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4

아무도 거미줄을 치우고 끊어내지 않았죠. 아무도, 정말 아무도요. 오빠는 거미들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무심했어요. 나무집을 갉아먹는 흰개미들은 다른 싱싱한 나무들, 살아 있는 진짜 나무들에도 분산되었기에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빠는 언제나 흰개미들만을, 그리 눈에 띄지도 않는 흰개미들만을 찾아내어 귀신같이 잡아 죽이곤 했죠. 난 오빠가 흰개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흰개미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거미들을 죽이지 않은 건 거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반대로 아빠가 거미줄을 치워내고 거미들을 죽이지 않은 건 거미들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어요.

난 아무래도 좋았죠. 집안 곳곳을 차지한 거미들, 움직일 때마다 팔과 손과 다리와 발과 입술에까지 엉켜드는 거미들, 더러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잠들지 않으면 눈꺼풀과 콧구멍 목과 귀틈으로 밀려와 지긋지긋한 줄을 얽어 놓는 무례한 거미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완전히 박멸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는 했지만, 나는 극도로 신중하며 염세적인 행동가였기 때문에, 그 집을 영영 떠나게 될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죠. 기껏해야 내 목과 입술 귀를 칭칭 감은 거미줄을 짜증스럽게 치워낼 뿐이었어요.

아빠는 그마저도 하지 못했어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그랬지만 진짜 문제는 앓아눕고 난 뒤였어요. 거미줄은 아빠를 투명한 유백색의 미라처럼 꽁꽁 얽어 놓았죠. 손발의 결박을 풀어낸 뒤에도 아빠는 내 목을 조르고 가족들의 머리를 깨뜨리려 할 뿐 그를 진짜로 결박하고 있던, 끔찍한 거미줄을 풀어낼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미친 듯이 발작하는 통에, 침대와 엉켜 있던 연약한 거미줄이 뜯겨나가긴 했지만, 아빠는 한 번도 손을 대어서 거미줄을 풀어낼 생각을 하지 못했죠. 마치 거미줄이 그의 몸을 감고 있다는 걸, 그를 꽁꽁 얽어매고 있는 물질적인 실체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절망적인 결박에 길들어서 차마 그것을 찢어내고 저항할 수 있다는 걸, 견고한 옭맴의 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걸 도저히 믿지 못하는 것 같았죠.

물론 거미줄을 찢어내고 뜯어내고 와해시켰다고 해도 거미들은 또다시 거미줄을 지어댔겠죠. 거미들은 끝없이 많았고 끝없이 많은 거미들은 끝없이 많은 거미줄을 지어내니까. 먹이로 삼을 만한 날파리 하나 없이도 그들은 계속해서 거미줄을 지어내죠, 마치 거미줄이 어떠한 예술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런 효용도 성과도 없는 예술을 살아가기 위하여 계속 해내는 무명의 예술가라도 되는 것처럼, 거미들은 거미줄을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어떤 거미는 거미줄이 잘려나간 뒤에 끔찍하게 무너져서 더는 거미줄을 짓지 못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르죠.

난 여자의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가난한 자들의 집에 두고 온 거미들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요. 그 거미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실험들을 사유 속에서 진행해나갔죠. 몇 번의 붕괴 끝에 거미가 거미집 짓는 일을, 생을 포기할지, 하나의 거미가 이룩한 절망이 다른 거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론 난 거미들의 생태와 사고방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정작 그 집에 살 때는 거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화된 의문들은 아무런 해답도 남기지 못하고 끝났죠. 온갖 가능한 대답들만이 끝맺음 없이 떠돌았어요.

내게 추억이 아닌 현실에 살아있는 거미들이 있었다면 난 거미 연구가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자연과학적인 관찰에 대해 궁금해 하는 자들은 끝없이 많으니까 내 연구논문은 반드시 읽혔겠죠, 반드시, 반드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거미 연구가가 되는 일은 없었고 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회고록만을 쓰고 있죠. 내가 쓴 회고록을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당신이 쓰는 글-그러고보니 무얼 쓴다고 하셨죠? 산문시? 소설? 증언록?-은 누구나 읽을 거예요. 모두가 읽진 않더라도 누군가는 읽겠죠. 실패의 숙명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고유한 것이니까.

나보다 먼저 파멸한 자들은 모두 죽거나 미쳐버렸어요. 자격과 품위가 없는 미치광이의 글은 아무도 읽지 않죠. 통사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미치광이의 자폐적인 글쓰기에 착목하는 대중은 없어요. 죽음과 절망 절망 절망 그리고 입에 담지도 못할 천박한 욕설로 점철되어 있는 페이지들은 이미 불타버린 지 오래죠. 그런 건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진짜 광증, 순수한 광증, 아르토가 그렇게 부르짖던 잔혹한 광증은 바로 그런 낙서인 걸, 그런 쓰레기라는 걸 아무도 몰라요.

여자는 남성기와 여성기, 조악한 붉은 획들로 낙서된 종이쪽지들을 보여주었다.

한동안 난 미치광이들의 낙서를, 그들 부모와 가족,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치를 떨면서 버리려고 했던 그런 끔찍한 기록물들을 모아 연구하려는 계획을 세웠죠.

처음에는 하루에 한 시간씩 낙서들을 바라보았어요.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두 시간씩, 반년이 지나고 나서는 세 시간씩, 그렇게 하루에 열 시간씩 낙서들을 바라보게 되던 때 난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미쳐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죠. 난 낙서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진리 없음과의 고유한 조응관계를 구축해내는 붉은 획과 욕설들의 무한한 형성에, 영구히 현재하는 저항과 저속성의 극도로 신중하고 치밀한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하지만 난 그들의 언어를 해설하고 번역하여 설명하는 일에 착수할 수 없었죠.

마침내 이해한 순간, 난 내 언어가 조각조각 파열되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로 내가 쓴 글은-여자는 붉은 립스틱이 군데군데 엉겨붙은 끔찍한 낙서를 보여주며 말했다-또 다른 미치광이의 낙서일 뿐이죠. 완전히 이해하는 순간 난 그들이 되어버린 거예요. 거리를 유지하기, 관조하기,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하루 열 시간씩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보호구도 없이 그들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리고 만 거예요. 내 잘못이죠. 선생님. 내 잘못이에요. 누구나 미치광이를 보는 일에 대해 충고했어요. 미치광이를 하루에 열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미쳐버린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죠.

그러니까 그들의 부모와 보호자, 간병인들은 미쳐버리기 전에 그들의 치명적인 예술을 모두 불태워버리려 한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무한한 불안을 배설해내는 미치광이들 자신을 불태워 삭제해버리고 싶었겠죠. 재도 없이 흰 분진도 없이, 내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고, 그들에게 골몰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마 나보다 그들의 부모와 보호자, 간병인들이, 그들을 불태워 없애버리려고 했을 사람들이 그 미치광이들을 훨씬 사랑했을 거예요. 난 그들이 아닌 그들의 광증을 사랑했던 것뿐이에요. 그들의 끝없이 찬란하고 무한한 타락을, 절망의 영구적인 증폭을. 난 지구상에 남은 한 명의 미치광이도 구원받지 못하기를, 그래서 계속 그 악마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해내기를 바랐어요.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이 끔찍한 분해, 와해, 찢겨짐으로부터 치료되지 않기를 바라요. 당신이 무엇을 쓰든 참견할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 난 무수히 증폭되는 목소리들을 들어요. 그 속에는 바람에 찢겨나간 강물처럼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있어요. 난 그 주름이에요, 선생님.

하지만 그 여자는 미치지 않았어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미쳐버릴 정도로. 그녀가 자신의 죄를 우리에게 고백할 때에도 우리는 그녀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명료하게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계몽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그 여자는 미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 마녀, 네, 선생님 그때 그 여자는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 마녀재판에서는 사악한 술수를 써서 풀려났지만, 그녀의 어미와 할머니는 모두 마녀였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알을 낳았으므로, 섹스도 없이 알을 낳았으므로, 그것도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이름 지을 수도 없이 많은 악마들의 씨앗을 낳았으므로 마녀가 분명하다고 고백했어요. 하지만 선생님, 그녀는 악마에게 홀리지도 않았고 환각에 시달리지도 않았어요.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이성적이었고 계몽된 상태였어요.

스스로의 자유롭고 윤리적인 책임과 의지에 따라서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상태로 여자는 우리에게 고백했어요. 숲 속으로 도망쳐오기 전에 마녀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요.

누군가 그녀가 닭장 속에서 암탉들과 뒤섞여 알을 낳는 것을 보았다는 거예요. 아직까지도 따끈따끈하고 축축한 알 하나가 증거로 제출되었고 그녀는 끔찍하게 무료하고 한가로운 시골에 얼마없는 구경거리를 찾아 몰려든 마을 사람들과 마녀재판을 전문으로 하는 두 명의 재판관 앞에서 치마를 올리고 음부를 보여야 했죠.

사실 그때도 늦지 않았을지 몰라. 난 절호의 기회를, 다시 없을 기회를 놓쳤던 거야, 하고 여자는 말했어요. 하지만 그때 난 울었어. 어째서 울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난 원래 잘 울지도 않는데 그때는 눈물이 흘렀어. 수치스러웠던 것도 무서웠던 것도 아니야. 그저 무언가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걸, 그럴 수 있는 때는 이미 영원히 지나가버렸다는 걸 느꼈던 거지. 잃어버린 현재를 후회하며 우는 아이들처럼.

벌거벗고 우는 초라하고 가엾은 여인을 보고 당황한 군중들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고 재판관들은 서둘러 내게 무죄 판결을 내렸어. 그들이 망치로 깨뜨린 알에서는 희멀건 달걀만 흘러내렸을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 그건 진짜 달걀이었어.

눈물은 그치지 않았지. 온몸이 치명적으로 말라붙을 때까지 잔뜩 갈라진 혀가 입천장에 늘러붙고 온몸이 조각나는 끔찍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도끼에 손목이 잘려나간 목수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쉬이 멎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울컥거리며 흘러나오는 투명한 출혈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 난 이미 내가 눈물과 함께 쏟겨나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지.

처음엔 내 불운과 무고에 항거하며 분노하던 마을사람들, 날 돌보며 위로하던 농부와 그들의 아내들, 무직의 여자들과 그들의 남편들은 내가 너무도 많이 우는 걸,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우는 걸 보고 점점 날 두려워하기 시작했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쉼없이 울 수는 없다는 걸 그들도 알아차린 것 같았어. 그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

난 울음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봤어. 하루종일 두 눈을 감고 지내보기도 했고, 나중에는 두 눈을 펜으로 찔러 터뜨리려고 하기도 했고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마시기도 해 보았지.

나와 함께 새벽마다 알을 낳던 암탉들을 전부 목 졸라 죽이고 나서도 눈물은 멎지 않았어. 닭들을 죽이고 나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난 그 많은 닭을 전부 묻고 숨기고 처리할 수 없었어. 그 죽음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었지.

닭장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는 새하얀 눈과 공포에 질린 흰빛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난 그들이 다시 나를 고발하리라는 것, 그리고 나는 또 살아남으리라는 것, 끝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시에 알아차렸어. 죽을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내 주위에서 기웃거렸지만, 마치 당장이라도 따낼 수 있는 새빨갛고 탐스러운 과실처럼 어른거렸지만, 난 결코 그런 우연적인 기적을 맛볼 수 없을 거였지. 한 번 때를 놓친 사람, 한 번 실패의 길목으로 접어든 사람은 영원히 실패의 운명에 예속되어 자유로운 실패만을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필연적인 자유를 파기하고 나서 내게 흡수된, 그리고 나를 포위하여 철저히 감아 엉켜버린 자유로운 절망은 결국 나를 삼키고 나를 차지하고 나를 붕괴하고 나를 망가뜨리고, 영원한 복수성을 영구적인 절망을 영구적인 파괴와 타락을 살아가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도, 얘들아, 아주 처음부터 감히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내가 너희들만큼 작았을 때부터, 내가 너희들만큼 어리고 순결했을 때부터 알았더라도,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었을 거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 나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지금의 절망뿐이니까.

그래서 그날도 도망쳤던 거야. 경악에 질린 흰빛이 나를 고발하고 나를 처벌하기를, 나를 죽이기를 가만히 기다렸더라면 모든 것은 끝났을 텐데. 가장 찬란하고 매혹적인 우연이 기적처럼 발발했을 텐데. 그런 끝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던 거지, 그런 결말이 매혹적인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지.

난 목이 부러져 죽은 암탉들의 난장을 그대로 놓아둔 채로 닭장을 빠져나가 걸었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 난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고 죽음만이 구원이라고 믿었으므로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가장 치명적인 불구가 된다고 해도, 내가 죽인 암탉들처럼 목이 꺾이고 멎지 않는 눈물 때문에 미라처럼 비쩍 말라버린다고 해도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얘들아 왜냐하면 내게 죽음은 구원이었으니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죽음이었으니까.

너흰 아직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하고 여자는 말했지만 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난 갑작스럽게 여자에게 우리 아빠가 뇌졸중에 걸려 쓰러졌다고 털어놓았죠. 아빠가 뇌졸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뇌졸중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고요. 뇌졸중에 걸린 사람은 모두 고통도 없이 그에게 남아 있던 모든 가능성과 시간을 순식간에 소진하는 하나의 빛나는 점으로 움츠러들어 죽어버린다고, 신음도 유언도 지지부진한 아픔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멎어버린다고 믿었다고요.

하지만 아빠는 아직도 살아 있어요.

그래요, 아빠는 살아 있어요. 아마 아빠는 엄마보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거예요, 하고 오빠가 말을 받았죠.

아빠는 연극 무대에서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곧장 죽어버린 배우처럼 그렇게 죽지는 못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뇌졸중은 끔찍하게 긴 삶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죠. 아빠는 가끔 기적처럼 일어나서 걷고 경련하고 내 목을 조르고 발버둥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이죠. 우린 다 알아요. 아빠의 뇌, 정신, 신체, 미래와 심지어는 과거까지도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걸, 하고 말했을 때 여자가 어떤 얼굴로 우리를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난 계속 얘기했죠. 어떤 이에게 뇌졸중은 일순의 끝이고 축복이며 그를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황홀한 결말이지만 그 외의 뇌졸중은 불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요.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뇌졸중에 걸리지 않고 뇌졸중의 곁에서 뇌졸중의 바깥, 그러나 바로 근처에서 뇌졸중자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요, 뇌졸중을 겪고 십 년 이십 년 넘게 죽어가는 일보다 더 괴로운 건 뇌졸중에 걸리지 않고 뇌졸중을 지켜보며 죽어가는 일이라고요. 우린 천운으로 뇌졸중자로부터 도망쳤지만 결국 아빠의 곁에 남은 엄마는 파멸하고 말 거라고요. 하지만 엄마는 미치지 않을 거예요, 뇌졸중에 걸리지도 않을 거고요, 하고 난 말했어요.

병자 옆에 남은 사람은 누구보다 더 미치기 좋은, 미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 포위되어 있으면서도 미칠 수 없고 병에 걸릴 수도 없으니 살아남은 뇌졸중자 옆에서 살아가는 비-뇌졸중자만큼이나 불행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하고 나는 말했죠. 뇌졸중자는 비-뇌졸중자가 한 번도 뇌졸중을 겪어본 적이 없으므로 결코 뇌졸중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예요. 뇌졸중자를 돌보는 비-뇌졸중자만큼 뇌졸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심지어 뇌졸중자도 그의 곁에 남은 비-뇌졸중자만큼 더 뇌졸중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죠. 뇌졸중을 겪지 못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뇌졸중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결코 뇌졸중을 거치지 못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뇌졸중자는 뇌졸중에 대해 치명적일 정도로 박식한 거예요.

뇌졸중자는 뇌졸중을 상기하지 않는 시간, 고통이 치밀어오르고 온몸이 열로 들끓으며 마비된 자리에 고름이 차오르는 시간이면, 그러니까 순수한 뇌졸중이 되어 있는 상태, 뇌졸중과 자신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뇌졸중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가 완전히 제거되어버린 상태, 자기 자신이 뇌졸중이 되어버린 상태가 될 때면 뇌졸중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뇌졸중에 깊이 잠식되어 있기 때문에 종종 뇌졸중을 잊지만 비-뇌졸중자는 그럴 수 없죠. 비-뇌졸중자는 끝없에 뇌졸중에 대해 생각하고 뇌졸중에 대해 천착하고 뇌졸중을 연구하고 뇌졸중을 관찰하고 뇌졸중을 고찰해요. 뇌졸중을 겪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뇌졸중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목을 매는 순간에도 매듭을 묶고 올가미를 나뭇가지에 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뇌졸중자 곁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비-뇌졸중자는 뇌졸중에 대해 생각해요. 비-뇌졸중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뇌졸중을 걱정하고 우려하고 절망하고 아파하는 자기 자신이 뇌졸중을 겪지 않았다는 데에 치명적인 고통을 받죠. 신체와 정신, 신체화된 정신과 정신화된 신체 모두가 예리한 면도날로 찢겨나가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비-뇌졸중자는 뇌졸중의 고통 속으로 함몰되어버릴 수 없어요.

비-뇌졸중자는 뇌졸중을 겪지 않고는 자살조차 할 수 없어요. 비-뇌졸중자는 뇌졸중자 옆에서 살아간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뇌졸중에 너무나 천착하고 뇌졸중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뇌졸중에 걸려 죽을 수도 없어요, 하고 난 말했고 여자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어쩌면 그 자리에 없었는지도 모르죠. 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죽은 닭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고 반짝였으며 아름다웠다고. 그녀는 그녀가 낳고 유기하였던 알, 그녀가 없는 곳에서 홀로 깨어나 자라났던 새의 안내를 받아 이 마법같은 집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어요. 그때도 외벽과 지붕은 단단한 비스킷으로 만들어졌고 희고 부드러운 생크림이 군데군데 발라져 있었으며 창문은 에메랄드빛의-그래요 여자는 에메랄드빛이라고 했어요. 그녀는 우리와 같은 색을 상상했던 거예요. 그녀의 에메랄드빛이 어떤 에메랄드빛인지는 알 수 없지만-설탕물을 굳혀 만든 것이었고 문은 하드 아이스바로 만들어졌다고 말했죠.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아무것도 훼손하지 않은 채로 집 안에 들어갔다고 말했어요. 아이스크림 문을 열고 닫은 뒤 다시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고 했으니 이후로도 매혹적인 집의 단맛을 만끽할 일은 없었던 거겠죠.

우리는 우리가 그녀의 첫 손님이냐고 물었어요. 물으면서도 난 이미 확신하고 있었죠. 우리가 쥐처럼 갉아먹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집은 완벽했으니까. 우리가 맛보았기 때문에, 적절한 정도로 적절한 형태로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 집은 더욱 완벽하게 변했지만 다른 누군가 한 입이라도 더 베어문다면 이 기적적인 완벽성은 끔찍하게 파손되어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거예요.

여자는 우리가 기대하던 대답을 그대로 들려주었고 우리는 다른 손님은 절대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했죠.

숲은 위험하니까요, 하고 내가 덧붙였고,

당신 같이 혼자 사는 사람은 더요, 하고 오빠가 덧붙였죠.

처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든 여자는 악몽도 꾸지 않았다고 했어요. 악몽 없이 잠든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

오빠는, 난 자주 꿈을 꿔요, 하고 대꾸했어요.

여자는 응,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내가 꾸는 꿈은 전부 악몽이란다. 악몽이 아닌 꿈은 상상도 할 수 없어. 불행하지 않은 삶처럼, 하고 대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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