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과 소년의 물방울

깊은 바다처럼 일렁거리는 푸른 빛깔의 살덩이는 아름답다. 바다는 거대하게 춤추는 푸른 살덩이이다. 벌어진 입과 푸른 물이 밀려들어가며 내는 전도된 목소리. 숨을 내뱉어 내는 소리가 아니라 살이 밀려들어가며 내는 소리. 푸른 바다의 살을 삼키며 흐느끼는 소리. 세이렌의 노래. 혹은 밤의 파도소리. 현은 소년이 바다의 살처럼 유동적인 몸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 애의 얼굴은 날마다 다른 기류를 맞아 다른 표정을 지었는데 그때마다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하지만 현은 그 애가 바다를 닮은 그 소년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언제나 추락하고 있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떨어지는 그는 항상 그를 적시는 대신 아득한 저 너머의 아스팔트를 검게 물들이고는 사라지곤 했다.

그 애의 미소. 검은 물이 밀려들어가는 입 속에서 반짝거리는 치아. 그 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웃었고 현은 처음으로 타인의 웃음을 달갑게 여길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는 따라 웃지는 못했지만 그 애의 웃음소리, 음색이 기억나지 않는, 맥락 없이 떨어진 기묘한 소리가 계속해서 느닷없는 순간들의 그의 귓속으로 밀려들었다고 했다. 웃음소리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갑작스러웠고 우스울 정도로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소년의 얼굴이 웃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 웃음소리는 현의 귓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출렁거리는 검은 물처럼 일렁거렸다.

추락하는 소년의 꿈은 현에게 있어 집요한 환상이었다. 네가 현과 같이 가라앉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듯 현은 추락한 소년들에게 용서를 구하려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는 너와 마찬가지로 소년들을, 추락한 소년들을 질투하고 있었다. 현은 병적인, 아니 차라리 정상적인 일상에 가까운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수면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반짝거리는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깨진 거울이 비추는 여러 갈래의 빛으로 찬란하고 하얀 흉터로 일그러져 더욱 은밀하고 매혹적으로 일렁이는 얼굴. 그 얼굴에서는 필요에 따라 신, 혹은 자연이 배치한 온갖 구멍들이 쓸모를 잃고 벌어져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드나드는 구멍은 오로지 그를 간질이기 위해, 소년의 냄새를 비밀스레 내비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고, 죽은 살이 드나드는 구멍은 검붉은 혀와 모래처럼 새하얀 치아들을 뽐내기 위해, 심해처럼 새까만 눈 속 빛의 구멍은 축축한 어둠을 배설하기 위해, 피부결 사이사이의 틈새는 오로지 가느다란 흉터가 만들어내는 이지러진 모양들을 강조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구멍들에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이 관능으로만 반짝였으며 그렇기에 아름다움 이외에는 어떠한 형용도 모순적인 부위였다. 그 모든 구멍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불길하게. 그만큼 매혹적으로. 그 환상이 지독하게 아름답고 애틋했던 탓에 현은 자신이 그 소년의 괴물처럼 관능적인 얼굴을 직접 창조해냈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현은 소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음에도 소년의 환상으로부터 모종의 성취감을 느꼈으며 실제로 이후에는 소년에 관해, 그 애의 일렁거리는 얼굴, 비명조차 새어나오지 않을 듯 아득한 색채에 굳게 밀봉된 구멍들, 그러나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시퍼런 틈새에 관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넌 그 애에 대해, 네가 아는 소년에게만 현현하는 유령에 대해 쓰게 될 것이었다.

그는 소년에게 반했으나, 그의 투명한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을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으나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현이 반한 소년은 이미 추락하여 죽은 소년, 얼굴에 하얀 금을 잔뜩 매달고 깨어진 소년, 복구할 길 없이 망가진 소년의 얼굴이었으므로. 죽음은 침묵조차 소리내어 떠벌리지 않는 법이었으므로. 그는 소년의 아름다움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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