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3일

i11년 3월 3일

머리가 조약돌처럼 둥글고 새까만 남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에 앉았던 자리, 맨 끝 줄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이야.

그 애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화문을 읊듯이 말했다. 그 애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애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점심 시간 이후로 계속 그 애를 관찰했다. 그 애에게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반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 애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눈을 찡그리거나 미소를 짓거나 홀로 키득거리거나 했다. 아무도 그 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는데도.

아니, 나는 그 애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끝내 그만두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그 애는 다시 내게 다가왔다. 내가 그 애를 바라보는 동안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을 관찰했는데, 결국 그 애가 말을 거는 대상은 나였다. 그 애는 파고들 틈을, 빈자리를 원했던 것이다.

그 애는 같이 하교하자고 말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 애와 함께 교실문을 나섰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그 애의 실내화가 더러운 잿빛이라는 걸 알았다. 내 실내화는 아직 흰색이었다. 난 그 애가 더러운 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애와 함께 하교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떤 아이기에 아무도 나와 함께 하교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그 애에게 언제부터 혼자였냐고 물었다. 그 애는 웃으면서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목소리,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있어, 유리. 너는 못 들었어?

난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 나도 들었어.

목소리. 하지만 어떤 목소리를?

그 애의 발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어른 것처럼 컸다. 그 애는 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다.

난 시인이 되고 싶어. 나는 병자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어.

그 애는 내게 무슨 시를 쓸 거냐고 말했다.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 지금까지는 어떤 시를 썼는데?

그 애는 마치 내 발표를 듣지 못했다는 듯 말했다.

나는 떨어져 죽은 비둘기와 아스텍의 희생자들-사실 아직 쓰지 못했다-에 대해 썼다고 했고 그 애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의 턱 밑은 검고 더러웠다. 그 애에게서 물비린내가 났다. 그 애에게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애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애는 대체 몇 명의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을까? 몇 명의 아이들이 그 애와 함께 하교하는 걸 거절했을까? 몇 명의 아이들이 그 애가 새처럼 혹은 수다쟁이 물고기처럼 중얼거리는 걸 무시했을까? 아마 그 애는 내게 마지막으로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 애는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구김살 없이 밝은 아이를 좋아할 것이다. 연한 노란 색의 보석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 혹은 병아리처럼 여리고 밝은 색의 솜털을 가진 남자아이를 좋아할 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애를 무시하지 못한 것이 모멸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다. 그 애는 자기 엄마가 시인이라고, 그래서 곧 죽을 거라고 침울하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은 녹아내린 눈으로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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