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30일-4월 2일, i11년 11월 30일, i11년 12월 1일

i11년 3월 30일

유원지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유치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귀신의 집 안에서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손을 꼭 붙잡고 걸었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뒤따라 걸었다. 내가 그 애들을 훔치고 있음을 들키지 않도록.

귀신들은 하얗게 벌어진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거나 웃었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그들을 지나쳐 걸었다. 어둡고 어지러웠다. 찢어진 천막들로 뒤덮인 통로들은 여러 갈래로 나 있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맸다. 귀신들은 내게 길을 안내해주지 않았다.

창백한 붉은 피로 뒤덮인 검은 거울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은 모두 길처럼 보였으나 길이 아니었다. 검은 거울들은 개처럼 짖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나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단다.

나를 닮지 않은 내 오빠는 내 몸을 만지길 원했어. 내 성기를 보여줄 테니까 네 걸 보여줘.

핀셋에 사지가 고정된 채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가엾은 개구리를 들여다보듯 그는 잔혹한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고 나는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 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어. 검붉게 늘어진 암소의 음부, 부패한 검은 고기, 독충이 들끓는 비만한 창자. 내 뼈는 그대로였는데 내장만이 견딜 수 없이 부풀어올라서 메슥거렸어. 날카롭고 단단한 하얀 뼈에 찢기고 파열하는 내 창자. 내가 그 빌어먹을 호기심 어린 눈을 거절했을 때 오빠는 내 이불보 밑에 껍질을 벗긴 새끼 쥐를 집어 넣었고 불쌍한 쥐를 사산한 나는 집에서 쫓겨났어.(피부가 벗겨진 살덩어리가 내 허벅지 사이에서 얼마나 끔찍한 속도로 경련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애틋한 온도로 발열하고 있었는지 나는 죽고 난 뒤에도 잊을 수 없었어. 나는 내가 정말 그 애의 시체를 낳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 애는 내 자궁 속에서 살지도 죽지도 않았지만 나는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로 그 애를 낳은 거야. 내 부모는 그 애를 묻었을까? 오빠는 그 애의 더럽고 연약한 잿빛 가죽을 벗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벌거벗겨진 채로 숨어 들어간 비좁은 골목에서 나는 늙고 왜소한 배우를 만났어. 그는 멍하고 축축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지. 제발 나를 죽이지 마세요. 제발 나를 쫓아내지 마세요. 선생님. 내게는 갈 곳이 없어요. 나를 죽일 거라면 유령으로 만들어 주세요.

한참을 중얼거린 뒤에 그는 흐느끼면서 주저앉았어. 그는 물기가 빠져 쭈그러든 늙은 그림자처럼 보였어.

그 사람은 결국 나를 유령으로 만들지 않았어. 그는 이렇게 말했어. 하지만 나는 유령이 되고 말았지. 무대에서 추방당한 유령, 배역을 잃고 살해당하고도 살아 있는 유령. 난 무대 바깥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 처음 극단에 들어갈 때부터 배우 일이 내 천직이라는 것을 알았지. 연기를 하지 않는 삶,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는 삶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삶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거야.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의미와 가치를 찾아 헤매지. 그게 모래로 만들어진 성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홀로 쓰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래성 말이야. 내 삶은 모래성과 같아. 아가씨. 나는 끔찍하게 공을 들여서 거대한 성을 쌓았는데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말았지. 난 더 이상 다른 성을 쌓을 힘이 없어.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 주세요.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각본가는 어쩔 수 없다고 했어. 내 죽음은 극에 있어 결정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내 죽음은 그 극에 있어 전혀 결정적이지 않은 것이었어. 당신은 가장 좋은 시기에 좋은 방법으로 죽는 겁니다. 관객들은 당신을 기억할 거예요.

나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순간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방법으로 죽었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어. 누군가 나를 기억했다면 다시 무대로 불렀겠지.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었어. 무대에서 쫓겨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 아가씨. 내가 공연한 게 희극이었는지 비극이었는지 맞출 수 있겠나?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극이었을 거라고 말했어. 왜냐하면 모든 비극이 그 나름대로 희극이듯 모든 희극은 그 나름대로 비극이니까. 그래. 희극이 희극적이고 비극이 비극적인 만큼이나 희극은 비극적이고 비극은 희극적이지. 배우는 내가 맞췄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아마 그도 자기가 연기하는 게 희극이었는지 비극이었는지 알 수 없었을 거야. 그런 건 특수한 몇몇 관객밖에는 알아차릴 수 없는 거니까.

이걸 봐. 그는 입술 끝에 맺힌 유백색의 거품을 검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어.

더, 더 자세히 봐. 나는 그의 입술 가까이 눈을 들이밀었고 그는 웃으며 알겠냐고 물었지. 그의 거품들은 웃고 있었어. 그는 입가에 맺힌 하얀 거품들을 고깃덩이처럼 주무르며 울었어.

관객은 없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어.

관객은 없었어. 내가 배우라는 것을 증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내가 배우였다는 것을 증언해줄 사람은, 나를 증언해줄 사람은. 그러니까 내가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일지도 몰라. 나는 훌륭한 배우였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그렇지 못했지. 내 연기는 사실이 될 수 없었으니까.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이 되지 못했던 거야.

내가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살려달라고 중얼거리며 울었어. 아마 살려달라는 말은 나에게 하는 애원이었을 거야. 그의 유령을 목격해달라고. 그리고 증언해달라고, 그래서 그의 존재를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그는 내게 애걸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겨울은 추웠고 나는 끝까지 견디지 못했어.(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지.)

유령이 된 뒤에 나는 그를 떠났어. 난 그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지만 아마 그는 알고 있었을 거야. 유령은 유령을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을. 난 엄마와 아빠의 꿈 속에서 오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설명하려 애썼어. 그 꿈이 내 부모의 꿈이었는지 내 꿈이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엄마나 아빠가 욕실의 거울을 바라볼 때, 나는 검게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지. 그 애는 내 자궁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당신들은 나를 그렇게 쫓아내어선 안 되었다고. 어린 쥐의 피부를 벗긴 게 누구인지 아느냐고. 부모는 그 악몽을 끔찍하게 여겼어. 그뿐이었어. 그들은 악몽이 사실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 검은 거울은 희게 벌어진 입으로 구역질을 하듯 속삭였다. 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 알고 있어. 거울은 말했다.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i11년 11월 30일

그 애에게 보낸 시들을 모아 보았다. 시들은 비누거품처럼 내 입을 막는다. 나는 시가 우리의 끝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너를 구할 수 없었던 시. 그 애는 내가 보낸 시들을 읽기는 했을까? 나는 답장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네게 계속 시를 보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일이 필요하다는 듯. 그러나 내가 증명한 것은 결국 너의 부재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나를 배신하는 언어인가?

멸종된 동물의 서 – 나비의 물방울

감히 누가 흘러가라 충고하는가. 못 위에 자글자글한 파문을 찍어대며 발버둥치는 벌레들, 우아히 잠겨들지 못하고 떠올라버린 그 많은 다리들을 보고서도?

봄을 잃은 나비들은 뜬 눈으로 봄을 지샜다. 이상한 계절이다.

노랗게 변색되어버린 시절을 직감한 너희는 이상기후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낯선 종말을 그리는 사이 번데기에 초록 장마가 고여들었다.

차게 식은 너희 번데기를 찢어내고 나왔을 때, 갓 태어난 몸들은 쭈글쭈글했다.

오래 고여 늙은 태반을 벌려내고 나왔을 때, 세계는 여직 노랬다. 봄이었다. 게다가

긴 장마였다. 젖은 날개는 펼쳐지며 찢겨버렸고

초록 웅덩이에 잠겨든 나비는 날기 전에 헤엄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물고기마저 익사하여 물귀신이 되는 사이

거슬러 물차지 말거라. 그저 흐르는 대로 두어라. 가라앉거나 떠올라서는 안 된다.

이제는 멎은 바람이 일러주었던 대로

나비들은 장마를 흐르고 있었다.

장마 향기가 장마 냄새로, 장마 비린내로 변해가는 동안

장마를 살았던 나비들에게선 어찌할 수 없는 장마 비린내가 났다.

여름이 되면 창공에서 질구를 벌리고 꽃가루로 수태해야 할 나비들을

봄꽃들은 외면하였다. 까탈스러운 신들은 메스꺼워 겁간하지 않았다.

차마 잊을 수 없어서 말끔히 잘라내지도 태워버리지도 볕에 소독하지도 못하고

축축한 그대로 이상기후가 냉동시켜서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이 늘러 붙은 장마 비린내

점차 꿉꿉해져가는 안개 비린내 감히 말릴 수 없어서 젖은 채로 얼려 버려서 계속 차오르는 장마 비린내

비리다고, 장마 비린내가 난다고, 바람은 너희를 쓰다듬지도 않았다. 노란 곰팡이로 물 오른 나비들은 신화 대신 기생충을 뱄다. 꿈틀 꿈틀 꿈틀 버둥대는 다리들 어제 태어난 다리들 오늘 돋아난 다리들 내일 부러질 다리들 그 많은 다리들을 너희는 전부 낳았다.

날갯죽지 간질이는 다리들이 너무 가려워서

평생을 앓던 계절이 너무 지겨워서

이제는 봄잠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번데기는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돌아갈 계절을 잃은 나비들은

마른 번데기 비늘을 덮고

익사한 번데기를 춘몽하였다

살아서 잊을 수 없는 계절로

잃어도 버릴 수 없는 계절로

날개를 접고 기어들어

꿈조차 없이 몽상하였다.

여름 아이들이 철없이 떼어내던 백일홍의 은밀한 삶을

겪은 적 없는 봄이 치사스러워서 짓뭉개버린 붉은 꽃잎을

숨긴 적도 들킨 적도 없이 시들어가는 새콤한 계절

여름도 가을도 되지 못하고 늙어가던 계절

유독 그러했던 계절

너희 봄을

날 적부터 유령인 봄 나비들

잘린 발을 질질 끌며 기어가는

안개 낀 날개는 끝내 젖은 채로

다시 날 수 없는 지독한 계절이 깨어난 계절

유복자

아버지, 나 아버지를 낳으려구

아버지의 아버지를 낳으려구

끈적한 질구에 대가리를 밀어넣구

닫힌 음문을 설웁게 파고들구

올챙이처럼 꾸물꾸물 헤엄쳐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낳지 않으려구 나

아빠를 낳지 않으려구

눈부심

눈부셨던 너희는 검게 그을고 하이얀 너희는 눈부시다. 그을면서도 눈부신 볕이 참, 눈부셔서 너는 울었는데. 왜, 흰 피부가 아까워서 그저 눈 부시고 마는 거니. 아니, 아쉽지도 않은 볕은 다 태워내고 말았는데도 눈 부신 적 없이 희다. 하얀 재가 더럽고 치사스러워서 여직 흰 가죽을 더럽히고, 그 흰 분 아래 무얼 숨긴 거니? 그을지 못해, 타들지 못해 하얀 재투성이랍니다. 하얀 재가 가린 하얀 피부엔 관심이 없나요. 그래, 별로 눈부시지 않구나. 희다고 모두 눈부신 건 아니지. 오래 묵은 유골이 어찌할 수 없이 창백하듯, 뼛가루로 치장한 노배우가 어찌할 수 없이 파리하듯, 눈부신 너희는 그을면서도 눈부시단다. 다만 눈부신 너희는 눈부시지 못하면서도 눈부시단다. 눈부신 적 없는 너희는 영영 눈 부시지 못할 텐데도, 그래도 눈부신 걸 어떡하나요.

쉽게 타들어가는 너희를 질투한다. 검게 마른 입술을, 볕내음 진동하는 이파리들을, 한철 눈부셨다 부서진 향기를. 그게 따갑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눈부신 적 없다면 그저 눈 부시게 한 적 없다는 고백일 뿐이다. 축축한 안개에서 평생을 머물렀던 너는 그은 적 없이 희었는데, 하얄수록 눈부시다던 노랫말과는 달리, 너는 너희 까무잡잡한 낯만 눈부실 뿐, 못 태워낸 너는 찰나 눈 부신 적도 없이 가물고 있다. 핀 적 없이 저물던, 피지 못해 시들던, 차라리 시들지 못해 피어나던 피부엔, 마르지 못한 장마가 수포로 피어난다. 물집마다 갇힌 해그늘에선 장마 비린내가 난다. 내리지도 못하고 피어버린 물방울들을 모조리 틔워내고 흠씬 젖어버린 피부는 끝끝내 희었다. 진저리나게 희다.

i11년 12월 1일

시를 포기해야 한다. 미치지 않으려면. 너는 네 어머니의 시를 견딜 수 없어서 사라진 것인가? 너는 내 시를 견딜 수 없어서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너는 너의 시를 견디지 못해 사라진 것이다. 혹은 너의 시를 견디기 위해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미쳤고 미치기 위해 살았고 그러므로 시를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와 시의 사이를 메꾸려다 그만두었다. 여백을 메꿀만한 언어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네가 사라졌기 때문에, 여백을 메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언어를 그 안에 우겨넣어도 여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답장을 보내주었다면 시와 시 사이의 여백은 얼마든지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네가 보내지 않은 답장을 나는 결코 대신 쓸 수 없다.

i11년 4월 1일

붉은 것 위에 붉은 것을 더한다. 나는 붉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상상의 혼합 작업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붉은 것 17퍼센트와 붉은 것 39퍼센트. 책상 아래에서 무엇이 헤엄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실내화를 질질 끌어 상상의 선을 만든다. 붉은 것 위의 붉은 것, 하얀 것 위의 하얀 것.

유치원에서 하듯이 당장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반 아이들의 생일마다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은 원하는 아이에게 입맞춤을 받을 수 있었다. 작은 결혼식 날 나는 그 누구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다섯 명의 붉은 것과 다섯 명 분의 붉은 것을 겹쳐 놓고 세 명 분의 하얀 것과 세 명 분의 하얀 것, 일곱 명 분의 검은 것과 일곱 명 분의 검은 것. 색상이 녹아붙지 않도록 잘 저어야겠지.

우리는 길고 투명한 베일을 쓰고 웨딩 마치를 할 것이다. 하객들은 놀랄 것이다. 우리는 다섯 명 분의 붉은 것과 다섯 명 분의 붉은 것, 세 명 분의 하얀 것과 세 명 분의 하얀 것, 일곱 명 분의 검은 것과 일곱 명 분의 검은 것을 모두 섞어 놓을 것이므로.

남자아이들의 하얀 손이 내 이마 위에서 불쑥 솟아나오면 나는 거울을 보며 웃을 것이다. 거울은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거울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신은 조각난 사탕을 씹어 삼키듯이 나를 씹어삼킨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색채들이 혼합된 위험한 비밀이고 신의 입 안에서 그의 목을 할퀴며 내려간다. 작은 유리 파편처럼. 그러나 신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상처입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신을 상처입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수십만 마리의 파리들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다. 어리고 가엾은 쥐들의 껍질을 벗길 준비가, 하얀 나비들의 날개를 찢을 준비가 되어 있다.

신은 나를 벌하기 위해 올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물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는 내 목을 조르는 그녀의 손길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나를 자비와 탐욕으로 내려다보는 그녀의 검은 얼굴을 올려다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의 붉은 것과 붉은 것을 더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웃을 것이다. 우리는 붉은 것과 붉은 것을 서로의 입술 위에 덧바를 것이다. 우리는 입을 맞출 것이고 우리는 벌과 용서를, 죄와 구원을 잊을 것이다. 우리는 붉게 젖은 입술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속삭일 것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만 대화할 것이다. 우리는 쓸 수 없는 것을 쓰고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으며 불가능한 것들을 애달파할 것이다.

우리는 불가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것이 되어갈 것이다.

i11년 4월 2일

곧 중간고사다. 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중간고사 대비용 문제집을 샀다. 시험지처럼 긴 종이들이 철해져 있는 문제집이다. 문제들을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등교하기 전에 사온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 몇몇 아이들이 내게 비밀 쪽지를 전달하듯 문제지를 전달했다. 그 애들의 학원숙제였다. 채점될 것이나 내게는 답이 알려지지 않을 문제들을 나는 다소 치욕스럽게 풀었다. 아이들이 은밀하게 건넨 문제들은 교사나 학원강사가 내 주는 숙제보다 더 큰 중압감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여백은 위협적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에게 순응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 풀기를 거부할 수 없었다.(물론 난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 애들이 나를 비난하거나 때리거나 아무짓도 하지 않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애는 문제집을 푸는 나를 돕지 않았다. 문제들은 내게 요구된 것이었으므로.

쉬는 시간에 답을 알 수 없을 문제를 푸는 내 옆에서 그 애는 피부를 벗겨낸 노파의 이야기를 했다.

그 애 : 무두장이가 피부를 벗기는 동안 노파는 도망치고 싶었을까?

나 : 어디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해. 처음 피부를 벗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노파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거야.

그 애 : 어쩌면 피부를 벗기기 전부터.

나는 문제집의 여백에-물론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학원 숙제가 아닌-대본을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노파 : 내가 너무 늙어서 나를 쫓아낸 거라면 내가 젊어지면 되는 거겠지. 간단한 일이야. 너무나 간단한 일이지. 난 곧 갓 태어난 아이처럼 붉고 여린 피부를 가지게 될 거야. 누군가 나를 돌보기 위해 젖을 내밀지도 모르지. 내 입 속은 어머니의 언어를 원하고 있어. 내 입은 아직도 어머니의 언어로 축축해. 나를 벗기고 내가 아닌 것을 사는 거야. 혹은 내가 아닌 것을 벗기고 나를 사는 거야.

고통은 두렵지 않아. 사는 건 언제나 고통이었으니까. 추억조차도 내게는 안전한 영토가 아니었지. 나는 갑각류의 등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그들의 등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녹아내린 비누의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그들의 젖을 빨고 싶어. 나는 그들이 얼마나 다정한 내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그들의 창자에서 얼마나 고소한 하얀 맛이 나는지 알아. 나는 아무도 강간하지 않고 안고 싶어. 나는 아무에게도 강간당하지 않고 안기고 싶어. 나는 아무도 착취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

(과장된 연극조의 목소리로)나를 사랑해 주겠어요? 하고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코웃음을 쳤지.

너처럼 늙은 갈보를 누가 원하겠어? 그래,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어.

난 창녀가 아니에요. 놀랍게도 난 아직 처녀랍니다.

그러자 남자는 말했어. 너처럼 늙고 못생긴 갈보는 남자 경험이 없더라도 처녀일 수 없어. 처녀는 어리고 모욕하기 좋은 여자들의 이름이지 너 같은 갈보의 이름이 아니야. 이미 악몽과 죽음이 너를 강간했으니, 너는 처녀일 수 없어.

그는 내가 젊을 때조차 처녀인 적이 없음을 알려주었어.

나는 그가 처녀이며 또한 창녀라는 것을 알고 있지. 처녀와 창녀가 모두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의 말처럼 나는 처녀가 아니지만 늙은 갈보도 아니야. 내 악몽과 죽음은 나를 강간하지 않았어. 그것들은 내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지만 한 번도 내 안을 파고든 적은 없지. 그것들은 내가 아닌 내 빈 공간에서 나를 멀거니 지켜보고 있는 타자지.

노파는 거리를 헤매며 그녀를 벗겨내줄 남자들을 찾아 말을 건다. 남자들은 그녀의 손짓에 고개를 젓거나 코웃음을 친다.

노파 : 나를 벗겨내줘요.

무두장이 : (비웃으며) 뭘 벗기라는 거지? 그 더러운 옷을?

노파 : 내 피부 말이에요. 나 혼자서 할 수는 없어요. 그건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자, 원한다면 내 목걸이를 가져요.(목걸이를 풀어내는 시늉을 한다. 그것을 무두장이에게 건네준다.)

무두장이 : 아무것도 없잖아. 이 여자 돌았군.

노파 : 어떤가요? 난 봄의 꽃처럼 붉고 싱싱할 때 이빨들을 뽑았죠. 그때는 돈도 받지 않고 내 이빨을 뽑아주겠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았어요. 난 그들 중 한 명에게 내 턱을 맡기면 되었죠. 신경 다발과 뽑힌 이, 검고 텅 빈 잇몸의 구멍,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이건 너와 나의 추억이 될 거야. 내 이를 뽑아내던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어요.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달콤한 미소는 생각나는군요. 나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그와 함께 몇 개의 이를 더 뽑았어요. 뽑아낸 이들은 하얗고 매끈매끈했어요. 창백한 물 속에서 익사해가는 아름다운 진주처럼. 나는 언젠가 지금이 올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뽑았던 거예요. 내 이는 언젠가 전부 빠질 것이니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뽑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봐, 결국 이렇게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당신은 내 이들이 마음에 든 눈치군요. 젊고 생기 넘치는 뼈들이. 아주 하얗고 맨들맨들하죠, 그렇죠? 부드럽게까지 느껴질 거예요. 썩고 누런 이가 빠져봐야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겠죠. 그런 이들은 쓰레기통과 하수구, 진창밖에는 갈 곳이 없어요. 하지만 미리 뽑아놓은 이들은 보석처럼 가치있죠. 내 젊은 뼛조각들로 만든 목걸이를 줄 테니 내 피부를 벗겨 줘요. 벗겨낸 피부는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늙고 쭈글쭈글한 가죽이라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죠. 가죽옷을 만들어 입거나 가방을 만들거나 구두를 만들거나 벨트를 만들거나 당신 마음대로 해요. 원한다면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버려도 좋아요.

무두장이 : (웃으며) 좋소. 당신 원하는 대로 하지. (독백)정말 친절한 이웃이지, 나는. 저 미친 노파를 상대해주고. 분명 나는 신의 축복을 받게 될 거야. 그러면 진짜 젊은 여자의 뼈로 만든 목걸이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하는 것이 내 기쁨이니까. 어서 저 할망구가 피부를 벗긴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깨달았으면 좋겠군.

그 애는 피부가 벗겨진 노파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피부를 벗겨낸 것에 기뻐하고 피부를 잃은 것에 절망할 것이라고, 그리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노파역을 할게, 그래도 괜찮지? 그 애가 내게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사라지거나 죽을 거라면 좀 더 빨리 결정해야 했어. 사람들은 어린 아이의 유서는 읽지만 늙은 여자의 유서는 읽지 않으니까. 그 애가 말했다. 그 여자가 유서를 쓰고 사라졌을까? 내가 물었다. 그런 건 상관 없어. 어차피 그 여자는 읽히지 않았을 테니까. 그 애가 말했다.

정말 그럴까? 읽히지 않을 유서를 쓰는 것은 소용 없는 짓일까? 소용 없는 짓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은 던져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나는 해답 없는 물음들로 짜인 베일이다. 내 언어가 그러하듯, 내 시가, 내 글쓰기가 그러하듯. 집에 와서는 내내 문제집의 남은 문제들을 풀었다. 방과후에는 그 애와 하교하는 대신 수인들과 연극 연습을 했다. 하얀 비둘기는 사랑해, 사랑해 하고 중얼거린다. 비둘기의 오빠들은 비둘기를 찾아 헤매지만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연극을 왜곡하고 말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사랑해, 하고 중얼거릴 것이고 비둘기와 그녀의 오빠들을 모두 배신자로 만들 것이다.

i12년 1월 1일

창문 너머에는 비 웅덩이가 있다. 물이 그 애의 눈 위에 있었다. 내 그림자가 그 애의 얼굴 위에 있었다. 우리의 잔해는 우리의 위에 있었다. 내 그림자는 하얗고 긴 면사포를 끌고 가고 있어. 그녀의 동그랗고 밝은 눈은 우리의 잔해를 응시하고 있다.

네가 무엇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삶으로 돌아가는 데 너무 많은 삶이 소요되지 않도록.

그 애는 푸른 진창 위에 엎드려 있다. 그 애의 그림자는 그 애의 몸을 떠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 애는 새처럼 자유로워졌을까? 물이 그 애의 눈 위에, 내 그림자가 그 애의 얼굴 위에. 그 애의 그림자는 익사했을까? 물고기처럼 침묵하는 우리 그림자들. 그림자들은 때로 독립적인 여정과 삶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다시는 없을 것이다. 세상도 그림자도 죽음조차도. 없음은 다시 도래할 것이다. 세상도 그림자도 죽음도. 표면이 떨어져나간 꽃잎들. 표면으로 뒤범벅된 물 속에 있는 것을 네 눈 먼 그림자는 봤겠지.

너는 네 그림자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너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비극은 지긋지긋한 중고품이지만 우리는 그 값조차 치를 수 없었지. 비극을 팔던 자들의 손도 얼굴도 우리는 볼 수 없었어. 거래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 그림자의 뼈를 모래의 뼈를 갈아 그 애는 침묵의 혀로 침묵에 머물지 못한 소리로 말한다. 그림자의 뼈를 갈아 새의 먹이로 던져 줘.

새들은 여름의 꽃처럼 검게 부풀어오른다. 빈 공원의 차가운 확신. 액체 상태의 부패물이 배양하고 있는 체념. 곪아버린 흰색. 눈이 오던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지 않던 크리스마스에 그 애가 걸었을 그리고 걷지 않았을 길을 생각한다. 납작한 그림자처럼 엎드린 작은 발자국들이 낙화한 꽃잎처럼 메스껍게 흩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나는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본다. 아홉 개의 유방을 가진 여자가 내 잠든 눈을 쓰다듬고 나는 그 애의 부재를 바라본다. 지렁이처럼 따뜻하고 축축한 네 손가락. 살과 땀. 축축하고 미지근한 금속. 동전의 희미한 은빛 비린내. 아이들은 피로 벌거벗은 어린 노파에게 동전을 던졌다.

어린 노파는 웃으며 속삭였다. 주름의 은밀한 벌어짐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언어로.

나는 단 한 꺼풀 벌거벗었고 그게 내 모든 것이었어. 내가 원한 것은 젊음도 부도 아니었지.(나는 시를 썼고 그것이 일기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어! 나는 일기를 썼고 그것이 일기가 아니기를 죽도록 바랐어! 나는 내가 비밀이 아니기를 미치도록 바랐어!)내가 원한 것은 사라짐 혹은 드러남이었네.

노파는 그녀의 손바닥 안에 삽입된 동전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 동전의 표면을 적시고 있는 미지근한 땀, 썩을 수 있는 냄새, 금속의 비린내, 그 정도의 살과 냄새만을 교환할 수 있었다면 나는 만족했을 거야. 나는 교환조차 되지 않는, 망가진 화폐야. 깨진 동전은 날카롭고 아름답게 빛나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반짝이는지 아는 것은 오직 나뿐이지. 그런 것은 전시되지 못할 아름다움이야. 아무도 깨진 동전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으니까. 내가 열어놓은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네. 홀로 깨진 동전을 바라보면서 나는 갈수록 눈멀었고 갈수록 아팠지. 동전은 점점 더 은밀한 날카로움으로 나를 찢어내었고 나는 괴사했고 부패했고 누런 염증을 흘리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망가진 동전을 보러 찾아오지 않았지.

나는 기다렸어. 정말 오래 기다렸어. 전시될 공간을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예술일 수 있는가? 나만 간직하고 기억하는 아름다움이. 전해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죽음에 대한 사적인 예언이. 그런 것은 사적인 사회 현상이지 예술은 아닐지도 몰라. 내 깨진 동전에 대해 비평을 한 이는 없었지. 그들은 내 깨진 동전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가장 혹독한 비평조차도 가질 수 없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평을 한 이의 예술조차도 존재하는 누군가에게 알려져야만 그의 비평이 부재에 대한 것이었음을 확증받을 수 있지.

장미를 어루만지는 코끼리의 섬세함으로 나는 내 동전 조각들을 돌보았어. 땅 밑에서, 난 나와 내 동전 조각들의 심장박동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지. 신체와 사물의 톱니바퀴가 내는 집요한 신음에 우리는 점점 더 마모되어갔고, 심장들을 둘러싼 살의 벽이 얇아질수록 심장들은 더 큰 소리로 흐느꼈어.

나는 광부처럼 땅 속에서 정오의 자정의 예감을 느낄 수 있었네. 우리는 오래도록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림은 우리에게 평화롭게 썩어가는 일이 아니었지. 우리는 비명과 아픔으로 기다리고 있었어. 오직 극렬한 아픔으로, 그리고 외로움으로. 내 침묵의 빌어먹을 비명을 아무도 듣지 않았지. 그들은 존재하지 못한 내 아름다움을 보러 찾아오지 않았어.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진 곰보자국의 고통. 등이 두 개인 괴물들이 우리의 발 밑에서 흔들거렸어. 피 흘리는 검은 벽 속에 갇힌 고통의 심오한 무의미성,

네 대사는 사라짐에 대한 예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네 대사가 사라질 수 없음에 대한 확언이라고 생각했다. 물이 그 애의 눈 위에 있었다. 물이 내 눈 위에 있었다. 사라지지 않을 물이. 그러나 영원하지도 않을 물이. 삶처럼, 누군가는 속하지만 누군가는 속하지 않는 죽음의 상태. 우리는 둘 다 삶 속에 있었고 우리의 삶은 모두 죽음 속에 있었다. 그것은 공유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네 아픔과 아픔 사이의 심연에서 녹지 못한 흰색이 감미로운 독성의 연기로 타올랐다. 그 애는 그것을 들이마시고 인형처럼 쓰러졌다. 아픔과 아픔 사이의 심연으로, 비둘기처럼 하얀 연기가 부유하는 곳으로, 마비된 새처럼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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