 반복하는 죽음의 탐닉, 나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될 수는 없는 죽음들의 반복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어요. 단 한 번의 총체적인 죽음 이전에는. 그러니 이 흉측함으로부터, 존재의 시작부터 내 얼굴에 전조처럼 피어오르던 역겨움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건 자살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렸을 적에 난 관 속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했어요. 진짜 관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관의 출처와 생김새, 냄새는 현실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모방해내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구해낸 표본이죠. 난 언제나 수업이 끝나갈 무렵 제일 먼저 짐을 챙겨서 집까지 달려가곤 했어요. 그러니 평소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날은 생리를 하는 중이어서 지독한 무기력과 피로에 도저히 뛰어나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교실에서 가장 늦게 나가는 걸 택했죠. 시끄럽게 북적거리는 애들 틈에 끼어서 집까지 밀려가고 싶진 않았거든요. 마침 운구행렬을 보게 된 건 그 덕분인 거죠. 난 관을 들고 가는 흰 상복 차림의 사람들이나 퍼레이드와 같은 대열의 모양과는 달리 이상스럽게도 침체된 분위기에 압도되었어요. 나중에 그 군중 사이에 누운 채로 소리없이 지나가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 당시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관의 상세한 모양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어요. 한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생김새, 앞면 위쪽에 새겨진 십자가의 모양과 짙은 피의 냄새. 아마 피비린내는 내게서 나던 거였을 거예요. 관 속에 들어있는 시체는 깨끗하게 씻기고 단장되어 피의 악취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상태였겠죠.

여하튼 그건 내 관이었으니까, 아직 멀쩡하게 흐르고 있는 내 피의 냄새가 뒤섞인데도 별 상관은 없는 거죠. 난 매일같이 침대 구석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채 내 몸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갈색 나무관을 떠올렸죠. 천장 위로 떨어져내리는 젖은 흙의 냄새와 내 주변에서 헌옷이 타오르는 소리, 어느틈에 관 속으로 밀고들어와 애완 고양이처럼 애교를 피우며 내 살갗을 핥아대는 파리떼들. 나방의 검은 날개가 온몸을 벨벳처럼 뒤덮고 나면 내가 천성적으로 앓던 흉측함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방과 구더기가 몸속에 들어찬 즙액을 황홀하게 핥아먹고 윤기나는 몸뚱이와 날개를 떠벌리며 기어다니면 난 여느 망자들만큼이나, 여느 시신만큼이나, 여느 흙만큼이나, 여느 죽음들만큼이나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얀 곰팡이가 피부를 뒤덮고 나면 생전에 날 괴롭혔던 불그스름한 피부 염증도 보이지 않겠죠. 난 백옥같은 밀랍에 뒤덮여 얼어붙을 거고 조각처럼 깨끗해질 거예요. 아니면 사르키나 플라바, 스트렙토코커스 파이오게네스, 이런 아름다운 이름들을 가진 부패균의 매혹적인 작업 덕에 썩어갈 수도 있겠죠. 허파와 심장에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흐물흐물하게 분해되어 벗겨지고 나면 지독히도 질기던 살은 제 매듭을 스스로 풀어내고 문드러져 물처럼 자유로이 흘러내릴 거예요. 단 한 글자의 절망조차 남지 않겠죠. 조각조각 흩어진 뇌의 물질들, 한때는 사유와 고독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터무니없는 작용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신비로운 기관은 다만 피와 골수, 나아가서는 탄소, 수소, 질소, 황으로 분해되어 어떠한 사유도 어떠한 어휘도, 어떠한 음절도 생산해내지 못할 거예요. 육신은 더 이상 환멸에 찬 생이 아닌 죽음에 대한 갈망에 매진하며 그토록 사랑하고 애걸했던 죽음을 피워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네, 언어에 대한 개념조차 먼지처럼 바스라져 샅샅이 흩어져버리고 나면 시간도 숫자도 잃어버리고 말겠죠. 난 마침내 시간과 숫자로부터, 강탈당한 예언으로부터, 가진 적도 없이 빼앗긴 세계로부터,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난 중력도 습도도 더위도 추위도 압력도 매캐함도 느끼지 못하고 하염없이 부유하겠죠.

하지만 아무리 오래도록 관속에 들어가 있어도 내 몸이 썩어버리는 일은 없었죠. 혈류는 끊임없이 독과 같은 산소를 내 머리에 실어날랐고 끔찍한 생명을 계속 이어나갔죠. 새하얀 곰팡이 대신 시뻘건 피부염증만이 피어올랐죠. 붉은색, 그건 시신이 아닌 생의 색이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견디어도 난 분해되지도, 썩지도, 조각조각 갉아먹혀 수많은 날짐승들의 위장 속에 담겨 사라지지도 않았어요.

이제는 당신도 동의해야 해요. 우리에겐 죽음이 필요해요. 아직 죽지 않은 이들에게도 썩어갈 기회를 선사할 진짜 관이, 이 무의미한 혈관들을 전부 얼려버리고 생의 역겨운 맥박을 찢어발길 관이 필요하다고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생이라는 불가해한 재난에 떨어지고서 우린 끝에 대한 전조도 없이 이 역겹도록 젊고 건강한 육체로 버텨내야 하는 거예요. 건강한 신경과 건강한 통각과 건강한 뇌가 무참히도 세세하게 읽어내는 아픔과 고독, 불안을 생생하게 앓아내며. 우리의 의지는 깡그리 무시한 채로 저들만의 죽음 속에서 속살대며 노닥거리고 있는 불온한 세포들이 언젠가 우릴 죽음으로 실어나르기만을 기다리면서 병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죠. 당신도 알잖아요. 우리가 진작에 죽었어야 한다는 걸. 그런데도 이 관이 필요 없다고요?

그렇소. 우린 우리의 죽음 이외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존재들이오. 본질적으로.

여자는 거미줄처럼 얇고 가는 호스들을 움켜쥐며 대답한다. 난 본질을 믿지 않아요. 그렇다고 관계나 허상을 믿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우리에게 죽음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요. 당신도 알 거예요. 우린 모두 같은 병에 걸렸으니까. 실존이라는 병, 생존이라는 병, 우리 어미가 잘못된 결단을 내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토록 흉측하고 끔찍하게 태어날 거라는 걸, 평생토록 사랑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원해지지 않으며 다만 죽음만을 갈구하며 살아갈 거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녀도 더 나은 선택을 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우린 이미 내던져졌고 이젠 삶도 죽음도 우리의 몫이에요. 죽고 나면 이 끔찍한 흉측함도 더러운 악취도 불안도 외로움도 분노도 더는 없을 거야. 우리가 일생동안 더럽혀온 지상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을 테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해요.

죽음에 이르는 병, 그 치명적인 정신질환에는 이미 수세기도 더 전에 걸렸는데 왜 아직도? 하고 물으면서도 사내는 여자의 말에 매혹되어간다. 그들이 모두 코딩된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면, 그들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옭죄어놓는 투명한 실타래를, 소세지를 묶어놓는 매듭을 풀 듯 풀어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말하듯, 관은 사랑을 해빙시키는 기계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방인 소녀가 치맛자락을 올리고 허벅다리에 그의 손을 올려놓는다. 그의 예기치 못한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밀어로 속삭인다. 그들의 이질적인 집합을, 살과 살의 결속을, 서로 다른 대기와 흙의 뒤얽힘을 기다려 왔다고. 그녀의 자궁은 헬라세포를 배양하고 있는 암의 수족관이다. 사내는 그 황홀한 밀지에 손을 집어넣고 맥동하는 음부의 온기를 느낀다. 그곳에 죽음이 배양되고 있다. 그곳에서 죽음이 자라나고 있다. 소녀는, 죽음은 사내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사내는 그를 향해 열린 죽음의 입구 속으로 조심스레 몸을 밀어넣는다. 그는 소녀가 배양해낸 황홀한 죽음에 기꺼이 감염된다. 소녀의 암세포는 사내에게 흘러들어 생을 향해 부질없이 움직이던 세포들의 완고한 비밀을 풀어낸다.

그들의 공모자로 변한 세포들은 이제 삶이 아닌 죽음을 위하여 운동하며 치명적인 시간이, 그의 끝이 다가왔다는 소식을 사내의 몸 전체로 퍼뜨린다. 이제 사내의 육체는 하나의 거대한 선언이다. 그는 이제 소녀와 다르지 않으며 다른 어떤 망자들과도 다를 바가 없다. 아무도 그를 소외시킬 수 없고 그는 고립될 수 없다. 죽음의 대대적인 해빙 작업에 말려들어 녹아 흐르는 모든 공기와 흙에 퍼져나가는 산소와 탄소, 수소와 인 따위는, 그 각각의 원소는 그것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 이외에 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동일자들이므로. 그들은 대기 속으로 흘러드는 사내의 우울과 고독, 불안과 죄를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녀는 비명 대신 교성을 내지르며 사내를 감싸안는다. 얽힌 다리 사이로 연결되어 있는 그들은 이제 서로의 몸에서 자라나는 죽음의 세포를 나누며 같은 순간, 그들에게 찾아올 예기치 못할 순간, 죽음을 기다린다. 소녀에게서 사내는 죽음장치에 소녀를 밀어넣고 그녀를 무너뜨리며 하나의 유동적인 액체로, 연속성의 환상 속으로 홀려들어가는 환상을 꿈꾼다. 푸른 몸이 사내를 껴안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피부와 피부의 경계를 허물겠다고 말없이 선언한다. 그녀는 투명한 관 바깥에 손을 뻗어 허우적거리다가 존재의 불연속성을 걸어잠그는 부드러운 살을 활짝 열고 깊은 바닥으로 잠겨든다. 하지만 난 이제 어디에도 없어요. 하고 푸른 낯의 소녀가, 사내가 호수로 밀어넣은 그녀의 그림자가, 소년이 사내의 귓가에 속삭인다. 내 음부에서 자라나던 헬라세포까지도 당신의 몸 아래에서 익사해버렸죠. 이젠 아무도 당신을 구할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이들을 당신은 모두 죽여왔으니까.

사내는 투명한 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여군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가느다란 호스들을 아무리 깊이 꽂아도 죽음의 액체는 그녀에게 흘러들지 않는다. 공포와 불안에 졸아든 혈관은 딱딱하게 굳어서 불길한 독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 관의 밑바닥으로. 어떤 박테리아나 부패균, 시체의 청소부들도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 깊은 심해로.

여군은 사내에게 손을 뻗어 도와달라고 호소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젓는다. 단단하게 밀폐된 관은 너무 비좁다. 그녀는 시퍼렇게 질린 낯으로 꺽꺽거리며 유리문을 긁어댄다.

그때 사내의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깊게 들어갔군요. 하고. 사내는 선뜩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녹빛의 스프액과 종이 부스러기 따위로 엉망이 된 여자가 사내의 뒤쪽에서 검은 눈으로 투명한 관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죽어가고 있다고 믿던 여자는 누구인가?

사내는 다시 기계장치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싯누런 이빨을 드러낸 채 졸도한 노인이 사내와 눈을 마주쳐온다. 그의 눈도 불타버린 재처럼 새까맣다. 사내는 인식의 프리즘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음을, 쓰레기와 피의 얼룩에 절어 더는 사물을 제대로 보는 일도, 제대로 본다고 믿는 일도 불가능함을 알아차린다. 투명한 관은 노인을 점점 더 밑바닥으로 옥죄어 눌러댄다. 가혹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인형처럼 흔들리며 내려앉는 노인의 더러운 입가에서 공기가 새어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비어져나온다. 그들은 이름 모를 노인의 최후를 묵묵히 지켜본다. 여자는 노인을 끌어안고 그를 죽음의 발명가라고 치켜세우지 않고, 늙은 아이는 노인을 구해달라고 호소하지도 않는다. 죽음의 관 속에서 노인은 납작하게 짜부러진 채로 얼굴을 뒤틀며 잠 속에서 생을 복구하려 안간힘을 쓰는 장기들의 격렬한 운동에 몸을 얌전히 내맡기고 있다. 투명한 관, 이제는 노인의 불결한 존재로 인해 흉측하게 얼룩진 관은 집도의가 필요 없는 수술대였다.

노인의 부질없는 노력을, 노인조차 바라지 않는 생명의 동요를 사내는 한순간에 끝낼 수 있다. 사내는 이곳에서 자신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깨닫는다. 그가 죽이고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유령들이 아니다. 지독한 악취가, 나무둥치에서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달큰한 오물의 냄새가 일러준다. 그들은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을 죽이고 있다고. 조롱당하고 조롱을 피해 숨어다니는 그림자 같은 생에서 그들은 언제나 쫓기는 편이었고 사냥당하는 편이었다. 흔들거리는 버스에 쌀포대처럼 실려서 매일같이 환상 속 전장을 헤매던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부를 헤집고 숨통을 틀어막고 겁간하는 환영들에 맞서 한 번도 팔을 휘둘러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찢기고 망가졌으며 살육당하고 또 살아남았다. 이전까지 그들은 한 번도 폭력을 휘둘러본 적이 없었다. 하나의 고유한 의식, 운명의 복잡한 실타래들이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 살을 베어내고 찢어내면 끝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그들이 타인의 운명을 찢어발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배급받은 총으로 그들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제 머리를 한 번에 터뜨리는 방법이었고 결국에는 그리할 수 없으리라는 씁쓸한 자각이 그에 뒤따랐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달랐다. 사내가 죽이고 있는 것은 악몽도 환각도 아니었다. 붉은 대기 속에 도사리며 그들 모르게 살아가고 있던 이들의 시뻘겋고 냄새나는 생이었다.

시꺼먼 오줌이 노인의 바지를 적시었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죽인 소녀처럼 그들은 지긋지긋한 소외와 굴복의 역사에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대상만 바꾼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죽이고 뒤쫓고 현현하는 물질로 살아갈 수 있었다. 사내는 밀폐된 관 속에서 그의 무대를 뒤따라 들어오던 추악한 유령이 아닌 한 명의 사람이, 사내와 같은 조직과 장기, 피와 배설물, 의식과 꿈, 미래와 과거를 가졌던 이가 죽었음을 깨닫는다. 사막처럼 마른 검은 눈들이 사내의 맹시에서 뒤집어진 채 사내를 응시하고 있다.

사내는 목구멍 안쪽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치며 맥동하는 것을 느낀다. 갈빗대를 잡아 뜯어내는 것과 같은 통증과 함께 눈물이 흐른다. 사내는 살아 있었다. 살아서 죽어가는 것을 이토록 생경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가 느끼는 모든 감각은 삶의 감각이 아닌 죽음의 감각이었다. 그들은 학대받는 노인이 갓난아기를 살해할 수 있으며 갓난아기는 작은 벌레들을 짓뭉갤 수 있고 나방은 개미를 물어뜯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내는 손을 휘저으며 두 어리숙한 불구자를, 모욕의 대상일 뿐이었던 어눌한 의식으로 최초의 살해를 경험한 군인을 바깥으로 이끈다. 그들은 각자의 검은 나방을 으스러뜨리며 쓰레기의 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바깥을 꿈꾸는 대신 진창의 한가운데로 진입한다.

검은 숲의 내부로 들어가자 나무의 진액과 동물의 피로 얼룩진 군복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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