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2

당신 책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불가해성뿐이다. 세계의 묵시적인 연관은 인과의 편협한 망으로는 포착할 수 없으므로. 당신 말처럼 기후가 인류를 둘러싼 인류의 현상이라면, 인류의 종말과 기후변화가 동시적인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나무들의 여름은 미래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아니요, 대답할 필요는 없어요. 난 우리의 여름 바깥에 무형으로 잠재하던, 현실은 아닌 형태로 존재하던 나무들의 기후에 대해, 나무들의 여름에 대해 생각해보곤 해요. 기후학자들은 인류의 절멸이 모든 생물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지만, 몰락을 알리는 눈송이와 함께 끝없는 겨울이 도래한 날 죽지 않은 인류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매듭지어야 했고 나무들은 죽은 짐승들의 지층을 양분삼아 무참하게 번져갔죠. 영원하고 보편적인 절대는 오직 불안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 하지만 하나의 시대가 어디까지인지 우린 확인할 수 없죠. 시대와 시대를 걸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난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났고 여전히 죽어가고 있을 뿐이니까.

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인류의 죽음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단숨에 사라져버리지 못했죠. 먼 옛날 공룡들이 화산재와 함께 순식간에 녹아내렸다고 믿어지는 바와 같이 단숨에 끝나버릴 수 없었죠. 인류의 지층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지만 인간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끝나지 않는 끝을 살고 있다고 해야겠죠.

아빠는 제 입술을 물어뜯고 나무 침대에 머리를 박아대기 시작했어요. 그를 결박하고 구속하고 모욕한 우리를 영원한 증오로 저주하는 것 같았죠.

아빠는 우리를 볼 때마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비명을 질렀어요. 시뻘건 눈은 눈물과 함께 당장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았고 피가 흐르는 입술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욕설을 토해내고 있었어요.

아빠는 끔찍하게 길어졌고 끔찍하게 앙상해졌고 끔찍하게 부풀었죠. 침대 너머로 다리가 불쑥 튀어나올 정도였어요. 분명 그를 처음 묶어놓을 때만해도 앙상한 다리는 침대 안쪽에 있었는데 어느샌가, 아빠는 계속 자라고 있었어요. 마치 전혀 다른 생물로 변해가는 것 같았죠.

엄마가 그를 일으키려 등 뒤에 손을 넣었을 때 갑작스럽게 폭발하며 엄마의 손을 흠뻑 적시던 누런 피고름, 우린 반쯤 들어올려진 아빠의 등 뒤에서 선뜩할 정도로 다닥다닥 돋아난 종양들을 보았어요. 신체의 몰락이 정신적인 쇠약을 불러일으킨 것인지 정신적인 질병이 신체증으로 나타난 것인지 어쨌든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반드시 동반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죠.

엄마가 의사를 찾아 숲 밖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의사의 얼굴과 의사의 복장과 의사의 말투와 의사의 진찰 내용에 대해 상상하며 서로 번갈아 의사 역할을 했어요.

어쩌면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몰라, 침대 밑으로 불쑥 튀어나온 다리를 도끼로 잘라낼지도 몰라.

그러면 난 피가 흐르는 다리에 깨끗하게 빨아낸 행주를 감아주고 자장가를 불러 줘야지,

난 감자스프를 끓여서 입에 넣어줄 거야, 너무 뜨거우면 입을 델 수 있으니까 입김으로 식혀서.

우린 뜨거운 음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스레인지에서 꺼낸 냄비는 일 분도 되지 않아서 끔찍하게 차가워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어요. 뜨거운 스프를 후후 불면서 먹는 소녀의 입술이 그려진 동화책을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 소녀처럼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보고 싶었으니까.

엄마는 한밤중에야 집에 돌아왔어요. 절망적으로 젖어 있었고 온몸에서는 쿱쿱한 흙냄새, 부리를 활짝 벌린 채로 죽어간 새들의 입속에 고인 모래더미와도 같은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어요.

난 아빠의 다리를 잘라줄 사람의 부재를, 그의 영원한 부재를 알아차렸어요. 아빠의 가여운 다리, 고목처럼 새까맣고 딱딱한 다리는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는데, 아빠는 얼토당토 않은 성장통에 휩싸여 죽어갈듯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데, 그의 다리를 자르고, 부풀어가는 머리를 절개하고, 그를 죽음과도 같은 삶으로 생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치명적인 종양을 제거해줄 사람은 이제 무한한 정지의 운동으로 와해되었음을.

우리는 영원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무형의 조각들 사이에 쓰러져 악몽을 꾸었어요. 엄마는 동상에 걸려 출혈하듯 붉게 변해버린 손으로 아빠를 결박하던 매듭을 풀어내었죠.

아빠는 순간 이전으로, 그저 순수하고 연약한 채 아직은 깨지지 않고 몰락하지도 않고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버리지도 않은 상태로, 울음 많은 목수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유순한 두 눈은 느리게 깜빡였고 아빠는 엄마와 나, 헨젤을 모두 선 채로 쌓아둔 것보다도 더 커진 키로 일어서 우리를 내려다보았죠.

다가드는 무형의 힘에 사로잡히듯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서 숲으로 향했어요. 아빠가 병상에 드러눕기 전까지만 해도 숲까지는 못해도 십오 분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닿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코앞에 숲이 보였죠.

우리 집은 당장이라도 창백하고 희멀건 덩어리에 잠식당할 것처럼 보였어요. 해일의 목전에 닿은 가엾은 희생양처럼 남겨진 나무문을 두고 우린 숲속으로 들어갔죠.

끝없이 자라난 나무들 아래 빛은 닿지 않았어요. 햇빛도 달빛도 우리가 영원히 이름을 알 수 없을 다른 은하의 별들의 빛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잠자코 걸었어요.

헨젤은 임부의 배처럼 부풀어오른 배에서 투명한 새들을 하나씩 꺼내어 땅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어요. 박제도 하지 않은 새, 냉혹한 추위 속에서 죽어버린 새들, 우린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목을 끼워 뒤틀어 죽인 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새들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첫 번째 새를 살해하기 전에, 두 번째 새의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 전부 죽어버렸고, 죽은 새들을, 얼어붙은 새들의 시신을, 얼음 속에 파묻힌 새들을 무너진 세계에서 번성한 나무들이 먹어치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죠.

난 허공에서 히스테릭하게 미소짓는 아빠의 기다란 틈을 봤어요. 한 조각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의미를 가진 틈 속에서 당장이라도 끔찍한 비명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우리가 걸어가는 소리, 헨젤이 새의 유령을 떨어뜨리는 있지도 않은 소리밖에는 들리질 않았죠. 헨젤이 자폐적으로 왼손을 뒤트는 모양만이 어렴풋하게 보일 뿐이었어요.

밧줄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 어둠 속에선 얇디 얇은 치마만으로 제대로된 매듭을 묶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엄마가 밧줄을 가져오겠다며 아빠의 해골과도 같이 앙상하고 창백한 손목을 끌고 숲 밖으로 나갈 때, 우린 엄마가 다시는 우리를 찾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집안에 들어서면 엄마는 아직도 바닥과 침대, 식탁과 의자 곳곳을 굴러다니는 감자를 볼 것이고 그러면 지금껏 그랬듯 감자를 끓이고 감자를 굽고 감자를 저미고 감자를 으깨면서 살아가게 되겠죠.

숲의 어둠 속에서 끔찍한 피로에 절어 얼어붙은 땅 위에 주저앉을 때, 헨젤의 옷 속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흰빛의 돌이 우르르 떨어졌어요.

오빠는 의젓하게 내 손을 잡고 새들을 따라 돌아가자고 말했죠.

우린 부러진 새의 유골을 따라 걸었어요. 당신은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금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새들은 분명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죽은 새들, 우리가 죽인 적도 없는 새들, 사실은 처음부터 없었던 새들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새벽의 눈송이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그들의 벌어진 부리, 부리 속에서 어른거리던 울음소리를 당장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분명 들었다고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는군요.

우린 살아남을 거야, 하고 오빠는 날 위로하듯이 계속해서 중얼거렸지만 어째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지, 울창하게 퍼져가는 하얀 나무들 틈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째서 우리여야 하는지, 한 번 살아있었던 것은 어째서 계속 살아가려 하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 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빠를 따라서, 응, 우린 살거야, 하고 대답했죠.

우린 계속해서 걸었어요. 어둠을 착취하며 희미하게 번득이는 새의 유골이 우리를 미혹하는 방향대로. 사실 방향이나 길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세계에는 이제 몰락해가는 이전의 지층들과 곧 몰락할 나무들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밤을 걸었어요. 헤매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우리에게 내팽개쳐진 생에 어떤 의미, 하다못해 탈존적인 무의미라도 실재할 것이라 믿으면서.

물론 아무것도 없었죠.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살았던 것이 살아가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적어도 난 지금까지 발견할 수 없었어요.

마침내 숲을 빠져나왔을 때,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흰빛으로 가득차 있었어요.

엄마는 우릴 보고 울면서 달려들었죠.

날 두고 가지 말라고 엄마는 울었어요. 가지 마, 가지 마, 하면서요.

신으로부터 유기당한 사람이 신 없는 폐허를 살아가는 것처럼 의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사람이 두고 떠난 사람은 더 이상 의미없는 생명의 고통을, 오로지 폐허만을 건설하는 세계의 찢어발김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조 단위의 생물에게 밀어닥친 행성적 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없었어요.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몰락에도 불구하고 꼭 살아야 하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어요. 세계는 우리의 자살을 유도하고 끊임없이 미루어진 결정을 도와주는 거대한 기계장치 같았어요. 니힐리즘적인 계시를 알아차린 목수들은 목을 맸고 아마 의사도 마찬가지였겠죠. 숲의 짐승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고 오로지 나무들만이 이 지독한 무의미의 고통으로부터 치명상을 입지 않은 듯 멀쩡하게 불어났죠.

난 엄마가 아직도 목을 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침대 매듭에 아빠가 아직도 묶여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죠.

그 매듭은 엄마나 내가 평소에 매어주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묶여 있었어요. 아주 독특하고 기묘한 형태의 매듭이었죠. 난 아빠가 그 매듭을 묶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아빠는 생환한 우리들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빠가 우리의 귀환을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엄마는 꽁꽁 얼어붙은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어요. 네발 짐승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마치 고행을 자처하는 수도사라도 되는 듯이. 가느다란 손은 벌겋게 불어터졌고 바닥에는 얼음조각이 무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몰락한 세계처럼 흩어졌어요. 우리의 생명은 더 이상 소중한 것, 불가침의 가치를 가진 것, 영원하고 항구적인 환희가 아니었어요. 고통의 양이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에 삶을 파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19세기 러시아 작가가 그토록 끈질기게 물었던 질문을 그 치명적인 질문을 우리는 되물어야 했어요. 왜 인간이어야 하는지, 왜 인간은 살아남아야 하는지, 불안과 몰락의 끔찍한 현현 속에서 생명은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

우리는 당장이라도 자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필연적인 자유의 숭고한 환상이 거대한 분쇄기와도 같은 항구적인 겨울 속에서 조각조각 찢겨나가는 동안 필연적인 것은 자유도 미래도 아닌 절망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필연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 제 목에 올가미를 걸고 숲 속에 매달려 죽은 목수들은 그들에게 가능한 하나뿐인 필연, 하나뿐인 자유를 쟁취한 것이겠죠.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닦고 있었어요.

생에 착목하는 건 절망에 중독된 생물들의 오랜 기벽일 뿐이야, 하고 엄마의 시뻘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죠. 우린 오로지 절망만을 기대하며 살아가지. 그나마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다면, 그건 우리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무것도 파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야. 시덥잖은 글을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페이지 쓰고 모아둔 작가들은 결국 개미들의 밥이나 될 그런 페이지 때문에 파멸하고 말지. 그들은 그 글에 담겨 있는 질문 그 글에 담겨 있는 테제 그 글을 잠식하고 있는 곰팡이와도 같은 절망이 언젠가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에게 주어진 기적과도 같은 영광을 그에게도 불러오리라고 믿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페이지를 쓰는 작가들은 결국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못하고 파멸하고 말지. 그들 속에서 개미떼처럼 불어나는 문장들, 파편들, 어휘들, 자폐적인 절망의 수사들, 무의미의 폐허는 폐허인 그대로 놓아두어야 해. 그 폐허를 복제하고 양산하고 증폭하고 창조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뿐이지.

난 절대로 글을 쓰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글을 쓰지 않을 거야. 글을 쓰다가 미쳐버린 사람을 난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은 더 상상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선생님, 난 결국 글을 쓰고 있죠. 난 언제나 그 글을 찢어버리고 구겨버리고 불태워버리는 상상을 해요. 무한한 페이지들은 훌륭한 땔감이 되겠죠.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 글을 상상하는 정신과 글 아닌 것을 상상하는 정신을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어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것, 한 조각의 언어도 남지 않도록, 그것만이 내 바람이에요. 아니요. 한 권도요. 정말 한 권도 출판하지 못했어요.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선생님처럼 나를 찾아올 뿐이죠. 아무도 내 글을 읽고싶어 하지는 않아요. 이미 몰락한 정신, 파괴되고 훼손되어버린 정신에서 현현하는 자폐적인 사유, 변증법을 믿는 유물론자들에게 나처럼 부식된 정신은 악조차 아니죠. 그저 무용한 것,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서는 안 될 것에 불과해요.

세상에는 쓰레기가 정말 많으니까요. 끔찍할 정도로 많으니까요. 얼어붙은 쓰레기들의 효용을 찾는 사람들은 쓰레기가 유전자 조합의 원료가 될 수 있다고, 또 어느 생명의 먹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건 전부 쓸모없는 거예요. 삶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만큼 부질없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엄마가 우리를 다시 버렸다고 해서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말아 주세요. 엄마에게 잘못이 있다면 우리를 숲에 두고 떠난 것도, 우리가 숲에서 얼어죽도록 내버려둔 것도 아니라 우리에게 밧줄을 주고 매듭묶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부모들이 자식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어야 할 것은 엄마 아빠라고 말하는 법도 아니고, 허기를 참아내는 법도 아니고, 배변을 가리는 법도, 흐르는 침을 닦는 법도 아니라, 매듭을 묶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어요. 냉혹하게 얼어붙은 세계는 모든 만남, 발생, 소진, 오염을 취소할 것을 강경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들은 멸종의 이유를 찾아내려는 애석한 시도조차도 실패하였고, 사고실험은 언제나 실패로 끝났으며, 늪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유령 아이를, 두 마리의 쥐새끼를, 나는 언제나 건지지 못했고, 선생님, 난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게 맞겠죠.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담보,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치료제예요. 하지만 나무들처럼 죽지 않으면 어쩌죠?

나무들 말이에요, 선생님. 수십 년 전에 도끼로 표시를 내었던 나무에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는 걸 봤어요. 엄마가 두 번째로 우리를 버리러 갔을 때요. 그때 우리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죠. 헨젤과 나는 각자 하나씩 선택할 나무가 겹치지 않기만을 바랐죠.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이 같은 나무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엄마가 불현듯 몸을 떨며 목 매는 줄을 가져와야겠어, 라고 할 때까지도 우리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헨젤은 의젓하게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죠. 울지마, 그레텔. 엄마가 올 거야.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야. 기다리면 기다리면 기다리면.

그렇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늘 그렇듯 우리는 알지 못했죠.

기다리면 천사가 우리를 배웅하러 올거라는 아빠의 말에 우리는 몇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눈 뜬 채로 천사들을 찾아 헤매었지만 희멀건 눈송이들밖에는, 이제 눈송이와 구분할 수도 없이 흐릿하게 번져가는 먼지들밖에는 찾을 수 없었죠. 우리는 천사들이 얼어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천사가 올 테니까, 하고 아빠는 사슴처럼 크게 일렁이는 눈을 우리에게 가져다대며 말했지만 천사는 오지 않았어요.

식탁 위에 의자 위에 바닥에 컵 속에 굴러다니는 끝없는 감자들. 엄마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 감자들과 감자들 위에 구속된 아빠를 보겠죠.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삶을 선택하겠지, 하고 난 생각했어요.

헨젤도 천사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어요. 달빛조차 들지 않는 짙은 숲 속을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난 오빠에게 새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죠.

새들은 없어, 하고 오빠는 정색하며 대답했어요. 그레텔, 새들은 더 이상 없어.

난 울면서 소리쳤어요. 하지만 있었잖아, 분명히 있었단 말이야. 난 오빠가 새들을 죽이는 걸 봤어. 아빠 도끼를 훔쳐서 새의 목을 자르고, 양손으로 새의 목을 조르고, 나중에는 없는 목을 손가락 두 개에 끼워서 부러뜨리는 걸 전부 봤단 말이야.

오빠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그레텔. 새들은 더 이상 없어.

난 오빠의 왼손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그럼 뭘 하는 거야. 왜 손을 그렇게 움직여?

오빠는 새의 목을 조르던 왼손, 밤처럼 투명한 새의 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경련하던 왼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어요. 울지 마, 그레텔. 새들은 없어.

난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가 끝의 시작에 진입했다는 것, 달빛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새들의 머리뼈를 따라 집까지 찾아가는 기적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세 개의 밧줄을 챙겨낸 엄마가 아빠를 두고 감자들을 두고 우리를 찾아 올 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헨젤은 곧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오빠도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죠. 오빠는 나와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고, 이젠 정말 우리 둘뿐이니까 나와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면서 평생을 이 혹한 속에서 살아갈 계획이었다고 말했어요.

엄마가 밧줄을 가지고 오면 난 그년 목을 졸라 나무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우리 둘이서 말이야. 침대 위에서 오줌이나 질질 싸대는 병신새끼는 도끼로 꿱꿱거리는 비명이나 지르는 목을 자르고 바둥거리는 팔다리를 자르고 숲 속에 던져 버려야지 그 위선자가 울면서 잘라내고 토막낸 나무들이 정당한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난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헨젤의 왼손만을, 아직도 이상하게 비틀리고 있는 왼손만을 꼭 붙잡고 오빠를 따라갔어요.

난 오빠가 새들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죽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기를 죽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죠.

그레텔, 곧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길은 나타나지 않았죠. 언제 낮이 되었는지 언제 낮이 끝났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캄캄한 숲 속에서 우리는 끝나지 않는 하루를 계속 걸어나갔어요. 오빠는 끝없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어요. 난 옅고 축축한 안개가 낀 듯 흐릿한 오빠의 눈, 지독한 근시의 눈이 그토록 깊은 절망과 증오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오빠는 늘 순종적이었으니까. 오빠는 항상 엄마를, 아빠를, 그리고 나를 따라 다녔고, 한 번도 고개를 저은 적도 소리를 지른 적도 없었으니까.

오빠는 사각매듭 접친매듭 팔자매듭 라인노트 피셔맨노트 클로브히치 키우히치 그래니매듭 더블시트밴드를 전부 구분할 수 있다고 속삭였어요. 하지만 매듭을 묶는 방법은, 가장 간단한 사각매듭을 묶는 방법조차도 모른다고요.

끝과 시작을 찾을 수 없는 하루, 우리는 걸어가면서 미치지 않기 위해 무슨 말이건 했어요. 아주 사소한 말 쓸데없는 말 유치한 말 시시콜콜한 말 터무니없이 무거운 말 현학적인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이해할 수 있는 말 정말이지 무슨 말이건 다 했어요.

마침내 오빠는 나를 증오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날 증오해왔다고 속삭이기 시작했죠.

난 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널 뭘로든 만들 수 있었어. 날개를 꺾어서 새처럼 가둬 기를 수도 있었고 입술을 꿰매서 영영 조용히 만들 수도 있었지만 널 내버려뒀어 널 사랑했으니까 네가 자라서 내게 은혜를 갚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넌 실패했지 무엇이고 다 실패했어 자살마저도 자살을 바라는 것마저도 실패하고 천사를 기다리는 동안 네게는 새하얀 깃털 하나 돋지 않았어

난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죠. 오빠가 날 미워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오빠는 항상 나한테 다정했으니까. 우린 늘 함께였잖아. 난 한 번도 오빠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오빠 배를 차고 싶다고 느껴본 적도 없고, 오빠를 불태워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오빠는 날 매몰차게 노려보면서 말했어요. 당연하지 난 너보다 크니까. 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나 아빠보다 훨씬 커지겠지만 넌 영원히 그럴 수 없겠지, 그레텔. 하지만 난 널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어. 그러니까 도덕적으로도 내가 너보다 훨씬 우월하지 알겠어, 그레텔? 그러니까 넌 내게 복종해야 해. 날 따르고 내 아이를 낳아야 해.

물론 난 오빠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어요. 우린 정말 아무 말이든 다 했으니까. 죽고 싶다는 말도 죽고 싶지 않다는 말도.

난 내가 목을 꺾어 죽인 새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오빠가 새를 죽이는 것도 보았다고, 우리는 새들의 유골을 따라서 숲을 나왔던 거라고 말했죠.

그러자 오빠는 돌연 날 냉혹하게 밀치더니, 그는 한 번도 새를 죽인 적이 없다고 소리치더군요.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아무것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레텔 알겠어? 네가 새들을 죽이는 동안 새들의 목을 베고 새들의 목을 꺾고 새들의 목을 떼어내는 동안 난 새 한 마리 죽이지 않았어 새를 죽이는 너를 죽이지도 않았고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오빠도 새를 죽였어. 우린 같이 새를 죽였어. 새들이 죽기 전에 우린 같이 새들을 죽였잖아. 죽지 않은 새들의 목을 자르고 부러뜨리고 떼어냈잖아.

온몸이 덜덜 떨리던 것, 세상이 미친 듯이 경련하며 흐느끼던 게 기억나요. 난 주체할 수 없이 떨리던 세상에서 하염없이 미끄러지면서 메스꺼움에 흐느꼈어요.

오빠는 날 끌어안고 안심시키며 말했어요. 곧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자는 갑자기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오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끝까지 침묵했어요 우리는 아무런 이야기도 가장 하잘 것 없는 이야기도 가장 위대한 이야기도 한 적이 없어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난 울지 않았고 오빠는 날 위로해 준 적도 날 저주한 적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끝까지 침묵했으니까 아무도 호흡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으니까 나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으니까 오빠는 고목 밑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들어서 나무를 찍었어요 급습당한 나무는 신음도 없이 새까만 피를 줄줄 흘렸고 우리는 울지 않고 침묵했어요 정말이에요 우린 아주 오래 전에 아빠가 그러했듯 나무를 도끼질하려 했지만 나무를 도끼질하듯 서로의 머리를 쪼개보려 했지만 결국 나무를 찍어낼 수밖에 없었죠 아빠가 그러했듯 우리는 정말 죽여야 할 것 정말 잘라야 할 것을 자를 수 없었어요 오빠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끓어넘치는 얼음처럼 피부를 데고 짓무르고 오염시키는 얼음처럼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어요

도끼는 상처난 나무 아래에 그대로 두고 걸었죠. 우린 도끼를 적합한 곳에 정말이지 필요한 곳 필연적인 곳, 그러나 필연적으로 실패할 곳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비명했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 우리는 침묵하고 있었어요.

끔찍하게 배가 고팠어요. 오빠는 왼쪽 손목을 내밀었고 난 오른쪽 손목을 내밀었죠. 우리는 뭉툭한 어금니로 서로의 손목을 깨물었어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죠. 밍밍하고 차가운 살의 맛만 입 안에 감돌 뿐이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깊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침잠한 어금니가 살을 꿰뚫고 들어갔고 탁한 공기와도 같은 짠물이 입술을 적셨어요.

난 붉게 달아오르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어요 어둠 속에서 빛깔이 보일 리가 없었지만 악몽을 적시는 붉은빛처럼 매혹적인 붉은빛을 난 정신없이 들이켰죠 무언가를 감내하듯 꾹 다물린 입술은 육감적으로 보였어요 오래지 않아 내 오른 손목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겨울을 살아남은 날벌레들이 우리의 만개한 살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육체에 탐닉했어요

끔찍하게 배가 고팠고 서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목이 마르진 않았어요.

어둠은 끝도 없이 찬란하고 눈이 부셔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죠. 눈처럼 새하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어요.

우리는 고개를 들고, 강물에 빠진 쥐새끼처럼 감미로운 소리로 지저귀는 새의 울음을 들었어요. 뼈밖에 남지 않은 새의 흰빛이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죽은 새들의 유골이 우리를 네 발로 기어다니는 엄마의 거실까지 이끌었던 것처럼.

새를 따라가는 동안 입술에 묻은 피는 모두 얼어서 날카롭게 바스라져 입가를 따갑게 간질였지만, 손목에서 흘러내린 피는 굳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렸죠. 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손등을 타고 손바닥을 타고 손톱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가 아깝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흰빛의 새에게 홀려 있었어요.

새는 우리를 안내하듯 간혹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우리를 뒤돌아보며 날아갔죠.

곧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저 새는 우리가 하늘로 날려보낸 새의 유령인지도 몰라. 은혜를 갚기 위해 찾아온 거겠지.

난 새의 종착역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흰빛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나무 두 그루와 길고 부드러운 올가미 두 가닥이 매달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오빠와 나는 한 나무에 묶이겠지. 아니 꼭 그렇진 않을지도 몰라. 나무까지 걸을 수 없으면 도중에 지쳐버리면 새는 우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 곳에서 우리를 돌아보다가 사라져버리고 말겠지. 어쩌면 새를 너무 쉽게 죽인 건지도 몰라. 목을 졸라서, 목을 꺾어서. 그런 죽음을 새들이 기억할 수 있을까. 새들 머리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았는데. 벌레처럼 지렁이처럼 끔찍하게 작았는데. 그런 작은 머리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죽음을, 아마 고통조차 절망조차 없었을 죽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새가 가버리면 어쩌지. 우리를 잊고 가버리면, 꺾인 목으로 후손들을 굽어보다가 그들이 아직 죄를 발명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불현듯 알아차리고 놀라 사라져버리는 검은 천사들처럼.

하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새들이 이끄는 데로 걸어갔고, 새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희고 찬란한 거목 위가 아닌, 두 개의 치렁치렁하고 부드러운 올가미가 아닌, 지붕 위에 올라앉았죠.

지붕은 벽돌처럼 딱딱하고 거대한 쿠키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눈처럼 하얀 생크림이 올려져 있었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새가 내려앉은 지붕뿐만이 아니라 집 전체가 달콤한 사탕과 과자로 뒤덮여 있었죠. 끔찍할 정도로 지독한 단내가 진동했어요.

헨젤과 나는 입 안에 시큼한 개미들이 터져 들어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설탕을 굳혀 만든 창문을, 달콤한 생크림이 종기처럼 돋아난 벽을 먹어치웠어요. 우린 나무를 갉아먹는 개미들처럼 단순하고 충만한 행복에 젖어서 집을 훼손하고 망가뜨렸죠.

우린 비등하는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해체하고 결국에는 다시 복귀하고 마는 인간을 잊었고, 존재의 잔혹한 무게를, 허공의 부조리한 무게로부터 살아남아야 할 당위에 대한 고민을, 더는 정당화할 수 없는 삶에 대핸 경멸을 잊었어요.

우린 그저 먹고 먹고 또 먹기만 했죠.

집은 절망적으로 달았어요. 너무 달아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그래도 우린 계속 먹었죠. 말도 없이 먹기만 했어요. 오직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그렇게 단 건 처음 먹어봤으니까.

그녀가 나올 때까지, 그래요 당신이 그녀에 대해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걸 알아요. 모두 마찬가지죠. 우리 같은 어린 애들은 널리고 널렸는데 뭐가 궁금해서 날 찾아왔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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