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1

엄마 아빠는 우릴 사랑했어요. 엄마는 떡갈나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자였고 아빠는 끔찍할 정도로 마음이 여린 사내였죠.

아빠는 목수였는데 떡갈나무를 베어낼 때마다 날이 뭉툭한 도끼로 거짓말 않고 백번은 찧어대어야 부러져 떨어지는 떡갈나무를 보면서 흐느낄 정도로 여렸죠. 목수라는 사람이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손에 동물이 잡혀 죽는 꼴을 볼 수가 없어 구역질을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도살업을 계속해나가는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나무를 겨우겨우 베어내어서 내다판 값으로 우리는 생활했어요. 헨젤과 난 아직 어렸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고 감자죽과 감자스프, 아주 가끔은 감자찜과 감자구이로는 허기가 가시질 않았죠. 우린 배고픔을 어떻게든 숨겨보려 했지만 뱃속에서 수치스럽게 치밀어오르는 꼬르륵 소리, 그 천박한 소리를 감출 수는 없었어요. 허기를 표현하는 상투적인 신호가 비좁은 방안을 뒤덮을 때마다 엄마 아빠는 울었어요.

엄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절망적인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앓아누웠어요. 상황은 더 처참해졌죠.

술도 마시지 않은 아빠가 자기 손톱을 뜯어내고 미친 듯이 중얼거리면서 흐느낄 때 난 그의 손에서, 우리와 그 자신을 먹여살리고 있는 그 손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걸 보았어요.

난 아빠에게 다가갔고 따뜻하고 축축한 피에 젖은 손을 잡았죠. 그러자 아빠는 발작적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을 질렀어요. 그러고는 곧장 내 목을 졸랐죠.

엄마는 그때 아빠가 술도 마시지 않았다고 했어요.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요.

하지만 난 아프지 않았어요. 목수의 두껍고 단단한 손이 목덜미를 움켜쥐는 순간 난 모든 것이, 감자스프와 꼬르륵소리, 떡갈나무와 떡갈나무가 아니었던 것들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대로 좋았어요. 난 천국에 가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오로지 천사가 되기 위해서 쥐약을 먹고 죽어버린 소녀들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시 깨어났을 때, 난 천국이 아닌 장소, 언제나 그뿐이었던 장소에 있었어요.

목이 저리고 계속 기침이 나왔어요. 엄마와 헨젤이 날 돌봤어요. 열이 나는 내 머리 위에 물에 적신 누런 행주를 올려놓고 희멀건 감자죽을 내 입술 틈새로 밀어넣었죠.

구석자리에 웅크린 채로 흐느끼고 있는 아빠를 발견한 건 이마 위의 행주가 마르고 감자죽 그릇이 바닥까지 비워진 뒤였어요.

내가 아빠, 하고 부르자-나도 놀랐어요 그런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아빠는 퍼뜩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봤어요.

아빠가 무엇을 봤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그 순간 그의 내부를 겹겹이 쌓아올리던 무언가, 주정뱅이 천문학자가 믿던 완벽한 천구의 세계나 미치광이 음악가가 신봉하던 음악적 화성의 완전무결함 같은 것이 순식간에 으스러진 것 같았죠.

난 아빠에게 달려가 괜찮다고 말해줄 수 없었어요. 나도 끔찍하게 지쳐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 목을 조른 건, 내 목소리가 이상해진 건 정말 당신 탓이 맞았으니까.

그날 이후로 아빠는 완전히 망가져버렸어요. 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머리는 나날이 괴물처럼 부풀어올랐고 붉고 푸른 멍울 아래에 툭 불거져나온 눈은 둥근 곡률이 훤히 드러날 정도였어요. 그의 목은 끔찍할 정도로 가늘어졌고 이전에도 말랐던 몸은 이제 젓가락처럼 가늘어졌죠.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요. 아빠가 먹은 거라고는, 우리가 가진 거라고는 감자죽과 감자스프 감자구이와 감자찜밖에 없었는걸요.

엄마는 숲 속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빠의 목구멍에 오줌을 쏘아대었던 어린시절처럼 치명적인 독주를 퍼부은 것이 아니겠느냐 의심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을 거예요.

숲에 남아 있던 목수들은 작년 겨울이 지나기 전에 모두 느티나무와 떡갈나무, 회양목과 벚꽃나무, 단풍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으니까.

마지막 시체는 우리집 뒤쪽에서 발견되었죠.

놀이기구처럼 둥둥 떠있는 그 기묘한 형상에 헨젤과 난 산타가 왔다 간 건지도 모른다고 기쁨에 겨워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지만 소란통에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온 엄마는(산타죠? 산타가 맞죠?)우리에게 고개를 저으며 올해도 산타가 오지 않았다고, 사람은 다른 누구의 선물도 될 수 없다고 대답했죠.

너희같이 귀여운 아이들이라도, 아가, 이런 세상에서는, 몰락 속에서는 선물이 될 수 없는 거야.

그제야 우리는 벌거벗은 채로 줄에 매달린 시신의 절망적인 분홍빛 발가락을 볼 수 있었죠. 분홍빛, 분홍빛, 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삶을 애걸하며 흙 바깥으로 튀어나온 지렁이의 머리처럼,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 부러진 다리를 바둥거리는 새끼 새의 항문처럼, 분홍빛.

우린 사람이 그런 식으로 죽을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사람은 모두 늙어서 죽는다고, 오직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만이 죽는다고, 그러니 엄마나아빠나나나헨젤같은,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신은 분홍빛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어요.

엄마는 우리의 눈을 가리면서, 그 가느다란 팔로는 채 가려지지 않는 빈 자리로 훤히 드러난 구멍으로 청년의 분홍빛 발가락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눈을, 우리의 이마를, 우리의 머리를 그녀의 앙상한 품 속에 끌어안으면서,

괜찮아, 아가. 괜찮아. 어서 집에 가서 아빠를 불러오렴.

집으로 들어간 게 누구였는지, 헨젤이었는지 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 둘 다 갔을 수도 있고 우리 둘 다 가지 않았을 수도 있죠.

아빠는 불길함을 짐작한 듯 끔찍하게 느린 걸음으로 문밖에 나왔어요. 시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았죠. 아주 기묘한 발음으로 죽은 이의 이름을 불렀어요. 어쩌면 신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어? 터키어? 러시아어? 잘 모르겠어요.

엄마와 아빠는 시신을 끌어내렸어요. 우린 집 안에 남아 딱딱한 침대, 하나뿐인 침대에 꼭 들러붙어 잠에 들었지만, 그 사이에 엄마와 아빠는 시신을 숲 한가운데에 매장하고 왔다고 했어요.

아빠는 그날도 울었어요. 하루종일. 중국어? 터키어? 러시아어? 어디의 언어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발음의 이름을 헐떡거리면서요.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했어요. 이제 더 이상 숲의 목수는 없다고. 아빠를 제외하고는.

이제 숲에는 아빠뿐이라고, 발작하듯 울어젖히는 아빠의 곁에서 우리는 아빠와 함께 숲속으로 가겠다고, 그가 느티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벚꽃나무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지켜보겠다고, 그가 숲의 귀신들에 홀려 죽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약속했죠.

그래도 아빠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어요. 이젠 전부 죽었어. 전부 전부.

엄마와 아빠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나던 사람들은 절망적인 혹한에 모두 굶어죽었거나 목을 매달아 죽었거나 가스난로 앞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죽었거나 쥐약을 먹고 죽었거나 불타 죽었거나 호수에 빠져 죽었거나-이제는 호수 물이 내 키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어서 여의치 않은 일이지만-짐승에게 뜯어먹혀 죽었거나 했다고.

짐승들도 거의 다 죽었어요. 언젠가 숲에는 호랑이와 곰 같은 맹수도 살았다고 해요. 여름이 푸르고 그 푸름이 밤처럼 오래 계속될 때는요. 사람들이 나무가 아니라 집안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을 때는. 거짓말 같지만 곰이 그 주먹만 한 새끼들을 이끌고 인가로 내려와서 재주를 부리기도 했대요. 외줄 위를 자전거를 타고 건너고 덤블링을 하고 유리공 다섯 개를 삼십 분동안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던져 받는 묘기를 부렸다고요. 불 속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소녀들에게 장미꽃을 주기도 했대요.

하지만 겨울이 오고선, 그래요. 이 겨울, 영원한 겨울이 도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만큼 커다란 짐승들은 전부 자취를 감췄죠. 숲 속을 어슬렁거리던 검은 개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요. 간혹 눈에 띄는 건 지렁이나 달팽이, 개미처럼 작은 동물들뿐이죠. 그리고 식물들, 끝간데 없이 퍼져가는 식물들. 나무들은 더 이상 푸르진 않지만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해졌고 숲은 끔찍하게 불어났어요. 예전의 숲은 지금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엄마아빠가 어릴 적의 숲 말이에요. 하지만 얼음꽃을 개의 이빨처럼 주렁주렁 매단 나무들은 혹한의 흙 밑으로 숨어든 짐승들의 피와 살을 전부 마시고 자라난 것처럼 굵고 무성해졌어요.

그다지 유별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던 인간의 지층이 퇴적되고 이제는 식물들의 세대가 도래한 것 같았죠.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에 살아남은 짐승들-인간을 제외하고서는-은 대개 작았지만 식물들은 원래부터 큰 것이 살아남은 것인지 살아남기 위해 커진 것인지 번성의 시대를 맞이하였기에 부쩍 자라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요. 특히 나무들이요. 예전의 브로콜리가 손가락만 했다는 말을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바닥에 닿을 듯 휘청이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과와 감, 포도와 오렌지는 이제 끝간 데 없이 높이 뻗은 나뭇가지 위에, 인간의 손에는 결코 닿지 않을 허공에 매달려 있죠. 심지어는 새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천공에. 홀로 오만하게 으무르고 썩어버린 과일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나무들은 뿌리와 뿌리로 견고하게 얽혀있지만 그 다층의, 중첩된 그물망 세계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죠.

인간 이후를 살기 위해 바깥으로부터 도망친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극적인 사라짐을 연출하기 위해 저마다의 나무를 선별하고 주시하고 있었을 거예요.

귀신처럼 홀연히 튀어나와 각자의 나무에 목을 거는 사람들의 시체를 그날 이후, 그 마지막 이후로도 우리는 몇 번이고 더 보았죠. 우리가 베어낸 나무를 사들이던 상인이 아직 베어내지 않은, 미결된 나무 위에서 발견되던 날, 끔찍하게 마른 몸이 바람의 폭력적인 왕복운동에 따라 시계추처럼 흔들리던 걸 보던 날,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어요.

이젠 끝이야, 우린 우리의 나무를 찾을 수밖에 없어, 하고 엄마는 소리쳤죠.

나무들이 너무 커버리기 전에, 의자 위로 올라서도 테이블 위에 올라서도 가장 낮은 가지에도 닿을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그날 저녁 엄마는 죽은 상인의 목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며 흐느끼는 아빠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어요. 들리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어요. 엄마 아빠가 우리를 숲에 버리리라는 것. 우린 곧 우리의 나무를 찾아야 하리라는 것.

하지만 우린 아직 죽고 싶지 않았어요.

인간의 종말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도 인간의 소멸, 몰락, 와해를 통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도 아니에요. 우린 한 번도 인간을 살아본 적이 없는걸.

아빠가 내 목을 조른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에요.

아빠는 커다란 막대사탕처럼 변해갔고 비명과 같은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입 속에서 하얗고 누런 침방울을 부글대었죠. 신체적인 기형이 정신병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정신병 때문에 신체적인 기형이 심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아빠는 엄마와 나와 헨젤이 입이라도 맞춘 듯 조용해지는 순간, 우리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침묵의 순간이 흰개미에 거진 갉아먹힌 통나무 집안을 불현듯 점령하고 나면 예고도 없이 발작하며 내 머리칼을 쥐어뜯고 내 뒷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내 목을, 아직 멍자국이 가시지도 않은 목을 졸라 부러뜨리려 날뛰었어요.

내 얼굴이 아빠처럼 흉측하게 부풀어오르고 난 뒤에는 엄마도 견디지 못하고 아빠를 침대에 묶어놓았어요. 양 손목을 침대 머리에 묶고 발목은 한데 묶어서 침대 모서리에 결박해두었죠. 침대 위에 묶인 아빠는 실험대에 결박된 하얀 쥐처럼 가련하고 허약해보였어요. 갈비뼈와 쇄골, 무릎뼈와 종아리뼈, 허벅지뼈와 치골, 뼈란 뼈는 모두 드러나는 건 물론이고 믿기 어렵겠지만 심장과 허파의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였어요.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살 위에 손을 가만히 얹어보면 작은 새처럼, 끔찍하게 어린 생물처럼 당장이라도 터져나올틋이 파열되어 바스라질 듯이 쿵쾅대는 심장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마치 정신과 신체의 공의존적인 기형적 변형의 과정이 갓난아기가 두발짐승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극적이고 자연스러운 성장의 단계라도 되는 것처럼, 애벌레가 번데기속에 침잠하여 새로운 피와 살을 입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처럼, 알사탕처럼 불거져나온 눈에는 언제나 갈무리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어요.

난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얼굴을 조심스레 더듬거렸어요. 절망적으로 여리고 부드러운 피부. 난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견디지 못하고 결박되어 있던 두 팔, 가련하게 파들거리는 가느다란 팔, 근육도 없는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앙상한 팔을 해방시켜주었을 때, 아빠는 날 안아주리라고 생각했던 그 두 팔로 내 목을 졸랐어요.

난 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 불가해한 병증에 영원히 손상되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빠와 함께 침대에 묶여 미친 듯이 떨면서 나비로 변하고 싶었지만, 목 안쪽이 면도날로 찢겨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요.

아빠가 내 목을 조른 이후로 침대 밑에서 밤잠을 설치며 불면하던 엄마, 기껏해야 아주 얕은 잠 얼어붙은 쥐 한 마리가 조심스레 기어가는 발자국 소리에도, 차오르는 공포를 이기지못해 지르는 찍 소리에도 기민하게 깨어버릴 정도로 얕은 잠만을 자던 엄마는 곧장 일어나 그녀의 앙상한 손보다도 더 앙상한 병자의 팔목을 결박하고 나를 끌어안았죠.

헨젤은 아직 자고 있었어요. 오빠는 한 번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았으니까. 검은 개들이 얼굴과 가슴, 심지어는 심장과 폐, 여남은 찌꺼기까지 모조리 파먹는 동안에도 악몽으로부터 깨어날 수 없다고, 개들은, 그의 비쩍 마른 고기로는 성이 차지 않는 개들은 더 달라고 새로운 꿈과 새로운 잠과 새로운 삶을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그는 끔찍하게 지쳐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고, 몸을 다 뜯어먹혀도 더 잘 수밖에 없다고, 개들은 아직도 피가 묻은 주둥이를 이리저리 문대며 서성거리는데, 하고 오빠가 말해준 적이 있었죠.

난 배가 고팠어요. 그걸 알리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내 배에서 돌연히 꼬르륵 소리가 울렸고 엄마는 절망적으로 얼굴을 구기며 흐느꼈어요. 그즈음 엄마는 아빠의 우울증을 이어받기라도 한 것처럼 자주 울었어요.

우린 우리의 나무를 골라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잎도 돋지 않고 썩지도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은 감자는 아직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정말이지 비좁은 집안 어디에나 감자가 있었죠. 이제는 그리 붉지도 않은 붉은 냄비 속에 찬장 속에 컵 속에 다 뜯어진 장판 아래에 침대 밑에 침대 위에 식탁 위에 책 속에 심지어는 편지도 없는 편지봉투 속에 정말이지 어디에나 있었어요. 그 모든 감자들이 대체 어디에서 난 것인지, 언제부터 집안에 감자가 그렇게 많았는지 난 알 수 없어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내가 기억하는 한 집안은 전부 감자투성이었으니까. 적어도 감자들을 다 먹기 전에는, 감자들을 다 먹으면 나무뿌리를 뜯어먹고, 나무뿌리를 다 뜯어먹을 일은 아마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는 없겠지만 나무줄기를 나무껍질을 뜯어먹고, 그러고 여남은 쥐들을, 아직도 살아서 추위에 지친 몸을 질질 끌며 마비된 다리를 절룩거리며 찬장을 쏘다니는 쥐들을 잡아먹기 전에는 우린 굶어 죽진 않을 거였어요. 하지만 적어도 감자를 다 먹기 전엔 우린 죽을 수 없을 거야, 하고 엄마는 말하곤 했죠.

오후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 헨젤은 심각한 근시에 시달리며 나와 엄마를 혼동하고 아빠와 침대를 혼동하면서 더듬더듬 세상을 되짚으며 기어다녔어요. 난 머지않아 오빠의 눈이 모두 멀어버릴 것을 짐작했죠. 그 전에는 나무를 골라야 할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죠. 사실 그때까지도 아직 죽고 싶지 않았거든요.

어째서 죽고 싶지 않은 것인지, 숲의 목수들은 전부 죽어버렸는데, 목수가 아닌 자들도 나무를 사들이던 상인도 우리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쥐어주던 이름 모를 여자들도 악몽 바깥을 떠돌던 개들도 불 속에서 춤을 추며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활짝 웃던 곰들도 전부 죽어버렸는데, 어째서 죽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엄마가 숲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난 고개를 저었어요. 숲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을 때도 고개를 저었죠.

헨젤은 현관 문앞에서 얼어 죽은 쥐를 가지고 비행기처럼 손 위에서 휘휘 날리는 장난을 하면서 낄낄거리고 있었죠. 아빠는 당장이라도 그의 장난에 끼어들고 싶은 것인지 핏줄이 올라온 눈을 데룩데룩 굴리면서 헨젤을, 정확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소년의 앙상하고 더러운 몸을 떠나 날아갈 것 같은 쥐와 쥐를 움켜쥔 손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이대로 죽을 수 없는 걸까, 목을 매달지도 않고 불을 놓지도 않고 감자가 다 동나기도 전에 이렇게 이 순간 그대로 끝일 수는 없는 걸까, 하고 물었을 때, 엄마는 고개를 저었어요.

끝을 현상하는 특별한 방법, 행위, 혹은 고통 없이는 죽을 수 없다고요. 사실 목을 매는 행위나 얼음 호수에 머리를 짓찧는 행위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얼음 구덩이에 고개를 쳐박는 행위는 죽음과 아무런 관련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엄마조차도 그런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행위가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행위 없이 죽음을 쟁취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적적으로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멈춰서 순식간에 죽어버린 자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여름의 일이지, 하고 엄마는 말했어요.

이렇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에는 그처럼 명료한 죽음은 어디에도 없다고, 삶을 촉발하는 괴상한 행위 없이, 삶에 목을 매고 삶에 매달리고 삶에 뛰어드는 행위 없이 겨울을 죽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죠.

그러니 우린 숲에 가야 해, 너흰 너희의 나무를, 난 내 나무를 골라야겠지. 같은 나무에 목을 매달 수는 없으니까.

세계의, 정확히 말하면 식물들의 연쇄, 유기조직, 대화와 공모로부터 소외된 단자들이 나무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죠. 장마철의 두더지처럼 튀어나온 자살자들은 나무 곳곳에 매달려 있었어요. 숲은 끔찍한 포화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무들은 죽어가는 인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불어났죠.

나무는 어디에나 있었고 세계는 나무뿐인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우린 아직 살아있었죠. 인간의 종언 이후에도 살아남은 인간, 동물의 종말 이후를 살아가는 동물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어요. 감자는 아직도 바닥 여기저기, 찬장과 컵 속과 냄비 속을 굴러다니고 있었고 우린 아직도 죽지 않았죠. 그리고 나무들, 창백하고 새하얀 눈꽃을 치렁치렁 매단 수목들, 일말의 푸른빛도 없는.

Series Navigation<< 거울과 소녀 4헨젤과 그레텔 2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