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무 유령-1회

피나무 유령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층에 사는 장님 여자였다. 여자는 여느 때처럼 신경질적으로 흙을 튀기며 걷다가 멈춰 서서는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유령이다!”
비명을 들은 이웃들은 여자가 드디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관리소장이 여자를 아파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 이웃에 피해를 주는 소란행위는 자제해 달라며 에둘러 방송할 때까지도 주민들은 유령에 대해 조금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튿날 502호에 사는 대학생이 같은 자리에 못 박혀 혼잣말하는 여자를 발견했다. 학생은 여자가 정말 실성한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며 관리소장에게 여자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째가 되던 날에 여자는 급기야 기묘한 주술까지 부리기 시작했다. 냄새 지독한 색색의 페인트를 통째로 늘어놓고, 제 허리께까지 들어 올린 뒤 흙으로 쏟아 붓는 것이었다.
“아줌마 뭐 해요?”
“보면 몰라? 유령한테 색을 입히는 중이잖아. 아직도 안 보이니?”
광포한 빛깔로 흙에 엉겨든 페인트 덩어리들만 보일 뿐이었다. 냄새가 심해 멀미가 날 정도였다. 여자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자리에 신랄한 악취를 풍기는 온갖 찌꺼기들을 흩뿌렸다. 향수 몇 병을 깨뜨리고 간 것까지는 좋았다. 농염한 잔향보다도 색유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유리 조각을 주워 가서 부모의 걱정을 사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친 아이는 없었다. 숯불에 바비큐를 올려 굽는 일도 봐줄 만 했다. 어디에나 그러한 무뢰배는 있기 마련이었고, 다행히 여자는 수척한 잔불의 숨통까지 확실히 끊어놓고 돌아갔다. 그렇다 해도 쓰레기봉투에 피를 한가득 담아 와서 터뜨렸을 때에는 도무지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여자는 순대국밥 집에서 얻어온 돼지 피라고 했지만, 모를 일이었다. 끈적한 핏물은 빨간 색소와 초콜릿을 섞어 만든 가짜가 아니었다. 핏물이 밴 자리엔 한동안 파리 구더기가 들끓었고 502호 대학생은 엘리베이터에 여자를 쫓아내자는 취지의 탄원서를 붙였다. 관리소장은 주민들의 서명으로 빽빽해진 탄원서를 받아들고서 멍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쫓아내는 건 어려워요. 그래도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타일러 보겠습니다.”
희게 바랜 겹눈을 발견할 때마다 관리소장은 길을 막으려 했지만, 무슨 상관이냐며 날뛰는 여자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301호에 사는 시청 공무원의 제안으로 여자를 표적 삼는 장애물이 설치되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밧줄 세 개를 이어 붙인 바리케이드는, 키에 따라 알맞은 공간을 찾아서 넘나들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앞을 보는 주민들은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숙여 쉽게 장애물을 통과했다. 장님 여자만이 적당한 출구를 가늠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밧줄을 쥐고 흔들며 용을 쓰던 여자는 결국 세 번째 밧줄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 가고야 말았다. 입구멍을 바닥에 대고도 맵싸한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를 발견한 이는 관리소장이었다. 관리소장은 구급차를 불러 부러진 다리를 배웅했다. 장님 여자 전용의 장애물은 치워졌고, 온갖 냄새가 뒤엉킨 흙은 위생상의 문제로 교체되었다. 한 움큼 베어 물린 땅에 말간 새 흙이 채워졌다. 우리는 장님 여자의 기행에 압사되었던 일상의 소음과 먼지를 되찾으리라 기대했다. 적어도 미친 여자가 퇴원하기 전까지는, 아파트 단지가 다시금 노릇하고 후박한 부엌 냄새, 주차장을 넘나드는 차 바퀴의 끼긱거리는 신음이나 아이들의 소란한 땀 냄새 따위로 달큼하게 젖어드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잘한 먼지보다도 먼저, 유령의 노래가 찾아들었다.
흐느낌을 처음 들은 이는 702호에 사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아파트 뒤쪽 정원, 그러니까 여자가 사달을 벌였던 곳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지껄여댔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예민한 예술가의 환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나치게 기민해진 예술가의 귀에 이명이 들리기도 한다는 믿음은, 그 분야에 무지한 일반인이 쉬이 가지는 통념이었다. 아이들은 달랐다. 401호 아줌마가 엘리베이터에 10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탔을 때였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어김없이 기이한 노래 이야기를 했고 401호 아들은 카랑카랑 재잘댔다.
“나도 그 노래 알아요! 여기 사는 애들은 다 들었대요. 음, 타라, 그리고 아, 루우, 이런 소리 맞죠?”
얼멍덜멍한 콧노래에 악사는 게걸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401호 아줌마는 거짓말 하지 말라며 아들을 몰아붙였지만, 학부모 참관수업에 다녀온 이후부터는 껄껄한 얼굴로 노래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서는 녹녹하고 맵싸한 그 음색이 유행가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래는 아이들의 몰랑한 입안에서 침과 함께 풀어져 달큼한 내음을 풍겼지만, 어딘가 나른하여 얼얼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 애들이 부르고 있는 저 노래 말이에요. 혹시 교과서에 나오는 건가요?”
“아뇨. 이상한 노래죠? 옆 반 애들도 틈만 나면 부른다더라고요. 저도 애들이 똑같은 노래만 부르는 게 이상해서요. 제가 모르는 아이돌 신곡이라도 되나 하고 물어봤더니 다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경우네 아파트 뒤에서 매일 들리는 노래라고요. 유령이 사는 아파트라고 말이에요. 참, 애들은 별난 구석이 있잖아요. 경우 어머니, 집에서 유령 본 적은 없으시겠죠?”
노련한 담임선생은 소박하게 웃으며 401호 아줌마를 덥혀놓으려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도 아줌마는 담임선생의 농담조를 되새기려 애썼다. 송골송골한 피부는 튿어지는 일 없이 문고리를 매끄럽게 잡아 내렸다. 반대편 손에 매달린 아들이 재재거리며 신발을 구겨 놓았다. 아이들의 노래에 관해서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다만 유령에 관한 소문이 계속 퍼진다면 관리실에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401호 아줌마는 장님 여자의 기행을 안쓰럽게 여겨 탄원서에 서명도 하지 않았지만, 근거 없는 악소문에 집값이 떨어지는 일마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줌마는 안방 침대에 기대 누워 아파트 카페에 아파트 유령과 관련된 글이 올라 왔는지, 아파트 실거래가는 어떤지 검색하는 중이었다. 그때 그녀는 들었다. 색정적으로 느껴질 만큼 노곤하게 저민 어리광, 그악스러우리만치 질펀한 음률이 아파트 뒤편의 정원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아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투실하게 부푼 몸을 이기지 못하고 아줌마의 귀에까지 들러붙는 음색은 아이들의 달짜근한 침이 섞이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엄마, 엄마도 들려? 이 노래야! 유령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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