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ANDOUT년 10월 1일 – WA1년 8월 10일

INANDOUT년 10월 1일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죄를?

사랑을 했습니다.

당신은 원죄를 가지고 있군요. 원죄가 당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십시오. 참회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더 사랑하십시오.

헨젤과 그레텔은 무덤 파는 남자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도시로 갔다. 헨젤과 그레텔은 어머니가 무엇을 하러 도시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도시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고 했다. 그곳에는 검고 깊은 산맥이 있었다. 밤이 있었다. 짐승들이 있었다. 어둠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매일같이 그곳을 오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미쳤다고 했다. 어머니는 도시로 나갈 때마다 한 번씩 죽었다. 돌아오는 어머니는 유령의 냄새를 조금 더 묻히고 들어온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가 무덤을 파고 돌아와 유령들과 함께 잠들면 헨젤과 그레텔은 남몰래 현관을 빠져나가 무덤가로 향했다. 그들은 어린 짐승의 뱃속을 파헤치듯 무덤의 봉긋한 봉분을 장난감 삽으로 파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도달했다. 비밀스러운 살이 매장되어 있는 위치에. 어떤 의식, 어떤 삶, 어떤 죽음, 어떤 몸, 어떤 시간이 누적되어 있는 공간에. 하얗고 물컹거리는 무엇인가를 그들은 보았다. 그레텔은 비명을 질렀고 헨젤은 어린 소년 특유의 집요함으로 훼손된 인간의 눈구멍을 헤집었다.

밤의 무덤가는 어린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하얗고 반질반질하게 닳은 뼛조각, 살의 양분을 머금은 기름진 흙, 시신의 배 위에 핀 작은 꽃을 수집했다. 죽은 이의 육체는 장난감처럼 연약하고 무력했다. 그레텔은 죽은 소녀의 창백한 머리통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술 위에 거품 같은 것이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벌레들이 결집하는 장소, 혹은 벌레에 불과했다. 그레텔은 속눈썹이 모두 떨어진 눈의 희미한 흔적, 그 상처를 바라보았다. 이 애는 살아 있었어. 그레텔은 홀로 되뇌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갈망을 느꼈다. 죽은 소녀의 오염된 입술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충동. 어린 헨젤은 그녀의 옆에서 시체의 자세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바꾸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레텔은 거울을 보듯 소녀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것은 그녀를 반사하고 그녀를 굴절하고 그녀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오 소녀의 손톱은 검고 또 검었다. 알 수 없는 갈망, 저릿함, 슬픔을 닮은 충동이 그레텔의 목 안쪽을 할퀴었다. 그레텔은 그녀에게 입맞추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났고 더 만날 수 있었으니까. 비밀을 폭로하듯 훼손된 소녀의 입술이 그레텔의 붉은 입술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레텔은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젖었고 그리 투명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그녀의 턱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물기를 맞은 구더기들이 온몸을 휘며 꿈틀거렸다. 그레텔은 짙은 역겨움을 느꼈다. 소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녀의 입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레텔은 소녀가 아직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소녀는 죽었고 죽은 채로 살아 있었다. 새벽의 알레고리처럼, 공중을 떠도는 투명한 칼날처럼 소녀는 살아 있었다. 그레텔은 흔들리는 더러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그녀와 결합했다. 그녀는 그녀일 수 없을 것과 충돌했다. 그녀는 하얗고 미끈거리는 움직임들을 느꼈고 곧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새벽의 비가 그들을 적셨다. 헨젤은 시신의 가슴 위에 돌을 쌓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네 개의 돌들이 시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는 흙냄새가 났다. 그는 한탄하듯 말했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들어서고 싶었다. 나도 도시로 가서 도시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지. 죽음은 식물이 되는 거야. 근육은 삭아서 없어지고 다리는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지. 너희 엄마가 매일 도시로 갈 수 있는 건 그년은 죽음이 뭔지 알지 못해서야. 죽음이 뭔지 알지 못하니까 죽고 나서도 멀쩡히 걸어다닐 수 있는 거지. 그년이 시체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죽음을 맞이한 다리로 산을 넘어 다니지는 못했겠지. 도시에는 더 많은 일, 더 많은 삶, 더 많은 불빛이 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도시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덤보다 비좁은 책상 안쪽에 틀어박혀 갓난 아이의 시체보다도 더 비좁은 문장들을 외우고 또 외웠지. 그렇지만 도시에 간 건 결국 다른 놈들이었어. 그들은 도시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도시에 갈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침을 삼키듯이 자연스럽게 도시에 갔지. 그들과 어울리던 놈들도 도시로 갔어. 하지만 나는 도시에 가지 못했지. 그 놈들의 시중을 들었다면, 그들에게 암소의 새벽 우유를 짜다 바치고 그들의 펜을 대신 들어줬다면 그들이 나를 아끼는 시종처럼 데리고 도시로 갔을지도 몰라. 너희 엄마를 도시에서 만났다면! 그랬다면 너희는 도시 아이가 되었을 거다. 나는 빗방울처럼 많은 시체들 사이에 둘러싸여 삶을 일했겠지. 비밀보다도 더 깊숙한 행복 속에서 나는 도시를 숨쉬며 잠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 놈들의 운명을 쫓아가기 위해 내게는 죽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난 뒈져버린 거야. 뒈져버렸으니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거지. 식물처럼 마비되어버렸다는 말이야.

자, 내가 너희에게 고백했으니 너희도 고백해보렴. 너희들이 쥐새끼들처럼 죄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레텔, 네 옷깃에 구더기가 붙어 있구나. 헨젤, 손바닥을 펼쳐 봐. 그래. 그 하얀 건 뭐냐? 돌이라고? 그럴 리 없다. 그건 뼛조각이야. 사람의 뇌수를 감싸던 두개골 파편이라고. 오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매일 그 짓을 하면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냐? 매일 그 짓을 하면 그게 역겹지 않을 거라고 믿었냐? 씹할, 그년은 단 한 번도 나를 도시로 데려가지 않았지. 수천 수만 번을 오가면서 단 한 번도 나를 데려가지 않았단 말이야. 너희도 마찬가지지. 그년은 너희를 데려간 적도 없어. 왜인지 알아? 내가 시골 사람인 만큼 너희도 시골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과하고 무덤 파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도시로 가고 싶었어. 하지만 도시에서는 무덤 파는 사람을 한 명도 구하지 않았지. 결국 나는 이곳의 무덤 파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었어. 다음 해에는 도시에서 무덤 파는 사람을 백아흔 명이나 구했지만 나는 지원할 수 없었지. 이미 무덤 파는 사람으로 일하고 있는 자들은 같은 채용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거야. 내가 시골에서 무덤을 파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로 무덤을 파러 갈 수는 없었다는 거다.

아버지는 문구용 가위를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가위의 뭉툭한 칼날을 경동맥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여기서 뒈지면 학교를 졸업한 시골 사람이 시골의 무덤 파는 사람이 되어 나를 묻어 주겠지. 내가 도시에서 뒈지면 도시의 무덤 파는 사람이 나를 묻어 줄 거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런 물음은 우스운 거야. 시골에 묻힌 시골의 무덤 파는 사람인가, 아니면 도시에 묻힌 시골의 무덤 파는 사람인가? 어쨌든 나는 지긋지긋한 존재의 결박에서 탈출할 수 없는 거다. 존재는 시골이고 실존은 도시이니! 죽지 않으면 도시로 갈 수 없고 죽지 않으면 존재로부터의 탈주선을 그을 수도 없으니! 하지만 여기서 죽으면 나는 시골에 묻힌 시골의 무덤 파는 사람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

헨젤 : 엄마는 언제 오지?

그레텔 : 우린 너무 오래 기다렸어. 오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헨젤 : 난 엄마 옷을 입고 싶어.

그레텔 : 엄마가 죽고 나면 우리에게도 엄마의 것에 대한 권리가 생기겠지. 엄마의 도시, 엄마의 빛, 엄마의 시야, 법원은 그것들을 우리에게 승계해 줄 거야.

헨젤 : 엄마가 어딨지?

그레텔 : 뭐?

헨젤 ; 그게 어딨지?

그레텔 : 그거라고?

헨젤 : 그거

그레텔 : 너 대사를 잊어버렸구나. 그게 아니라 엄마라고 해야지. (관객들이 침묵한다. 곧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헨젤 : 그레텔. 이제 끝났어. 누가 우리 엄마를 묻어버린 것 같아.

그레텔 : 뭐? 아니야. (무대 바닥에 깔린 모래를 파헤치며) 뭐라고?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헨젤 : 누가 그걸 묻어버렸어.

그레텔 : 맙소사 지금 네 눈은 두 마리 지네 같아. 벌레 다리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안구가 반짝거리는군. 역겨워라. (구역질 하는 시늉을 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누가 우리 엄마를 묻어버린 것 같아.

헨젤 : 세상에. 누군가 우리 엄마를 죽였고 우리 엄마를 묻었다니.

그레텔 : (헨젤을 흘겨보며)너무 빨랐어. 우리가 엄마를 죽였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 우리 엄마를 묻은 거야.

헨젤 : 네가 그랬지?

그레텔 : 뭐?

헨젤 :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엄마를 묻은 거야. 넌 항상 그년 젖가슴을 훔쳐보곤 했으니까. 너는 엄마의 죽음을 훔치고 우리 범죄를 독차지하려고 했던 거야.

그레텔 : 그래. 네가 백치처럼 잠든 사이 내가 엄마를 묻었어. 넌 내가 어디에 그걸 묻었는지 상상도 못 할걸?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턱을 벌렸어. 턱 밑을 지탱하고 있던 살도 벌렸지. 엄마는 물에 젖은 새처럼 부드럽고 축축했어. 오빠. 엄마는 밤의 태양이 내던져놓은 희망처럼, 가장 절망적인 희망처럼 무력했어. 네가 그녀의 잠과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동안 내가 그녀의 부패해가는 시신을 안아들고 있었지. 난 엄마의 털가죽을 벗겼고 엄마의 맨 가죽도 벗겼고 엄마의 가장 내밀한 존재까지 벗겼어. 그러고

헨젤 : 너무 빨라. 난 네 프롬프터가 아니지만 이건 말해야겠어. 너무 빨라. (관객들의 폭소)

그레텔 : 빠르다고? 뭐가? 들어. 오빠. 나는 네 범죄를 훔쳤어. 이제 그건 내 거야. 그런데 뭐가 빠르다는 거야? 나는 죽은 여자의 시체를 들고 있었어. 나는 조금도 빠르지 않았어. 오빠. 나는 발가벗고 있었고 내 젖가슴이 흘러내렸고 내 턱이 벌어졌어. 내가 죽었어. 오빠 그런데 뭐가 빠를 수 있다는 거야? 내가 그녀를 묻었고 내 입 속에 흙이 밀려들었어. 지렁이와 그것이 작은 작고 역겨운 알들이 내 입으로 흘러들었다고. 그런데 뭐가 빨라? 나는 벌레들을 위한 텃밭이 되었어. 그런데 뭐가? 오빠.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시고 나는 밤새 일했어. 죽은 백조의 축축하고 무거운 몸을 들고 나는 작업했다고. 그런데도, 오빠, 사실 전혀 빠르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헨젤 : 엄마를 묻었는데 뭘 기다린다는 거야?

그레텔 : 엄마가 아직 안 왔잖아.

헨젤 : (황망하게) 그래.. (발작적으로 고개를 꺾고 손을 떨며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한참 침묵한 뒤) 엄마는 아직 안 왔지. 그레텔. 엄마가 안 왔어. 우리가 새벽의 검은 우유를 다 마시는 동안에도.

그레텔 : 우린 그걸 다 마시지 않았어. 새벽의 검은 우유는 신자유주의처럼 결코 완전히 죽여 없앨 수 없는 것이지.

헨젤 : 너는 너를 죽였고 네가 벌거벗고 있었고 죽은 백조의 하복부가 네 사타구니를 적셨고 너는 땅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그레텔 : 오빠, 내 가여운 오빠, 창백하게 질렸구나. 하긴 내 얼굴도 너랑 그리 다르지 않을 테지. 엄마는 죽은 천사처럼 무력하고 무해했어. 그런데도 나는 오래도록 움직일 수 없었지. 백조의 육중한 시체가 나를 어딘가 다른 중력의 중심점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어.

헨젤 : 아버지는 어디 있어?

그레텔 : 아버지는 새벽의 알레고리에 목을 매고 잠들었어. 벌어진 동맥에서는 투명한 깃털들이 포크 댄스를 추고 있지.

헨젤 : 잘됐네.

그레텔 : 그래. (침묵한다.) 우리 아버지에게 엄마 옷을 입혀줄까?

헨젤 : (놀라며) 엄마 옷을? 엄마 원피스와 엄마 화장과 엄마 죽음을?

그레텔 : 그리고 엄마 피부와 엄마 삶과 엄마 잠을!

헨젤 : (놀이에 도취된 어린아이처럼 격양된 목소리로) 좋아, 좋아!

그레텔 : 이리 와봐. 혹시 몰라서 내가 엄마 가죽을 벗겨놓았으니까, 이걸 수선해서 아빠한테 입히자.

헨젤 : 그리고 엄마 흙과 엄마 애벌레와 엄마 자궁을 발라 주자!

그레텔 : 자궁은 바르는 게 아니라 삽입해야겠지.

헨젤 : 그런데..(눈치를 보며, 불안스럽게) 너 이 범죄까지 훔쳐가는 건 아니겠지?

그레텔 :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싫으면 그만 둬.

헨젤 : 아니야. 아니야 (불안하게 움츠러든 목소리로) 아버지 좀 봐. 잠든 모습이 꼭 쥐 아이 같아. 귀여워라.

그레텔 : 엄마 가죽이 아버지한텐 너무 크니까 적당히 잘라서 맞추자. (바느질하는 시늉을 한다.)

헨젤 : 그래. 오, 아버지 꼭 늙은 호랑이처럼 보이는군요!

그레텔 : 갓 태어난 호랑이처럼 쭈글쭈글하기도 해.

헨젤 : 귀여워라. 정말 귀여워. 가죽 때문에 숨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 숨구멍을 뚫어 드리자.

그레텔 : (잠든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헨젤 : (흐느낀다.) 그레텔, 엄마가 숨을 쉬지 않는데. 혹시 벌써 뒈진 건 아니겠지?

그레텔 : (웃는다) 너무 빨라, 헨젤, 언제나 빠른 건 너야. 성급하게 먼저 태어난 것도 너였지. 세계의 살과 피가 내 눈에 들러붙기 전에 너는 세계의 비밀한 흡반으로 눈이 멀었어. 아 오빠 난 어제 한 마리 천사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너무 빠른 너는 불면조차 거치지 않고 잠으로 돌진해버렸지. 새벽의 검은 우유를 너는 너무 빨리 마셨고 나는 끔찍하게 음미하면서 흡입했어. 내 눈이 새벽의 검은 우유로 젖었고 내 눈에 존재의 온갖 찌꺼기들이 모여들었고, 그리하여 눈의 적막함, 눈의 폭소, 눈의 파열! 빛의 원뿔이 안구의 가장 내밀한 곳을 파고들었고 내 백조의 자궁 속에서 어떤 알이 끓어넘치고 있었는데 오빠는 자고 있었지. 태어남도 없이 자라버린 새처럼!

헨젤 : 악취가 나. 이상한 악취가.

그레텔 : 그건 부패하는 피 냄새야. 네 얼굴 밑에서 꿈틀거리는 역겨운 액체의 악취이기도 하지. 오빠. 가끔 오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하게 굴어. 또 대사를 잊어버린 거야? 오지 않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올 것을 기다리는 메시아의 민중들처럼, 불가능을 향한 잔혹한 기다림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곧 하나의 원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헨젤 : 엄마는 계속 자고 있어. 엄마가 일어나서 우리를 끌어안아 주면 좋을 텐데.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그럼 나는 엄마의 종이 될 텐데. (흐느낀다.)

그레텔 : 네 엄마 젖은 다 비었단다. 가서 네 친구랑 놀아. 아가야.

헨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아.

그레텔 : 그건 네 잘못이야. 아가. 그 애들이 네게 공을 물어오라고 했을 때 공을 물어서 주인들의 손에 쥐어줬어야지. 그 애들이 네게 걸레질을 하라고 할 때 걸레질을 하고 어린 주인들의 맨발을 핥았어야지.

헨젤 :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친구 역할이지 노예 역할이 아닌걸.

그레텔 : 하지만 주인들은 너를 원하는구나. 가엾은 것.

헨젤 : 내겐 노예 친구조차 없었어.

그레텔 : 그래. (살가죽을 꿰매며) 그래서?

헨젤 : (흐느끼며) 항상 마찬가지야. 나도 잘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소년들과 놀다보면 나는 언젠가부터 리듬을 잃고 엇박을 치기 시작하지. 몇 번 말을 해야 할 타이밍, 특정한 제스쳐를 취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허둥거리다보면 그 애들은 내가 끔찍한 박치라는 걸 알아차리고 내게 말하는 거야. 공을 주워 와. 그게 아니면, (숨을 들이쉬고서) 엎드려서 짖어 봐. 난 당황해서 굳어버려. 그러고는 모든 걸 망쳐버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은 관대하게도 그들이 내게 제안했던 노예 역할마저 내가 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아. 그러고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원을 조금, 아주 조금 옮겨서 나를 원 밖의 외딴 점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지. 끔찍해. 정말 끔찍해.

i11년 5월 20일

안녕? 안녕? 나는 유달리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 애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교실 문을 들어서며 밝게 인사할 때, 아이들의 날카로운 정적, 그리고 폭소가 지니는 잔혹성에 대해 그 애가 말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WA1년 8월 10일

그녀의 과업은 화장실 벽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신부가 매일 기도를 하듯, 창녀가 매일 섹스를 하듯 화장실 벽면 타일들 위에 락스를 들이붓고 걸레로 닦아내었다. 정적 속에 말을 퍼붓듯이, 그녀는 집요하게 닦고 닦고 또 닦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장실 벽면 타일들은 날마다 오물로 더러워졌고 그녀는 수행을 하듯 그것을 벗겨내어야 했다. 그녀가 오물을 벗겨내고 난 뒤 화장실 벽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그러므로 그녀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벽은 흼보다는 희지 않음을 더 지속적인 성질로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을 했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벽은 단 한 순간도 희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오직 실존하는 일시성만을 위해 일했다. 곧 더러워질 타일과 더러운 타일 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파열을 위하여 그녀는 짧은 일생을 화장실 속에서 보냈다.

물론 그녀가 8개 칸으로 이루어진 화장실 전체를 청소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할당된 영역은 화장실 벽의 한쪽 구석뿐으로, 다른 구역에는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영역을 결코 넘나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화장실의 일부 구역은 각자에게 신성한 것이었다. 예수를 섬기는 자가 부처를 섬기지 않듯, 제우스신을 섬기는 자가 알라를 섬기지 않듯, 그녀는 그녀의 영역 외부의 공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간혹 다른 청소부들과 잡담을 하는 일은 있었지만 결코 그들과 깊이 친밀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영역을 청소하느라 너무나 바빴던 것이다. 긴 지속 사이의 파열들을 보다 많이 수집하기 위해 그들은 있는 힘껏 일했다. 오, 물론 그러나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증명할 수 있을 법한 성질의 작업이 아니었다. 그들이 잠시간 손에서 걸레를 놓는 순간 화장실의 구석구석은 마법적이게도 순식간에 오물과 침, 구토, 벌레들로 뒤덮였으므로 고용주가 보기에 화장실은 언제나 더러운 상태였다. 그들의 근무 평가표에는 언제나 최악의 점수가 매겨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해고당한 청소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고용주가 그들 과업의 불가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그에게 화장실 청소라는 작업은 너무나 하잘 것 없는 것이어서 누군가를 해고하고 새로 채용할만한 신경을 기울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엎질러진 오물 위에 누워 잠들었고 그곳에서 간단한 빵과 우유로 식사를 해결했다. 청소부들은 화장실 변기뿐 아니라 화장실 어디에서나 배설구를 드러내고 변을 보았다. 그렇다 해도 그 구역을 담당하는 청소부가 불만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화장실은 언제나 어떤 이유로 인해서이든 지저분해지고 청소부들은 매 순간 자기 담당 구역을 청소하는 일만으로 너무 바빠서 거의 영속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새로운 더러움에 욕을 내뱉을 여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화장실의 더러움은 단두대처럼 결백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 앞에는 불결한 흰색이 있었다. 여자는 그녀 앞에서 강렬하게 증발하는 삶의 실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건물을 소유하던 기업이 도산한 뒤 그들의 고용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갈 곳 없는, 그러나 화장실의 흰색을 돌보는 과업 바깥에는 어떠한 존재도 없는 청소부 네다섯뿐이었다. 증발하는 삶의 실존, 그것은 흰색이었다.

여자는 더 이상 더러워지지 않는 화장실 벽을 도취 상태에서 응시했다.

오, 기도하라, 신이여! 여자는 발작적으로 몸을 떨며 외쳤다. 밤은 별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어두움은 오직 밝음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화장실 벽면 타일들의 지속적인 환함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습관에 따라 온종일 타일들을 문지르고 닦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빛나고 있음을, 그것도 단두대처럼 확고한 흰색으로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 자리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낯섦, 이미 그녀의 일부인 그 낯섦 속에 웅크렸다. 불결한 흰색, 더 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흰색, 그녀의 과업 없이도 완벽하게 증명된 흰빛의 지속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다른 청소부들처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장소, 흰색은 더 이상 그녀를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오, 하지만 그녀는, 그녀는 그녀의 직분을, 그녀의 필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시절처럼 무덤에서 나가고자 하는 헛된 꿈을 꾸지 않았다. 그녀는 파열, 혹은 상처와도 같은 흰빛의 한시성에 만족할 줄 알았으며 오직 그것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흰빛, 그것은 여전히 음탕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장실 벽면 타일은 달을 삼킨 호수처럼 말갛게 번들거렸다. 낙원은 교태롭게 몸을 뒤틀며 그녀를 낙원 바깥으로 쫓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하나의 과실조차 깨물어 삼킨 일 없이 추방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추방되기 위해 그녀는 과실을 필요로 했다. 가장 커다랗고 아름다운 과실일 필요도 없었다. 오직 하나의 과실, 생명의 나무 가지에 열린 한 조각의 과실을, 그녀는 필요로 했다. 그러나 구토와 절망으로 가득 찬 몸은 그것을 찾아 나설 수조차 없었다. 무질서의 달콤한 심연은 어디로 갔는가? 흰 것을 희지 않은 것과 결합시키던, 지속과 순간의 변증법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여자는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절룩거리며 화장실을 가로질러 걸었다. 남아 있는 다른 청소부들은 화장실 칸막이에 이마를 짓찧거나 바닥에 드러누운 채 손가락에 묻은 물기로 바닥에 알 수 없는 기호를 그리거나 쥐약을 삼킨 어린 비둘기처럼 날갯짓하며 무정형의 춤을 추고 있었다. 오, 그들은 삶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삶은 그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죽음은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하얗고 깨끗한, 허무의 지속성. 여자는 차라리 먼지 속을 기고 싶었다. 현재의 영원성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하얗게, 하얗게 표백되었고 그곳에 그녀의 존재는 얼룩으로조차 남지 않았다. 하얀 것이 그녀를 휩쓸었고 그녀를 지워버렸다. 오 그녀는 그녀를 지워낼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는 혼절할 듯 헐떡이며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신이여 기도하라, 신이여. 내가 이곳에 있나니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위해 기도하라. 나는 이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데 지쳤으니 이제는 당신이 내게 기도하라. 우리를 구속하는 불결한 흰색. 이 불온함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

k11년 6월 1일

전부 0점이다. 채점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0점이다. 네 머리를 잘라낸 뒤 세계에 남는 수는 없다. 눈이 멀고 난 뒤 남는 이미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는 처음부터 오류이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그 어떤 동일한 사물도, 완벽한 도형도 없기 때문이다. 뇌수 한 줌을 뽑아내고 나면 원도 직선도 이등변 삼각형도 없다. 수학은 오류에 토대를 둔, 가장 엄밀한 오류의 체계다. 인간의 표상 바깥에는 기하학도 숫자도 없다. 수학은 엄밀한 망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답을 제출한 자, 답을 제출하려 시도한 자, 문제를 풀려고 마음먹은 자, 모두 망상의 제로점이다. 끔찍하게 의미심장한 도형들과 직선들, 정확히 같다는 각들 그런 것은 모두 속임수에 불과하다. 점심 시간 내내 모니터에 이마를 붙이고 울었다.

나는 루이스 캐럴이 아니다. 나는 시인도 아니다. 나는 다만, 역겨운 열에 시달리는 간수일 뿐이다. 죄수들의 친밀하고 부드러운 원 내부를 나는 보지 못했다. 죄수들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수다를 떨고 빵을 나누어 먹고 달콤하고 시시한 치정극에 목을 매고 서로를 포옹하며 깊고 장난스러운 결합을 맛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맛볼 수 없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이곳에 잡혀온 것이다. 물론 나는 이곳 내부에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속해 있지 않다. 어느날 죄수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 성호를 그으며 소리쳤다. 나는 사형 집행인의 아들이다. 나를 믿지 않는다면 불신의 독을 마셔야 할 것이다. 죄수들은 수군거렸다. 네가 사형 집행인의 아들이라고? 네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의 아들이라고? 그가 어디 있는지 말해 줘, 제발 말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는 용서받을 수 없는 거짓에 대한 가장 가혹한 죗값을 치러야 할 거야. 홀로 일어서 있던 죄수가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믿지 않는 이에게는 구원도 없어. 믿지 않는 것은 네 자유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믿지 않는다면 네게는 사형 집행인의 그림자조차 허락되지 않을 거다. 오, 그 미소. 끔찍하게 의미심장한! 제발 그를 불러와, 어느 죄수가 견디지 못하고 외쳤다. 우린 너무 오래 그를 기다렸어. 아버지는 바빠, 사형 집행인의 아들, 혹은 그를 자처하는 죄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억의 목을 썰고 있단 말이야. 죽음을 기다리는 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희는 상상도 못하겠지. 너희는 기다려야 해. 사형 집행인의 아들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아버지가 올 거야. 그날 너희를 잠식하고 있던 경멸스러운 거짓 표상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고 새로운 세계, 혹은 세계-없음이 너희를 끌어안을지니.

재칼들은 아랍인의 피와 피 속에 잠긴 하얀 십자가를 마시길 원한다. 어둠에 실려온 희게 떨리는 기호. 정적은 우리를 짓부수고 눈과 입은 열려 있지만 비어 있지도 않다. 내게는 실패조차 없다. 나는 끝도 시작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랍인의 하얀 피 속에 누워 있을 때, 나를 간병하던 간수는 내 가엾고 어리석은 재칼이었다. 사물은 내게 끔찍하게 무관심하며, 내 목구멍 점막에 들러붙은 아랍인의 피는 흰 만큼이나 검고 깊었다.

i11년 7월 15일

오빠4 : 왕이시여, 우리에게 독을 내려주소서.

어린 왕 : 그들이 뭐라고 하느냐?

왕의 교사 : 왕이시여, 그들은 당신에게 기적을 청하고 있습니다.

어린 왕 : 뭐라고, 선생님, 당신이 내게 늘 가르쳐주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해야죠. (웃으며) 그렇지 않으면 목을 칠 것이다.

왕의 교사 : (큰 소리로) 왕이시여, 그들은 당신에게 기적을 청하고 있습니다.

오빠2 : 왕이여, 당신은 정말 어리고 아름답군요.

어린 왕 : 우리 아버지가 일찍 뒈진 덕분이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놈이 먹는 스프에 독을 탄 건 나야. 그러니까 내 젊음과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만든 건 나라는 말이지.

왕의 교사 : (엄숙하게) 왕이여, 당신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아무에게나 비밀을 털어놓으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드렸을 텐데요. 자, 바지를 내리고 엎드리세요. 매를 맞아야겠습니다.

어린 왕 : 매라고? 누가? 네가 맞겠다고?

왕의 교사 : 매를 맞는 건 당신입니다.

어린 왕 : 그래, 어디 해 보라고. (바지를 내리고 개처럼 엎드린다.)

왕의 교사 : 몇 대 맞을래요?

어린 왕 : 한 대.. 아니 (눈치를 보며) 다섯 대.

왕의 교사 : 그럼 다섯 대 때리겠습니다. (가시가 돋아난 장미 줄기로 왕의 엉덩이를 때린다. 다섯 대.)

어린 왕 : 세상에, 피가 나잖아! 왕을 발가벗기다니, 그리고 왕의 신체를 훼손하다니, 선생님, 당신이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나는 너를 죽여야 해.

왕의 교사 : 왕이여, 저는 당신에게 관용과 자비도 가르쳐드렸습니다.

어린 왕 : 알겠어요. 선생님은 믿지 않겠지만 나는 매일 충실히 예습과 복습을 한답니다. (눈을 감고 부드럽게) 네 죄를 사하노라. 너를 용서한다.

오빠1 : 왕이여 우리도 당신의 자비를 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자비가 우리 여동생을 죽이기를 바랍니다.

어린 왕 : 죽인다고? 그럴 순 없다. 나는 자비롭고 내 자비는 너희 여동생에게도 향한단다. 난 그녀를 하얗고 부드러운, 살아 있는 새로 만들 것이다.

관객들 : (웃으며 박수친다.) (아이들이 합창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 미로처럼 얽혀들어가는 혈류들이 어디로 자라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시는 피를 마신 자의, 불온한 농담이며 거울 속에서 무한히 증폭되고 있는 장미의 꿈이다. 나는 오랫동안 유령들에 관한, 유령들의 글을 썼다. 유령들은 거울 바깥의 생태계에서 멸종되어가는 미래의 짐승들이며 실종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실종된 채로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유령들은 시 속에서 제 벌겋고 역겨운, 그러나 감미로운 살을 누설하며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령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피를 마시며 유령들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절망적인 결속의 공모자가 되어주기를, 그래서 시의 기묘한 생태계 속에서 울어주기를 바랐다.

WA1년 8월 10일

여자가 어릴 적 그녀의 집에도 하얀 벽이 있었다. 기름때가 늘러붙었지만 그래도 하얀, 주방의 벽. 여자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 벽을 보고 무엇인가를 썰었다. 식물의 살과 초식동물의 살을 그녀는 날카롭게 갈린 식칼로 썰어내었다. TV에서는 세 마리의 아기 돼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었다.

어린 여자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식물의 얇은 살을 짓이겨 썰어내며. 너도 크면 이 주방에서 살게 될 거란다. 너도 하얀 벽을 보며 너의 세계를 상상하게 될 거란다.

어린 여자는 돼지의 살점과 식물의 이파리들이 한데 섞여 끓는 냄새를 맡으며 웃었다. 어린 여자는 죽은 짐승들의 기름이 엉겨붙은 주방 벽의 누런 때를 좋아했다. 그것이 감싸고 질식시키는 흰색도 좋아했다. TV에서는 어린 돼지들이 박수를 치고 작은 발로 땅을 구르며 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돼지들은 정말 귀여워 그렇지 않아? 나 돼지 키우고 싶어.

어머니는 웃었고 어린 여자는 웃었고 어머니는 식물의 살을 썰어내었고 식물의 껍질을 썰어내었고 식물의 끝을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투명한 손톱을 썰어내었고 손톱의 흰 속살을 썰어내었고 손가락 마디를 첫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썰어내었고 겨울의 달빛인 결혼바지가 손가락과 함께 썰려나갔고 어린 여자는 녹아내린 초콜렛처럼 달콤하고 진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얘야 너도 곧 너의 하얀 벽을 갖게 될 거란다 너의 하얀 벽에 너의 세계를 비추어보게 될 거란다 어머니는 웃었고 어린 여자는 마치 한 번도 죽지 않은 것처럼 웃는 늙은 여자를 보았으니, 오, 여자가 어릴 적 그녀의 집에도 하얀 벽이 있었다. 여자는 미래를 기억하듯 그 벽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러워지지 않은, 불결하고 선뜩한 흰빛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매끈한 벽면 타일이 그녀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그녀의, 그녀에 대한 관계가 그 흰 벽에 있었다. 그녀라는 존재를 통하여 그녀에게 열려 있는 존재들, 관념들, 사물들, 죽음들, 삶들, 시간들. 하얀 벽은 그녀가 그녀의 존재를 이해하는 어떤 방식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존재를 이해하는 흰, 혹은 희지 않은 벽의 방식으로 존재했다. 그녀는 하얀 벽을, 하얀 벽을 향한 그녀의 물음을 응시했다. 어째서 그것은 더 이상 더러워지지 않는가? 어째서 그것은 그토록 희며, 그리하여 더 이상 희어지지 않는가? 여자는 그녀 어머니의 손목을 다정스럽게 물어뜯던 주방의 부드러운 흰색을 기억했다. 광폭한 다정함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여름의 초콜릿처럼 녹아내렸고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웃었다. TV 화면 속의 보이지 않는 세 마리 돼지들도 박수를 치며 웃었다.

지금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흰색은, 그 황홀은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더 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흰색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물어뜯는 섬세한 멸시, 그녀는 스스로를 역겹고 감미로운 감각들의 합성 물질인 것처럼 느꼈다. 붉은 삼각형과 하얀 원, 더러운 푸른색의 사각형들이 교접하며 흘리는 이상한 화학 물질이 그녀를 덮쳐왔다. 오 그것은 어째서 흰색인가? 경멸스러운 흰색, 그녀를 요구하지 않는 흰색,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흰색. 그녀는 그 이상스러운 흰색을 몽롱하게 바라보았다. 청소부들은 차라투스트라처럼 비틀거리며 춤을 추듯 걷고 있었다. 밤은 별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별은 어째서 빛나는가? 별은 인간을 위해 빛나지 않는데 인간은 어째서 별을 세는가? 이미지는 인간을 외면하는데 어째서 인간은 인간의 이미지인가?

그녀는 피와 창자로 가득 찬 가죽 가방이었다. 피와 창자는 벽처럼 흰색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얀 벽을 반사하는 희지 않은 벽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희지 않은 벽이 하얀 벽의 거울상으로 희었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내면도 외면도 없는데 어째서 그녀는 아직 한 번도 가 닿지 못한, 영원히 가닿을 수 없을 바깥을 몽상하는가? 끔찍하게 의미심장한 꿈의 계기들, 자연은 그녀의 앞에서 자살하였고 그것은 그녀 없이도 살아 있고 흰데, 그녀는 어째서 살아 있는가? 그녀의, 그녀에 대한 물음은 어째서 아직도 살아 있는가? 흰 벽은 그녀에게 무관심하고 그녀를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며 그녀에게 어떠한 물음도 묻지 않는데, 어째서 그녀는 흰 벽을 묻는가? 어째서 그녀는 흰 벽에 비친 그녀의 물음을 매혹당한 맹인의 더듬거림으로 애무하는가? 흰 벽은 불감으로 그녀의 과민한 황홀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 위에 그려놓은 온갖 채도의 흰 빛들은 순식간에 으스러졌고 무너졌다. 오 신이여 나를 위해 기도하라! 그녀는 대사를 읊으며 허공 속에서 팔을 휘저었다. 왜냐하면 기도를 요구하는 이,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는 당신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너무 많은 기도를 가졌고 나는 단 하나의 이름도 갖지 못했다. 당신이 당신과 관계하는 당신의 신자들을 갖는 동안 나는 단 하나의 흰 타일도 갖지 못했다. 나는 나와 관계하지 못했다. 내 물음은 죽은 흰빛과 함께 떠밀려와 내 두 눈을 멀게 했다. 하얀 빛 속에서 무엇인가 떠올랐다. 여자는 언젠가 본 통속적인 영화를 떠올리듯 그녀의, 혹은 그녀의 것이 아닌 시간의 단편을 떠올렸다.

어린 쥐는 자신의 태양을 찾고 있었다. 하수구의 미로에서는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하수구에는 한 차례의 길고 지난한 역병이 몰아쳤고 이전의 세계를 이전 그대로 간직한다고 믿는 이는 어린 쥐밖에 없었다. 쥐는 역병에 걸린 쥐들의 역겨운 형광색 구토 속에 쪼그리고 앉아 밤, 혹은 낮을 지새웠다.

몇 개의 시퀀스가 지나가고 어린 쥐는 모종의 전형적인 결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어머니는 하얗고 가지런한 손가락을 그녀의 광폭한 짐승-이빨로 물어뜯고 있다. 어머니는 웃고 있다. 어머니가 웃고 있으므로, 어린 쥐 역시 그녀를 따라 웃는다.

하지만 어머니, 어린 쥐는 돌연 서글픈 어조로 속삭인다. 피가 흐르고 있어요. 한 마리 짐승이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릴 수는 없어요. 어머니는 죽을 거예요.

난 이미 죽었단다. 어미 쥐는 어린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태어나고 있어. 피, 이 피는 출산과 탄생의 피란다. 자, 네 동생의 태어남을 축하하렴.

어머니, 어린 쥐는 속삭인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데려오기를 기다렸어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 존재와 연루되어 있던 모든 자들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기다린 건 나와 한 번도 연루되어 있지 않았던 다른 세계의 무엇인가가 나를 데리러 오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역병이 돌고 나서 당신들이 좀비가 되고 침을 질질 흘리며 낯선 존재의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당신들을 기다렸어요. 당신들이 내 목덜미를 물어뜯고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길 기다렸다고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더군요. 어머니, 당신조차도 나를 다시 낳으러 오지 않았죠. 어미 쥐는 퉁명스럽게 속삭인다. 그야 당연하지, 보다시피 나는 나를 임신하느라 바빴단다. 내 자궁에는 너를 넣을 공간이 없었어. 어머니, 나를 먹어요 제발 내 목덜미를 물어뜯고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줘요. 모두가 그곳으로 갔잖아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모두 그곳으로 갔어요. 남아 있는 건 나뿐인데. 난 너무 외로워요. 외롭고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요. 어미 쥐는 웃으며 말한다. 넌 내가 달빛 속에서 일어난 새벽의 이리처럼 다정스럽게 널 살해해주길 원하나 보구나. 어미 쥐는 깔깔거리며 폭소한다. 정말? 정말이니? 네가 이렇게 재밌는 아이인지 몰랐어. 밤의 태양은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고, 그것은 미래의 새벽의 가능성을, 그것이 잔존한다면 다시 출현할 가능성과 계기를 지닌다고 믿는 거니? 어린 쥐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얀 벽은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멍하니 하얀 얼룩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너를 물지 않을 거야. 너를 살해하지도 너를 낳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너와 관계맺지 않을 거야. 너는 너를 천 갈래로 찢어 무수한, 그러나 결코 무한할 수는 없을 너들과 관계할 수밖에 없을 거야. 우리는 이미 배가 불러. 네가 원하는 게 약간의 선의나 아무래도 좋을 멸시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그렇지만 너를 찢고 너로 젖고 너를 파헤칠 그 무언가, 그런 게 정말 떠오르고 있다고 믿니? 밤의 태양이 너를 위해 하수구 안쪽까지 기어들 거라고 믿니? 네가 네 머리를 짓찧어 하수구 벽을 뚫고 나가지 않는 이상, 그래서 네 뇌수가 네 이마뼈의 균열로 노출되지 않는 이상 태양은 여기서 빛나지 않을 거야. 그동안 너는 하수구의 불가능한 미로를 헤매고 뛰어넘고 춤을 추며 미치는 수밖에 없단다. 테세우스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절망만을 희망하던 미노타우로스처럼 말이야. 아리아드네를 강간해 임신시켜도 그녀는 네 소굴에 남지 않을 거야. 그녀는 그녀의 영웅을 위해 마련한 순결한 실을 너를 위해 사용하지 않을 거야. 네가 아리아드네의 뒤를 음험하고 비열한 발자국으로 추적해도 너는 태양의 원주민이 될 수 없을 거야. 갑작스러운 빛에 눈 멀어 비틀거리는 너를 자랑스러운 크레테의 병사들이 사냥하겠지. 네 연약한 목덜미에는 날카로운 창의 칼날들이 파고들 것이고 네 부드러운 창자가 활짝 열린 뱃가죽 바깥으로 흘러내릴 것이고, 너는 그러지 마세요 제발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아요 하고 외치면서 울겠지, 그래도 그들은 너를 끌어안아 주지 않을 거야. 그들은 네 훼손된 창자를 다정하게 애무해주지도, 내 몸 속으로 그들의 내밀한 신체를 삽입하지도 않을 거야. 오직 단단하고 냉혹한 사물의 모서리만이 너를 통과하고 너를 찢어놓겠지. 미로 바깥에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가, 그 빛은 너를 위한 낙원이 아니란다.

여자는 하얀 벽,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를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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