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년 7월 2일

a-5년 7월 2일

아이는 내게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난 시를 쓴다고 말했다.

시가 뭐냐고 그 애가 물었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구역질이 났다. 아이는 점점 많은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교차로에서 만났다. 내가 아이를 들어올리던 순간, 아이가 나를 들어올리던 순간을 우리는 끝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시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강박적으로 문학공모전알림사이트에 들락거린다. 몇 개의 문예지에 투고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떤 문학은 추억에 불과한가? 도살당한 나무의 껍질처럼 거칠거칠한 우편 봉투에 유리로 만들어진 태양처럼 번쩍거리는 건물의 주소들을 적어넣는 일을 관두었다. 하지만 시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함께 시를 시작했던 유령들은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다. 다른 얼굴들, 다른 목소리들, 다른 유령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시는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시는 불멸하지 않을 것이다. 시는 나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시 이외에 다른 자식을 기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애를 낳았고 그 애는 나를 낳았다.

우리는 교차로에서 마주쳤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들어올렸다. 하늘은 피처럼 붉었다. 아이를 낳은 유령들, 아이와 함께 시를 버린 유령들.

나는 이제 시를 쓰지 않아. 읽지도 않고. 여자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유년의 자폐적인 감실을 벗어났다는 듯 유쾌하게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시를 쓰지도 읽지도 않는다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헤어졌고 나는 다른 얼굴들, 다른 유령들과 함께 홀로 남겨졌다.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것을 그만두고 지방 공모전들에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작은 대회들에 마구잡이로 투고했다. 내가 쓴 시들은 질식할 것처럼 많았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그저 시들을 무작위로 선별해 메일로, 혹은 지랄맞게도 우편으로 보내는 일뿐이었다.

몇몇 곳에서는 소식이 있었다. 장려상, 혹은 동상이었다. 그들은 내게 수상작품집도 보내주었다.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들을 나는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요 문예지에서 모든 응모자들에게 보내준 수상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한 것은 내가 그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문장들을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언어는 내 토막난, 피 흘리는 문장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날개가 찢겨져나간 곤충처럼 피를 흘리며 수상작품집의 페이지들을 넘겼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이해불가능성으로 벌어진 거대한 상처를 그러쥔 채 울고 있었다.

내가 흐느낄 때 내 작은 아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지방 공모전들에서 받은 상금으로 그 애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삶에는 불태워 죽일 가치조차 없을지 모르나 불타 죽어가는 고통만은 진짜다. 생생하게 타들어가는 아픔을 느낀다.

내 시들은 모두 다른 시들을 위한 제물들이다. 오로지 자기 트릭을 알리기 위해 자살을 타살로 위장한 무명 추리작가에 대한 이야기. 그는 하나의 반짝이는 트릭만을 가지고 상경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트릭에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의 문장을 빌어 자신의 트릭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작업을 사건 면의 신문 기자들에게 맡겼다. 그는 동물원 우리에서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다. 사자에게 뜯어 먹히는 것이 그의 트릭이었던 것이다. 몇몇 기자들이 그의 트릭에 대한 기사를 써서 월급을 받았다. 그의 트릭 이후에 대한, 죽음 이후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사실 대단한 트릭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광신적으로 그의 트릭을 믿었고 그 트릭을 발표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내 시 역시 별 볼 일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는 끔찍하게 아팠고 나는 빌어먹을 트릭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몽유병에 걸린 채 달의 표면을 쏘다니는 작은 먼지들처럼. 나는 시를 쓰는 일을, 삶을 그만둘 수 없다. 그 모든 것에는 고통만큼 큰 가치가 없다. 눈을 감고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다.

아이는 자신의 그림자처럼 나날이 길어진다. 난 시인이야.

얘야. 그러니 난 곧 죽을 거야. 너는 아무도 없는 삶을 견딜 줄 알아야 해.

아이는 울면서 내게 죽지 말라고, 시를 쓰지 말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시를 쓰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시를 쓰는 건 물을 마시는 일과 같단다. 시를 쓰는 건 독이 든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단다. 모든 물에는 독이 들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

아이는 거미처럼 검고 큰 머리를 가졌다. 우리는 교차로에서 만났지만 반드시 그곳에서 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목이 긴 그림자가 아이를 쓰다듬고 있다. 아이가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죽을 듯이 놀랐다. 그 애가 검고 큰 입을 가진 여자들을 칼로 찍어 살해하고 있었다.

나는 왜 여자들을 죽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여자들이 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왜 여자들이 괴물이냐고 물었고 아이는 짜증스럽게 더 묻지 말라고 말했다.

왜? 왜 나는 네게 질문하면 안 되는데? 넌 언제나 내게 물어보잖아. 내가 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너는 매일 나에게 물어보잖아.

아이는 말 없이 여자들을 칼로 찍고 찢어 죽이고 있었다. 여자들은 물감 같은 붉은 피를 터뜨리며 죽었다. 아이는 내가 곤충을 죽이듯 화면 속 여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풀을 엮어 팔찌를 만들 듯 여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이가 여자들을 죽이듯 나는 곤충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앞에서 구역질했다.

우리는 곧 화해했다. 아이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나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아이가 내 무릎을 베고 잠든 동안 나는 아이가 하던 게임을 이어서 했다. 노트북은 거북스러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검고 진진한 열기가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나는 화면 속에서 죽어가는 여자들이 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살해하듯 여자들을 죽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수월해졌다. 거북스러움도 점차 가셨다. 그러나 여자들은 수없이 죽여도 계속해서 나타났다. 나는 죽은 여자들 위에 살아 있었다. 나는 죽은 여자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언제까지 여자들을 죽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대체 이토록 끔찍한 게임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죽은 여자들을 위해 시를 쓰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아이가 게임 속 여자들을 죽이듯 곤충을 죽이게 될 것이 두렵다. 내가 곤충을 죽이듯 아이가 나비의 날개를 찢어 죽여버리게 될까 봐 두렵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곤충을 죽여야 한다. 벌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 두렵다. 아이가 두렵다. 사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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