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무 유령-4회

흙 묻은 치마가 발목에 감겨 장님 여자는 몇 번이고 넘어졌다. 두툼했던 뱃살이 꺼져 치맛단이 자꾸만 너저분하게 흘러내렸다. 도중에 지팡이를 잃어버린 탓에, 여자는 직녀성의 엷게 새는 음성만을 쫓아 나아가야 했다. 새로 뜬 북극성의 굵은 노래가 보드라운 목소리를 짓뭉개는 탓에 여자는 여러 갈래로 핏물을 쪼개어 귀를 감쌌다. 세밀한 핏줄에 걸러진 사근사근한 소릿결을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절벽에 굴러 떨어지지 않은 것은 숫제 천운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부산스런 낮에는 귓전의 핏물을 아무리 가늘게 갈라도 고아한 소리를 집어낼 수 없었다. 와글와글한 빛깔들에 모든 소리가 어지러이 흩어질 때에는 가만히 누운 채로 설익어 달뜬 먼지들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버글대던 소음이 녹아들면 그제야 여자는 다시 걸어갔다. 나긋한 직녀성의 노래는 나날이 세차게 부풀고 있었다. 옛 성배에서 새는 따끈한 물길이 여자에게 스며들었다. 희고 포근한 젖 내음은 오랜 등정에 앙상해진 여자를 살찌웠다. 다시금 올라붙은 치마 속에서 단내 나는 핏물이 흘렀다. 고소하게 뭉친 거품을 산짐승들이 게걸스레 핥아댔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분홍빛의 거품이 옛 별의 달짜근한 오줌으로 온통 노오랗게 물들 무렵이 되어서야 여자는 발을 붙이고 고개를 들었다. 흰 막으로 바랜 눈을 열고 혀를 넓게 빼었다. 밀감 먹은 고왕의 오줌발이 홍수처럼 흘러들어왔다. 대만물상의 꼭짓점까지 여자를 쫓아온 들개가 따끈하게 열 오른 여자의 다리 한 쪽에 이를 박았다. 기브스 안쪽의 질긴 살갗에 바람 구멍이 생겼다. 들개는 누런 오줌보에 젖어든 피거품을 삼키며 숨을 불었다. 코코펠리의 피리 연주가 빈 다리뼈 구멍으로 쉭쉭 퍼져 나갔다. 고통에 못 이겨 다릿대를 넘기고 도망치려는 여자를 직녀성의 종용한 온기가 붙들었다. 달달한 내음에 녹아버린 여자는 흐늘대는 팔만을 덧없이 퍼덕였다. 녹녹한 날갯짓이 코코펠리 음악을 흩뿌렸다. 콧잔등에 달라붙은 소리 먼지에 여자가 재채기를 했다. 먼지는 녹신하게 젖어 피리의 박자로 울었다. 온 얼굴이 몽글한 가루로 뒤덮였다. 여자를 휘감은 피리 소리가 몸을 비비며 뜨끈한 체온을 배설했다. 다릿살이 너덜하게 뜯겨나간 자리에 들개가 불어넣은 드센 숨은 옛 신의 피리 소리가 되어 풍류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여자는 흐무러질 듯 푸진 단내를 게걸스레 삼켜내었다. 들개 역시 제가 불어내는 달짜근한 떨림에 한껏 취해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오는 피거품을 헐떡대며 빨았다. 오래도록 굶주린 여자에게 맛깔스레 녹신한 피리 노래는 황홀하리만치 갑작스러웠다. 온 몸이 저려와 여자는 떨림보다도 빠르게 고소한 입자를 짓씹었다. 춤사위에 배어드는 진한 체액에 들개가 부르르 경련했다. 후박한 단기에 여자의 온 피부가 젖어들어 직녀성보다도 끈적한 윤기를 흘렸다. 소리 입자들은 벌거벗은 몸을 비비며 얼얼하리만치 달콤한 향과 열기를 뱉었다. 들개는 다리 구멍에서 한 조각의 떨림이라도 새어나갈까 두려운 듯 더욱 빠른 속도로 다리를 훑으며 피리 소리를 불어냈다. 직녀성은 코코펠리의 알몸이 얼어붙지 않도록 사근한 온기를 둥글게 덮어 주었다. 코코펠리 음악의 춤사위는 여자와 개를 발갛게 달뜬 우윳빛의 입자로 남김없이 감쌌다. 헐떡대며 교접하던 소리 먼지들은 서로의 열과 냄새를 입고 느긋함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여자는 한층 보드라워진 들개의 침을 맨 다리에 입었다. 어느새 여자의 입가에도 분홍빛의 거품이 몽글몽글 솟아 나오고 있었다. 갈증을 쫓아낸 악기들은 직녀성에서 흐르는 오줌살의 지휘를 따라 2악장으로 넘어갔다. 더 이상 바삭한 소리 먼지들을 깨물어 삼키지 않아도, 여자와 들개는 피리 음악과 같은 춤을 출 수 있었다. 공명하는 먼지들은 균질한 체온으로 달아올랐고, 같은 열을 입은 악기들은 한 결의 분홍빛을 뿜어냈다. 장님 여자는 제 안에 심긴 들개의 피거품과 날 균들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식으로 먹었던 계란말이에는 양파가 들어 있었다. 핏속의 맵싸한 단내까지 삼킨 들개는 눈이 멀었다. 광견의 포자를 들이킨 여자는 더 이상 색 없는 물에 몸을 씻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여자와 들개는 분홍빛 향연 속에서 나른한 신음을 흘려보냈다. 코코펠리가 심어낸 낯선 균들 중에는 여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꽃씨도 섞여 있었다. 여자의 자궁에 자리 잡은 꽃씨는 직녀성의 따끈한 오줌물을 들이키며 토실하게 부풀어 올랐다. 여자의 다리뼈에서 새는 피리 음악은 영양가 넘치는 모유가 되어 씨앗을 포동하게 살찌웠다. 여자는 분홍빛의 노글노글한 거품까지도 씨앗에게 불어넣었다. 직녀성 오줌의 밀감 내음이 짙어지고, 씨앗마저도 여릿한 체온을 입고서 함께 노래하게 되자, 여름 합창의 마지막 악장을 생일로 하는 꽃이 피어났다. 피살이꽃은 장님 여자의 자궁 밑동에 단단히 뿌리박고 자랐다. 고소한 피거품을 토양 삼아 자라난 꽃은 보드라운 향내로 여자의 위장까지 간질였다. 달가운 허기에 장님 여자는 싱긋 웃음 짓고 피부에 남은 직녀성과 코코펠리 음악의 단즙을 기꺼이 자궁으로 흘려보냈다. 끈적하게 녹아내린 잔향이 피살이꽃의 줄기 속에서 발간 핏물로 달아올랐다. 코코펠리와의 정사가 끝난 뒤, 장님이 된 들개는 잠이 들었지만, 장님 여자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녹신하게 차오른 잠기운마저도 짜내어 피살이꽃에게 먹이면서, 여자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여자의 뒷목에는 희멀건 햇빛이 들러붙었고, 직녀성은 푸짐한 햇살 뒤편에 보드라운 온기를 숨겼다. 아직 마르지 않은 분홍 거품 자국에서는 코코펠리의 사랑 노래가 향연의 잔열에 들떠 재재대고 있었다. 뭉글뭉글 덩이진 피거품을 베어 물고 피살이꽃은 더욱 붉게 자라났다. 귀향길은 직녀성을 쫓아 올랐던 여정보다 훨씬 수월했다. 들개 이빨에 헤집어진 다리뼈에는 누런 고름이 생겼지만, 피살이꽃의 향취에 이끌린 햇빛이 스며 얼어붙지는 않았다. 장님 여자는 유연한 걸음으로 오리온자리의 흰 울음을 쫓아 나아갔다. 퍼렇게 빙결된 겨울 하늘 조각은 유령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얼어버린 옛 성배의 길을 오리온의 성좌만이 꿋꿋이 떠받들고 있었다. 시린 하늘의 등뼈는 햇빛조차 녹여내지 못한 겨울 천장의 한가운데 인박혀 있었다. 서러운 휘파람의 소릿길을 따라, 여자는 피살이꽃을 품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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