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번 채널 2

불그죽죽한 살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자에는 원뿔 형태의 점토가 쌓여들었다.

그 애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 애는 너무 작았고 간혹 벌레처럼 헐벗었어요. 걸레 빤 쉰내가 진동했고 머리에 이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그 애의 목소리는 너무 부드러웠고 난 29번 채널에서 무얼 보느냐고 물었죠. 그 애는 다짜고짜 편지를 보냈다고 했어요. 29번 채널에 편지를 보냈다고 말하는 그 애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아름다웠어요. 여가수의 목소리처럼. 난 그 애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애는 29번 채널을 봤다고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애도 나도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당신은 어째서 우리를 초대해주지 않은 걸까요? 우리의 편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던 걸까요?

어쩌면 당신이 기다리던 아이들, 당신이 초대한 아이들은 우리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29번 채널을 보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29번 채널에 갈 수 있는 건 29번 채널을 보지 않는 아이들뿐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 애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어요. 우리는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난 1반이었고 그 애는 6반이었으니까 복도에서 서둘러 뛰어가도 3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 애는 굳이 1반으로 찾아왔죠. 난 한 번도 6반까지 가 본 적이 없어요. 그 애와 어울리는 걸 보고 난 뒤부터 친구들은 나를 완전히 포기했어요. 내가 짜증난다고 내게서 쉰내가 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내게서 소외의 냄새가, 홀로의 악취가 나기 시작한 건 그 애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난 나름대로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죠. 29번 채널을 보기 전에도. 그 애는 벌레처럼 헐벗은 앙상한 몸으로 나를 끌어안으려고 했어요.

난 벗지 않았는데도 그 애는 내 벗은 몸을 봤다고 속삭였어요. 끔찍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래서 난 울고 싶었는데 그 애가 이미 울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헐벗은 건 그 애였기 때문에 울 수 없었어요. 거미처럼 거대하고 검붉은 상처가 그 애 몸 곳곳에 나 있었죠.

너를 보고 싶지 않아, 하고 말했을 때도 그 애는 울었어요.

그 애는 언제나 울고 있었죠. 그게 아니면 웃고 있거나. 그 애가 무표정한 것을 본 기억은 거의 없어요.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말했을 때도 그 애는 울고 있었어요. 아니 웃고 있었어요. 벌거벗은 엄마를 본 아이처럼, 돼지들 위에 올라타 헐떡이는 오빠를 본 아이처럼 그렇게 두렵게 웃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애는 끈질기게 쫓아왔죠. 쉬는 시간이 지나면 1반에, 내 책상 옆 복도 바닥에 그대로 벌거벗은 엉덩이를 대고 앉아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죠. 마치 그 애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 애가 벌거벗지 않은 것처럼. 그 애가 이미 죽은 것처럼. 그래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게 아니면 그 애가 아직 과거에, 1반으로 건너오기 전의 과거, 그래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과거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가장 괴로운 건 연결의 감각이었어요. 난 그 애가 헐벗은 몸을 맞붙이고 싶어 한다는 걸, 내가 들추지 않은 살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처를 쓰다듬어보고 싶어 한다는 걸, 내게 상처 내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래서 그 흔적을 위로할 수 있도록 오직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를 찢어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애가 내 손등을 어루만질 때마다 코 안쪽이, 눈꺼풀과 목 안쪽이, 뱃속이 미친 듯이 욱신거렸어요.

난 죽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그 애가 죽기를 바랐어요.

그 애는 가끔 29번 채널 이야기를 했지만 오지 않는 늑대와 세 마리의 돼지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 애는 밤부터 새벽까지 29번 채널을 보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한 번도 티브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옷장 속의 외과의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이외에는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는 셈이었어요.

교사가 칠판 앞에서 지리멸렬한 용어들과 개념들을 들먹이며 수업을 할 동안 그 애는 유령처럼, 그러나 끔찍하게 선명한 벌레와도 같은 살을 가지고 내 옆에 앉아서 그 애가 본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 애가 말해준 프로그램 내용은 돼지들과 사라진 늑대가 나오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채널과 같은 29번 채널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산하고 서글펐어요.

그건 행복한 이야기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슬프지만 감동적인 사연들을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행복이라는 제목은 시니컬한 아이러니처럼 느껴졌죠.

수도원의 지하감옥에서 탈출한 여자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평생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암에 걸린 엄마에게 새 휴대폰을 사달라고 아이가 조르자 엄마가 모아둔 수술비를 아이 앞으로 남겨주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그 애는 놀랄 만큼 상세하게 그 이야기들을 서술했어요. 그래서 난 내가 직접 본 것과 그 애가 해준 이야기의 이미지를 착각할 수밖에 없었죠. 가끔 난 흰빛의 창백한 클레이로 뒤덮인 여자를, 목을 매고 죽은 채 새 휴대폰을 살 아이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는 여자의 이미지를 직접 보았어요. 하지만 돈을 받고 난 아이가 정말 새 휴대폰을 샀을지 그래서 그 아이가 정말 행복했을지는 알 수 없었죠. 방송에 나오지 않은 뒷이야기를 그 애는 들려주지 않았으니까.

여자애는 매일 울었어, 하고 그 애는 속삭였죠. 새 휴대폰을 사 달라고, 그 애 것은 너무 낡은 기계여서 팩맨이나 솔리테어 같은 단순한 게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반 카페에도 가입할 수 없고 카톡도 깔려 있지 않아서 중요한 공지사항을 듣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지. 구식 휴대폰 기기는 정교한 흰색 클레이로 만들어져 있었어. 그 속에서 깜빡거리는 화면과 문자까지 섬세하게 구현되어 있었지.

외과의가 만들었을 거야, 하고 소녀는 칠판에 고개를 고정시킨 채로 속삭였다. 그 사람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까. 소녀는 마치 외과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듯 수줍게 속삭였다.

교사가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볼까 봐, 그래서 소녀를 교실 앞으로 불러내어 비밀을, 아직 소녀 자신도 알지 못한 비밀을 캐물을까 봐 소녀는 미친 듯 두렵고 행복했다. 그것은 너무도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과 달리 소녀는 1반에, 그녀의 자리에 공공연히 속해 있었으니까. 이곳은 그녀에게 다른 곳도 불가능한 곳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소녀가 너무도 작은 소리로 속삭였기 때문인지 교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칠흑 같은 칠판에 판서를 이어나갔다.

분필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여자애는 매일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어.

엄마 사줘 안 사주면 죽어버릴 거야 죽어버릴 거야 죽어버릴 거야

하지만 죽은 것은 여자애가 아니라 그녀의 엄마였지. 창문 고리에 스타킹을 매고 목매달아 죽어 있는 걸 가장 먼저 발견한 건 그 애였어.

화면은 정지된 채 부유하고 있었다 남자의 몸은 끔찍하게 길었다 클로즈업된 도마뱀처럼. 사막에서 비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도마뱀처럼. 화면 아랫부분에서는 주소가, 팩토리얼 가든 291-321 142-2422-345가 비 온 뒤의 하늘에 매달린, 비로 떨어지지 못한 채 남은 잿빛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그 애는 전구 속으로 들어가 질식하는 나방처럼 날 끈질기게 따라다녔어요. 하지만 결국은 6반으로 돌아갔죠. 꿈을 꾸고 난 사람이 날개를 잊고 지상으로 돌아가듯이.

6반에서 그 애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별 관심은 없었죠. 우리는 1반에 속해 있고 6반은 복도 가장 끝에 있으니까. 그곳은 사막과 사막만큼이나 멀었으니까. 5반 아이들도 4반 아이들도 3반 아이들도 2반 아이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우리가 1반에 있는 우리가 그 애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어요. 그 애를 걱정하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있었어요. 창 밖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낡은 건물에서 판자촌에서 쫓겨나 고성을 지르면서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들 옥탑에서 투신하는 사람들 응급차와 함께 실려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애의 이름을 알지 못했죠.

하지만 그 애가 내게 가까이 있을수록 점점 두려워졌어요. 그 애의 헐벗음이 벌레처럼 연약한 피부에 수 놓인 상처들이 내게 옮아오는 것처럼 거북스러워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 적도 여러 번 있어요. 하지만 그 애를 돕지는 않았죠. 내가 그 애처럼 헐벗게 될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니에요. 내가 그 애처럼 벌레처럼 헐벗었다는 걸 들킬까 봐 그걸 깨닫게 될까 봐.

그 애의 목소리는 눈물이 날 만큼 부드러웠어요. 언제나 속삭이는 투로 말했죠. 그 애는 통증을 닮은 목소리로 허밍을 하듯이, 수도원 지하에 갇힌 여자는 진흙처럼 검은 갈빛의 클레이로 뒤덮여 있었다고 속삭였죠. 그 여자의 눈에는 검은 속눈썹이 너무 많이 달려 있어서 다리가 수백 개 달린 지네처럼 보일 정도였지. 그래도 그 여자는 아름다웠어.

난 29번 채널의 연기자들 중에서 성인 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인 것 같냐고, 옷장 속 외과의가 나오는 채널에서 어떤 배우가 그 여자를 연기한 것 같냐고, 누구를 가장 치명적으로 닮았느냐고 물었죠.

그 애는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 여자의 젖가슴은 종유석에 매달린 물방울 같은 모양이었어, 하고 그 애는 속삭였어요. 어쩌면 어린 여자 돼지를 분장시켰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외과의가 직접 속눈썹을 붙이고 가슴을 매달았을 수도 있어. 그것도 아니면 어린 남자 돼지에게 속눈썹과 가슴을 달았을지도 몰라. 잘 모르겠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고 그들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

그리고 그 애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침묵하더니,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가 한숨처럼 숨을 내쉬면서 속삭였어요. 그들 모두를 닮은 것 같기도 해. 그 여자는 붉은 흙빛의 입술을 움츠리고 벌리면서 무언가를 소리치는 것 같았어. 입술이 귀밑까지 벌어져도 그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웠어. 입술이 더 길게 찢어질수록 입 속의 검은 클레이가 응결된 어둠처럼 불거져 나올수록 그 여자는 더 아름다워졌지. 그 여자가 뭐라고 소리쳤는지는 알 수 없었어. 난 그때 음소거를 해놓고 그걸 보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꺼내달라고, 살려달라고 말했겠지. 그게 아니라면 죽여달라고 말했을지도 몰라.

가끔 흰 클레이로 조각한 수도사들이 그녀의 방을 오갔어. 수도사들은 지하실 너머 창문에서 얼굴의 음영으로만 등장했어. 그러니 아마 그 속에는 어떤 배우도 들어있지 않았을 거야. 수도사들의 얼굴 윤곽은 같은 판에서 찍어낸 것처럼 닮아 있었지.

그날, 하고 소녀는 정지된 영상을 향해, 거미줄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폭력적이고 허망한 왕복운동을 반복하는 날파리처럼 허공에 멈춘 채 바들거리는 남자에게 속삭였다. 난 악몽을 꿨어요. 영원처럼 긴 하나의 시퀀스였어요.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곳에서 살았던 것들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죠.

꿈은 흑백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어둠을, 가장 선명한 채도로 반짝거리는 붉음과 흰빛을 보았어요.

지하실에서 바스락거리는 그 여자의 손끝은 끔찍하게 아팠어요. 난 내가 그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여자의 미칠 듯한 서글픔과 고통, 죽을 것 같은 답답함과 허기, 차라리 환멸을 닮은 흐느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죠.

여자는 머리칼을 하나씩 세고 있었어요. 어디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리면, 갑작스러운 통증에 고개가 기울어져 머리칼이 앞으로 쏟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나중에 그 여자는 머리칼을 하나씩 뽑아가면서 세기 시작했어요. 허벅지와 음부가 죽을 것처럼 가려워서 너무 배가 고파서 습기가 그녀의 가장 내밀한 점막을 질식시키고 있어서 머리칼이 뽑혀나가는 고통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그건 차라리 견딜만한 출구를 찾는 애원에 가까웠죠. 온몸에 바늘구멍을 뚫어야 숨을 쉴 수 있다고 믿는 문둥병자처럼 몸 밖으로 나가는 구멍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너무 비대하고 무거워서, 그녀의 몸만큼이나 거대해서 도저히 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머리칼을 뽑았어요. 마치 머리칼과 함께,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수백 차례를 반복한 숫자들과 함께 그녀가 떨어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떨어져나간 머리칼은 더 이상 자라지도 않고 늙어 바래지도 않고, 무의미한 성장과 노화의 경향마저 그만둔 채로 죽어버린 것이죠.

여자는 수천 개의 머리칼을 살해했어요. 그럼에도 여자는 죽지 못했죠. 머리칼을 뽑는 것만으로 그녀는 죽을 수 없었어요. 뽑혀나간 머리칼은 분명히 그녀였는데. 그것은 여자와 함께 자라나고 여자에게 미약한 통증을 주고 여자를 감싸 위로하던 여자의 몸이었는데 여자의 오물 위에서 썩어가는 머리칼을 여자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어요.

여자는 머리칼로부터, 그녀가 살해한 그 많은 세포들로부터 버려진 듯한 참담함을 느꼈어요. 사실 그녀의 머리칼을 뽑아버린 것은 남아 있는 그녀였음에도. 그녀는 머리칼처럼 쉽게 뽑혀 멈추어버리기를, 더 이상의 살해도 소외도 서글픔도 없이 죽어버리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남아 있었죠. 뽑혀나간 머리칼의 반대항에서 여자는 머리칼을 뽑고 있는 몸이었어요.

비좁은 지하감옥에서는 그녀가 뽑아낸 머리칼들과 그녀의 몸에서 배출된 오물이 부패해가는 악취가 진동했어요. 우리는 도저히 그 끔찍한, 악몽 같은 악취에 익숙해질 수 없었어요. 난 여자의 척추 안쪽, 허파와 허파의 사잇길과 배꼽 밑을 조심스럽게 들추어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실존을 애무하면서 그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그녀는 나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았어요.

내가 그녀의 귓속에서 상냥하게, 마치 그 애가 내게 속삭였던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해도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죠.

아니에요. 그녀는 들었어요.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처럼, 연약하게 떨어져나간 머리칼처럼, 언젠가 당신도 죽을 거라고. 떨어져나간 꽃잎의 속에 치명적으로 소진된 낙엽의 방향에 언젠가 당신도 속할 거라고. 왜냐하면 그 꽃잎들 하나하나 부스러진 낙엽의 가루와 수북이 쌓인 검은 머리칼은 전부 당신이었으니까. 그것은 전부 당신이니까. 침묵처럼 부드럽게, 통증처럼 욱신거리면서 그녀의 귓속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는 들었어요.

하지만 정신착란처럼 달콤하고 애틋한 환각을 믿고 고개를 끄덕이기에 그녀는 너무 지쳐 있었죠. 난 악몽이 그녀의 생 내내 계속되리라는 것을, 내가 그녀의 생을 전부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마치 이미 끝을 보고 온 사람처럼, 아니, 나선형으로 겹쳐진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감각하며 직감하는 사람처럼 미래가 남긴 깊은 인상을 느끼는 과거의 예언자처럼 나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갇혀 있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영원조차도 언젠가는 완전히 소진되어 떨어져 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드문드문 흰빛이 얼룩처럼 남아 있는 그녀의 원피스는 끔찍하게 지저분했죠. 누런 때가 탔을 뿐 아니라 그녀가 주체할 수 없는 고통과 우울로 흘려보낸 오물이 그대로 묻어서 독처럼 남은 배설물 때문에 군데군데 찢어지기까지 했어요. 그녀가 갇혀 있는 지하감옥에는 이렇다 할 배설 시설도 없어서 그녀는 구멍이 숭숭 뚫린 하수구 위에, 역겹게 뭉쳐진 오물 찌꺼기 위에 발을 가져다대고 그 아래로 변을 보아야 했죠. 하지만 처음 몇 년이 지나자 그녀는 지하 어디에서나 변을 보기 시작했어요. 지하를 청소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구역질 나는 파리들과 구더기들, 모기와 바퀴벌레 그 끔찍한 오물을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발치에서 전쟁을 버리는 쥐떼들과 함께 그녀는 살아갔어요. 그녀가 죽고 나면 가장 먼저 그녀를 물어뜯고 삼켜 그녀가 경험할 수 없을, 이해할 수도 해독할 수도 없을 생의 언어로 환원시킬 것이 바로 그들이었죠.

쥐들은 그녀의 발 앞에 엎드린 채로 발 끝의 연약한 살을 물어뜯거나, 그녀의 부러진 손톱을 갉작거리면서 그녀를 희롱하고는 했어요. 그 거대하고 누런 앞니 속에 여자의 머리 다발을 밀어넣고 우물거리는 쥐들을 보면서 여자는 기묘한 서글픔에 휩싸였죠.

그녀가 잠들기 위해 오물에 뒷머리를 박고 드러누워 있으면 포유류 새끼들은 그녀의 둥그스름하고 단단한 젖가슴 위로 기어올라 이를 박고 낑낑거리기도 했어요. 시궁창의 갓 태어난 새끼 쥐들은 소스라칠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죠. 벌레처럼 연약하고 붉은, 생의 심부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그 끔찍하게 취약한 살들. 우리는 그들이 젖가슴을 갉아먹고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작은 머리를 문대도록 내버려 두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만큼 살아 있었으니까. 그 작고 가엾은 새끼 쥐들만큼, 이 오물 속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살아 있었으니까. 소녀는 흐느끼면서 속삭였다.

하지만 쥐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어요. 파리도 모기도 지네도 구더기도 그 역겨운 타자들 무엇도 여자가 더 이상 여자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더 이상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무엇보다도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은 삶을 애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자를 훼손시키지 않았어요. 그들은 여자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모든 분해, 치명적인 훼손과 와해, 그러쥘 수 없을 조각남은 모두 죽음 이후에 예정된 것이었어요.

난 쉬지 않고 여자를 위로했죠. 괜찮아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피부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언젠가 상처가 아물고 흉터가 되듯이 살은 끝끝내 벌어지고 말 것이고 더 이상 되붙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고 그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살 것이고 결국에는 그곳에 우리가 없을 때까지 너무도 많은 것들이 드글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갈빛으로 말라붙은 장미 이파리처럼 분해되고 해체되고 이제는 우리를 잊은 채로 우리를 원하지도 않는 채로 흩어지게 될 거예요. 우리가 바란다고 해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렇게 될 거예요. 고통은 그칠 것이고 언제나 존재하는 고통은 더 이상 우리에게 감각되지 않는 채로 그렇게 산재할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우리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여자는 머리칼을 뽑고 있었어요. 백아흔 개 삼백쉰여섯 개의 머리칼을 뽑았을 때 여자는 쇠창살로 막힌, 얼굴 높이의 작은 창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죠. 여자는 영원과도 같은 감금을 너무도 간단히 파쇄하고 그녀를 찾아 들어오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여자의 밑이 끔찍한 오물로 짓무르고 염증이 일어난 뒤부터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여자를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졌기 때문에, 그녀의 항문과 음순에 오물 찌꺼기가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여자를 더 원하게 된 이도 있었죠.

그는 검녹색 변이 엉겨붙은 진창과도 같은 여자의 배설구에 고개를 묻고 헐떡였어요. 그는 오직 여자의 불결함만을, 시궁쥐들의 검고 곧은 시선과 바퀴벌레들의 수군거림 속에서의 정사만을 원하고 있었어요.

그는 여자의 밑을 훔쳐 오래도록 닦지 않은 가랑이 사이에 늘러붙은 변의 찌꺼기를 그러모아 제 성기에 바르고 훑어내렸어요. 그가 너무도 가쁘게 헐떡이고 있어서 우리는 숨을 쉴 수 없었죠. 우리는 숨을 멈추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취약한 진공상태 속에서 그가 사라지기만을, 그가 우리의 불결함에 충분히 물들어 만족하기만을, 그래서 돌아가기만을, 우리의 속삭임이 아름답고 내밀하고 서글픈 내면의 어루만짐만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더러운 년, 더러운 년, 하고 소리치면서 울었죠.

그 사람이 얼마나 황홀한 환멸에 잠식되어 있었는지 성기 끝에서 출혈하듯 액체가 흘러내릴 때 끔찍한 오물이 그의 가장 성스럽고 내밀한 부위를 침범하며 감염시킬 때 얼마나 역겨운 쾌락이 그를 환희케 했는지 나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 그 폭력적인 연결의 순간 난 여자와 동시에 그 노인에게도 속해 있었으니까. 피치 못하게 나는 그의 존재의 부드럽고 음험한 내부에 자리를 잡고 그의 가쁜 숨을 지켜보았으니까.

그는 달콤한 악취 속에서 날개가 잘려나간 나방처럼 사지를 바들바들 떨면서 흐느꼈어요. 우리는 흐느꼈어요. 하지만 여자는 울지 않았죠.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그녀의 안에서 우리는 호흡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무호흡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결코 우리가 도달할 수 없을, 그러나 우리의 내부 이외에는 다른 어디에도 없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속해 있는 다른 곳을 상상하고 있었으니까.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의 운명을, 궤도를 이탈한 달들이 떠다니는 은하를, 무호흡의 진공 상태를 부유하는 고무처럼 질기고 단단한 피거품들을 거품의 피막을 이루는 그 많은 미래들을,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감정들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노인의 가쁜 헐떡거림밖에 없었어요.

난 헐떡거리면서 동시에 숨을 참고 있었죠. 무호흡으로 공중을 부유하는 것도 무호흡의 매끄러운 경로를 막으면서 역겹게 헐떡거리는 것도 모두 나였어요. 난 그 모든 우리에 속해 있었죠. 하지만 노인이 옷을 추스르고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황급히 눈물과 침을 닦고 지하 감옥을 나간 뒤, 거대하고 아득한 철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나간 뒤, 난 여자와 함께 같은 자리에 무겁게 남아 있었죠. 머리칼을 뽑아내고 난 뒤에 남은 몸처럼.

여자는 미친 듯이, 그러나 미치지 않기 위해, 위태로운 차분함으로 머리칼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었어요. 다리 사이와 두피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피에 파리들이 달라붙었어요. 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묵묵하고 끈질기게 끝을 기다렸죠. 여자의 머리칼만으로, 여자가 세는 숫자만으로 난 충분히 버틸 수 있었어요. 절박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그녀를 위로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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