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10

다른 곳에선 들리지 않았어. 집안을 서성일 때도, 창문 없는 방 안에 틀어박혀 악보를 넘기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오빠의 벌거벗은 등에서 꽃처럼 돋아나는 붉은 종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도 들을 수 없었어.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피아노 의자에 앉을 때만 E flat이 들렸지.

난 피아니스트가 갈무리하지 못하고 남은 음이 그곳에서 계속 전율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빠는 듣지 못했지. 오빠에게 물어보았을 때, 오빠는 대부분 비명을 지르거나 애처럼 흐느끼거나 흐느끼지 않고 침묵하거나 눈을 데룩데룩 굴리거나 날 무시하고 등을 보이거나 했지만, 아주 가끔은 대답을 했는데, 내가 피아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오빠는 고개를 저었어. 분명히 아니라는 뜻이었지.

오빠는 베토벤을 치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밖에 나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춥냐고 물었을 때도 고개를 저었으니까. 고개를 젓는 건 그가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가 고개를 저을 때 우리는 가만히 그를 두고 사라지면 되었고 오빠는 고개를 젓는 간단한 동작으로 성취한 완벽한 혼란과 완벽한 절망과 완벽한 불행 속에서 행복해했고 한참 뒤에, 한 시간 다섯 시간 아니면 하룻밤이 지났을 때 다시 문을 열고 비명을 지르며 나온 오빠가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서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면서 구역질을 할 때, 난 다시 악보를 넘겼고 오빠는 다시 연주를 했어.

사실 오빠는 악보를 보지도 않고 연주를 했고 난 오빠의 연주를 듣지 않고 악보를 넘겼지. 오빠의 연주는 악보를 보지 않으려는 투쟁이었고, 내가 악보를 넘기는 작업은 오빠의 연주를 듣지 않으려는 투쟁이었어. 우리는 악보로부터 연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꼭 붙어 앉아 악보를 넘기고 연주를 했지만, 사실 난 한 번도 오빠의 연주를 완벽히 무시한 적이 없었어. 오빠가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져나가기 전까지, 난 언제나 불완전한 순간 불명료한 방식으로 악보를 넘겼고, 결국에는 오빠의 연주에 잠식당해서 망설이는 손길로 모든 순간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절망적으로 깨달으면서 악보를 넘겼지. 하지만 오빠는 악보를 보지 않았어. 오빠는 처음부터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했고 어쩔 수 없이 악보를 읽어야만 하는 순간에는 그 나름대로 악보를 해석하고 그 이후에는 결코 악보를 다시 보지 않았지.

피아노 선생은 악보를 읽고 전유하는 작업이 끔찍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오빠가 악보를 읽지 않는 일을 못마땅해했어. 그는 오빠의 연주를 대체로 좋아했지만, 오빠의 연주를 칭찬하다가도 그가 악보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의 연주와 내가 넘긴 악보가 전혀 맞아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령 내가 5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 오빠는 7페이지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끓어 넘치는 물처럼 분노했지. 오빠는 어쩔 수 없이 악보를 읽는 체할 수밖에 없었어. 연주를 할 때면 악보를 읽는 척하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렸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아래에는 자기 손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수행하듯이, 그러니까 숨을 쉬듯이 악보를 읽었어. 하지만 오빠는 악보를 읽지 않았어.

적어도 내가 넘겨주는 악보는 읽지 않았어. 마치 검게 현상된 코드들을 무감하게 일별하듯이,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고 악보를 읽었지. 오빠는 오선지에 빼곡이 놓인 촛불과도 같은 음표들을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악보를 보았어.

난 오빠가 악보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수치스러웠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피아노 선생이 내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악보를 잘 넘겨주어서 고맙다고 칭찬할 때도, 엄마가 날 끌어안으면서 내가 악보를 넘겨주지 않았다면 오빠는 우승할 수 없었을 거라고 흐느끼던 날에도, 난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난 부당한 감사는 연민만큼이나 역겹다는 사실만을 깨달았지.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오빠가 악보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악보 넘기는 일이 오빠에게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꿋꿋하게 그 옆에 앉아서 하루에 여덟 시간 가까이 악보를 넘길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내가 악보 넘기는 속도에 따라서 오빠가 연주의 템포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피아노 의자에서 뛰쳐나왔을 거야. 그 거북스럽고 역겨운 멜로디가 내 템포와 내 컨디션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믿었더라면 난 파멸하고 말았을 거야. 그게 진짜 내가 원하던 일이었으니까. 피아노의 선율을 음정을 멜로디를 조정하는 일. 바로 내 손끝으로 음악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

사실 난 피아노를 치고 싶었어.

얘야, 그래서 네게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플루트도 사 주지 않은 거야. 선생님이 트라이앵글이나 멜로디언을 연주해보라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렴. 견딜 수 없다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면 선생님도 알아들으실 거야. 엄마가 사정을 다 설명드릴테니까 넌 그냥 견딜 수 없다고만 말하면 돼. 알겠니?

오빠는 피아노를 치면서 서서히 몰락해갔지만, 오히려 피아노를 치면서 파멸을 최대한 지연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오빠의 욕망은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악보 넘기는 일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분명해. 오빠는 악보 넘기는 일을 하고 싶어 했어. 그러니까 순응할 수도 있었는데, 악보를 보는 체하는 일보다 악보를 실제로 읽는 일이 훨씬 간단했을 텐데도 끝까지 내가 넘기는 악보를 읽지 않았던 거야.

반대로 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어 했지. 하지만 난 끝까지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오빠는 악보를 넘기지 않았는데, 아마 우리가 이십 대가 넘도록 살아남은 건 그 때문일 거야. 천재적인 갈망을 갖고서도 천재가 되지 못하는 것만큼 사람을 끔찍하게 망가뜨리는 질병은 없단다. 얘야. 난 피아노를 한 번도 쳐 본적이 없지만 내게 피아니스트의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마 오빠도 마찬가지였겠지. 오빠는 유달리 귀가 발달했지만, 그래서 사물의 색채마저도 광학적인 현상마저도 모두 귀로 듣곤 했지만 시각적인 코드를 해석해내는 일에는 절망적으로 서툴렀으니까 악보를 넘기는 재주도 없었을 거야.

얘야, 넌 삼촌을 닮았지만,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르지만 대가가 될 수는 없을 거야. 난 피아니스트도 될 수 없었고 네 삼촌은 피아니스트는 될 수 있었지만 대가가 될 수는 없었지.

내가 보기에 넌 음악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어. 네 깜깜하고 혼란스럽고 메스꺼운 세계에 비명들이, 그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비명들이 매혹적인 균열을 횡단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고 또 슬펐는지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넌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얘야. 하지만 넌 피아노를 연주해서는 안 돼. 우린 이미 피아노 때문에 끔찍하게 실패했고 치명적으로 몰락했으니, 하고 소년의 엄마는 소년에게 나지막이 속삭였어.

소년은 엄마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할 수 있었지. 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어.

여동생은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었고 사내는 물을 달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는데 사실 물을 달라고 속삭인 건 사내가 아니라 소년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년은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지만 유리컵을 던져서 시계를 깨뜨렸지만, 보이지 않는 수천 개 수만 개의 시계들은 은밀하게 째깍거리면서 흘러가고 있었고 소년은 사내가 이미 죽어버렸으리라는 걸 깨달았지.

세계는 병적으로 밝아져 있었고 시계의 유리조각이 산산이 부서져 눈처럼 떨어져내리는 모습이 끔찍하게 자세하고 느릿하게 보였어.

소년은 울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깨진 시계 초침들이 검붉은 피를 흘리면서 둥둥 떠다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지만 사내를 만난 공터로 갔을 때 소년에게 기회를 주듯 주춤거리며 서서히 앞으로 다가오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목줄을 쥐고 끌려가듯 끌고가던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고, 소년은 목이 말라붙는 것을, 끔찍하게 늘러붙은 목구멍이 찢겨지는 것을 느끼면서 숲속으로 들어갔어.

천사의 눈물처럼 반짝이는 시계의 파편들을 따라 소년은 계속해서 걸어갔어.

첨탑과도 같이 높이 솟은 나무 위에 찢어진 옷가지처럼 걸려 있는 사내를 보았을 때 소년은 갑작스럽게 그를 용서해야겠다고, 죽지도 죽이지도 못한 그를, 살아남은 사람을, 그의 무능을 용서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사내는 더는 죽지도 죽이지도 못하는 무해한 가죽을 더럽혀진 백기처럼 활짝 열어놓은 채로 펼쳐져 있었어.

소년은 모든 것이 오해라는 걸, 끔찍한 오해라는 걸 깨달았지.

소년은 사내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 사내 역시 소년에게 한 번도 기회를 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소년은 사내의 죽음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결국 사내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알려질 수 없는 것이었어.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소년은 사내가 소년 자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끔찍한 착각이라는 걸, 사내는 한 번도 소년인 적이 없었고 소년은 한 번도 사내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아야 했지.

소년은 사내의 죽음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사내의 죽음은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고 사내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어. 구름처럼 새하얗고 잔혹한 새들은 사내를 뼈째로 씹어 삼켰고 소년은 사내를 쪼아먹고 찢어발기는 아름다운 새들의 옆에 앉아서 사내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묵묵히 올려다보았어.

사내가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말했던 것인지,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던 것인지 소년은 오랫동안 생각했어. 무슨 말을 했든 자신은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어쩌면 사내가 정말로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끝내 알 수 없는 일이었어.

소년은 존 웨인 게이시에 대해 검색해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살인마는 존재한 적이 없었어. 어쩌면 존 웨인 게이시라는 소년살해범은 사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지. 소년은 사내가 한 명의 소년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살해할 수 없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어.

그는 끝내 실패했으니까. 살해하는 일에도 목격당하는 일에도. 소년이 목격한 것은 오직 사내가 자기 살해에 실패하는 광경뿐이었어. 소년은 사내가 웃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지. 소년은 사내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지 끝내 알 수 없었어. 처음에는 빛의 계시와도 같이 소년을 완벽하게 관통하고 있던 무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무표를 소년은 해석해낼 수 없었어. 소년이 생각했던 것, 소년이 순결하고 확고하게 이해했던 것은 거짓이었다는 사실만이 소년에게 남은 진실의 희박한 잔여였어.

소년은 종종 숲 속으로 찾아갔지. 소년이 더 이상 소년이라고 불릴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그럼에도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을 때에도 소년은 숲 속으로, 사내의 유해가 남지 않은 자리로 찾아 들어갔어. 존 웨인 게이시라는 사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그러나 소년이 죽을 때까지 존 웨인 게이시의 존재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 소년은 자신이 이름을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소년은 한 번도 무언가를 잘못 기억한 적이 없으니까. 잘못 들은 적은 있어도, 잘못 기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소년은 언제나 앵무새처럼 녹음기처럼 정확하게 재현해냈고 실수나 틈까지도 완벽하게 묘사해내는 성질은 소년과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었으니, 만약 사내의 죽음을 목격했더라면, 사내가 그의 죽음을 소년에게 목격시키는 데에 성공했더라면, 소년은 그의 죽음을, 그가 발버둥을 치고 나무에 매달린 밧줄이 사내의 목을 옥죄고 그가 나뭇잎처럼 검고 어두운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미소짓는 모습을, 들리지 않는 소리로 속삭이는 모습을, 끝내 알려질 수 없을 시를 읊어나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을 거야.

소년은 목을 맨 사람이 숨이 막혀 죽는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목이 졸려 졸도한 사내가 옅고 희박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는 사실을, 거의 삼십 분 가까이 영원과도 같은 희미한 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조금의 과장이나 축소도 없이 진술했겠지.

하지만 소년은 사내의 죽음을 놓쳤고 소년이 목격한 것은 사내가 언제나 그랬듯이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죽어버린 모습뿐이었고 사내는 언제나 죽어가거나 또는 죽어 있었으므로, 죽음 이전과 이후에 대한 진술에 대해 궁금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사실 사내뿐만 아니라 모두가 죽어가거나 죽어 있으므로, 소년이 목격한 것은 그리 특별한 광경도 아니었지. 사내는 대부분의 실패한 예술가가 그렇듯 절망적으로 은밀하게 죽었어.

소년은 상처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가족들은 케이크 조각이 떨어진 바닥을 시꺼멓게 뒤덮은 개미들 위에서 멍하니 소년을 올려다봤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소년은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고 따라서 가족들에게 해 줄 말도 아무것도 없었지.

우리는 여자에게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어요. 하지만 여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여자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 소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선후와 인과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소년의 미래의 미래에 대해서 갑작스럽게 누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래서 소년은 죽었나요? 하고 물어보았을 때 여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누구도 진정으로 죽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살아 있음의 기억을 믿는 모든 것들은 죽어가거나 죽어 있을 뿐, 죽지는 못한다고요. 그러므로 사내가 죽었다는 소년의 착각은 정말로 오해였던 거죠, 선생님.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못했던 거죠.

여자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듯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들려주었지만 결코 죽지 못한 거예요. 비균질적이며 불온하고 역겨운, 죽음은 하나일 수도 전체일 수도 없어요. 죽음은 아직 발명된 적도 발견된 적도 없는, 무언가일 수 없는 무언가예요.

여자는 이야기를 마친 뒤 항상 불을 껐는데 흐려지는 사물의 균열들 경계를 잃고 포섭되며 흐트러지는 물체들의 역동적이고도 음흉한 혈흔을 보면서 난 소년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어요.

소년이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면, 사내의 옆에 새처럼 매달려 죽었다면, 사내의 시신을 먹은 새들이 소년의 살을 먹어치웠다면 하고 상상했지만 결국 여자의 말대로 소년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소년은 언제나 죽어가고 있었지만 소년의 죽음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아요.

소년은 끝내 그의 여기를 빠져나가지 못했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여기일 뿐이니까. 그뿐이니까. 여자는 소년의 이야기를 더 이상 해 주지 않았지만, 난 여자로부터 떨어져나간 뒤에도 여자가 이야기하는 소년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마치 이야기하는 그녀가, 그녀의 목소리로 죽어가는 소년이 내 것이라는 듯.

소년은 내 왼쪽 뺨을 면도날로 찌르고 벌어진 입에 입을 맞추어 침과 섞여 흘러내리는 피를 핥았지만 난 비명하지 않았어요. 난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고 비명일 수도 없었어요. 소년에 대해 생각하면서 점점 소년이 사라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소년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소년이 지워졌던 건 아니에요. 소년의 사라짐은 순전히 비자의적인 일이었어요. 한 모금의 차와 마들렌이 잔혹하게 파열하여 펼쳐낸 콩브레의 색채 환각처럼 소년은 물 속에서 흘러내리고, 빛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희박한 그림자의 골격처럼 그렇게 사라져갔어요.

그렇지만 선생님,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난 소년이 결국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소년은 숲 속에서 사내의 유령 대신 피아노의 유령을 보았죠. 소년의 엄마가 이야기해준 피아노와 정확하게 같은 피아노(그 피아노는 언제나 내 거였어. 오빠에게 피아노를 사 준 엄마도 피아노를 연주하던 오빠도 알고 있었지. 오빠는 언제나 내 피아노를 연주했고 난 언제나 내 피아노에 앉아서 오빠가 연주하는 것을 듣기만 했지만 끝까지 피아노에 남아 있던 건 나였어. 난 결국 그 피아노를 내 것으로 만들었지. 피아노를 끝까지 책임진 건 피아노의 최후를 직접 목격한 건 나였어. 너를 임신하고 나서 난 곧바로 피아노를 팔았고 그 돈은 현금으로 받아서 곧장 호수에 던져 넣었지. 오빠는 십 년 넘게 내 피아노를 쳤지만 끝내 내 피아노를 강탈해갈 수는 없었어. 난 갈기갈기 찢어버린 현금을 전부 호수에 던져버렸단다. 아무도 내 돈을, 내 피아노를 훔쳐갈 수 없게. 그건 끝까지 내 피아노였어, 얘야. 네가 자라면 피아노를 팔 때 받은 영수증을 주마)적어도 소년이 연상했던 것과 세밀한 부분까지도 똑같은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였어요.

검은 의자는 매끈했지만 다리 부분에 두 군데 금이 가 있었고 흠 속에는 작은 새끼 거미가 헤엄치듯 기웃거리고 있었죠. 소년은 의자의 왼쪽 끝부분에 앉았어요. 악보를 넘기던 엄마가 앉았으리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였죠.

옅은 얼룩이 있는 자리에서 소년은 엄마가 들었으리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소리를 들었어요. E flat이었어요. 선생님, E flat이요.

모두가 E flat에 대해 알고 있어요. E flat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딘가에는 E flat과 같은 균열이 있다는 것을. 예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음악이 그 자리에서 가련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어요. 누구나, 누구나.

소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른 몸을 꿰뚫고 그 속에서 깨져 무너져내리는 음악을 들었어요. 혈관을 찢고 피를 찢고 창자를 찢고 입을 찢고 어디로도 흘러넘치지 않은 채 망가뜨린 세계에 그대로 침잠하는.

소년은 익사한 아이를 돌보는 미친 여자처럼 피아노의 유령을, 손가락 없이도 연주자 없이도 파멸하고 찢겨나가는 음악을 들었어요. 소년은 악몽을 꿀 때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되뇌듯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어요. 그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아직은 죽지 않았지만 그래도 죽어가고 있다고.

여자가 우리를 위해 말해주었듯이, 여자가 자신을 위해 속삭였듯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잠들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죽음을 갈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없으리라는 것, 죽음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죠.

여자가 불타는 냄새는 천 마리의 새들을 한 번에 화형시키는 것처럼 지독한 악취였어요.

화덕 앞에 무너진 채로 오빠와 나는 오래 울었어요. 우리는 여자를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이 불완전하고 매혹적인 밀실에서 죽고 싶었는데, 여자는 우리를 죽여주지도 잡아먹지도 않은 채, 뼈만 남은 그녀의 새들과 새들의 끔찍한 울음과 함께 우리를 남겨두고.

새들은 째깍째깍하고 울었어요. 째깍째깍하고 살아남은 새들과 죽은 새들이 모두 울었죠. 언어의 충돌, 불협과 파괴, 몰락, 절망적인 현기증과 울렁거림. 온몸이 깨지고 있는 걸, 산산조각난 내부가 무너지고 있는 걸, 거스름에 찢긴 혈관이 파열되고 염증이 내부를 적시고 있는 걸 선연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잘려나간 머리는 사타구니에 붙고 옆구리는 가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소년의 엄마는 악보를 넘기지 않는 시간만큼 비참한 때는 없었다고 비명을 질렀어요. 악보 속에 가라앉은 벌레들이, 징그러운 만큼 연약하고 연약한 만큼 징그러운 벌레들이 울부짖으면서 헤엄치고 있었는데 사실 그 속에 벌레는 한 마리도 없었어, 하고 소년의 엄마는 말했다고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요. 벌레는 한 마리도 없었어 벌레는 없었어 그토록 우글거리는 벌레들 악보를 찢어발기고 악보 위에 오줌을 쏴갈기고 악보를 부식시키고 훼손하고 망가뜨리면서 나를 조각조각 찢어내던 벌레들은 한 마리도 없었어 한 마리도 없었던 거야. 난 틀림없이 해체되고 있었는데 한 조각 한 조각 가장 미세하고 희박한 조각들이 잔혹하게 떨어져나가고 있었는데 나를 물고 달아나는 벌레는 한 마리도 없었어 그 자리에는 벌레가 없었단다 악보는 끔찍할 정도로 깨끗했고 고요했지. 난 거기에 벌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악보 속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벌레들, 난 벌레들이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서도 벌레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벌레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고 그러나 우글거림은 진짜였고 찢겨나가는 고통도 부식되며 해체되는 침묵도 모두 진짜였고 죽어가는 멜로디는 끔찍하게 아름다웠는데 오빠는 연주를 하지 않았고 나는 악보를 넘기지 않았고,

째깍째깍하고 새들이 울었어요.

오빠도 울었지만 째깍째깍하는 비명은 아니었죠. 우리는 한 번도 진정으로 새인 적이 없었으니까. 여자가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째깍거리는 울음소리.

우리는 시계소리가 그토록 끔찍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여자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은 그 치명적인 째깍거림밖에 없었어요. 여자는 죽어가고 있었고 어쩌면 벌써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여자는 그녀의 새를 잡아 요리해주지도 않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해 주지도 않았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았고 불을 꺼주지도 않았고 불을 켜주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것인 적이 없었던 우리의 집에서, 초대받지 못한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째깍거림, 병적인 째깍거림,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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