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펠리 전쟁의 물방울 – 지상훈련

버스는 무자비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는 버스 손잡이와 좌석, 창문의 깨진 유리에까지 손을 박으며 버텼다. 무척이나 어린 소년도 너희들 사이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여린 팔을 어딘가에 얹어둔 채 안간힘을 다해 중력의 품 속에 기어들고 있었다. 너희를 이곳까지 내몬 것은 중력인데도. 중력이 붙들고 있는 시간 속에 너희는 무력하게 끼어 흔들리고 있는데도. 아무도 중력을 탓하지는 않았다.

소년은 일곱 살 정도 된 아이였다. 버스가 막 출발할 무렵에는 너희도 도래하는 전쟁과 종말에 대한 예감에 기쁘게 몸을 떨면서 소년의 장난기 많은 성격을 깔깔거리며 받아들였지만 여기까지 오고 나니, 미친 듯이 경련하는 차량의 내장 속에서 너희는 문득 너희가 가장 지독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너희는 전쟁터로 가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행성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무언가에 소속되어 얻었던 특별한 이점조차 없다고 믿었던 적당히 비관적인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죽이고 무언가에게 죽임을 당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너희의 목적지는 죽음이었다. 출발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희는 언제나 조금 빠르든 늦든 죽음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고 넌 끝이 언제나 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회녹빛 하늘 아래에서 우울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이들일 것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기벽, 죽음에 대한 갈망. 그들은 죽음 속에 파묻혀 죽음만을 공상하고 죽음만을 사색하며 죽음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걸음만을 내딛으면서도 죽지는 못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일곱 살 정도 된 소년, 벌레들처럼 자연과 생명 자체에 무척이나 가까운 상태로 태어난 소년, 늙은이들처럼, 순식간에 늙어버린 너처럼 자연의 본령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은 소년, 그래서 여직 생의 충동에 충실하게 살아가기만 하던, 바퀴벌레와 같이 순수한 소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애는 소풍이라도 가듯 전쟁으로 가는 길을 즐기고 있었다.

승객들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재잘거림을 웃는 얼굴로 들어주었다. 너희는 차마 그 애의 예정된 죽음이 다행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할 소년을 질투할 여력조차 없었다. 너희는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중일지도 모르므로.

전쟁에서 너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자살을 할 올가미를 매달아야 할 팔, 올가미를 향해 올라서서 목을 얹어 놓아야 할 다리, 마지막 글을 남겨야 할 손가락들. 너희는 생의 비참함을 만끽하며 아주 서서히 죽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소년은? 소년이 그곳에서 목격한 죽음들과 그가 떠안게 된 불구는 그의 죽음을 어떤 형태로 망가뜨릴까. 그는 죽음을 갈망하기도 전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벽에 도취되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죽음에 파묻혀 지내게 될 것이다. 죽음에 골몰하며, 오로지 죽음에 대해서만 꿈꾸며. 그러나 소년은 살해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을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너희는 소년에게 살아남으라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라고 이야기했으므로.

버스는 계속해서 덜컹거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동요에 혀를 깨물고 피를 흘리던 사내가 뒤를 돌아 보았다. 그는 무장한 상태였다. 커다란 소총이 그의 무릎 위에 있었다. 그것만 있으면, 하나의 확실한 담보만 있으면 너희는 언제라도 가장 비참한 죽음의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사내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빼앗을 용기는 없는 듯했다. 모두가 그것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그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의 유일한 희망을 빼앗으려는 자를 사내가 총으로 쏘아 버린다면, 그래서 무례한 자의 손이, 발이, 사타구니가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하나의 구멍으로 치환된다면 너희는 자살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자살에 대한 사색을 기록할 수도, 자살을 향해 목을 매달 수도 없을 것이므로. 사내의 총은 너희에게 확실한 출구를 보장해 줄 수도 있었으며 너희를 가장 끔찍한 가능성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었다.

그때, 놀랍도록 현을 닮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년이 사내에게 유창한 외국어로 물어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현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너는 그 애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애를 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애는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래, 네가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갈망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죽음의 수마에 사로잡혀 지상의 중력을, 너희를 예속하고 붙드는 지독한 중력의 손아귀를 영원히 떠나가고 말지만 현은, 너와 침묵과 죽음을, 삶을 공유했던 현은 그렇게 쉽게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 애는 너와 같으므로, 너희는 언제나 죽음에 대해 몽상하면서도 죽을 수는 없는 가엾고 위선적인 아이들이었으므로. 너는 그 애가 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현에게 하듯 친근한 투로 저 사람,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우리말을 못 할 거야. 하고 말하자 그 애는 현처럼 네게 다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현은 다시 사내에게 기묘하고 빠른 어조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네가 알지 못하는 언어였다. 사내는 호의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또 가끔은 알쏭달송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하며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말을 하고 있었다. 현의 말과 사내의 말은 모두 외국어였지만 도저히 같은 언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모음이 많이 섞여 부드러운 소리가 났으나, 사내의 언어는 틱, 틱거리는 불규칙한 악센트들이 강하게 섞여 거친 느낌이 났다. 결국 현은 고개를 저으며 네게 속삭였다. 저 남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때 사내가 너희의 모어로 말했다. 강경한 어조로 또박또박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버스 안에 없을 것이었다. 총은 넘겨줄 수 없어. 하지만 너희를 쏘지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때, 모순적이게도 너희의 비참한 가능성을 스스로 부인한 사내의 말이 너무나 불길하게 느껴졌다. 사내는 너희를 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너희를 쏜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한 문장이, 단순한 부정어만 제외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문장이 그의 표상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희에게 입증한 셈이었다. 사내가 가진 총. 모든 것을 모든 가능성을 죽음에 대한 몽상을 죽음에 대한 갈망을 죽음에 대한 기벽을 절망적인 병을 모두 끝낼 수 있는 무기. 그것은 너희의 눈앞에 분명하게 실재하였지만 너희에게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넌 검은 총구를 여린입천장에 갖다 붙이고 매끈한 방아쇠를 당기는 상상을 한다. 달칵, 하고 작은 기계장치 속의 무언가가 풀어지는 소리를 너는 결코 듣지 못하겠지. 무참히도 붉은 피에 젖은 승객들이 구토를 하며 토사물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견딜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넌 언제나 죽음에 대해 몽상하면서도 죽음의 곁으로는 한 발짝도 스스로 내딛지 못했던 것처럼 사내의 총에 손을 뻗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전쟁터로 끌려가고 있었다. 대신 현의 손을 잡을 용기는 있었다. 그 애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손처럼. 마치 살아 있는 네 손처럼. 넌 그게 네 손이 아니라는 것도, 죽은 손이 아니라는 것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네 옆에는 현의 얼굴이, 현의 목소리가, 현의 존재가 있었으므로 그를 믿기로 했다.

어린 소년이 흐느끼는 소리가 버스 안의 소란 속에서 투명하게 퍼져나갔다. 너희는 버스가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소년을 차창 밖으로 밀어 던질 것인가, 그래서 사고로 죽을지언정 참혹한 전장으로부터는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소년은 제 운명을 벌이고 이어지는 신경질적인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직 죽지 못한 자들, 아직 무엇도 결정하지 못한 자들, 끝내 성취하지 못한 자들은 여느 때처럼 격하고 비참한 토론 끝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듯 격렬한 연기 뒤에 평소처럼 무위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들은,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년이 깨진 유리창 밖으로 던져지는 일은 없다. 소년은 같은 녹색의 제복을 입은 승객들 중 누구에게도 살해되지 않고 같은 녹색의 제복을 입은 승객들 모두에게 살해될 것이다.

버스 기사는 비참할 정도로 늙은 사내이다. 그는 칼라가 있는 녹색의 단정한 제복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지저분한 얼굴,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반점들이 돋아난 피부와 풀어헤친 장발의 머리는 그가 얼마나 가혹한 음울을 겪어야 했는지, 그럼에도 아직 지상을 떠나지 못한 그의 성정이 얼마나 소심하고 별볼일 없는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돌이킬 수 없이 한심한 기질은 버스의 핸들을 돌리지도 못하고 승객들과 저 자신을 죽음의 고장으로 끌고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 차를 돌리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희가 모두 그보다 조금 어리고, 그보다 조금 덜 더러울 뿐 모두 같은 운명과 성질을 공유한 죽음의 부랑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내가 버스를 돌리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은 아무도 없다. 너희를 감시하는 이들도 없다. 모든 이들이 너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감히 배신하지 못하리라는 걸, 너희를 위해 설계해준 도로를 벗어나 역방향으로 달리지는 못하리라는 걸, 감히 삶을 향해 달려가지는 못하리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중력에, 시간에 굴복하여 질질 끌려 다니기만 했으므로. 모든 일들을 순식간에 전복시킬 영웅은 이 자리에 없다. 너희는 끔찍하게 요동치는 버스 안에서 더 이상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는 오로지 너희의 지독한 멀미, 연약한 목 안쪽 살을 녹여가는 위액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소년에 대해. 소년, 품이 남아도는 녹색의 제복을 걸치고 있는 이 어린 아이에 대해 너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너희는 그 애를 방치한다. 기껏해야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어루만지며 그 애를 위해 눈물 몇 방울을 헌납하는 결정을 내릴 뿐이다. 그런 연약한 애무는 버스의 향방을 뒤집을 수 없다. 누군가는 지친 너희를 달래기 위해 대의에 대해 소리칠 법도 했지만 그러한 것을 믿는 체 할 수 있을 정도로 달뜬 이는 더 이상 없었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중력 속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망에 지치고도 절망 속으로 몸을 던지는 희망을 갖지는 못한 사람들은 벌레만큼이나 많았고 지독하게 우글거렸다. 곧장 너희가 무력하게 짓누르고 있는 땅이 무너질 듯. 곧장 수만 명을 위한 무덤이, 거대한 공동이 만들어질 수 있을 듯. 살아서는 한 번도 공유하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꿈을 너희는 죽음의 꿈 속에 함께 파묻혀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상상. 하지만 땅은 무참히도 단단하다. 녹색 제복의 사람들은 분대장의 꽥꽥거리는 명령에 맞추어 녹색을 찾아 이리저리 기어간다. 꾸물꾸물거리면서 뭉치는 끈적한 젤리처럼. 붉은 제복, 노란 제복, 녹색 제복, 푸른 제복을 입은 무수한 군중들이 뭉그러진 얼룩들의 모양으로 줄을 선다. 열을 맞추어 제대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 사람, 구상화의 경계 속으로 안착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희는 늘 그렇듯 조금씩 삐져나와 같은 색의 피부를 걸친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고 그런 너희의 특성을 아는 것인지 너희를 지시하는 이들도 줄을 맞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령관은 모두 맹인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색맹일지도. 그는 너희가 입은 피부의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복과 제복의 색깔, 피부와 피부의 색깔, 살과 살의 색깔, 흙과 살의 색깔, 전경과 후경의 색깔, 형상과 배경의 색깔, 삶과 죽음의 색깔은 그에게 동색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해치면 좋은 것인가?

첫 번째 열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아가기 시작한다. 색점들은 순식간에 뭉그러져 뒤섞이기 시작한다. 너희는 어깨를 밀고 지저분한 살갗에 파묻힌 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너희는 거대한 현기증의 물결 속에 들어와 있다. 살들이 일렁이는 소리, 너희의 희거나 노란, 붉거나 검은 살갗을 가린 남의 피부가 부딪히는 소리.

어딘가에서 끔찍하게도 높은 비명소리가, 새끼 짐승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너희는 웅성거리며 너희의 문드러진 대열 속에서 소년의 얼굴을 찾기 시작한다. 아이는,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그 애는 벌써 죽음을 차지했는가? 너희 늙어빠진 괴물들 중 누구보다 먼저? 죽은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누가 그의 시체를 끌어안고 그 애의 파란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는가? 누가 그의 시체를 짓밟고 문드러진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는가? 무언의 소란이 깨어지고 검은 파도와 같은 흐느낌이 퍼지기 시작한다. 너희는 소년을 애도한다. 아니, 죽지 못한 너희의 삶을, 아직 도래하지 못한 너희의 죽음을 애도한다. 전장을, 너희를 비껴가 너희를 비참하게 몰아붙이고서는 폐허가 된 몸을 남겨두고 빠져나갈 전쟁을 애도한다. 흐느낌 소리가 물결처럼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표류하며 멀미를 앓기 시작한다. 차마 나를 죽여달라고 호소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없다. 너희에게 허용된 언어는 흐느낌 뿐이라는 듯, 역겨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흐느낌 소리. 너는 그 속에서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너희는 거대한 물결 속에 파묻히고 만다. 네 목소리조차 알아들을 수가 없다.

너는 현의 파란 피부를 돌아본다. 그 애는 일그러진 얼굴로 울고 있다. 죽음을 향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안내받지 못한 채 지상을 떠도는 가엾은 유령처럼. 유령처럼. 넌 유령의 손을 잡고 흐느낀다. 유령의 손은 더 이상 현처럼 따뜻하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유령의 손은 불쾌하도록 투명해서 너는 차라리 안심한다.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넌 소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애의 죽음을 목격하고 싶다고. 그 애의 하나뿐인 죽음을 훔치고 네 삶을 건네고 싶다고.

물결은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니, 어디가 앞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너희는 계속 어딘가로 일렁이며 다가가고 있다. 삶으로, 혹은 죽음으로. 아니, 반드시 도래할 삶으로. 죽음을 연모하는 삶은 죽음의 흔적과 죽음의 색채로 그득 찬 병자들을 제품에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법이므로. 네가 나아가는 곳은 타인의 죽음, 언제나 타인들의 죽음뿐이다. 죽음이 달갑지 않은 이들이 죽어가며 어째서? 하고 묻는 모습이 점점 흐느낌의 시꺼먼 물결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죽음의 살갗들, 거대한 벌레들이 다리들을 움찔거리며 너희의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벌레들은 너희의 사지를, 머리를, 눈알을 갉아먹는다. 너희의 몸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흔들리는 물결을 겁간한다. 운좋게 급소부터 베어먹힌 이들은 즉사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생명과는 무관한, 그러나 삶과는 불가분의 관계인 손가락부터, 죽음, 혹은 삶에 대한 글을 쓸 손가락부터 서서히 갉아먹힌다. 그것들의 아가리 속에서 끈적거리는 손가락이 서서히 녹아가는 모습, 무수히 많은 실낱같은 이빨들이 손가락을 애무하듯 조이고 갉아먹는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너희는 물결 속에 단단히 갇힌 채 그들이 마지막 남은 삶을 살취하는 모습을 똑똑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밀리면서, 놀랍도록 부드럽고 섬세한 다리들에, 그 끔찍한 품 속에 안기면서 너희는 생각한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너희는 무엇을 죽이려 이곳까지 끌려온 것일까. 너희는 무엇에게 죽으러 이곳까지 끌려온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병자들은, 죽음에 중독된 광인들은 너희가 끝내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벌써 예감하고 있다. 결코 읽히지 않을 글을 써내려가며 절망스럽게 비어 있는 올가미를, 결국 누구의 목도 걸리지 못할 올가미를 텅 빈 눈으로 쳐다보는 몽상가들처럼. 너희는 그저 손가락을 잃게 되겠지. 입술을 잃고 혀를 잃고 언어를 잃게 되겠지. 절망한 괴물이 꿈을 조각하며 잠든 너희를 위로하던 대뇌가, 꿈이 깃들던 잠이 모두 작고 징그러운 미세모들에 뜯겨나가겠지. 너희는 지긋지긋한 생명 속에 붙들려 죽음을 몽상할 마지막 희망마저, 죽음에 대한 희망을 써내려갈 삶의 장기를 모두 잃은 채, 생명만을, 오로지 끔찍한 생명만을 이어나갈 장기만을 펄떡이는 채로 살아남겠지. 호흡기와 심장, 척수만을 가지고 삶 없는 생명을 이어가는 순종적인 괴물이 되어. 이미터 가까이 되는 몸을 구부리고 너희의 죽음을 빨아먹는 괴물들, 죽음 없이 살아남는 사람들.

너는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고 흐느낀다. 현의 투명한 살갗에 기대어, 눈조차 감지 못하고 모든 참상을 지켜보면서. 괴물들이 여인의 둥근 귀 속에 머리를 가느랗게 모으고 들어가 귓속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여자의 귓속에 살고 있었을 나비를, 날마다 그녀에게 죽음에 대해 속삭이고 죽음을 노래했을 아름다운 나비들을 씹어먹는 모양을 본다. 나비가 파들거리며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앙상하게 남은 생명으로 펄떡거리며 비명하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귀에 머리를 들이킬고 무언가를 쪽쪽거리며 빨아먹는 소리, 짭조름한 눈물이 감도는 눈알을 파고드는 소리. 그들의 눈도 그처럼 짭조름할 것이다. 그들의 끔찍한 눈도, 그들의 역겨운 눈물도 너희처럼 살아 있는 생명으로 반짝거릴 것이다. 벌레 몇이 네 피부를 훑고 지나간다. 너는 선뜩하게 굳어버린 피부를 그저 앞사람의 등에, 벌레에게 겁간당하며 풀어헤쳐진 맨등에 붙인 채 물결의 진로를 따라 끌려갈 뿐이다. 원래 전쟁은 이토록 비참한 것인가? 이곳에는 어떠한 죽음도 없다. 아마 죽은 것은 죽음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뿐이었을 것이다. 벌레에게 목부터 잡아먹힌 사람들, 급소를 갉아먹히고 죽어가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죽음을 모르는 소년들이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겁탈당한 더러운 몸으로 계속 앞으로, 앞으로, 어쩌면 앞조차 아닌 방향으로 끌려간다. 물결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벌레들인지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벌레들조차 너희의 중력에 사로잡혀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실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식을 마친 벌레는 사내와 여자들의 뱃속에 길쭉한 산란침을 꽂고 새하얗고 자그마한 알들을 배설한다. 아마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은 그들이 또다른 벌레들을 낳은 뒤일지도 모른다. 벌레들은 놀랍도록 빨리 부화한다. 벌써, 몇 마리의 벌레들이 붉은 살을 삼키고 검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나비처럼 부드럽고 밤처럼 찬란한 날개를 가졌다. 벌레들의 모체는 사람들을 겁간하며 성욕에 도취된 듯 무심코 사람의 머리나 심장을 물어뜯기도 한다. 그런 기벽에 희생된 이들 속에 낳은 알들은 제대로 부화하지 못하고 검게 썩어버린다. 너는 눈을 감고 그 모든 참혹한 출산의 현장을 바라본다. 너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음의, 삶의 끔찍한 순환의 순간을 감상한다.

긴 멀미에서 눈을 떴을 때, 너희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저 토사물이 엉겨붙어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몸만을 일으켜 세우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삶을, 손가락을, 순결을, 살을, 노래를, 눈을 강탈당하지 않은 채 이곳에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의 어수룩하고 음울한 모습으로 깨어난 꿈을 돌아본다. 벌레는 어디에도 없다. 너희는 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채 지나친 멀미를 되돌이켜본다.

악몽 같은 행군은 매일 반복되었다. 매일, 너희는 덜컹거리는 버스에 실려 갔고 의미 없는 꽥꽥거림에 맞추어 힘없이 흘러내린 오물처럼 줄을 섰고 앞으로 걸어나갔으며 매혹적이고 징그러운 괴물들이 너희의 틈에서 죽음을, 죽음을 기도할 기관들을 겁탈하는 광경을 매일 지켜보아야 했다. 너희는 그들의 알이 너희 혈관을 찢고 돌아다니며 부화하는 모습을 매일 경험했으며, 그들이 너희를 떠나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래서 너희가 그들이, 그들이 너희가 되는 모습을 매일 겪어야만 했다. 살과 살의 경계, 피부와 피부의 경계는 나날이 흐릿해져갔다. 검붉은 파리들이 벌건 피를 뚝뚝 떨구며 날아오르는 광경 아래로 뚫린 살의 길목처럼. 너희의 몸은 그들이 자라나는 미로였고 미로의 바깥에는 그들이, 그리고 그들이 몸을 파묻는 너희가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그들을 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너희는 그들의 어미였다. 너희를 겁간하고 알을 묻는 그들, 너희의 살을 최초로 탐하고 태어나 너희의 구멍을 파헤치는 그들, 그래서 너희의 피와 살의 냄새가 배어든 그들. 그들의 냄새와 알의 자욱으로 더럽혀진 너희, 너희의 몸속의 그들의 날개분진이 얼마나 많이 섞여들었는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미 너희는 그들이었고 그들은 너희였으나, 너희는 피를 나눈 혈족이었으나 가족은 아니었다. 너희는 우리가 될 수 없었다.

너희는 너희와 닮은 것, 너희가 낳은 것에게 수십, 수백 번 살해당했다. 너희, 들은 더 이상 닮은 것과 닮지 않은 것, 너희와 너희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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