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4월 13일 – i12년 1월 5일

i11년 4일 13일

나는 누군가에게 봉합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모든 너희는 있는데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누군가의 내장에 기생해서라도 살고 싶은 걸까? 나는. 나는. Writing does not reproduce visible, rather, it makes visible what is invisible. 벤야민. 방랑하는 유대인들. 그처럼 나도 아하스베루스다. 십자가에 오르는 신을 조롱한 죄로 신이 재림할 때까지 영원히 방랑하도록 저주받은. 신이여, 존재할 수 없다면 나는 왜 살아 있는 건가요? 그건 네 피로 데울 수 있는 눈이 남아 있기 때문이란다. 대체 왜 나를 만든 거죠? 아이야, 나는 만들지 않았어. 나는 최초의 배아가 최후의 배아들을 향해 찢어지는 것을 막지 않았을 뿐이란다. 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태어나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자랐지. 존재하지도 않는 그 응시들을 어떻게 눈 속으로 되돌리지? 어떻게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감추지? 어떻게 가장 좋은 것 중 가장 경멸하는 것을 내게 던져줄 수 있어요. 어떻게 나는 살아 있고 또 죽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전시되지 않는 마네킹이다. 전시되지 않을 것이므로, 마네킹은 한 벌의 철 지난 옷조차 걸치지 못했다. 안녕 안녕 피곤해 나도 시험을 망쳤어 나도 나는 내 운명을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비밀스럽게 확신하며 성실하게 따라갔던 운명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두려운 것이 아니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고 있어 우리는 그게 두려운 거야. 신이 내버린 고아들은 신의 언어를 잊었다. 아니, 배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안녕 안녕 내가 너에게 봉합되어도 괜찮겠니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 네 그림자 끝이라도 좋아 아니 사실은 네 살 속에 가장 깊은 곳에 봉합되고 싶어 내가 귀찮니. 퇴행적인 몽상으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엮었다. 최음적인 악몽이 시침 아래 벌어진 피부에서 새어나온다. 나는 너에게 봉합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그렇지만 난 네 이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하스베루스 : 신이여, 당신이 신이라면 정말 신이라면 당신이 악마가 아니라면 어째서 구원이 없는지 말해줘. 내가 뭔지 말해줘 내가 뭐가 아닌지 말해줘. 아니야 말하지 마. 제발. 왜냐하면 나는 전부 알고 있으니까. 나는 신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말하지 마.

그는 엎드려 흐느낀다. 고아들이 십자가 주위에서 비명을 지른다.

예수 : 내가 가장 사랑한 제자는 유다였네. 그는 나를 배신했고 나를 초월했지. 제발 그가 내게 용서를 빌지 말아야 할 텐데. 그가 용서를 빈다면, 그가 후회한다면, 그가 내게로 돌아온다면, 그러면서 배신을 포기한다면, 오, 그것 때문에 자네는 불행한 걸세.

아하스베루스 : 나는 배신할 거야! (예수를 향해 게걸스럽게 달려들며. 로마 병사들은 그를 저지한다. 그는 도둑처럼 수줍고 대담하게 예수의 긴 팔을 잡아채 입을 맞춘다.) 자, 나는 배신했어. 이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

예수 : 그래, 나는 자네를 사랑하네.

아하스베루스 : 그럼 나를 당신 몸에 엮어 줘. 나도 처형을, 처형을, 영원한 처형을 원해. 영원한 배신을, 그리고 처형을!(그는 웃는다. 쏟아지기를 갈망하는 언어가 그의 목구멍에서 떨어져나온다.) 잔해 위에 쌓이는 잔해, 잊힌 과거를 돌아보는 메시아의 간절한 눈은 그의 눈 속으로 돌아가고, 태풍은 메시아의 날개를 잡아채 벽에 인정사정없이 처박는군. 산산조각난 저 이마가 보이나? 열병의 전선들을 잡아뜯는 검은 손톱들이 보이나? 대체 처형은 언제?

로마 병사 : 물러나. 보시오. 이놈은 당신만큼이나 미쳤군.(킬킬거리며)너를 위한 십자가는 없어. 썩 물러나. 시간이 너를 못박을 게다.

아하스베루스 : 시간이? 시간이 나를? 오, 신이시여. 하지만 존재할 시간조차 없어. 그것은 내게 속해 있지 않은데, 그게 나를?

로마 병사 : 물러나.

예수 : 가여운 사람. 그러나 신이 재림하는 날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오. 그날, 당신은 영원한 방랑을 멈추게 될 것이오.

아하스베루스 : 당신은 거짓말쟁이로군. 오, 시간은 영원히 흐르지 않아.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그날도 오지 않소. 이 끔찍한 진보의 폭풍이 시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어두고 있단 말이야. 우리의 천사는 폭풍 속에서 박제가 되어가고 있소. 오, 유배지 같은 몸이여. 우리의 천사가 마조히스트는 아니겠죠? 그녀가 칼날 같은 어둠과 바람 속에서 상처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줘요. 아니,

그렇다고 말해줘요. 그녀가 능동적인 수동성을 만끽하고 있다고. 그녀의 달콤한 신음소리에 웃는 보지에 폭풍마저 힘을 잃고 사그라들 것이라고. 난 그녀를 끌어안을 테요. 이 폐허 같은 몸으로, 내 그늘진 손아귀로, 내 마지막 피로 그녀의 차가운 몸을 데울 것이오. 내 손톱 밑에 숨겨진 보물이 궁금한가? 나는 영혼의 피부를 벗겨냈소 나는 피부에서 영혼을 벗겨냈소. 흉터 위에 쌓여가는 허망한 흉터들을 전부 긁어냈소. 봐요, 내 손톱 밑에 잠긴 살이 얼마나 붉은지. 불에 내 몸을 먹일까? 짐승 같은 불에? 혹은 숲처럼 음험하고 고요한 호수에 내 몸을 먹일까? 그것들을 살찌울까? 그것들은 나를 소화하지 못할 거야. 나는 그것들의 내장 속에서 썩어가서 그것들을 독살하고 말 거야.

로마 병사 : 꼴불견이군.

예수 : 신이여, 땅에 꿰매진 망자들을 구원하소서!

아하스베루스 : 웃기는군. 난 땅에 꿰매어지지 않았어. 땅에 꿰매진 건 내 그림자지. 나보다 훨씬 검고 선명한 내 그림자 말이야. 나는 태양에도 꿰매어지지 않았고 지상에도 꿰매어지지 않았어. 나는 공기중을 부유하는 작은 깃털조각과 같소. 신이 재림하는 날, 그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재림할 때 나는 이미 갈기갈기 찢겨 산산이 흩어져 보이지도 않을 텐데.

예수 : 의미 없는 절합, 소리 없는 문장 같군. 당신 때문에 내 가슴이 찢어지오. 당신은 신이 재림할 때까지 지상을 영원히 방랑하게 될 것이오.

아하스베루스 : 그건 당신이 내게 내리는 저주인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저주 속에서 살았는데 왜 이제와서?

예수 :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아하스베루스 : 잠깐. 들리나? 누군가 우리를 두고 있어. 빌어먹을 붉은 여왕이 루이스 캐럴이 그 하얗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우리를 들어올리고 있단 말이야. 제기랄. 멀미가 나는군. 나는 여왕이 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시냇물 하나도 뛰어넘을 수 없을 거야. 그는 나를 들어올리지 않고 있어. 나는 잊혀진 채, 체스판 어딘가에 있어. 나는 체스판 어딘가에 갇혀 있는데, 그들은 마치 내가 체스판 바깥에 있는 잡동사니라도 되는 양 구는군. 혹시 당신이 나를 두고 있나? 아니야. 그건 아니야. 당신이 여왕을 잡으러 가는 동안 나는 여기 꼼짝없이 멈추어 서서 여왕의 십자가로 향하는 당신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겠지. 당신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이루는 동안 나는 여기서. 오, 제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줘(로마 병사에게 달려들며) 제발 내가 나를 들어올릴 수 있게 해줘. 여왕이 되지 않아도 좋아 시냇물 깊은 곳에 처박혀 죽어도 좋아.

로마 병사 : 뭐, 이 새끼가 이 미친 새끼 저리 비켜. 너를 위한 십자가는 없어. 넌 디스마스도 게스타스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잖아. 넌 무언갈 훔칠 깜냥도 없지. 너, 유령 같은 자여. 너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어. 네게는 날개가 없으니까.

예수 : 내 십자가 옆에 못 박힌 당신을 그리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지. 가엾은 이여.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아하스베루스 : 누군가 우리를 두고 있어. 신이여, 삶은 어째서 살 수 없는 바깥인가요? 내 시침질 아래가 벌어지고 있는데 연결된 것은 처음부터 없었군. 붉은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여왕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배신할 수 있을까? 내가 그녀의 고아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을까?

가장 강인한 사물들조차도 삶의 유배를 견딜 수 없어. 삶은 우리를 찢어지는 고통으로 봉합하고-대체 어디에? 지상도 돌덩이도 아니야. 유배지 같은 몸에?-사실 아픔은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찢어지길 원해. 한 번도 가 닿은 적이 없는 곳으로. 알려지지 않은 미래로-과거의 연장인 미래가 아닌-쫓겨나기를 원해. 우리의 입술이 함께 말할 때

나는 죽어 있는 나의 꿈을 꾸었다.

아하스베루스 : 다음을 번역하시오. 신이여 모두가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낙원으로부터 유배된 죄인들이라면, 신이여 그러므로 당신마저도 죄인이라면 어째서 당신은 신이고 나는 신이 아닌 것이지? 오, 내가 보기에 당신이 신인 만큼이나 우리도 신이요. 우리가 신이 아닌 만큼이나 당신도 신이 아니요. 나를 찢어 봐.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신을 당신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눈이 침묵하고 땅이 미치광이 소리를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그것과 만날 수 있을까? 죽음이 생명과의 가장 내밀한 접촉이라면 나도. 그 섬광, 충격, 정지, 별, 멎음의 순간들. 제발 내게도 십자가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어째서 남는 십자가가 없는 거지? 나도 보이는 십자가를 이토록 많은 응시를 가지는 십자가를 요구하오. 인간은 응시로 유지되는 존재요 내가 나를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디에 있지? 내가 옷장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 옷장 속의 남자는 어디로 사라지지?

다음을 번역하시오. : 사물들의 내밀한 그림자가 흐르는 시간, 나는 그림자들의 흐름 밑에 가라앉아 썩어가는 시체들의 잠을 보았다.

대체 어떤 언어로? 나는 나를 번역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 나는 내 안팎을 방랑하는 영혼들을 번역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 수인들은 내게 더 비둘기답게 굴라고 했다. 나는 양쪽 날개를 단정하게 접어 감춘 채로 사로잡힌 바람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야, 보물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이 많아 전부 끌어안을 수도 없이 많아. 넌 이 많은 보물을 전부 혼자 차지하려 했단 말이지. 증오스러운 누이야. 단지 네 뒷마당에, 네 어미의 바다 속에 보물들이 묻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너는 아주 영악한 아이였어. 하지만 보물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황금의 칼날들이 내 혀를 찔러 도려내고 황금으로 잘려나간 날개가 떨리는구나. 아주 오래전에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고 한다면 믿겠니? 너처럼 하얗고 여린 날개가 내게도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포로가 된 비둘기를 돌보는 남자 형제의 역할을 맡은 수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독백 같은 대화를 읊었다. 나는 비둘기의 올곧고 무관심한 시선으로 배우의 말을 바라보았다.

i11년 12월 27일

관객의 수가 연극의 흥행을 결정짓는 것이라면 우리의 연극은 완전히 실패했다. 피 흘려 뱉은 문장들은 어디로 사라졌지? 껍질이 벗겨진 늙은 여자는 그 위험스러운 몸으로 어디로 사라졌지?

노파 : 언니, 내 언니는 왕비예요. 내 언니에게 데려다줘요.

사과 장수 : 이 미친 여자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노파 : 어디 내가 갈 만한 곳이 없을까요?

사과 장수 :(낄낄거리며)무덤, 할멈 당신 같이 늙은 여자는 무덤으로 가야지.

노파 : 무덤이라고요. 그래. 나는 무덤에서 결혼식을 올렸죠. 아저씨. 나는 무덤에서 결혼을 했단 말이에요. 유령들이 나를 에워싸고 밤을 물어뜯는 개처럼 속삭일 때 난 그걸 알아들으려고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내 순결한 남자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죠. 당신, 왜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내가 물었어요. 남자는 내게 계속 살겠느냐고 물었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 있어도 좋으냐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죠. 그건 내가 선택할 일이 아니야. 우리는 여기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죽을 테지. 당신도 나도 여기서. 우리의 아이는 하얗고 부드러운 무덤의 봉분 안에서 태어날 테고 운이 좋다면 언젠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 매미 유충의 부드러운 머리가 흙 바깥으로 삐져나가는 순간 누군가의 무심한 발이 유충의 절박한 머리를 짓이기지 않는다면 유충은 며칠을 더 살아 바깥을 활보하겠지. 난 손톱이 다 깨져도 이마가 다 짓찧어져도 좋아 여기서 나가고 싶어 다른 곳을 보고 싶어, 내 순진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오, 내 가엾은 벌레, 내 불쌍한 암비둘기, 나는 땀으로 축축한 그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죠. 당신은 볼 수 없을 거야. 당신은 눈이 멀었으니까, 바깥에 나가서도 볼 수 없을 거야. 아저씨, 그런데 무덤은 어디에? 난 여기가 무덤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덤에서 무덤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빌어먹을, 어째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거지? 아무도 내가 눈 멀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어, 하고 남자는 말했어요. 하지만 알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여전히 바깥을 꿈꿔, 하고 그는 말했어요. 아저씨,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왕궁에 가고 싶어요. 수백 가지 색채가 부유하는 아름다운 곳에서 잠들고 싶어. 눈을 감고 꿈에서 깨어나면 그곳에 갈 수 있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 드릴 테니 제발 알려 줘요.

사과 장수 : 필요 없어. 너 같이 더럽고 늙은 년은 줘도 안 먹어. 어서 무덤으로 꺼져.

노파 : 안 먹는다고? 그래, 나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사과가 내 이빨을 긁어내는 느낌이 소름끼치거든. 그래도 가끔은 사과를 먹을 수밖에 없죠. 밤의 창문을 지나가는 무도회의 그림자들이 내게 사과를 건네 주었을 때 나는 얌전히 그것을 받아 챙겼죠. 먹으렴, 하고 새의 머리를 한 여자가 속삭였어요. 먹으렴, 그건 네게 주는 거란다. 돼지 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어요. 먹으렴! 흰 암소 머리를 한 남자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며 어서, 하고 소리쳤고 나는 깜짝 놀라 검은 빛으로 반들거리는 사과를 베어물었어요. 사과의 하얗고 날카로운 살이 내 뼈를 갉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 잘 했어. 전부 먹어. 새의 머리를 한 여자가 창문 밖에서 내 얼굴을 어루만지듯 손을 들어 움직이며 말했어요. 나는 고통스러운 소름끼침에 눈물을 흘리며 먹었어요. 그들은 내게 씨까지 전부 먹게 했죠. 그리고.. 오, 그리고..(눈치를 보며)

사과 장수 : 그리고?

노파 : 기억 나지 않아요. 아저씨, 왕궁은 어디에 있죠?

사과 장수 : 제기랄. 마음대로 하라고. (그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노파 : (손을 들어올리며)세상에, 너무 늙었어, 이 주름들, 이 반점들, 이 징그러운 뼈! 어쩌면 좋지? 그들은 왕궁에 들여보내주지 않을 거야. 오, 어쩌면 좋지? 나는 무덤 안에서 영원히 홀로. 오, 어쩌면 좋지? 벌레들조차 나를 물어뜯지 않을 테지. 나는 홀로, 홀로, 썩지도 않은 채 홀로. 언니 어디에 있는 거야? 우리 같이 잠들기로 약속했잖아. 나 악몽을 꿀 것 같아. 언니 번개가 오면, 비가 내리면, 언니가 같이 있어 주기로 했잖아. 세상에 살아 있어 이렇게 늙었는데도 아직 살아 있어. 언니 들려?(흐느끼며)언니 들려? 언니 들려? 영원히 죽지 않을 것만 같아. 가장 끔찍한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아. 밤은 아직도 어린 시절의 밤이고 흙은 아직도 어린 시절의 흙이고 내 두려움 역시 어린 시절의 그것이군. 언니 들려? 나는 대화 속에서 살기를 원해. 내가 원하는 건 독백이 아니었어. 독백과 방백. 나는 오직 독백과 방백 안에서만 존재한다네 그곳이 나의 유일한 장소이고 비-장소이고 나는 오직 독백과 방백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네. 존재하지 않음의 희미한 음성이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독백과 방백뿐이지. 언니 들려? 언니 너무나 선명하게 피가, 생명이 여기 있는데 나는 죽음을 질질 흘리며 살아 있는데, 아, 이러다가 내 죽음이 전부 소진되어 버리면 어쩌지? 죽음 뒤에도 내가 죽지 못한다면? 그럴 순 없어. 언니. 제발 도와줘. 제발 도와줘요. 검고 텅 빈 우주에서의 어떤 폭발로 어떤 유기체가 우연하게 발생한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겠지. 제발 도와줘요 제발 도와줘요. 입술도 발성기관도 소리를 실어나를 공기도 없이, 제발 도와줘, 제발 도와줘, 나 여기에 살아 있어 여기에 살아 있는 것 같아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언니 나 무서워 하지만 내가 무서워하는 건 절대 나를 덮치지 않을 거야 나는 무서워 언니 내게 말해줘 하얗고 순결한 공기여 내 말을 내 끔찍한 침묵-아님을 전해다오 제발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 아무도 듣지를 않지? 세상은 물고기처럼 침묵하는구나! 물고기, 죽은 물고기들은 어린 시절 그대로 살아 있어. 나도 어린 시절 그대로 살아 있는데 빌어먹을 주름들, 내 날개를 쥐어짜 역사의 급류 속으로 잡아당기는 주름들. 물의 주름 속에서 나는 익사하고 있네. 하지만 죽지는 않아. 익사해가는 채로 살아 있지. 살아 있어. 언니, 나 아직도 살아 있어. 물 속에서, 폐에 물의 주름이 가득 들어찬 채로 나 살아 있어. 어릴 때랑 똑같이. 내가 터질 때까지 나는 나를 부른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을 부른다. 내가 터질 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아 준다면. 나를 다시 모을 필요는 없어. 나를 기억할 필요도 없고. 그냥 나를 바라봐 준다면. 내가 터지는 것을 사실로 만들어준다면. 내가 내 황홀한 폭발로 너를 눈 멀게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여자는 숲 속에 서 있다. 무두장이가 그녀의 피부를 벗기고 있다. 잇몸이 피로 물든 히스테리 물고기들.

노파 : 찢겨진 눈 속에서 나는 보고 있어 나를 보는, 나를 보지 않는 눈들을

무두장이 : 시끄러워 이 노인네야

노파 : 아 아 아파 너무 아파요 아 아

무두장이 : 제발 좀 닥쳐 네가 바란 거잖아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제발 좀 조용히 해 귀가 멀 것 같아 내가 미칠 것 같아 이러다 내가 내 손가락을 잘라내면 어쩔 거야?

노파 : 아 아 너무 아파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야

무두장이 : 그럼?

노파 : 내가 찢어진 피부의 눈 속에서 당신을 내다보는 걸 몰랐지?

무두장이 : 웃기는군

노파 : 당신이 내 피부를 벗길 때 내가 무엇을 벗고 있는지 당신은 아아 아 아파

무두장이 :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으며) 당신 정말 무섭군! 꿈에서 나를 잡아먹던 괴물이 꼭 이렇게 생겼지. 정말, 정말 무서워(웃으며) 이제 나를 잡아먹을 텐가? 내게 복수할 텐가?

노파 : 아 아 아파 아

무두장이 : 찢어진 몸 속에 뭐가 들었지 상처 속의 상처 상처 속의 내장 영혼은 보이지 않는군

노파 : 그게 내 영혼이야

무두장이 : 불그죽죽한 창자가? 돼지 창자랑 똑같이 생겼는데(노파의 깊은 상처에 눈을 갖다 붙이며)

노파 : 그래 그게 내 영혼이야 내 영혼은 돼지의 영혼이지

무두장이 : 돼지의 영혼, 돼지 창자의 영혼!

노파 : 아파 아 아파 어째서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거지

무두장이 : 당신은 이렇게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어 당신은 돈을 주고 내게 고통을 샀잖아.

노파 : 내가 당신에게 진주목걸이를 주기 전에, 고통은 어디에 있었지?

무두장이 : 그건 어디에도 없었어

노파 : 틀렸어 그건 미래에 있었어. 미래 말이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과거 말이야. 나는 보이지 않는 과거를, 아직 살과 피를 갖지 못한 과거를 상상할 수 있었지.

무두장이 : 그게 이런 꼴이었소? 미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 거울을 줄까?

노파 : 나무에서 뜯겨나간 나뭇잎이여, 주술사의 검은 연기로 피어오르는 죽음의 이미지여! 그 이미지의 죽음들은 전부 살아 있지. 상실 속에서도, 사라짐 속에서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흔적이 살아 있어.

무두장이 : 껍질을 벗겨낸 물고기 같구만. 생선 비늘을 벗기는 칼로 살아 있는 활어의 몸을 문대면 반짝거리는 거울 조각들이 눈처럼 쏟아져내리지. 어부들이 능숙하게 작업하는 동안 물고기는 무력하고 혼몽한 눈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끔뻑거려.

노파 : 피부가 벗겨지는 동안 물고기는 꿈을 꾸는 거야.

무두장이 : 악몽을?

노파 : 악몽 가장 깊은 곳에서는 빛나는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무두장이 : 빛나는 벌레라고? 어디? (음흉하고 장난스럽게 노파의 벌거벗은 붉은 살을 쿡쿡 찌르며) 어디?

노파 :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안 보이나? 이 모든 상실 속에, 이 모든 밤 속에, 이 모든 놓침 속에, 아직 출현하지 않은 과거가 날아다니고 있어 아아 아파 아파

무두장이 : 과거라고?

노파 : 아파 아파

무두장이 : 과거라고? 과거가 대체 어디? (과장되게 두리번거리며) 어디?

노파 : 내 몸 속에 들어올래? 내 상처 속에? 거기서 나를 볼래? 내가 잃어버린 것을?

무두장이 : 역겹군. 피부를 벗겨낸 개구리 같군, 여자여. 당신은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노파 : 당신이 내 상처 안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 상처 안에서 나도 내 유령 같은 시선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 당신 눈에 맺힌 내 상처를 바라보고 있어

무두장이 :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노파 당신이 이 꼴이 된 건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노파 : 무엇에?

무두장이 : 삶에! 악몽에! 달리 무엇이겠소?

노파 : 내가 살아 있었다고? 내가 죽은 여자처럼 살아 있었다고?

무두장이 :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노파 : 웃기는군. 난 지금보다 더 살아 있었던 적이 없어. 아 아 아파 아파 내가 어떤 이미지를 어떤 언어를 어떤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지 안다면 당신은 내 앞에 무릎을 꿇을텐데. 데스노스의 검은 꿈-물방울들. 뼈로 핥으며 애무하는 상어들이 일으키는 어둡고 붉은 물보라. 그 장밋빛에 파열하는 바다 위의 작고 흰 양산. 잇몸이 피로 물든 물고기들, 피로 입맞춤하는 물고기들. 신음하는 돛과 절규하며 도래하는 바다의 바람. 익사한 물고기의 이마. 해초의 젖은 붕대.

무두장이 : 태풍이 오던 날 아이들은 무역센터 건물에서 떨어진 거대한 유리창을 훔쳐 골목에 세워 놓았어. 유리는 아이들의 유령 같은 얼굴들을 해맑게 반사해냈지.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노는 동안 흰 비둘기가 유리창을 향해 날아들었어. 비둘기는 유리창에 작고 다정한 이마를 부딪혔고 이마와 유리창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새는 비명조차 없이 떨어졌고 아이들은 처형대로 변한 유리창과 새의 그림자 앞에서 울었어. 아이들은 유리창에 묻은 새의 붉은 핏자국을 정성스럽게 닦았고 쓰러진 새를 골목 밖 공원에 묻었지. 다음 날 다른 비둘기가 처형대에 이마를 짓찧고 죽었을 때도 아이들은 울었어. 하지만 그 다음 날엔 울지 않았지. 그 다음 날도. 아이들은 죽은 새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았어. 아이들은 새들의 날개를 찢어 나눠 가졌지. 아직 숨이 멎지 않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새의 날개를 문구용 가위로 찢어발겨 나누어 갖기도 했어. 아이들은 새들의 날개를 엮어 거대한 천사의 날개를 만들었지. 아이들은 그 거대한 날개를 날개뼈에 봉합했어. 어느 겨울 아이들은 마침내 천국으로, 새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골목길에 세워 놓은 유리창 위에 올라선 아이들은 육중하고 흰 날개와 함께 떨어졌지. 눈이 가득 쌓인 골목을 유리창이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고 잇몸이 피로 물든 눈, 눈이 침묵하고 있었고, 익사하는 다이버들이 익사한 보물과 해초와 물거품이 꿈을 꾸고 있었고 눈 속에서 녹아가는 눈도 꿈을 꾸고 있었어. 새들의 찢어진 날개에 하얀 눈이 스며들었어. 밤이 되었을 때는 삶보다도 검은 눈이. 죽음을 응시하는 검고 반짝이는 눈이.

유령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글을 쓰는지. 무대 밖으로 쫓겨난 늙은 배우처럼 매일 매일 낭독회를 여는지. 내가 소리칠 때마다 껍질들은 산산이 깨지고 그 속에서 메두사들은 웃고 있는데 아이들이 세워 놓은 유리 처형대는 내 몸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는데, 절정의 순간은 너무도 길구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여자가 뜯어지고 훼손당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가는 순간을 어떠한 미소와 방패로 견디는지 알아? 어부들이 살아 있는 물고기의 비늘을 벗겨내고 내장을 뽑아내는 동안. 잘려나간 가슴 속에서 심장과 창자가 뜯겨나가는 동안. 비가 내리고 있어. 내가 가 닿지 못한 높은 곳에서 내리는 물기가 내 속으로 틈입하고 있어. 내가 하늘의 병에 감염되는 동안 뜯겨나간 내 심장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천 번의 절단으로 내가 찢기는 동안. 내 상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어떤 이의 죽음은 삶만큼이나 길다. 어떤 이의 생명은 죽음을 초극한다. 싱싱하게 살아 있는 눈으로 나는 이 모든 죽음을 전부 견디고 있다. 마리화나도 헤로인도 없이. 동굴은 울고 있어 미노타우루스는 지친 암소처럼 아리아드네를 기다리며 울고 있어.(하지만 도착한 것은 테세우스였지. 죽음의 순간을 한시라도 빨리 맞이하기 위해 미노타우루스는 영웅의 칼날에 달려들었고 두툼한 목을 길게 빼어냈고 테세우스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침묵하는 애원을 들어 주었지. 제발 어서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어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삶은 삶을 넘어서는 기다림이었지 제발 어서 어서) 핏줄이 푸르게 불거진 나무들 하멜른의 강을 향해 기어가는 뿌리들

i12년 1월 5일

나는 케이크가 태어나는 만큼 산다. 나는 케이크가 죽는 만큼 산다. 나는 케이크가 녹아내리는 만큼 산다. 나는 내가 들리지 않는 만큼 산다. 나는 대화의 빈자리만큼 산다.(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너는 어디에도 없어 네가 없는 만큼 나는 산다 네가 죽지 않는 만큼 나는 산다) 공전하는 케이크들 하얀 케이크의 촛불들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케이크들 케이크가 녹고 있어 촛불들이 녹고 있어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

그 시절 아이들은 태어남 중독 기억 중독 애도 중독 죽음 중독 자살 중독 학원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옷걸이 못 위에 신발끈을 묶고 그 애는 매달려 있었어(그 애가 누구지?) 그 애가 매달려 있는 동안 미래의 촛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태어난 붉은 아이들 나는

날파리가 앉은 케이크를 그대로 삼킨다. 달콤한 아이싱이 치아를 파랗게 채색하고 나는 내가 삼킨 케이크만큼 산다 내가 삼키지 못한 케이크만큼 산다. 아이가 태어날 때 함께 태어나는 케이크들처럼.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때 태어나 녹아가는 케이크들처럼 아이들이 너무 많이 태어날 때 홀로 사라지는 케이크처럼. 나는 날파리가 앉은 케이크를 통째로 삼키고 내 입술 아래로 비어져나온 투명한 엷은 날개들 아이는 흔들리고 있었네 아이가 흔들릴 때 아이는 태어나고 아이가 죽는 동안 아이는 살아남고 나는 공전하는 케이크들을 보았네 검은 전구 주위를 공전하는 하얀 케이크들. 시간을 절단하는 기계들이 깨질 때 시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아?

시제가 없는 시간들이 어디에서 부유하는지, 옥상에서 케이크가 추락하는 동안 잠긴 옥상 문에 초대받지 못한 케이크들이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목을 매는 동안 케이크의 시간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촛불은 피와 불이 엉긴 눈으로 박수들을 본다 촛불의 죽음을 축하하는 박수들 촛불은 축하를 위해 태어난 것도 꺼지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다른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촛불을 부는 아이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시선들이 그 애를 응시하고 적의에 찬 시선들에 조금 녹아내린 아이는 더듬거리며, 나는 그냥 촛불을 촛불을 불고 싶을 뿐이야

십자가에 못 박힌 케이크 하얀 빵칼에 조각난 케이크 붉은 딸기잼을 흘리는 케이크 케이크에게 삶이 있었다면 그건 달콤한 축하일까? 케이크에게서 축하와 감사와 행복의 맛을 읽을 수 있니? 어둠 속에서 녹아내린 케이크들 공전하는 케이크들 케이크의 자전축이 내 목을 관통할 때 나는 울고 있었어

조각난 케이크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케이크 위에서 하루살이가 은밀하게 출산하는 동안 그 알까지 통째로 삼키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왜 태어났니 왜 왜 태어났니 케이크가 너무 달콤할 때 나는 죽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죽고 싶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니

축하와 노래와 생일 이전에 케이크가 있었다는 걸 믿을 수 있겠니

i11년 12월 17일

남자아이들은 새장 위에 식탁보를 덮어버렸다. 암비둘기는 눈을 뜬 채로 속삭였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할 말이 있어 오빠. 난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나 너무 아파. 아니야. 세계를 감싼 베일 너머에서 남자아이가 다정하게 말했다. 너는 착각한 거야 넌 어둠을 좋아하잖아. 어둠은 조금도 아프지 않아. 넌 아픔 없이 아픈 거야 전구를 태양으로 착각하는 여자애처럼. 정적으로 미쳐가는 동안 암비둘기는 어머니의 흐릿한 얼굴을 보았다. 얘야, 기억해야 해. 어머니는 미래에서 말했다. 기억해야 해. 엄마, 난 엄마의 얼굴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 기억해야 해, 얘야 기억해야 해. 어둠이 엉긴 눈으로 암비둘기는 가로막힌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의 언어와 사람의 언어로 짜여진 기억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막내 오빠가 그녀에게 온종일 참회의 중얼거림으로 기도할 때는 그녀도 그것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오빠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고 암비둘기는 인간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짜인 과거와 미래를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오빠 불타버린 벌집에서 여왕벌이 울고 있어. 윙윙거리는 소리, 들려? 그건 시계태엽들이 맞물리는 소리야. 파리들이 날아다니는 소리야. 붉은 과육 위에 젖어 있는 파리가 너는 보이지 않는가 보구나. 암비둘기는 생각했다. 이건 내 언어가 아니야 이건 내 삶이 아니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 이건 내 얼굴이 아니야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이건 내 죄가 아니잖아 이건 내 잘못도 아니라고 이건 내 삶이 아니야. 하지만 그 모든 어둠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녀의 것이 아닌 목소리와 얼굴과 죄와 삶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녀는 무엇인가? 이브는 죄로 변색된 사과를 통째로 먹어치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것을 필요로 했으니까. 암비둘기는 어둠의 넓고 균일한 평면 위를 떠다니는 언어의 제스쳐들을, 이미지들을, 빛의 반점들을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트럭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뭉그러진 얼굴 로드킬 당한 어린 새의 얼굴 그녀는 소리쳤다 이건 내 아이가 아니야 하지만 망가진 얼굴이 그 자리에 있는데 여기에 있는 건 그럼 대체 무엇인지 여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교실에 들어설 때 그들은 거기 없는 여자아이를 보고 있었다.

더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암비둘기는 하얗고 창백한 원반 위에 붙여 놓은 달빛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접착제가 녹아내리고 빛이 흘러내리고 이곳의 시간에는 시제가 없어. 시간이 흘러가지 않은 게 얼마나 되었지. 어째서 언젠가는 시간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언젠가는 시간이 어딘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암비둘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암비둘기의 작은 머리를 부풀리고 있는 관념들은 암비둘기의 부리를 벌려 암비둘기의 존재를 발음하지 못했다. 암비둘기는 말 없이 더듬거리며 울었다. 하얀 젖으로 더러운 양동이를 가득 채우는 암소, 낯선 동물이 그녀의 젖을 움켜쥐는 동안, 양동이 속에 젖이 떨어지는 동안 암소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 암소가 젖과 아침을 견디는 동안 너는 여기에 있었지. 시간의 균열 속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너를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어. 아직 빠지지 않은 너는 이렇게 말했어. 얘야 모두가 빠진단다 모두가 균열 속에서 허우적거린단다 균열 속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너를 구해줄 수 있겠니. 내가 빠지는 동안 왜 보고만 있었어요? 아이는 거울에 대고 묻는다. 내가 빠지는 동안 왜 나를 구하지 않았어요? 거울 속의 여자가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균열 속으로 추락한다.

오빠 나 좀 꺼내줘 내 말 들려 나 말하고 있어 나 소리지르고 있어 (깔깔 웃으며) 내 말 들려? 나 웃고 있어 나 울고 있어

암비둘기는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날았다. 그녀는 두 개의 날개를 노처럼 저으며 밤을 항해했다. 성스러운 도둑들의 십자가가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유령 새들도 그녀와 함께 날았다. 천사들의 투명한 날개가 달을 일그러뜨렸다 혹은 그곳에는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시간에는 시제가 없다. 성스러운 도둑들이 못 박힌 십자가가 회전목마의 음악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신이 영원히 죄를 짓고 영원히 희생하고 영원히 죽고 영원히 살아나는 동안 암비둘기는 암소의 부드러운 젖을 잡아당기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암비둘기가 골고다 언덕의 꼭대기까지 날아갔을 때 다른 숙명을 향해 못 박혀 있는 두 도둑의 시체가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니? 암비둘기는 높은 목소리로 짖었다. 그래. 게스타스가 말했다. 네 목소리는 세이렌의 것 같구나. 난 언젠가 그녀의 유골을 훔쳤지. 그녀의 머리뼈가 해안에 밀려오는 걸 반짝이는 물거품들과 함께 떠밀려오는 걸 나는 분명히 봤지. 디스마스가 말했다. 그녀의 턱뼈가 벌어졌다 맞붙는 소리를 나도 봤어 그녀가 뭐라고 소리내려 애쓰는지 나도 봤지 분명히 봤어. 그녀는 그녀가 차지하려 했던 운명과 아름다운 남자에 대해 말했어. 검은 물 속에서 그녀는 난파하는 배의 남자를 처음 보았다고 했지. 그는 하얀 달처럼 가련하게 젖어 있었다고 했어. 그녀는 그를 향해 헤엄쳤고 그를 향해 노래를 불렀지. 선원들이 경고하는 소리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밀랍으로 귀를 봉하는 소리 묶인 그가 핏발선 금빛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때 그녀는 그를 위해 노래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어. 그가 어떠한 저주로 그녀의 매혹적이고 강인한 노래를 침묵으로 만들어버렸는지 그녀는 말하지 않았어. 그녀의 턱이 뻐끔거렸고 나는 그 턱에서 얼마나 많은 물거품들이 생산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지. 그러나 그 말들이 무엇이었을지는, 그 물거품들을 부풀린 날숨들이 어떤 음성의 침묵으로 가득 차있었을지는 짐작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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