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9

하지만 피아니스트일 때보다 삼촌은 구걸할 때 더 유명해졌단다. 삼촌은 피아노 연주보다 구걸로 더 성공했어. 그는 누구든 자신을 듣게 만드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재주는 피아니스트에게는 흔하디 흔하지만 거지들에게는 무척 드무니까.

그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구걸꾼이 되었어. 그의 곁을 지나가는 행인 누구나 그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어. 여가수 요제피네가 흔하디 흔한 찍찍거림, 그것도 다른 쥐들보다도 훨씬 유약하고 조악한 찍찍거림만으로 영원과도 같은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었듯, 삼촌은 아무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끔찍하게 유명해졌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삼촌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기묘한 멜로디를 들었단다.

물론 나도 들었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슬프고 강박적인 멜로디, 신경을 갉아먹는 병적인 음률. 난 삼촌이 연주했던 그 어떤 피아노곡보다 그 멜로디가 더 아름다웠다고 확신할 수 있어.

누구나 삼촌에게 돈을 주고 싶어했고, 누구나 삼촌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했어. 대부분의 거지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채 길거리의 먼지와 뒤얽혀 살아가지만 삼촌은 누구에게나 눈에 띄었지.

난 오빠처럼 성공한 거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너희 삼촌은 만족하지 못했단다.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어. 삼촌은 피아니스트로서보다는 거지로서 훨씬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내가 보기에도 삼촌은 천부적인 구걸꾼이었는데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 피아노에 대한 사후적인 사랑이 그의 삶을 그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갉아먹고 있다는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그랬지. 정작 피아니스트 활동을 할 때 삼촌은 그리 피아노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거든.

하루에 여덟 시간도 연습 시간을 채우지 못해서 쩔쩔매곤 했으니까. 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하루에 열두 시간을,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열 시간을, 그보다 더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여덟 시간을 연주한다지만 삼촌은 시골 마을에서나 겨우 자리를 얻어 삼십 분짜리 모차르트 소곡을 연주하는 수준이었으니, 못해도 하루에 열네 시간은 연주해야 옳았지. 하지만 삼촌은 여덟 시간도 연습하지 못했어.

여덟 시간이 가까워져오면 온몸에서 땀을 흘리면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어. 차라리 그 비명이 피아노 소리보다 더 매혹적이었지.

난 오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그의 자폐를 돌보고 길러주는 사람이 그토록 많았는데도 오빠는 자폐를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했지.

만약 내가 오빠 같은, 그리고 얘야, 너 같은 자폐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자폐를 끝까지, 이용할 수 있는 끝까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활용했을 거야. 하루에 스무 시간씩 연주하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어버렸겠지.

하지만 오빠는 그러지 못했어. 오빠는 여덟 시간을 항상 채우지 못하고 연습을 그만두었고 서른 살이 넘도록 살았어. 게다가 오빠는 자연사한 것도 아니야. 오빠가 침묵하는 멜로디를 참아내지 못한 행인 한 명이 오빠를 폭행했고 한평생 피아노만 연주하고 죽은 고기만 잘라내고 길거리에 앉아서 걸어가는 사람들만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허약한 오빠는 발길질 몇 번에 내장이 파열되어 죽어버리고 말았지. 군중들이 부른 구급차는 십 분도 되지 않아서 도착했지만 오빠는 이미 죽어버린 뒤였어.

결국 오빠는 그 흔한 음반 한 장 내지 못하고 죽었지. 난 오빠의 세계가 끔찍하게 아름다운 멜로디로 휨싸여있는 완벽한 음악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었어. 어릴 적에 오빠의 자폐를 훔쳐가기 위해서 오빠를 입술모양 오빠의 울음소리 오빠의 행동과 오빠의 표정 오빠의 찡그림을 모두 따라해보았지만, 결국 난 오빠가 듣는 기묘한 소리, 오빠를 감금시키는 멜로디의 묶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

너희 할머니는 삼촌이 천재라고 했어. 어린시절 오빠가 끽끽거리며 흥얼댄 노래를 듣자마자 엄마는 오빠가 천성적인 음악가라는 걸 알아차렸지. 엄마는 내가 다니던 수학학원을 취소하고 검은 야마하 그랜드피아노를 주문했어.

오빠는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는데도 곧장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마술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어. 발이 수천 개나 달린 지네처럼 손가락을 뒤틀고 움직이면서 화성들을 쌓아가는 모양에 난 완전히 매혹당했어.

음악보다도 그 기묘한 자세가, 새의 목을 조르듯 손을 뒤트는 이상한 모양이 끔찍하게 매혹적으로 느껴졌어. 엄마와 아빠는 오빠의 피아노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고 난 오빠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오빠가 피아노를 치기 전까지 난 언제나 오빠를 사랑했지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뒤로는 도저히 오빠를 사랑할 수가 없었어. 장애라고만 생각했던 것, 심각한 결손, 불구라고만 생각했던 그 불가해함이 천재성의 이면이라는 걸 확인하고 난 순간부터, 난 도저히 오빠의 시끄러운 끽끽거림을 참아낼 수가 없었지.

오빠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던 첫 순간부터 여덟 시간을 연주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여덟 시간 가까이 연주했어. 연습시간은 한 번도 늘어난 적이 없었고 절망적으로 서서히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연습을 하던 날에도 오빠는 거의 여덟 시간 가까이 연주했어. 아마 일곱 시간 오십 분인가 오십삼 분인가 연주했을 거야. 오빠가 연습하는 동안 옆에서 악보를 넘긴 건 나니까, 시계를 보면서 연습이 얼마나 지속될지 세었던 건 나니까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오빠조차도 자기가 한 번도 여덟 시간을 넘겨서 연습해본 적이 없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걸.

아무도 내게 오빠의 옆에서 악보 넘기는 일을 하라고 시킨 적은 없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난 오빠의 옆에서 악보를 넘기는 일만큼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빠의 악보를 넘기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도 나 자신을 망쳐버리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빠의 옆에 얌전히 앉아서 악보를 넘기기 시작했지.

처음 연주를 시작할 즈음에 오빠는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악보도 읽어내지 못해 곤혹스러워했지만 내가 그의 곁에서 마구잡이로 악보를 넘기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악보를 읽어내기 시작하더군. 아무도 오빠에게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는데도.

난 악보를 넘기던 손으로 오빠의 여린 새 같은 목을 졸라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지. 난 굳이 내가 죽이지 않더라도 오빠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했어.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아니면 세 달, 많아 봐야 육 년. 육 년이면 일흔두 달. 일흔두 달 동안 악보를 넘기고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찢어내는 일을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오빠는 일흔두 달 하고도 일흔두 달, 몇 번의 일흔두 달을 더 살았지.

사실 오빠는 천재치고, 더군다나 오빠처럼 끔찍하게 편향된 천재치고 그리 일찍 죽은 편도 아니야. 난 오빠의 곁에서 악보를 넘기면서 외우지 못한 방정식들에 대해서 생각했어. 똑같은 식 어차피 똑같은 수들을 분해하고 이어붙이고 재조립하고 찢어발기고 그리고 하나의 여분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같은 수로 다시 묶어내고 그러다보면 여덟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지. 바흐와 헨델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 베토벤만큼 방정식에 골몰하기 쉬운 악보는 없었어. 난 기울어진 대칭성을, 그리고 여분까지도 반드시 포획되는 역행적인 리듬들을 살피면서 스스로 창안해낸 기호들을 분해하고 접붙이고 다시 다른 방식으로 쪼개고 이어내며 무한한 조각들을 연출해냈지만, 오빠가 여덟 시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난 여덟 시간 가까이 방정식에 대해서 인수분해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난 수학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

오빠는 피아니스트가 되겠지. 그는 천재로 태어났고 불우한 운명을, 행복한 불구를 타고났으니까. 하지만 난 수학에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고, 매일 여덟 시간 동안 골몰해도 방정식은 여전히 불가해했으며, 그 불가해함에서 어떤 매혹적인 리듬도 발견해낼 수 없었으니, 오빠는 분명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피아니스트가 되어서 무대 위에서 바흐와 헨델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을 연주하고 박수를 받겠지만, 난 수학자가 되지는 못할 거였어.

난 한 번도 수학을 사랑해본 적이 없고, 방정식에 매혹되어본 적이 없고, 악보를 넘기는 일과 인수분해를 구분해본 적도 없으니까. 내게 있어서 방정식의 암기와 재생산은 악보를 넘기는 작업과 완벽하게 합치되는 작업이었어. 누구나 악보를 넘길 수 있고,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난 수학을 했고 수학에 대해 생각했고 수학에 골몰했으며, 요령만 안다면 누구나 나와 같은 속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악보를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루에 여덟 시간씩 수학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난 수학 교사를 불러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악보 넘기는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하지도 않았어.

오빠에게는 피아노 선생님이 있었지만, 오빠는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행운인지, 피아니스트가 될 운명을 예비하며 피아노를 연습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지 모르는 것 같았어.

악보를 넘길 때마다, 같은 방정식을 떠올릴 때마다, 역행적인 리듬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져나가는 것 같았어. 피아노의 내장에서 촘촘하게 정렬되어 흔들리고 있는 팽팽한 피아노 현으로 내 깊은 곳을, 겹겹으로 쌓여 있는 허공을 도려내고 있는 것 같았어. 악보를 넘길 때면 눈물과 구역질이 동시에 치밀어올랐지만 난 아무것도 토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어.

피아노 선생님이, 넌 오빠를 정말 좋아하나 보구나, 하고 말을 걸었을 때는 정말 미친 듯이 울부짖고 싶었지만 난 꾹 참고 앉아서 묵묵히 악보를 넘겼지. 악보를 넘기고 있는 손가락이 전부 부러져버리면 전부 잘려나가면 하고 바랄 정도로 괴로웠기 때문에, 피아노 악보를 넘기는 일이 그만큼 경멸스러웠기 때문에, 그만큼 역겨운 일은 달리 없었기 때문에 난 끝까지 앉아서 악보를 넘겼어.

피아노 선생은 처음엔 나를 말렸지만, 악보 넘기는 일은 자신이 하겠다며 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난 고집스럽게 앉아서 악보를 넘겼고, 결국 난 마지막 수업까지 오빠와 피아노 선생 사이에서 악보를 넘겼지. 나중에는 내가 악보를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느리게 넘겼다고 꾸짖기까지 했어.

물론 난 한 번도 악보를 잘못 넘긴 적이 없어. 언제나 정확한 순간,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만 악보를 넘겼으니까.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빨랐던 건 오빠의 미숙한, 혼란스러운, 불규칙한 연주였지 내가 악보를 넘기는 속도는 아니었어. 실수하는 것, 강박적인 것, 비열한 것, 병적인 것, 해로운 것, 애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은 언제나 오빠였고 난 정상적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끝과 끝이 이어지는 순간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만 악보를 넘겼으니까, 피아노 선생이 날 추궁한 건 너무나 부조리한 일이었지.

난 피아노 연주가들 사이에서 형성된 은밀한 결속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채 끝까지 악보 넘기는 사람으로, 아마추어 연주가도 피아니스트도 아닌 악보 넘기는 사람으로 남았어. 악보 넘기는 일에 어떤 자부심도 없었지만 난 오빠가 천성적인 피아니스트였던 것만큼이나 천성적인 악보 넘기는 사람이었지.

내가 악보 넘기는 일을 경멸했기 때문에, 오빠가 피아노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보다 더 나는 악보 넘기는 일을 역겨워했기 때문에, 악보 넘기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청소년 피아노 콩쿨에서 연주할 때도 난 오빠의 옆에 앉아서 악보를 넘겼어. 그 순간 오빠는 내가 악보 넘기는 속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며 따라왔지. 오빠가 우승하지 않기를, 철저히 실패하고 몰락하기를 바라는 만큼, 난 오빠가 우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우승자는 매년 나왔지만 오빠는 다른 우승자들보다도 특히 유명해졌어. 물론 그의 천재성-불구 때문이었지. 오빠의 광적인 태도 때문에 누구나 오빠가 천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 연주가 끝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가는 오빠를 본 순간, 무대 위에 홀로 남아서 오빠가 멀어지는 꼴을 본 순간, 낄낄거리는 기묘한 비명소리. 바흐보다도, 헨델보다도, 기묘하고 거룩한 광증의 울음.

연주를 끝마치고 사라져야 할 오빠가 거꾸로 끔찍할 정도로 선연하게 등장하는 모습을 본 순간, 난 오빠가 우승하리라는 것을, 전례 없이 완벽한 우승을 거두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어.

오빠는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자선 콘서트에 특별 게스트로 나가서 연주를 하기도 했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오빠를 기억했지만 언제나 오빠의 곁에서 악보를 넘기는 날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오빠는 피아노로 위대해지지는 못했어. 그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대로, 그의 숙명에 침착된 내용대로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그뿐이었지.

오빠는 결국 피아니스트보다는 구걸꾼으로 훨씬 유명해졌으니. 일생 연습해왔던 대로 피아노를 두들길 때보다 침묵할 때 더 매혹적인 멜로디를 암시할 수 있었으니. 사실 오빠는 그가 타고난 광증과 천재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피아니스트로서 참담하게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매일 여덟 시간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반드시 몰락하게 되어 있으니까. 열 시간도 열두 시간도 아닌 여덟 시간, 나이든 연주자나 리사이틀 순회 공연을 하고 있는 전성기의 연주자라면 여덟 시간을 연습할 수도 있어. 여덟 시간, 여섯 시간, 아니, 네 시간만 연주하는 연주자도 있겠지. 하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여덟 시간 언저리만을 연주하는 전성기 이전의 연주자는 어디에도 없어.

전성기에 도달하기 위해 채워야 할 연습량에 턱없이 모자라는 연습 시간. 피아노 선생도 항상 오빠의 연습 시간이 너무 짧다고 꾸짖었지. 나였다면, 내게 그런 악몽 같은 혼란과 재능이 있었더라면 난 매일 스무 시간을 연습했을 거야.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각오를 하고 잠도 자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연습만 했겠지. 감각의 여러 층위를 치명적으로 횡단하는 리듬, 역행적이지 않은 리듬들을 실험해보고 음악으로만 가능한 색채들이 번져가는 모습을 느껴보고 영원히 정당화되지 않는 불온한 음과 음의 충돌을 살펴보고 행성과도 같은 음들이 서로를 깨뜨리며 몰락하는 잔향에 귀를 기울이고 히스테릭한 미소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이 다시 부드러운 흰빛으로 바뀌는 모습을 연출하고 절개된 마디들에서 영원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각들의 여운에 귀를 기울여 봤을 거야.

귀 없이 현전하는 음악의 헐벗은 몸, 탐욕적이며 창백하고 끔찍한 불구의 멜로디가 물화하고 해체하는 리듬, 스스로 들리지 못하는 소리를 표출하는 음악, 보이지 않는 색채를 잠재태를 차이를 현현하며 조각조각 파열하는 무형의 힘이 음악의 헐벗은 몸을 포착할 때 발발하는 관능과 감각, 철저히 구조적인 곡의 체계만이 형성할 수 있는 힘의 조건들의 층위를 부수고 관통하면서 발생하는 물질적 효과로서의 관능, 힘과 몸의 유동적 관계와 감각 불가능한 힘을 감각의 가능태로 고양시키며 침잠시키며 물화하는 시간과 시간으로 형상화된 멜로디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아야 하는 불온한 소음들을 형성하는 음률. 색을 우는 울음. 울음으로 채색되는 멜로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발아하는 무형의 힘. 게걸스럽게 벌어진 피아노의 아가리를 두드리는 미래적이며 비가시적이며 악마적인 비명. 지상과의 수평적 관계와 천국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현현하는 비명의 순전히 광학적인 포착.

난 피아노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음악으로 할 수 없는 모든 불가능한 실험들을 해 봤을 거야. 악보를 넘기면서 언제나 골몰하는 방정식 속에서, 그 방정식들을 경유하여 이런 치명적인 구상들을 하곤 했지.

결국 오빠는 한 번의 우승 이후로 한 번도 콩쿨 본선에 나가지 못했어. 예선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지.

오빠는 점점 더 미쳐갔어. 오빠의 박자감각은 치명적으로 어긋나버렸지. 오빠에게 유독 너그럽게 굴던 피아노 선생도 더는 나를 추궁하지 못하고 오빠를 비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빠는 내가 악보를 넘기는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낙오하여 미끄러지거나, 아직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지레짐작하는 바람에 돌발적으로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피아노 건반을 깨부술 듯이 두들겨대고 미친 듯이 울부짖는 바람에, 연주가 끝나고 난 뒤에 부려야 할 전위적인 행패를 연주 중간에 너무 일찍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파멸하고 말았지.

오빠는 깡촌에서 끔찍한 비명을 연주해내는 어린이 오케스트라 사이에 끼어서 삼십 분 정도만 간신히 연주하는, 그러고도 형식적인 박수, 절망적으로 느긋하며 게으른 박수밖에 받지 못하는 피아니스트로 전락했어.

결국 아빠가 하던 푸줏간을 이어받아 죽은 고기를 도축하던 날, 오빠의 시뻘겋게 변색된 손을 보고 엄마는 울었고 난 울지 않았어.

오빠가 몰락한 뒤에도 난 오빠를 사랑할 수 없었어.

오빠가 피아노를 치지 않았더라면, 오빠의 불구가 영원히 불가해한 것으로 발현되지도 발견되지도 못한 것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오빠를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오빠는 결국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그에게 가능한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의 운명이 마련한 대로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푸줏간으로 쫓겨난 뒤에도 그가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지.

오빠가 죽은 고기 대신 죽어버린 제 오른손을 자르고 푸줏간과 집에서 쫓겨나던 날에도 엄마와 아빠는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어.

검은 야마하는 뚜껑이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지. 연주가가 없는 여덟 시간 동안 난 매일같이 악보를 넘겼어. 오빠는 피아노 없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난 악보를 넘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 내게는 구걸을 하는 재주도 죽은 고기를 자르는 재주도 없었으니 언제나 하던 대로 악보를 넘길 수밖에 없었어.

엄마는 내가 미쳤다고 했지만 우리는 내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는 걸, 적어도 오빠가 미쳐버린 방식으로 미칠 수는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러니 얘야, 너는 네 삼촌을 닮은 거야. 네가 오빠의 광증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네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플롯도 유화도 수채화도 작곡도, 천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겠다고.

네가 잠들 때마다 난 네 곁에서 제발 널 사랑할 수 없게 만들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너를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렇지만 얘야, 난 다른 무엇보다도, 피아노보다도, 악보보다도, 그 어느 방정식보다도, 이제는 그리 가혹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유년보다도 너를 사랑한단다.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도 너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도 아니야. 오빠의 옆에 앉아서 악보를 넘겼듯이 그렇게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던 것도 아니야. 난 원한다면 언제라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기를 원한 적이 없었을 뿐이야.

너를 사랑하기를 원한 적이 없었듯 오빠의 옆에서 악보를 넘겼던 건, 내 유년은 전혀 다른 문제란다. 상담사들은 유년과 더 이상 유년일 수 없는 현재를 연결짓기를 좋아하지만, 내가 내뱉는 모든 말과 침잠하는 생각, 살 수 없었던 말들과 살아야 했던 말들이 전부 유년과 조응한다고 설명하고 싶어하지만, 악보를 넘겼던 유년과 너와의 관계는 전혀 별개의 문제야.

오직 네가 오빠와 닮았다는 것, 세 살이 되지 않아도 네가 말을 하지 않고 죽은 새를 보아도 슬퍼하지 않고, 새를 죽이고 싶어하지도 않고, 새를 애도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내가 죽은 새를 가리켜도 쳐다보지 않았을 때,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중얼거린 말들을 네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암기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보여주었을 때, 처음 네가 말을 했을 때, 난 모든 걸 깨달았지. 옹알이조차 하지 않고 침묵하던 넌 녹음기처럼 내가 했던 말을 조금도 더듬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기계장치가 입력되어 있는 긴 문장들을 재생하듯이 읽어내렸고, 그러면서 너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죽은 새와 눈을 마주친 것도 아니었고 죽어가는 새와 눈을 마주친 것도 아니었어.

난 네가 오빠와 닮았다는 걸, 네가 오빠와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네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단다. 넌 실패하고 말 피아니스트였으니까. 넌 하루에 8시간 이상 연습할 수 없을 테고 결국엔 파멸하고 말겠지.

사실 네 곁에서 악보를 넘기고 싶지 않았어.

오빠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실패했고 난 악보 넘기는 사람이 될 수 없었지. 오빠가 피아노를 그만둔 뒤에 내게는 넘길 수 있는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았고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홀로 악보를 넘기는 일은 지독하게 괴롭고 외로웠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계속 악보를 넘겼지. 베토벤을 슈베르트를 모차르트를 슈만을 바흐를 그리고 헨델을 넘겼어.

페이지를 넘기면서 진작에 이렇게 되어야 했다고 생각했어. 악보 넘기는 사람에게는 피아노 연주자가 필요 없다고. 피아노도 피아노 연주자도 필요 없다고. 난 완벽한 순간에 악보를 넘길 수 있었어. 어떤 불협이나 혼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도 경악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악보를 넘겼어.

난 악보 넘기는 일에 있어서 경지에 올랐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다만 오빠면 없었더라면, 피아노 연주자만 없었더라면, 내가 완벽하게 악보를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을 수도 있었겠지. 어쩌면 악보를 넘긴 지 오 년이 되던 순간에, 어쩌면 악보를 넘긴 지 일 년만에, 어쩌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어쩌면 악보를 처음 넘기던 순간, 난 이미 완벽하게 악보를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오빠의 피아노 소리. 깨지고 폭발하고 파열하고 다시 조립되는 소리. 조각조각 찢겨나간 조각들은 다시 그의 뼈대대로 되붙었고 검은 우산을 목 위에 꽂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세계는 고기로 해체되고 우산고기 탁자고기 장화고기 전등고기 피아노고기 건반고기 바이올린고기 엉망으로 접붙은 고기들은 다음 페이지를 향해 끈적하고 불쾌한 앞발을 뻗고 난 악보가 오염되기 전에 서둘러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 했는데, 그건 내가 원하던 시간이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악보 넘기는 일은 끝없이 발전할 수 있는 조율의 일이 아니었어. 난 이미 어쩌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악보를 넘길 수 있었고 더 추구할 수 있는 경지를 찾을 수 없었어. 십 년 넘게 악보를 넘겨왔던 일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어.

처음으로 악보를 넘기지 않고 하루를 지새던 날, 난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악보를 넘기고 있는 내 손을 꿈꾸었는데, 내 앞에는 덮인 채로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가 있었지. 사지가 잘린 채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오른손이 잘린 채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피아니스트처럼, 난 행위 없이 악보를 넘기고 있었는데, 악보는 단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고, 다섯 페이지 열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도 악보는 음표는 하나도 없이 필기체로 휘갈겨진 제목만이 쓰여 있는 앞장이었고, 난 열다섯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고, 눈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리 파열하는 소리. 출혈하는 소리. 난 계속해서 흐느끼고 있었고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난 악보를 넘기지 못하였고 그 여덟 시간 동안 난 어린애처럼 울었고 그러나 어린시절에는 한 번도 그렇게 시끄럽게 오랫동안 울어젖힌 적이 없었으니, 만약 누군가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쉼 없이 울 수 있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난 결코 믿지 않았겠지.

하지만 난, 믿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울었고 오빠는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적어도 오빠가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었고 엄마는 오빠가 깨어지고 있다고 망가지고 있다고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다고 했고 오빠는 항상 그런 찢겨짐 속에서 살아왔다고 했는데, 난 오빠의 찢김을 느낄 수 없었고 오빠는 끔찍하게도 멀쩡해 보였고 오빠는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혼란 속에 안전하게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난 다름 아닌 내가 오직 나만이 찢겨나가고 있다고 말했고 찢겨나가고 있다고 울었고 내가 피아노 악보를 넘기지 못하는 동안 오빠는 내 옆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난 오빠에게 피아노를 다시 쳐달라고 애걸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피아노 없이 완벽한 악보 넘김을 하는 일만큼 비참한 건 또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빠는 고개를 저었고 오빠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엄마는 오빠를 끌어안고 울었지만 그들은 그리 오래 울지 않았고 난 나만이 오랫동안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꾸준하게 울고 있다는 사실을 경악스럽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고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들리던 E flat.

언젠가부터 난 다른 어떤 화성도 불협도 아닌 E flat만을 들을 수 있었고 악보를 몇 장을 넘기든 넘기지 않든 E flat은 동일한 음정으로 흔들리고 있었으니, 얘야 믿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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