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8



대중들은 그에게 살해당한 소년 서른세 명의 이름을 알지는 못해도 그의 이름은 확실히 알고 있어. 그런 그를, 자신의 지하실을 굴착하고 창조하고 소년들의 시신으로 악취나는 소굴로 꾸민 그를, 아무런 비밀도 없이 황량할 수 있었던 오로지 콘크리트와 흙먼지 냄새만으로 퀴퀴할 수 있었던 지하실을 썩어가고 분해되는 유기물의 고약한 냄새로, 비밀로, 흔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그의 삶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난 오래도록 생각했어. 푸코가 말년에 실존미학에 대해 말한 바 있듯,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드는 작업이 예술이라면, 어떤 한계를 어떻게 문제화하고 위반할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그 금제의 범위와 한도를 설정한 뒤 그것을 자기자신에게 적용하여 실행하는 삶이 진정으로 윤리적인 삶이라면, 그의 생은, 소년들을 강간하고 학대하되 죽이지는 않던 시기와 강간한 소년들을 반드시 죽이던 시기로 양분할 수 있을 거야.

첫 번째 시기에 그는 피해자가 살아남을 경우, 그가 모든 사건을 모든 비극을 모든 범행을 증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아나모사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어.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 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가 얼마나 놀랐을지 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이미 강간당하고 이미 학대당하고 이미 쓰러져 피를 흘리는 소년들은, 벌거벗은 채 흐느끼는 소년들은, 그에겐 창백한 유령일 뿐인데, 희생자가 그를 고발하고 그의 삶을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불가해하게 여겨졌을지. 난 감옥에서 그가 꾸었을 악몽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벌거벗은 창백한 유령들이 그의 목을 조르고 그에게 입을 맞추고 그를 벌거벗기는.

그는 감옥에서 18개월만에 출소했는데 그 시기의 죄수들은 대부분 그랬지. 10년형을 선고받든 20년형을 선고받든 비좁은 감옥에서 폐렴으로 죽거나 유리칼날에 눈과 목을 찢겨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일찍, 그것도 원래 형보다 훨씬 일찍 출소하고는 했어.

푸줏간에서 일하던 외삼촌은 마을 축제 기간에 끔찍하게 많아진 주문량 때문에 몇 날 며칠 밤을 새며 도살 작업을 하다가 더위에 지쳐 상의를 벗고 들어온 남자 손님을 돼지고기로 착각해서 도살용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4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3년도 되지 않아서 출소했어.

하지만 삼촌은 그 이후로 푸줏간에서 일할 수 없었지. 삼촌이 파는 고기가 사람 고기일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양심이 있는 선량한 시민들은 삼촌의 가게에 가지 않았어.

인육에 대한 은밀한 갈망을 가진 신사들만이 새벽이나 밤늦게 삼촌의 정육점에 찾아갔지만 삼촌이 건네주는 고기가 흔하디 흔한 돼지고기일 뿐이라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그들도 발길을 끊었고 삼촌이 도축한 돼지들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냉동고에서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부패되어서 모두 버려질 수밖에 없었어.

삼촌은 푸르고 흰 곰팡이로 뒤덮인 돼지고기를 숲에 묻으면서 끔찍하게 울었다고 해. 그 뒤로 삼촌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버렸지. 엄마가 출소한 삼촌을 돌봐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나중에는 사흘에 한 번씩 삼촌이 사는 지저분한 단칸방을, 망해버린 푸줏간을 팔고 남은 쥐꼬리만 한 돈으로 산 작은 방을 방문했지만, 삼촌은 나날이 말라갔고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어.

푸줏간을 시작하기 전에는 삼촌도 그 시절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랬듯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 내가 어릴 적에 남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에 산발적으로 능숙해지고는 했으니까. 엔지니어링이나 측량 작업 같은 것, 더러운 벽에 낙서를 하고 또 그 낙서를 깨끗이 치우고 화장실 바닥에 끔찍하게 많은 오줌을 쏴갈기고 또 그 오줌을 치우고 거미줄을 끊어내고 또 그 거미줄을 직접 손보아 이어내고.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남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동시적으로 많은 일들에 기묘하게 능숙해졌는지, 특별한 교육도 없이 그렇게 능숙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인류 역사상에 아마 다시 없을 그 특별한 시절이 지나가고 나자 남자들에게 열병처럼 퍼져나가던 그 다재다능의 손재주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어.

삼촌도 그를 스쳐간 기묘한 마법의 희생자였어. 푸줏간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엄마는 그가 정말이지 무엇이든, 바느질과 공구 다루는 일, 가전제품들을 고치고 새로 만들고 조립하는 일, 차를 부수고 또다시 고치고 만드는 일, 죽어가는 동물을 살리고 죽이고 또다시 살리는 일, 정말이지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어. 하지만 푸줏간 일을 시작한 뒤부터 그 시절의 다른 모든 남자들이 그러했듯 그는 한 가지 일, 그러니까 고기를 도살하고 토막내어 깔끔하게 정돈하고 팔아넘기는 그 일련의 연쇄작용 이외에는 철저하게 무능해지고 말았어.

푸줏간을 할 수 없게 된 삼촌은 완전히 무능해지고 말았어. 그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슨 더러운 단칸방 안에서 만개한 푸른 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시를 쓰고는 했다는데, 그가 출소 후 삼 년 가까이 매진한 시들은 한 편도 남아있지 않아.

난 그의 시가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아까워할 가치도 없는 낙서들이라고 일축했어.

삼촌은 언제나 절망과 죽음에 대한 시만을 썼는데 요즘 세상에 절망과 죽음에 대해 시를 쓰는 시인들은 끔찍하게 많으니까. 절망이라는 단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은 시인조차도 절망에 대해 썼고, 절망하지 않은 시인조차도 절망에 대해 썼으며, 절망에 대해 쓰지 않은 시들은 모두 철저하게 무가치하고, 절망에 대해 쓴 시들은 대부분 상품가치가 없다고 엄마는 말했어. 삼촌은 시인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숙했다고. 시인들은 절망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수십 개 수백 개의 어휘로 교체해가면서 우물 나신 죽음 삶 생 찢겨짐 파열 아이 입술 부드러운 귀와 혹 종양 궤양 병 정신질환 착란 환청이라는 말로 바꾸어가면서, 자신은 한 개의 메타포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뻔뻔스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가 사용한 그 무수한 절망의 메타포가 실은 메타포가 아닌 환유이고 알레고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 메타포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시인들의 시에는 메타포만이 가득했고, 만약 그들이 정말 메타포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면 그들의 시는 오로지 절망 절망 절망 절망 절망 절망 그리고 절망이라는 말만 가득해야할 텐데, 그들은 한 번도 진정으로 솔직해진 적이 없었다고 엄마는 말했고, 삼촌의 시는 정말이지 순진하게도 절망 절망 절망 절망 절망 그리고 온통 절망뿐이었으며, 그의 눈앞에서 그를 희롱하듯 조금씩 흔들리며 가녀리게 피어나는 곰팡이의 메타포조차 그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었으니, 엄마는 오로지 절망이라는 어휘만이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쓰여진 낙서를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고, 그녀가 그의 삶을 그의 글을 그의 예술을 모조리 불태우지 못하도록 비명을 지르면서 손을 휘저어 말릴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삼촌은 감옥에서 출소한 지 3년 만에 죽어버렸으니까.

그의 사인은 폐렴도 절망도 시도 아니었으니, 삼촌은 그때까지만 해도 부드럽고 매끄러운 유체였던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했고, 그의 시체는 여름이 오기도 전에, 하나의 계절이 떠오르고 하나의 계절이 사라지기도 전에 떠올랐으니, 엄마는 그의 잘린 손가락을 보고 그가 자신의 오빠라는 사실을 알았고, 퉁퉁 불어 훼손된 얼굴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니, 왜냐하면 삼촌의 얼굴은 언제나 돼지의 머리였으니까. 엄마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었고, 모든 사람의 얼굴은 모든 짐승들의 머리와도 같았으니, 사실 푸줏간에서 돼지머리 남자를 찔러 죽인 것은 엄마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그녀는 한 마리의 짐승도 죽인 적이 없으니까.

삼촌은 절망 절망 절망 그리고 절망이라는 어휘를 써내려갔고, 만약 그가 절망에 대한 그림을 그렸더라면, 절망에 대한 산문을 썼더라면, 그는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삼촌은 예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그의 삶을 관통하고 형성하며 경계짓는 선들은 지나치게 단순하였으니, 오로지 절망 절망 절망 절망. 만약 삼촌이 감옥에서 형기를 채웠더라면, 가석방을 받지 않고 40년을 살았더라면, 그는 어쩌면 40년을 더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삼촌은 감옥 바깥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고, 푸줏간일을 하지 않고 고기를 도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고, 비열한 간수들은 그걸 알았을 것이 분명하니, 그들은 삼촌을 죽이기 위해, 오로지 입 하나를 줄이고 손 하나를 잘라내기 위해 삼촌을 가석방하였고, 삼촌은 그들의 계산대로 3년만에 죽어버렸으니, 아마 존 웨인 게이시를 석방한 자들도 그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릴 만큼 유약하고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지.

하지만 그는 삼촌과는 달랐어. 그는 출소하자마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상하고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실험에 착수했지. 살아남은 희생자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죽은 희생자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을 할 수 없는 희생자는 그를 고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는 살인에는 특별한 페티시가 없었지만 오로지 들키지 않기 위해, 자기와의 관계를, 쾌락과의 결속을 더 내밀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소년들을 죽였어. 결박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그는 진실했다고 썼어.

그는 소년들을 사랑했다고 쓴 적이 없지만, 그는 모든 일, 그를 구성하고 그를 현재화하는 모든 일에 대해 진실하다고 쓰지는 않았지만, 그는 진실하다고 썼어. 그가 진실하다는 사실이 확고불변의 진리라는 듯. 그에게 오로지 하나의 진실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의 진실뿐이라는 듯.

난 소년들과의 관계만큼 진실하고 매혹적인 관계는 없다고 썼던 철학자가 그의 행위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 궁금해. 아마 알고 있었겠지. 모두가 그에 대해 알았으니까. 모두가 그와 소년들의 관계에 대해, 그와 지하실의 관계에 대해, 지하실과 소년들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항상 웃고 있는 광대들의 초상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 속 광대들은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 웃음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었어.

보다 더 고매하고 독창적인 생성으로서의 인간은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푸코가 말했어. 아마 니체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흐느끼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웃는 위버멘쉬에 대해서. 존 게이시의 광대들은 웃고 있었어.

난 그가 진실하다고 말했던 것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해하지 않고 그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한다면 끝날 테지만.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 끔찍할 정도로 많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 그는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했어. 그의 지하실이 자신의 예술창고라고 말한 음악가가 있어.

난 살인하지 않는 존 게이시를 생각해. 살인하지 않았다면 그가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썼을지. 웃지 않는 그의 광대들을 생각해. 미디어가 아니라 그 자신이 거짓이라고 쓰는 존 게이시를 생각해.

하지만 그는 진실했다고 썼어.

광대들은 수줍고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어. 난 나와 정확히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태어난 그 사람이 나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내가 존 게이시였다면, 내 광대들이 그처럼 웃고 있었다면, 내가 그처럼 난 한평생 진실했다고 썼다면.

하지만 난 존 게이시가 아니었고 그는 내가 아니었지. 그는 한 번도 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거야. 그토록 스스로에게 진실했다면, 그토록 스스로의 신에게 진실했다면.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 그의 광대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웃고 있었어. 하지만 그는 소년들을 죽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지. 소년들의 죽음은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고. 죽음은 한 번도 그의 기벽인 적이 없다고.

삼촌이 쓴 시는 한 편도 발표되지 않았지만 존 게이시가 쓴 편지들과 그림들은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 타임즈에 베를린 자이퉁에 르 몽드에 그의 지하실과 그의 소년들과 그의 초상화와 그의 얼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어.

그리고 그의 전시회가 열렸지. 난 그와 같은 날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으니 그와 같은 최후를 맞이해야한다고 생각했어. 웃는 광대들의 비밀. 광대들의 비밀스러운 웃음. 영구히 현재하는 절망을 일그러뜨리는 희멀건 웃음.

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악몽을 꾸었고, 그는 진실하다고 말했지. 신 앞에서 진실하다고. 그 스스로 진실하다고.

하지만 삼촌은 끝내 웃지 못했고,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오빠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나도 웃을 수 없었어.

난 한 번도 내가 진실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삶을 예술화하라는 강령에 따라 웃으면서 얼굴에 흰 분칠을 하는 광대들, 감옥에서 웃는 광대들을 그리는 존 게이시가 웃고 있는 음악은 끔찍하게 아름답지.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워. 난 차라리 존 게이시가 되고 싶었어.

얘야, 오랫동안 너를 지켜봤단다. 네가 가끔 이 숲속으로 뛰어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어.

엄마는 끝내 짐승의 머리와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내가 그녀가 입혀준 옷을 벗고 맨몸으로 뛰쳐나가면 나를 눈앞에 두고서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난 네 뒷목의 구부러진 선을, 사람의 머리와 몸을 이어내는 머리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는 선을 알아볼 수 있단다.

존 웨인 게이시의 광대들은 웃고 있었고 너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어. 난 죽은 삼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를 만난 적이 있는지도 기억할 수 없지만, 물에 빠져 죽은 엄마도 물에 빠져 죽지 못한 내가 물에 빠져 죽은 그녀의 오빠와 만난 적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난 네가 삼촌과 똑같은 뒷목을 가졌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반 년 동안 이 숲에서 너를 기다렸지.

넌 한 번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숲의 응달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마주보지 않았지만, 난 계속해서 너를 보고 있었어. 난 웃지 않는 너를 보면서 존 게이시의 광대들을 미소짓는 광대들을 떠올렸어. 네 무릎이 그려내는 고유한 모서리들. 너는 항상 같은 자세로 주춤거리며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넌 하얗고 수줍은 모서리들이 우글거리는 화폭과도 같았고 난 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 존 게이시처럼 광대 분장을 할 수는 없었어. 광대의 희고 붉은 얼룩은 클리셰일 뿐이니까. 완전히 같은 음악을 두 번 연주할 수는 없는 것처럼, 완벽히 똑같은 새로움이 두 번 반복될 수는 없는 것처럼, 완전히 같은 두 명의 광대, 그것도 똑같은 날짜와 시간 장소에 태어난 두 명의 광대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일 뿐이야. 아무도 웃지 않을 끔찍한 농담.

얘야, 넌 정말 한 번도 웃지 않더구나. 네 뒷목은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네 입은 거북스러울 정도로 단단히 닫혀 있었지, 하고 사내는 나무뿌리 위에서 비틀거리면서 말했어.

여자는 우리를 둘러보면서 말했어요.

소년은 울지도 웃지도 않고 멍하니 사내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하고 여자는 말했어요.

목이 아팠지만 눈을 돌릴 수 없었어. 사내는 곧장이라도 쓰러질듯 위태로워 보였어. 사내는 곡예를 하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어.

사드는 순결한 소년 소녀들, 여자와 노인들을 끔찍한 진창에 몰아넣고 학대하고 가학하여 영원불멸의 예술가가 되었지. 하지만 내게는 사드적인 욕망이 없어. 물에 빠져 죽고 싶다는 욕망 이외에 내게는 아무런 욕망도 없어.

얘야, 넌 아직도 웃고 있지 않구나. 사실 네가 웃는지 웃지 않는지는 내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 존 게이시의 광대들은 웃고 있었고 삼촌은 웃지 않았다고 했지. 난 웃지 않고 견뎌내는 방법을, 웃음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평생 배우고 훈련해 왔어. 환각 없이 흘러내리는 검은 빛의 신경질적인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고는 웃을 수가 없어. 난 끝없이 진지하고, 진지한 자들은 웃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난 마치, 그래, 베토벤처럼 진지하지만 어쩌면 베토벤도 웃었을지도 몰라. 존 게이시의 광대들처럼. 하지만 우린 웃지 못했지. 우린 웃을 수 없지. 만약 예술가들의 모든 웃음이 발작적인 균열에 불과하다면, 웃음이 그런 주름이나 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면, 존 게이시의 광대들은 무엇을 웃고 있었던 것인지. 어쩌면 웃을 수 있는 예술가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는지도 몰라.

지금 그들을 따라 웃는다면, 얘야. 어쩌면 난 얼굴에 분칠을 하고 붉은 립스틱을 볼까지 둥그렇게 올려 바르고 웃었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런 모든 균열이 웃음일 수 있다면, 존 게이시의 광대를 모방하는 최초의 광대는 예술일 수 있었을까.

날 내려 주겠니. 아니, 아니야.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너는 끝까지 봐야 해. 내가 아주 오랫동안 너를 목격했듯이.

반 년 내내 나를 지켜보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저 내가 지칠 때까지, 물에 떨어지는 상상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까지. 난 언제나 물 속에 빠져 죽는 상상을 하곤 했지. 죽음에 대한 최초의 인상을 갖기 전에도 난 악몽처럼 고요하고 물컹한 검푸른 호수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면서 호수의 내부에 대해, 물 속의 깊은 살에 대해 상상하곤 했어.

엄마가 내 눈을 가리고 호수 뒤편으로 끌고갈 때까지도 난 물 속 삶에 대해, 물 속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는 했는데,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물 속에 빠져서 죽는 일밖에 없었어.

난 한 명의 소년도 죽이지 못했고, 한 명의 소년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아니, 조금이라도 원하는 건 내 죽음, 물 속에서의 죽음, 오직 나만의 죽음뿐이었으니까. 엄마가 죽고 아빠가 죽고 삼촌이 죽고 할머니가 죽고 할아버지가 죽고 이미 물 속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죽어버리는 일을 난 결코 바란 적이 없었어.

내가 원한 건 언제나 내 죽음, 물 속에서의 고독하고 고유한 죽음, 오로지 내 죽음뿐이었어.

난 호수 전체를 내 무덤으로 삼고 싶었어. 그렇지만 모두가 물에 빠져 죽었고 난 물에 빠져 죽지 못했지. 존재로부터 빠져나가는 비명은 영원히 불가능했어. 난 영원한 불구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 물에 빠져 죽고 싶은 욕망을, 물과 죽음에 대한 양립할 수 없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난 결코 존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불면증에 걸린 개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 난 더 이상 잠조차 바라지 않아. 내가 부재하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 그곳은, 잃어버린 나를 발견한 곳은 엄마와 아빠가 사라진 호수 속이었지. 그들이 두고 간 침대의 텅 빈 자리도 아니야. 존 웨인 게이시의 지하실도, 차고도, 광대의 갈라진 주름 속도 아니야. 영원히 얼어버린 호수, 영원히 닫혀버리고 영원히 캄캄해져 영원히 불가능해져 버린 호수의 내부, 오직 그곳이 내가 부재하는 자리라는 걸, 내 부재가 가라앉는 자리라는 걸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처음 거울처럼 고요히 일렁거리는 푸른 눈과 마주쳤을 때부터. 그 눈이 하염없이 깊고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물에 매혹되어 물로 뛰어들지 않은 아이와 불에 현혹되어 불타버리지 않은 아이는 물 속에, 혹은 불 속에 영원히 부재하는 어린시절을 두고 찢겨버린 여생을 자라나지. 호수가 얼어버렸다는 걸, 진짜 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이제는 불을 흉내내는 전기불의 기만적인 이미지만이 남았다는 걸 알 때는 이미 늦은 거야.

이제 잃을 건 아무것도 없어. 난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없어. 존 게이시를 추앙하는 사람들, 맨슨 패밀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죽였어. 그들에게 불가피하거나 필요한 죽음들은 그들의 악명에 충분한 희생양이 되었지. 예술이 오로지 나의 탈존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라면 그들의 (반)(예술) 실험이 성공한 것이라고, 그만큼 성공적인 예술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어.

난 광대가 되고 싶었지만 존 게이시가 될 수 없었어. 카프카 연구자가 카프카가 될 수는 없듯. 들뢰즈 연구자가 들뢰즈가 될 수 없듯.

사내는 흔들리면서, 끔찍하게 흔들리면서 말했어.

난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었어.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 소년은 모든 것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사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 경험하고 있었는데, 정작 소년은 지상으로부터 조금도 떨어지지 못한 채로 언제나와 같은 높이에 서 있었으니까.

당신이 날 죽이려 했다면 반항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고 소년은 말하고 싶었어.

당신이 존 웨인 게이시가 되려 했어도 난 당신을 비웃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존 웨인 게이시가 아니었고, 예술가도 아니었죠. 살인마들이 예술가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었어요. 당신은 한 번도 신 앞에서 진실한 적이 없을 테고 신 앞에서 진실했다고 믿을 수도 없었으니.

존 게이시도 사드도 될 수 없었던 예술가들, 살인을 추종하면서도 쥐새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어린 소년들-쥐새끼를 죽이는 일은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는 악행임에도 오직 신만이, 사람이 아닌 쥐새끼들의 신만이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꿈꿔본 적도 없고 읽어본 적도 없는 신만이 그 악행을 아실 텐데도-, 글 속에서도 그림 속에서도 소년들을 학대할 수 없었던 사람들, 예술가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난 나를 아는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아주 예전부터 당신이 날 지켜봐왔다는 것도.

난 당신을 발견한 적이 없었지만 당신은 날 바라보고 있었죠. 당신은 하나의 죽음도 출판할 수 없을 거예요. 난 당신의 죽음을 어디에도 증언하지 않을 거고, 당신은 예수가 아니니 다시 살아나는 일도 없겠죠, 하고 소년은 사내에게 말하지 않았어.

소년은 모든 일이 무척이나 서글프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소년은 떠나지 않았지.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지만, 균열처럼 가느다란 잔가지들의 그림자가 달 아래 땅을 찢어발기는 풍경에 묶여 있는 건 소년이 아니라 사내였지만 어쩐 일인지 떠날 수 없었어.

가지들의 그림자가, 실물도 촉감도 없는 무형의 그림자가 소년의 가느다란 발목을 칭칭 감아 예속하고 있는 것처럼.

물을 좀 갖다 주겠니, 하고 사내가 말했을 때 밤은 이미 만개해 있었고, 달빛 아래에서 더 새하얗게 번득이는 사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소년은 유령이 제게 말을 걸었다고 믿었으나,

물을 갖다 주겠니, 얘야, 하고 여자가 말했을 때, 난 그게 여자의 목소리인지 사내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어 어리둥절했어요. 실제로 그녀는 종종 내게 물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물은 없었죠 선생님. 난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어요. 오빠는 울고 있었고 여자는 울지 않았고 어쩌면 나도 울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사내는 아직도 죽지 않고 비틀거리면서, 영원히 비틀거리면서 물을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어. 여자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을 때 난 사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소년은 사내를 두고 가길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마른 땅에 수놓인 균열들은 끔찍하게 말라 보였고, 온종일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 사내가 목이 마르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소년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하지만 무엇을? 죽음을? 삶을?-서서히 뒷걸음질 치면서 숲을 벗어났어.

멀리 떨어져서 본 사내의 모습은 나무 그림자와 뒤얽혀 나무의 일부처럼 보였어. 오직 나무들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 끔찍한 현기증이 밀어닥쳤어. 사내의 수다 밑에 움츠러들어 있던 소음들이 헐벗은 몸을 이리저리 찢어내며 달겨들었지.

소년은 헐떡거리느라 벌어진 입속으로 날벌레들이 찢겨져나가는 소음들이 밀려드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생일케이크가 무너져내리는 소리 아이들이 낄낄거리는 소리 거대한 면도칼을 든 아이들이 생일케이크 대신 소년의 핑크빛 머리를 잘라내는 소리 광대분장을 한 사내가 바지버클을 내리고 잘려나간 성기를 훑어내리는 소리 텅 빈 구멍에서 싯누런 오줌이 줄줄 새어나가고 아이들은 행복한 구역질을 하면서 낄낄거리고 소년이 집까지 뛰어왔을 때 생일케이크는 아직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개미들은 분홍빛의 풍선처럼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어.

집안은 아직도 어두컴컴했어. 불을 켜 달라고 애원하자 엄마는 잘했다며 소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전등 스위치를 켜러 걸어갔어.

소년은 물 한 잔만 달라고 애원했어. 서둘러야 한다고.

분홍 풍선들이 터져나가는 소리 물풍선처럼 부푼 아이들의 머리가 터지는 소리 메스가 윙윙거리고 나뭇잎들이 윙윙거리고 찢겨나간 먼지들이 찢겨나간 입속으로 밀려들고,

소년은 물을 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어.

엄마는 전등 스위치를 켜러 걸어가고 있었고 전등 스위치는 백 걸음도 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영원히 불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고 전등 스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엄마가 죽지 않을 가능성은 끔찍하게 작아 보였고 엄마는 죽어가면서 전등 스위치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제야 소년은 사실 불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걸 깨닫고 엄마를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전등 스위치로 걸어가고 있었고 여동생은 아빠처럼 굵고 낮은 목소리로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고 소년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물을 줘요 물 한 잔만 물 한 잔만요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끔찍하게 느린 속도로 스위치를 향해 기어가던 엄마는 갑작스레 소년에게 달려들어 아빠와 여동생과 함께 둥근 삼각꼴을 만들어 소년을 가운데 가둔 뒤 소년을 점점 옥죄이며 끌어안았고 소년에게 괜찮아 괜찮아 하고 속삭였고 소년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입속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불쾌한 소음들을 구역질해대며 물 한 잔만요 물 한 잔만요 하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아무도 물이 있는 곳을 알지 못했고 소년은 물이 없다는 것을 아니 사실 물은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그를 옥죄이며 포위해오는 여섯 손의 포옹 소년은 흐느끼면서 물을 줘요 물을 줘요하고 아무런 소용도 없을 말을 이제 소년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을 해댔으니 소년을 위로하는 어떤 손도 소년을 위로할 수 없었고 소년은 모든 것이 끔찍한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고 사내는 소년에게 물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 물을 달라고 한 것은 물을 달라고 속삭인 것은 소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사내가 무엇을 바랐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소년은 끔찍한 외로움에 지쳐서 훌쩍거렸고 이제 다시는 그 숲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하지만 사내는 이상한 입술색을 가지고 있었으니 납으로 화장을 한 것처럼 창백한 검은 입술.

소년은 그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엄마는 푸줏간에서 제 오른손을 자르고 집에서 쫓겨나 구걸하는 삼촌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어. 푸줏간에서 일하기 전에 삼촌은 유명한 엄청나게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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