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6

우리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여자의 말을 들었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그녀가 한 말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이해할 수 없지만 매혹적인 언어는 우리를 두렵게 하잖아요. 난 그녀가 하는 말을 전부 외우고 전부 믿고 싶었어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그녀를 그대로 맹신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막의 선인장들이 희고 날카로운 겨울을 믿듯이. 뱀파이어들이 황금빛의 햇빛을 믿고, 해바라기들이 새까맣고 아늑한 밤을 믿듯이.

여자는 찢겨짐을 살아남는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찢겨짐을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죽음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죽음을 예비하고 죽음을 상징하는 행위만이 가능할 뿐이기에 부활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녀는 신도 예수도 기독교도 다른 어떤 신비를 암시하는 종교도 믿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녀가 어릴 적 영아세례에 대한 논쟁 끝에, 갓난아기의 목을 자르고 아이를 영아세례를 고수하던 남편에게 던져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여자는 세례를 받고 받지 않고 하는 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죠. 선생님, 그녀는 정말 이교도였던 거예요. 진짜 마녀 말이에요. 그래요. 그녀는 신과 부활과 죽음을 부정하는 진짜 이교도였어요.

그녀는 스무 살 안팎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아주 나이가 많았을 거예요. 마녀들은 자연을 거스를 정도로 어려보이는 법이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죠. 하지만 선생님 그녀는 이교도였을지언정 사악한 이교도는 아니었어요. 그녀는 다만 진짜 자연과 기후를 착각했을 뿐이죠. 그녀는 완전히 기상학적인 인간이었어요. 그녀를 둘러싼 째깍거림에서, 끔찍한 냉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거예요. 아마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가 살던 마을은 이토록 절망적으로 춥지 않았을 테니까. 얼지 않은 샘물이 꽃처럼 부드러운 녹빛 벌레의 시체를 아랫마을로 실어나르고 얼지 않은 땅속에서는 매미의 유충이 달콤한 흙을 먹어치우며 가느다란 땅굴을 파고 돌아다니는 시간 그처럼 따뜻하고 축축한 기후에서 태어난 여자는-물론 남자도 마찬가지고요-완전히 재앙적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기 마련이죠. 미치기 전에 죽는다면 다행이지만 죽지 않고 미쳐버린다면 그녀처럼 이교도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선생님 난 마녀와 같은 사상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미쳐버린 것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녀는 끔찍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거예요. 요즈음의 노인들이 그렇듯 이 모든 재앙이 그들을 완전히 파손시키고 있는 절망적인 추위가 그들의 죄로 인해서 발생한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 가혹한 학살의 주모자가 바로 자신들이라고 여긴다면 미쳐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다행히도 따뜻한 시절, 간혹 땅이 얼고 간혹 강물이 얼고 간혹 춥던 시절에 태어나 자라던 사람들은 미쳐버리기 전에 목을 매거나 분신하거나 투신하거나 익사하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이교도가 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선생님,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결단코 사악한 이교도는 아니었어요. 그녀는 죽음을 삶보다도 사랑했고 죽음을 원했어요. 다만 가장 적절한 때, 치명적인 때, 그럴 수 있었던 유일한 때를 놓쳐버리는 바람에 더는 죽음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뿐이죠. 몇 번의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과도 같은 절망 속으로 침잠하여 다시는 나뭇가지에 올가미를 걸치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만약 그녀가 첫 번째 마녀재판에서 올바른 형벌-구원을 받았다면 죽음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그런 배교적인 소리를 지껄이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거죠. 그녀는 무수한 때를 놓쳤고, 무수한 때는 그녀에게 속해있지 않았으며, 그녀는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그녀는 째깍째깍거리는 소리가 결국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았죠. 해소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째깍째깍거리는 소리는 애초부터 사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우리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러버리고 난 뒤였죠.

우리는 그녀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었어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자의 거절 한 번으로 순식간에 파기되어버릴 수 있는 관계였죠. 왜냐하면 우리는 그녀의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우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 오두막은 처음부터 그녀와 새들의 것이었으니.

우리는 그녀의 새가 되고 싶다고 말했죠.

여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너희가 들어갈만 한 새장은 없다고 말했어요. 결정적으로 우리는 그녀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므로, 숲을 떠도는 무수한 새들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의 새는 될 수 없다고요.

하지만 새를 낳는다면, 그렇다면 새인 거죠? 하고 내가 물었을 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새를 낳기 시작했어요. 내 다리 사이에서 피에 젖어 축축한 아이가 나오자 여자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죠. 마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부러진 새의 날개를 조심스럽게 더듬으면서 날 바라봤어요. 그녀는 정말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그녀가 날 쫓아낼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여자의 얼굴이 흰빛으로 뭉개져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였어요. 벌어진 검은빛 한가운데에서 솟아나는 붉은빛.

난 여자에게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죽고 싶었어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난 죽은 새를 낳았어요. 새장 속의 자리는 점점 비어갔죠. 비쩍 마른 오빠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오빠는 내가 새를 낳던 그 날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여자는 매일 오빠 몫의 새고기를 떼어내 오빠 몫으로 마련된 접시 위에 올려 주었지만 오빠는 입에도 대지 않았죠. 간혹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입 속으로 넣어버릴 때에는 화들짝 놀라며 접시 위에 도로 뱉었고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버린 때에는 구역질을 해댔어요.

어느날 여자는 더 이상 알을 낳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녀가 무엇을 바랐던 건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는 알을 낳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바로 그날에도 알을 낳았으니까.

내 다리 사이에서는 늘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진액이 흘러내렸고 여자는 산파 역할을 하며 내가 새를 낳는 모습, 언제나 죽은 새, 언제나, 언제나 죽어 있는 새들을 낳는 것을 지켜보았죠.

헨젤이 새장 속에 들어가고 나서 여자는 헨젤을 정말 새처럼 다루기 시작했어요. 새들은 헨젤을 형제처럼 반겼고 여자는 헨젤의 손목을 더듬어 만져 보면서 언젠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하고 말했죠.

잘된 일이야, 하고 난 여자가 욕실에 홀로 숨어 알을 낳는 사이 헨젤에게 다가가 속삭였어요. 오빠가 새가 되고 나면 나도 새가 될 수 있겠지. 오빠가 조금만 더 잘 하면 돼, 조금만 기다리면 그녀는 오빠를

여자가 밀랍인형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 마치 갓 낳은 알처럼 새하얀 얼굴을 하고 욕실에서 나오자 난 치마를 가슴까지 올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또 한 마리의 죽은 새. 여자는 이제 그만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니 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죽은 새를 낳을 수밖에 없었죠.

질 안쪽이 끔찍하게 근지럽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난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녀가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이 끝이라고, 이제는 끝이라고. 좋은 끝이든 나쁜 끝이든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저 끝이라면 족했는데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 아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죠.

어느날 헨젤이 비쩍 마른 새 새끼들과 함께 끽끽거리고 있을 때, 내가 오빠의 비쩍 마른 가슴팍을 보면서 고스란히 드러난 갈비뼈를 하나씩 하나씩 세고 있을 때, 내 질을 찢어내면서 이미 찢겨진 입구를 또 찢어내면서 죽은 새가 배설될 때, 여자는 불쑥 이렇게 말했어요.

집에 가고 싶니?

난 비명을 질렀고 오빠는 다른 새들과 함께 끽끽거렸거나 찍찍거렸거나 혹은 째깍대었어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그 순간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흉측한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하고 언어를 잃어버린 새 대신 내가 짖어댔죠.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여자는 우리에게 부모님이 보고싶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아? 하고.

하지만 당신이 우리 부모가 아니었나요? 난 당신이 우리 엄마가 아니었느냐고 물었어요.

여자는 무척이나 서글픈 표정을 지었어요. 고운 달걀처럼 매끈하던 얼굴에 갑자기 주름들이 생기고 그 주름들 사이로 눈과 코 입이 드러났죠. 그리고 황홀한 붉은빛. 난 그녀의 붉은빛에 입을 맞추고 울었어요.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난 울었죠.

헨젤은 어쨌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빠는 새장 속에서 새들과 함께 울거나 울지 않거나 했겠죠.

당신이 내 엄마가 아니었나요?

하지만 난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었어요.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난 항상 더러운 침대보만큼이나 창백한 환자 곁에서 서성거리는 나이 많은 여자를 떠올렸죠. 한 번도 새를 낳아본 적이 없는 여자, 이교도가 아닌 여자, 세 개의 혹도 붉은 입술도 없는 여자. 그녀의 입술 색이 어땠는지 난 한 번도 주의깊게 살펴본 적이 없고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였겠죠. 어쩌면 그녀에겐 입술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언제나 신음하고 흐느끼고 비명하고 속삭이는 입, 입뿐이었죠. 그렇지만 엄마가 항상 그렇게 울어대던 건 아니었어요 울던 건 아빠였지 엄마가 아니었어요. 아빠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동안 엄마는 아빠를 대신하듯 울어대기 시작했죠. 아빠가 침대를 역겨운 오물로 뒤덮던 날에도, 침을 질질거리며 백치처럼 희번득거리며 비명을 지를 때도, 울던 건 엄마였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었나요? 하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겠지만 여자는 분명히 내 말을 알아들었을 거예요. 그만큼 우리는 가까이 있었고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집중하고 있었으며 나를 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우리를 버렸어요. 숲 밖에 사는 엄마는 우리를 숲 속으로 들여보냈고 이젠 당신이 우리 엄마예요. 당신이 우리를 주웠으니까. 우리를 주운 건 당신이니까.

여자를 추궁하듯이 소리 지르면서도 나는 내 말이 얼토당토 않은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여자는 한 번도 우리를 주운 적이 없죠. 그녀는 그녀의 과자집에 우리를 초대한 적도 없어요. 돌이켜보면 정말 그래요. 우리는 한 번도 그녀의 초대를 받은 적이 없고 여자는 한 번도 우리를 선택한 적이 없어요. 끝없이 넓고 깊은 숲 속에서 여자의 과자집을 발견한 것도, 여자의 과자집을 선택한 것도, 황홀하리만치 달콤한 바깥이 아닌 별 볼일 없는 내부를, 여자를 선택한 것도 모두 우리였어요. 여자는 우리를 주운 적도 선택한 적도 없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내내 이방인이었던 거예요.

난 내일도 죽은 새를 낳을 거라고 흐느끼며 말했어요. 내일도 그 내일도요. 질 속이, 이전에는 한 번도 무언가를 넣어본 적이 없던 내부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가는 걸 느꼈지만 난 그렇게 말했어요. 내일도 그 내일도 계속 죽은 새를 낳을 거라고.

난 죽음의 고유한 악취가 내 속을 감염시켜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질 속에 고름이 가득 찬 끔찍한 궤양이 수십 개 돋아났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았을 거예요. 무언가가 절망적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걸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여자는 나를 말리지 않았어요. 내가 여자에게 알을 그만 낳으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전혀 다른 일이죠, 선생님. 내가 여자를 놓아 두었던 것과 여자가 나를 방치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에요. 여자는 내가 오기 훨씬 전부터 알을 낳아왔지만 난 갑작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전조도 없이 그녀의 앞에서 죽은 새를 낳기 시작했으니까요. 시체를 정리하는 건 언제나 그녀였으니 그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나를 말리지 않았죠. 대신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녀는 우리를 쫓아내려고 했던 거예요. 초대도 받지 않고 너무 오래 머무른 이방인을 은근하게 쫓아내는 그런 비열한 방식으로 우리를 내몰려 했던 거예요.

오빠는 째깍거리며 혹은 찍찍거리며 혹은 안 돼요,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흐느꼈고 난 싫다고 했죠. 싫어요. 우리는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이곳이 집이니까. 집은 이곳뿐이니까.

우리는 영원히 집에 갈 수 없을 거였어요.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는 이곳에 머무를 거라고 끝까지 이곳에 있을 거라고 말했죠.

이곳은 설탕과자로 만들어진 황홀한 집의 내부도 새들로 둘러싸인 마법같은 공간도 아니었어요. 이곳은 새알을 낳는 여자의 곁이었죠. 여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여자는 우리가 그랬듯 여자의 곁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녀는 종종 죽음에 대해 말했죠. 그녀는 언제나 자살한 철학자와 작가들의 글만 읽고 자살에 대해서만 썼어요. 언젠가부터 그녀는 새에 대해서도 왕과 왕비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고 오로지 죽음에 대해서만, 수천 가지 색과 형상을 지닌 죽음들에 대해서만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특히 자기 살해의 메커니즘에 천착했어요. 그때는 그녀가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게 끔찍하게 두려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그녀는 자살에 너무도 집착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살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녀는 진작에 자살하는 무수한 사람들보다도 더 고통받았고 자살에 더 능통했으며 자살을 사랑했음에도 그녀가 끝내 자살할 수 없었던 건 그녀가 자살을 너무도 원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도 원하는 것, 너무도 간절히 아끼는 것을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으니까. 그녀가 원한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죽음이었고 결국 그녀는 실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죽는 순간에도 그녀는 죽을 수 있다고 믿지 못했겠죠.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정말 그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누가 알겠어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겠죠.

헨젤이 새장에 갇히고 나서도 내가 매일같이 고집스레 죽은 새들을 질 안에서 배설해내기 시작한 뒤로도 우리는 항상 함께 잠이 들고 함께 깨었어요. 우리의 취침과 기상시간은 철저하게 여자의 소등시간에 맞추어져 있었죠. 집 안에는 시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만약 여자가 일 분씩 소등시간을 늦춘다면 우리는 결국 전혀 다른 주기의 하루를 살게 되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는 기울어진, 비틀린, 어긋났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함께 잠들고 함께 깨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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