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3

그녀의 입술은 숲의 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붉었어요. 그녀는 등이 굽은 곱추였고 등 위에는 가슴보다도 크게 튀어나온 혹이 세 개나 달려 있었지만 끔찍할 정도로 관능적이었어요 우리는 순식간에 새의 유령을 새의 흰빛을 잊고, 어둠 속에서 에메랄드 빛으로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상상하며 먹어치우던 생크림을 잊고, 딸기잼을 잊고, 돌처럼 단단하던 비스킷을 잊고 그녀를 그녀의 음란한 세 개의 혹을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죠.

여자는 거대한 아이스크림, 결코 녹지 않을 초콜릿 하드바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집 안에서 샛노랗고 아늑한 불빛이 연기처럼 은밀하게 새어나왔어요. 천 개의 눈을, 순식간에 고개를 돌리고 날 쳐다보는 천 개의 눈을 보았어요. 난 소름이 돋고 온몸이 차게 식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날 응시하는 천 개의 낯선 눈들이 끔찍하게 두려웠지만 여자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우린 초대받지 않은 집 안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섰죠. 문을 닫아야 할지 열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문을 열어두는 일인지 닫아두는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여자는 우리를 나무라지 않았어요. 난 그녀의 새빨갛고 두툼한 입술과 세 개의 혹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죠.

우리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천 개의 시선들은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었어요. 수백 개의 새장 속에 가두어진 천 개의 시선들.

우리는 우리 속에 갇힌 새들을 보았어요. 유령도 뼈도 아닌 진짜 새, 살아 있는 새, 악몽도 환각도 아닌 진짜 새.

여자는 손을 뻗어서 그녀의 귓가에 매달려 있던 새장 속에서 크고 통통한 새 한 마리를 끄집어내었죠. 새는 여자의 붉은 입술에 은빛의 부리를 묻고 칭얼대듯 낑낑거렸어요. 여자는 새의 깃털을 조심스레 빗겨주고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죠.

난 당장이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서 새처럼 긴 목을 내밀고 그녀의 손길을 만끽하고 싶었어요. 새는 여자가 가느다란 목을 피아니스트처럼 유려하고 능숙하게 잡아 비트는 동안에도 검고 수줍은 눈으로 그녀를 묵묵히 올려다보기만 했어요.

우린 불에 달구어진 새를 먹었죠. 살코기에서는 역겨운 비린내가 풍겼지만 난 맛있다고 말했어요. 오빠도 맛있다고 말했어요.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여자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 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놀라서 그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죠. 그녀가 저 새들이 모두 그녀의 자식들이라고, 정신적인 자식들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인 자식들이기도 하다고 말할 때에야 난 겨우 오페레타처럼 아름다운 어조가 아닌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죠. 네, 선생님. 그녀는 고백했어요. 천 개의 시선들을 그녀의 뱃속에서 낳았다고. 알을 낳았다고. 매일매일 알을 낳고 낳고 또 낳았다고. 어떤 알에서는 새가 깨어났고 어떤 알에서는 아무것도 깨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알을 낳았다고.

천 개의 시선이 자라날 때까지 그녀는 매일같이 새고기를 먹고 알을 낳았다고 말했어요.

그녀가 낳은 것이 그저 알일 뿐인지 새의 잠재태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알을 낳은 건 사실이라고요.

우리는 그녀와 함께 지냈어요. 아마 오래 같이 살 수는 없을 거야. 하고 그녀가 말했지만 상관없었어요. 나도 헨젤도 그녀에게 매혹되어 있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으니까 서로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죠. 헨젤은 그녀의 혹들을 특히 사랑했고 난 그녀 입술의 붉은빛에 특히 매혹되었죠. 그녀의 혹들을 한 번만 쓰다듬어볼 수 있다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출 수 있다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우리의 목을 내어주었을 거예요.

우리는 그녀가 알을 낳는 모습도 보았어요. 새의 뼈처럼 새하얀 알이었어요. 그녀의 새까만 음부는 오랜 출산 때문인지 쭈글쭈글했고 노골적으로 늘어진 모양이었죠.(항문이 아니라 음문이었어요. 확실해요, 하고 여자는 덧붙였다. 그때 난 아직 어렸으니까 내 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신체 일반에 대해서, 그것도 은밀한 부분에 대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지만, 음문이었어요. 확실해요.) 그 속에서 팔뚝만 한 알이 비어져나왔어요.

그녀는 알을 낳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죠.

알을 낳는 시간은 불규칙적이었어요. 숲 속에는 빛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하루가 끝나고 하루가 시작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매일 잠을 자고 매일 일어났으니까 그 시간을 기준으로 밤과 아침을 구분하고는 했는데, 어떤 때는 우리가 아침에 막 눈을 뜰 무렵부터 그녀가 알을 낳고 있었고, 어떤 때는 우리가 새털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을 무렵에 알을 낳고는 했죠.

대부분의 알에서는 새가 깨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알에서는 축축한 날개를 펼치며 삐약거리는 새가 정말로 튀어나왔죠. 새는 알보다 훨씬 작았어요. 깨지지 않은 알은 우리가 먹어치웠지만 스스로 깨어낸 알은 아기새의 몫이였죠. 손바닥만 한 새가 알을 다 먹기까지는 일주일도 더 걸렸어요.

우린 가끔 숲 밖에 두고 온 엄마와 아빠를 떠올렸죠. 엄마가 아빠를 구속하던 매듭들을 전부 풀어놓았을지, 아빠가 엄마의 목을 내 목으로 착각하고 부러뜨려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헨젤은 날 위로하면서 아빠는 엄마의 목을 조를 수 없다고, 그럴 힘은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숲에서 나오던 날, 헨젤은 아빠의 다리가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마비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고 했어요.

아빠의 불구는 엄마를 살릴 거야. 엄마 아빠는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고 헨젤은 말했지만 돌아가자고 하지는 않았어요.

새들은 역겹고 냄새 났으며 새장 속에서도 절망적으로 부산스러웠지만 우리는 여자를, 정확히 말하면 새를 낳는 여자를, 입술이 붉고 혹이 세 개나 달린 여자를 사랑했으니, 여자를,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낳는 새들과 그녀의 붉은 입술과 세 개의 혹을, 그녀의 매혹적인 불구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여자와 함께 새고기를 먹고 여자는 알을 낳고 여자의 곁에서 여자의 붉음과 불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새털이불 속에 들어가 잠이 들고 그런 날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어요. 그녀의 집에는 시계가 없었으니까 날과 잠을 세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죠. 누구나 시간을 알고 누구나 하루를 알고 누구나 날짜를 아는데,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선생님, 믿을 수 없겠지만 난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아마 오빠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여자는 갈수록 많은 말을 들려줬어요. 첫날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신비로운 침묵으로 안내했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는 수다스러웠죠. 우리는 새처럼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지저귀는 그녀의 수다를 즐겼어요.

우린 행복했지만 그녀는 날마다 불행하다고 했어요. 더는 새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새를 죽이는 일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거야, 하고 그녀는 말했죠.

난 새들을 연민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두려워. 내가 죽인 새들이 전부 내 뱃속으로 모여들어서 매일 새를 낳는 건 아닌지 무서워. 새를 낳는 건 천벌이야. 새를 낳지 않았다면, 아예 알조차 낳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낳지 않았다면. 얘들아, 난 내가 죽인 새들이 날 하루씩 더 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난 진작에 죽었어야 했는지도 몰라. 처음 새가 깨어나던 날 아니 처음 알을 낳던 날 아니 처음 새에 대한 관념을 갖던 날 그 치명적인 날 죽어버렸더라면 영영 깨져버린 채 복구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난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알을 낳았지.

그때도 난 행복하진 않았지만 또 가끔은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절망에 귀속되어버리지는 않았어. 새를 낳은 이후부터는 내 절망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내 부모가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새를 낳지 않았더라면, 누군가는 내게 닥친 무시무시한 절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모든 가능성의 연쇄를 하나만 끊어내어도 이런 절망은 닥치지 않을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이 모든 절망이, 층층이 연결된 박탈의 고리로 이어진 현재가 순전한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할 때면 이토록 촘촘하고 정교한 우연이야말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진정한 우연은 벌어지지 않은 사건들, 존재할 수 없는 현재, 가능성의 파동 속에서 완전히 삭제되어버린 시간, 새를 낳지 않는 나, 한 마리의 새도 낳지 않고 살아가는 나, 알 속에서 꾸물거리며 보이지 않는 피막을 짓이기고 나오는 단단한 다리를 모르는 나, 그래 영원히 현현할 수 없는 행운-혹은 행복은 우연이지. 그러나 지금은, 얘들아 지금은 불행이고 절망일 수밖에 없어. 이 절망은 현재로 환원되어버린 절망은 필연적인 거야. 아주 오래전엔 나도 절망을 믿지 않았지만 자유의 필연을 믿었고 자유를 내파하는 희고 아름다운 빛을 믿었지만 이젠 필연적인 자유는 없다는 것, 자유의 결핍으로 출몰한 무한한 복수성의 작용과 훈련과 시도와 연습들은 모두 언제나 알려진 불행, 언제나 예정되어 있던 불행,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어야 했고 실제로 알고 있었을 불행을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너희도 살아있다면 곧 알을 낳겠지. 알을 낳기 전 그 치명적인 때를 놓쳐버리고 만다면. 무한한 발생과 사건 속에서 정말 우연이, 행복이나 희망, 기적 따위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살아간다면 너희는 반드시 파멸하고 말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한 닥치는 일은 파멸과 죽음밖에는 없지만 파멸하기 전에 죽을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파멸을 부정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익명의 틈들이, 깊고 눅눅하며 더럽고 추악한 절망들이, 너희가 처음부터 예상해왔던 그 절망이 너희를 포위하고 있는 것, 너희는 포위되어 있는 빈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헨젤은 여자에게 엄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어요. 오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줍게 속삭였죠. 엄만 늦기 전에 우리 나무를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여자는 새빨갛고 통통한 입술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어요. 그래. 하지만 너희 엄마는 실패했구나.

난 대꾸했어요. 어쩌면 누구나 목을 매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목을 매고 죽는 일만큼 천박하고 세속적인 죽음도 없을 거예요. 아무리 궁핍한 사람도 목 매달만 한 긴 줄 정도는 구할 수 있고 당신도 알겠지만 목 매달 나무는 끝도 없이 많으니까요. 목 매단 죽음만큼 몰취향적인 죽음도 없을 거예요. 질식에 대한 기벽을 가지고 있다면 더 세련되고 극적인 것도 많잖아요, 목을 자른다거나 폐를 파열시킨다거나, 하지만 가난하고 취향 없는 이들은 그런 일을 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죠, 하고 나는 마치 내가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가난한 이들과 내가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는 침대에서 태어난 것처럼 말했어요.

난 언제나 그렇게 느꼈으니까. 가난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빠 같은 이들은 가난에 쉽게 적응하고 가난을 벗삼아 살아가요. 지저분한 나무바닥을 엎드려 기어다니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최후의 쥐들을 사냥하며 무료함을 달래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죠.

난 오빠가 가난을 은밀한 기쁨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오빠에게 내세울 것은 가난밖에 없고 만약 누군가가 오빠로부터 가난을 빼앗아간다면 오빠는 감히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지도 못한 채 모든 고민, 수치, 절망과 불행의 사치스러운 이면들을 박탈당한 채 파멸하고 말 거예요.

난 한 번도 가난을 즐긴 적이 없었죠. 내가 가난한 건 무시무시한 부조리라고 생각했어요. 내겐 취향이 있었고 사유가 있었고 아무도 믿어주진 않았지만, 권태가 있었으니까요. 선생님, 정말이에요. 어린 시절에 난 지금보다도 훨씬 가난했지만, 아마 당신이 짐작도 못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난 권태롭다고 느꼈어요. 궁궐에 사는 귀부인들이나 느낄 법한 권태, 혹한이 들이닥치기 전 작열하는 여름을 피해 별장에서 글을 쓰고 야마하를 연주하던 댄디들이나 느낄법한 권태, 그 권태를 느꼈다고요. 절망적으로 더럽고 냄새나고 누추한 나무집 안에서, 누구나 기어다니고 기어다니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않는 그런 천박한 집안에서 내가 권태에 젖어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지만.

난 누구라도 나를 발견해내야 한다고 믿었어요. 내가 권태롭다는 것, 바닥을 닦고 나무를 베고 살해하고 또 살해하며 생기는 분투와 피로가 아닌 권태, 육체의 강렬한 노동과 소진에 의해 발생된 일시적인 진공상태가 아닌, 오로지 정신이 선행하여 발발한 치명적이면서도 무한한 결핍을 느꼈어요.

엄마가 아무런 얼룩도 없는 바닥을 닦아내고-아마 얼룩은 엄마 눈에 있었을 거예요. 엄마 왼쪽 눈 아래쪽에 있는 불그스름한 반점을 나도 볼 수 있었으니까-아직 병 들지 않은 아빠가 장작을 패고 오빠가 집안과 밖을 갉아먹는 흰개미들을 뭉툭한 손톱으로 눌러 죽이고 있을 때, 난 내 안의 공동을 가만히 느끼며 그 자리를 돌보고 있었죠.

난 그들을 관조했어요. 내가 속하지 않은 그들, 나와는 무관한, 나보다 몰취미하고 나보다 천박하고 나보다 세속적이고 결정적으로 나보다 행복한 그들, 사랑할 줄만 알고 사랑을 비판적으로 관조할 줄은 모르는 이들. 엄마와 아빠는 정말이지 우리를 사랑했어요. 오빠도 우리를 모두 사랑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했어요.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더라면 그들은 내 상실을 슬퍼했겠지만, 만약 그들 중 누구가 아니 그들 모두가 쓰러져 죽었다면 난 울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슬퍼하긴 했겠지만 그건 그들의 부재에 대한 슬픔이 아닌 감상적인 광경을 관조하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이었겠죠. 난 언제나 부재가 내 몸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방식으로 메워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텅 빈 자리를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죠.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이런저런 촌스러운, 끔찍하게 촌스러운 잡동사니를 우겨넣어서 채우고 싶지 않았어요.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간혹 헨젤과 함께 아빠가 나무를 살해하고 베어내고 토막내는 자리에 따라가 언제나 확신 없는 그의 살해를 목격하곤 했지만,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진 새들을 죽이곤 했지만, 그 외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죠. 어쩌면 내 권태, 부르주아들이나 왕궁의 공주나 가질 법한 이런 특별한 권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고 나를 부추기지 않고 나를 방치해두던 그 시간에 발생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 권태는 내가 가난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을 끔찍하게 힘겹고 괴로운 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권태 없이 난 그 먼지소굴에서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매일 매시간 같은 자리만 끊임없이 훔쳐내었죠. 닦이지도 않는 자리, 이미 매끈매끈하게 닳아서 더는 벗겨질 수도 없는 살을, 이제는 뼈만 남은 몸을 계속해서 닦아내는 사람처럼,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만을 닦아냈어요. 우리집은 그리 넓지도 않았지만 다른 자리는 끔찍하게 더러웠죠. 혹한을 피해 열린 창문과 문틈 사이로 밀려들어온 손톱만 한 거미들이 집안 곳곳에 우글거렸어요. 처음엔 그것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았죠. 아마 찬장이나 컵 안쪽 침대 아래나 테이블 아래 응달에 고요히 숨어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끔찍하게 불어나면서 더 많은 거미들이 우리 집으로 밀려들고 더 많은 거미들 또 더 많은 거미들이 집안으로 숨어들면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숨지 않았어요. 숨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인지 숨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집안 어디에나 거미들이 있었죠. 눈도 머리도 보이지 않는 여덟 개의 다리들이 수백 쌍. 집안은 거미줄 투성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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