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11일

지금은 12일 밤이지만 나는 어제의 일을 쓴다. 어제의 언어가 비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애에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새벽까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등교할 시간이 되어 학교에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 애는 아마 실수로 메일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 메일을 쓰고난 뒤 지우려고 하다가 실수로 엔터키를 눌렀던가 했겠지. 난 관대하게 그 애의 메일을 잊기로 했다. 그 애의 메일을 삭제하고 휴지통에 들어가 있는 메일마저 영구삭제한 뒤에야 나는 그 애의 메일을 지운 것을 후회했다. 내가 지운 것을 그 애는 알지도 못할 텐데!

그 애는 점점 내밀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애가 자기 자신을 설명한 내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까 두려워 급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난 디저트로 나온 컵케이크 두 개 중 하나를 그 애에게 주었다. 컵케이크는 검게 그을은 갈빛이었고 끔찍하게 달았다. 하지만 그 애는 좋아했다. 컵케이크 종이에 들러붙은 빵가루까지도 그 애는 생선뼈를 바르듯 신중하고 집요하게 떼어 먹었다.

나는 검은 파충류가 혀 속에서 기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 애에게 어째서 엄마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창백한 검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서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엄마가 쓴 시를 봤기 때문이야. 난 엄마가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힌 푸르고 붉은 촛불을 불면서 어떤 소원을 비는지 알고 있어. 엄마는 나처럼 이기적이지만 자기 우울에게는 자못 헌신적이지. 엄마가 생일날 비는 소원은 영원한 행복도 건강도 아니야. 난 알고 있어. 엄마가 쓴 시를 읽었으니까. 엄마는 차라리 깊고 끔찍한 병을 기다리고 있어. 엄마가 앓고 있는 병이 엄마의 얼굴까지 뒤덮고 올라오기를, 그것이 엄마를 교수대로 데려다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엄마의 얼굴을 뒤덮은 사형수의 표식을 보고 사형 집행인이 엄마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사형 집행인으로부터 잊혀진 실종자-사형수들과 죽음의 유예는 엄마의 오랜 시 테마지. 난 엄마의 시를 읽고 읽고 또 읽었어. 그런데도 엄마가 쓴 시를 전부 읽을 수는 없었지. 엄마는 믿을 수 없이 많은 시들을, 정말 진저리날 정도로 많은 시들을, 결국 단 한 편도 발표되지 않을 시들을 썼으니까. 우리는 언젠가 그 희고 얼룩덜룩한 시 노트에 잠겨 질식사하고 말 거야. 하지만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먼저 엄마가 죽게 되겠지. 엄마는 내가 엄마의 유지를 이어 엄마를 카프카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할 테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엄마도 내심 그걸 알고 있을 거야. 엄마의 시는 엄마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지 못할 거야. 이것도 엄마의 시에서 읽은 내용이야. 셔츠에 묻은 물감을 표백하듯 그 지나친 민감함과 절망적인 희망을 희게 지워 버릴 수만 있다면.

그 애는 컵케이크의 갈색 설탕 가루가 묻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애는 자신의 배역을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는 어떻냐면, 나는 나의 배역을 닮았음에도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나는 하나뿐인 배역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피를 흘리고 있다. 내 병든 비밀은 행복의 살해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의 행복을 살해하였지만 그를 대체할 쾌락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새벽은 살갗 속으로 파고들어 나를 울게 만든다. 얼굴과 머리 사이의 흉터가 열리고 우유 같은 피와 은빛 뼈가 드러난다. 그 애는 얼굴을 그럭저럭 잘 간수하고 있다. 얼굴의 뒷면은 부패했을지언정 앞면은 맑고 부드러운, 밤의 장미 빛깔이다.

우리는 밤까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운동장 뒤편 놀이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빛을 열망하는 장미처럼, 혹은 곧 잃어버릴 날개를 가진 나방처럼 그 애는 가로등의 흰 빛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혼자라는 걸 알았어. 그 애는 말했다.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라고, 그 애는 말했다. 그 애에게는 많은 숨겨진 친구들이 있다고. 반의 친구들은 그 애를 모른 척하지만 곧 그 애에게 다가와 그 애를 교실 중앙의 환한 무리 속으로 데려갈 거라고. 그 애는 내가 그늘의 대용품이라는 듯 그렇게 멋쩍게, 하지만 오만하게 이야기했다. 넌 우리 엄마를 닮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난 시를 쓰지도 않을 거고 부패한 비밀을 끌어안고 수난을 겪지도 않을 거야. 목적 없는 수난은 병신 같아. 곪은 비밀을 전부 토해 버려! 그럼 다른 친구들이 너도 받아줄 수 있으니까. 그 애는 내 손을 맞잡고 다정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그 애의 손은 땀으로 흥건했고 야만적인 언어는 엄숙한 비밀을 은폐하고 있었다. 대체 그 애는 무엇 때문에 불가능한 다른 곳을 그토록 바라는 것일까. 그 애의 다른 곳은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더욱 괴로운 것이다.

나는 그 애가 안쓰러웠다. 그 애의 악취는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었다. 악취가 내게도 배어들고 있기 때문이겠지. 여름의 주민들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차가움에 대한 갈수록 더 거칠어지는 목마름으로 비명을 지른다. 그들은 눈을 열망하며 태양 아래 부패해 드러난 짐승의 하얀 뼛조각을 음울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사물은 다른 사물을 닮아가고 또 낯설어진다. 눈은 뼈를, 입술은 장미를, 새벽은 죽음을 닮아간다. 나는 그 애를 닮아 가고 그 애는 나를 닮아 간다. 곧 그 애는 다른 친구들에 대한 상상을 포기하게 되리라. 환상은 닳고 닳아 메마른 뼈를 드러낼 것이다. 내게서는 그 애와 같은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나는 그 애를, 무엇보다도 그 애의 엄마를 닮아갈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에 대해 나는 지나치게 골몰하고 있다. 마치 그녀가 나 자신의 미래인 것처럼. 그녀가 기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가 영원히 행복하지는 않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녀가 아름답기를 바란다. 그녀가 밤에 흔들리는 언어처럼 불안스러운 위장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녀가 죽음의 세심한 펼쳐짐을 나와 함께 응시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녀가 생살을 절개하는 잔혹한 살해자처럼 글을 쓰기를 바란다. 이미 죽은 사물을 해부하는 비겁한 집도의처럼 글을 쓰는 대신.

죽음과 생명 없이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만 고착하는 글쓰기도 있다. 그녀는 죽음보다는 생명 위에서 위태롭게 글을 쓰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시를, 그녀가 파멸과 고통을 닮은 시를 쓰기를 바란다.

나는 그 애의 육체에 대고 시를 쓰듯 날카롭고 오염된 말들을 늘어놓았다(하지만 육체는 이미 주름 투성이의, 오염된 종이이다). 난 시로 무언가를 죽이고 싶다고. 나는 살해와도 같은 글쓰기를 원한다고. 그러니까 생명이 없으면 나는 글을 쓸 수 없어.

그 애는 내 글쓰기에 제물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제물은 거의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고, 무엇보다도 나의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난 시로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 하지만 나 자신의 살해에 대해, 내 행복의 살해에 대해 수사하는 경찰은 어디에도 없었지. 그건 죄였을지 몰라도 범죄는 아니었어. 난 나의 시 때문에 감옥에 가기를 바랐지만, 나의 시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처벌을 받기를 원했지만, 절개되고 낭비되고 탕진되고 살해되고 강간당했으며 병든 내 언어를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내 시로 나를 진단하려는 사람조차 없었어!

나는 세계의 마지막 시, 혹은 최초의 시를 쓰듯 그 애에게 이야기했다. 밤의 공백으로 서서히 흡수되어가는 언어의 고유한 밀도가 육체 없는 말처럼 떠돌고 있었다. 몇 개의 어휘는 그 애의 피부에, 내장 밑에 새겨졌을까? 어쨌든 그 애는 나를 귀기울여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애는 나처럼 말할 자신이 없다고-자못 자랑스러워하는 어투로-말하며 할 수만 있다면 자기 피부를 들어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네가 내 피부 아래 글을 쓰길 원해.

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 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네 몸은 곧 내 언어를 잊게 되겠지. 시는 망각을 따라 흐르겠지. 몸이 망각되는 순간, 무수한 입자들의 소용돌이로 흩어지는 순간, 시 역시 사라지고 말겠지.

달은 수은처럼 유독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애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두 개의 그네에 두 개의 몸을 놓아둔 채로 이음매가 떨어져나간 언어들을 내뱉고 있었다. 대부분의 언어는 검고 축축한 바닥에 떨어져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으며 몇 개의 언어는 밤과 달의 눈동자 속으로 서서히 흡수되었고 오직 몇 개의 희미한 언어만이 머지않아 죽을 우리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애는 나보다 먼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 애를 붙잡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으나 그 애와 함께 길을 나서지는 않았다.

그네 한쪽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하나의 몸을 하나의 그네 위에 얹은 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 시와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공모관계는 결국 나를 살해하고 말 것이다. 어째서 육체는 독이 섞인 물이라도 들이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이 독임을 알면서도 어째서 육체는 독이 든 물을 원하는 것일까?

밤을 짓무르며 번져나가는 새벽까지 나는 그네 위에 앉아 표류하고 있었다-하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나는 희멀건 머리를 들어올린 채 빛을 향해 곪고 있었다. 상처에 구애하는 가시, 가시로 뒤엉킨 붉은 상처, 밤은 더 이상 별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요구하지도 않았다. 분해된 붉은 원과 푸른 사각형, 검은 직선들과 흰 빛의 오각형, 함몰된 초록색 육각형들이 빛을 향해 번져나가고 있었다. 태양은 종처럼 부풀어오르는 해파리와 같았다.

파울 첼란의 착취당한 그림자가 모래구덩이 안에 처박혀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묻을 무덤을 파내고 흙을 파내고 벌레들마저 파내고 그림자도 파내고 마지막으로는 죽음마저 파내었다.

그 속에서 자는 법을 가르쳐줘. 나는 모든 것을 파내는 그의 그림자에 대고 속삭였다.

그는 자신이 판 검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를 만졌을까?

나는 그를 향해 애원하듯 속삭였다. 자는 법을 가르쳐줘. 너를 만지는 방법을 가르쳐줘.

지금 여기는 있는데 그곳에 나는 없다. 빛은 나를 요구하지 않는데 가시는 계속해서 빛을 향해 자라난다. 빛은 나를 곪고 추하게 만드는데 가시는 계속해서 빛을 향해 얽어간다. 사방이 엷은 막이고 사방이 피투성이 상처이다. 가시에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상처에서 목소리가 흘러내린다. 침묵의 틈을 따라 미끄러지는 밤의 목소리들.

파울 첼란은 그의 양손과 맨발에 박힌 은빛 못과 함께 떠나갔다. 투명한 피를 질질 흘리면서. 나는 등교할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네 위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의 죽음조차도. 아무도 나의 죽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밤의 구속으로부터, 어둠의 인력으로부터 해방된 별들은 가장 끔찍한 자유이다. 그것들이 선고받은 죽음 같은 자유 때문에 별들은 이미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것들의 희미한 흰빛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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