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5일

집은 하얀 사막처럼 넓다. 기어서 사막을 횡단하려 하는 눈사람. 밤이 지나면 눈사람은 녹아내릴 것이다. 눈사람은 푸른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우리는 사막 너머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을 것이다. 발은 모두 녹아 문드러졌고 사막은 밤보다 넓으니까.

그 애의 이름이 그 애를 닮았을지 궁금하다. 그 애의 목소리는 그 애를 닮았다. 어린 새처럼 높고 위태로운 목소리다. 그 애는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말한다. 혹은 부러진 나뭇가지 아래로 추락하는 어린 새처럼. 나는 그 애가 말을 걸기를 기다린다. 어째서 내가 먼저 말을 걸 수는 없을까? 그 애가 대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애가 대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눈 속에 뒤덮인 사막처럼 변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애와 나는 물방울처럼 닮았고 물방울처럼 닮지 않았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은 조금도 둥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물방울들은 일그러진 동그라미이다. 외곽이 문드러져가는.

오늘은 새벽 일찍 깨어났다.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새빨간 영상이 거실 바닥에 울컥울컥 쏟아져내렸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말릴 사람도 없었다. 그림자들은 내게 의무를 강요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끔찍하게 시끄럽다. 하지만 실종자들은 그렇지 않다. 실종자들은 서글플 정도로 조용하다.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들. 침묵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목소리들.

29번 채널에 무엇이 있을지 알면서도 나는 매번 29번 채널을 튼다. 화면 안에는 벌거벗은 희멀건 등이 세 개 있다. 늑대도 늑대의 그림자도 없다. 돼지들은 여전히 늑대를 기다리고 있다. 돼지들과 함께 시간이 꺼져버리기를 기다리면서 조금 울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들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자들도 있을까? 죽음을, 혹은 삶을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자살하는 자들이?

늑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돼지들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어째서 늑대를 기다리기 시작했는지조차 돼지들은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돼지들은 죽음과 검은 숲의 바깥을 기다리듯 늑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늑대는 돼지들과 약속했다. 너희가 새로운 집을 지으면 내가 너희를 찾아갈 거야. 이야기는 이렇게 약속했다. 늑대는 짚으로 만든 집과 나무로 만든 집을 입김으로 날려버렸다고. 집을 잃은 돼지들은 벽돌집으로 도망갔다고. 늑대는 벽돌집 앞에 오래도록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그가 가진 날숨이 모두 소진되어버릴 때까지.

내가 늑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내가 기다리는 대상이 늑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들이 늑대를 초대하기 위해 지어놓은-혹은 늑대의 침입을 은근히 기다리며 지어놓은-집들은 모두 무너져내렸다. 짚으로 만든 집, 나무로 만든 집, 심지어는 벽돌로 만든 집까지 모두 기다림에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기다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빌어먹을 기다림, 빌어먹을 삶, 빌어먹을 약속 혹은 착각.

늑대가 약속을 잊고 난 뒤에도 돼지들은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돼지들이 약속을 잊고 난 뒤에도 기다림은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곧 내 이름은 차츰차츰 잊혀질 것이다. 담임교사는 내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잊어버릴 것이고 출석부는 비에 젖어 망가질 것이며 새로 프린트한 출석부에 내 이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처음 몇 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겠지만 받지 않다보면 전화도 걸려오지 않을 것이다. 전화기는 가구처럼 조용할 것이다.

그 전에 전화기를 부숴 놓아야 할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전에?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등교했다. 교복을 입지 않는 아이들은 교복을 입는 아이들보다 많았다. 하지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유령처럼, 혹은 눈사람처럼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그 애가 내게 눈짓했다. 그 애는 죽음처럼 검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첫날에도 교복을 입고 있었던가? 교복은 그 애의 작은 어깨에 맞지 않게 커서 주름이 져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검은 사각형 안에 그 애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 삼각형, 칠각형, 육각형, 팔각형, 도형들의 이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의 몸을 가리키는 도형의 이름은 없다. 불꽃놀이를 가리키는 도형의 이름은 없다. 생일케이크를 가리키는 도형의 이름은 없다. 돼지들의 등을 가리키는 도형의 이름은 없다. 눈사람조차도, 원형이 아니다. 도형의 이름들은 어떤 사물도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사물은 어떤 도형과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일그러진 사각형은 사각형이 아니다. 뭉개진 원은 원이 아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내가 그려놓은 뭉개진 검은 눈들이 빼곡이 차 있었다. 교사는 내 교과서를 흘깃 보더니 출석부로 내 머리를 쳤다.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교사는 내 교과서를 들어올리고는 내가 적어놓은 메모를 읽으려 했으나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손에 내 교과서가 들려 있는 동안 나는 끔찍이도 원했다. 그녀가 나를 읽어 주기를. 내가 완전히 누설되기를. 눈들, 눈들, 눈들의 기호.

하지만 교사는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그녀는 내 책상 위에 닫힌 교과서를 내려놓았고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약 담임교사가 내게 그 기호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면 나는 지체없이 시라고 대답했으리라. 그러면 교사는 뭐라고 말했을까?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쓰인 글은 시가 아니라고 말했을가? 그건 시가 아니라 낙서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교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교사는 나를 읽지 않았고 아무도 내 시를 듣지 않았다. 아무도 내 시를 비웃지 않았고 아무도 내 시를 모욕하지 않았다. 남겨진 눈들은 비늘이 벗겨진 물고기들처럼 교과서 페이지 안쪽에 둥둥 뜬 채로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계절이다. 이상한 시간이고 이상한 하루다. 작년 담임선생님은 매일 아침 조회 시간에 휴대폰들을 수거해갔는데 올해 담임교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통화와 문자 전송이 되지 않는 휴대폰 공기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은 눈이 부시도록 하얬다. 눈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하얀 빛 때문에 우는 것이었다. 인터넷 창을 켰으나 무엇을 검색해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몇 발자국 뛰어가지도 못한 채 몸이 산산조각나 죽었으며 죽은 뒤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인터넷 창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긴 사각형 안에 내가 언어를 채워넣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어째서 게임 캐릭터가 매번 죽는지 검색해 볼까? 하지만 게임 캐릭터는 매번,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반드시. 게임 캐릭터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이유에 대해 물어볼까? 게임 캐릭터가 누구인지 물어볼까? 내가 누구인지?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나와 이름이 같은 몇몇 유명인들과 내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엄지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나는 나 없이도 내 이름은 넘치도록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나로 기억하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혹은 스스럼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애. 그 애는 내 이름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아닌 나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가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내가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내 이름은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스토어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을 마구잡이로 깔아놓았다. 숙제를 하듯 게임을 하나씩 실행했다. 어떤 게임의 튜토리얼은 지나치게 친절했고 어떤 게임의 튜토리얼은 지나치게 불친절했다. 멀미를 참으며 지시된 행동들을 수행하다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를 참지 않고 울었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나처럼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혼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둥근 원을, 혹은 원이 아닌 어떤 도형을 만들며 둘러앉아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게임의 끝을 보았음을 알고 있었다. 게임에 존재하는 무수한 변수들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게임의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고 누군가는 강간당할 것이고 누군가는 강간할 것이다. 재판은 완벽한 무죄선고로 끝나거나 사형선고로 끝날 것이고 게임 캐릭터는 탈출하거나 자수하거나 자살할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이 아니었다. 내 삶은 내 소유가 아니었다. 삶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소유가 소유불가능에 대한 망상에 불과하듯. 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소유한 것들은 나를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소유한 것은 처음부터 없을 것이다. 내가 소유한 것이 없듯.

탈출구가 예정되어 있는 게임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끝을 본 게임은 하나도 없었다. 튜토리얼을 끝낸 게임도 몇 개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무엇보다도 어지럼증 때문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다음 수업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어쩌면 이동 수업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수업을 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단 하나의 수업조차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내 것이 아닌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아무도 나를 구태여 내쫓지 않았다. 이 자리는 그들에게 아무래도 좋을 자리였던 것이다. 누군가 사라져도 남아 있어도 아무래도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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