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년 4월 5일 – a-3년

k11년 4월 5일

색색의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악기를 젓가락으로 두드려 연주한다. 온음과 반음까지 완벽하게 구현 가능하다. 방과후의 텅 빈 실험실에서 나는 남은 원색의 액체들을 유리 플라스크에 집어넣어 연주하고 있었다. 작고 촘촘한 발걸음 소리. 여자아이는 그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악기를 장미에 매혹당한 파리처럼 환하게 밝혀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금속 원뿔을 쓴 고양이들이 길고 유연한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걸 연주하면 어떻겠니?

유리는 부드럽고 소심하게 미소 지었다. 쥐들은 어때요? 실험을 할 때 내가 쥐를 훔쳐올 수 있을 거예요.

글쎄, 어떨 것 같니? 나는 웃으며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영사막 위로 흰 그을음이 번져 흘렀다. 고깃덩이 머리 위를 장식하는 타인의 머리의 그림자처럼. 화면 위에서 검은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그들은 매의 발톱들을 엮어 만든 화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노골적인 상징물이었다. 그들의 검고 주름진 성기는 날카로운 녹빛으로 번들거리는 풀 치마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비대하고 하얀 금발의 여자의 부드러운 팔목을 끌고 무리 사이로 들어왔다. 여자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금발이 화면 위로 햇빛처럼 쏟아지며 흩날렸고 머리칼 사이로 비명이 울려퍼졌다. 검은 남자는 말을 몰듯 여자의 두 팔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여자는 무너져내렸고 그녀의 두툼하고 부드러운 무릎이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는 검은 바닥에 끌렸다. 곧 그녀는 검은 남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들의 낄낄거리는 소리와 비명 같은 환호성, 여자의 울부짖음, 하얗고 비대한 다리가 검은 등들 사이에서 죽은 새의 목뼈처럼 비죽 튀어나와 흔들렸다.

유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뒤에 무엇이 나올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줌-아웃, 무대의 밑면이 보였고 객석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여자가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대야를 무대 위로 올려 보냈다. 조명을 반사하고 있는 대야의 내부는 태양의 액체를 담고 있는 것처럼 빛났다. 검은 남자들은 성수를 바르듯 투명한 물로 얼굴과 목, 벌거벗은 검은 가슴과 허벅다리를 천천히 씻어냈다. 검은 물감이 녹아 흘렀고 그들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하얀 몸을 드러낸 검은 체 했던 남자들은 무대 앞으로 옮겨 선 뒤 하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밀랍 인형처럼 단단히 굳어 있었다. 희게 벗겨진 남자들이 하나 둘씩 옮겨가자 금발 여자의 비만하고 풍요로운 흰 살이 점차 드러났다.

여자는 불현듯 깔깔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긴 가발을 벗었다. 그리고 하얀 속옷을 들추어 짙은 금색 음모에 뒤덮인 검붉은 남성기를 화면에 드러내었다. 여자는 웃었다. 유리는 웃었다. 그러나 그 애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a-x=k11년 12월 5일

언젠가 그는 내게 강간당하는 여자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강간이 아니었다. 강간당한 이는 어디에도 없었고 강간한 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간당한 것은 흑인 야만인 남자의 백인 문명인 여자 강간이라는 백인 남자들의 판타지, 파시즘적 이분법뿐이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강간당했다. 그건 연극이 아니다. 나를 강간한 남자가 있고 강간당한 내 몸이 있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내게 미적분을 가르치려 했다. 나는 미적분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미적분을 배워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창녀가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 뺨을 때렸고 나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입술을 때렸고 나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셔츠를 벗겼고 나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나를 강간했고 나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 이해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째서 미적분을, 미분을, 적분을, 인테그랄을, 지수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째서 그는 나를 나는 즐겁지 않았고 그는 내 성기가 젖었다고 했지만 나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고 그는 내가 즐기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즐겁지 않았고 그는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나는 갈색의 축축하고 역겨운 얼룩이었고 그는 나를 짓밟았고 나는 그를 깨물지 못했고 나는 내가 아니라 그의 성기가 젖었으며 그가 즐기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고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나는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으니 나는 짓이겨진 얼굴이었고 생일 촛불에 타들어가는 인형이었고 그는 미적분을 이해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나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미적분을 이해했으니 다행이라고 그는 말했다. 창녀가 되고 싶지 않으면 계속 찾아와 배워야 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 (창녀가 되고 싶지 않으면 그에게 찾아가 창녀가 되라고?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연극이 아니었다. 몸은 도살장이고 출구는 도끼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존재하는 것은 간혹 숨을 참는 일이다. 그는 나를 죽이기 위해 나를 교육했고 오직 나를 순교시키기 위해 내게 그의 불그죽죽한 성기에 대한 신앙을 가르쳤다.

그는 그의 성기가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그의 성기로 만들어진 다리가 천국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으나(그토록 미미하고 불안한 다리로 지탱되는 천국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창자처럼 연약한 성기로 내 배를 갈랐고 나를 순교시켰다. 나는 미분을, 인테그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멍청하다고 나무랐으나 그의 분노는 즐거워 보였다. 나는 체념을 배우는 데에도 체념에 저항하는 데에도 소질이 없었다.

시를 쓰고 있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뭐라고 했지? 나는 그가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은 그가 나를 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의 원초적인 무기로 나를 꿰뚫고 내 죽음을 살해했기 때문에 내가 시를 쓰는 것이라고, 내가 여성적인 순종과 마조히즘과 쾌락을 배웠기 때문에 미적분을 이해하고 그래서 시를 쓰게 된 것이라고. 그러니 너는 길거리에 나가 몸을 팔지 않아도 될 거야. 너는 검고 정숙한 옷을 걸치고 소수적인 남자들에게만 자유롭게 몸을 팔 수 있을 거야. 그건 창녀들이 하는 짓거리보다 훨씬 고귀한 일이지. 그는 캥커루와 키스하는 것처럼 황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너는 순교해야 해 너는 나를 위해 죽고 나를 위해 살아야 해. 너는 아름다운 달이야. 너는 물밑에 있어야 해. 물밑에 잠들어야 해. 물밑에서 시를 쓰고 물밑에서 죽어야 해. 달이 수면 가까이 떠오르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생기는지 안다면. 그는 달이 자궁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가 쓰지 못한 시들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자궁을 선망하는지, 얼마나 자궁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내가 풀지 못한 문제를 들이밀었고 내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하자 내 뺨을 때렸다.

너는 음탕한 년이야. 넌 자지에 환장한 년이야.

그러나 사실 나는 자궁에도 남성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시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는 것이다. 나를 물 속에 담그고 익사시키려는 것이다. 그가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강간범도 희생자도 없는 연극의 아이러니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 내게 그것을 보여주었지? 강간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자들이 아무도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내가 강간당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가 나를 강간한 것이 아님을, 내가 그에게 강간당한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 그가 강간범을 연기한 것뿐이라고 말하기 위해?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의 파열들에 대한 증거는 내 몸이다. 피와 얼룩이 씻겨 내려간, 유령의 몸. 기억의 이미지들은 유령들의 눈물 같은 빗물에 쓸려 사라지겠지. 그러나 이미지들은 집요하게 남을 것이다. 너는 아름다운 달이야. 나는 달을 증오하는 대신 그의 언어를, 그의 거짓을, 그의 이중성을 증오하기로 했다. 그가 얼마나 교활하게 내게 창녀를, 달을 증오하도록 부추겼는지 나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얼마나 교활하게 내가 미적분을 무지를 내 몸을 증오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얼마나 교활하게 나를 부수었는지 알고 있으므로. 그는 그가 당하고 싶은 모든 것을 내게 부추겼다. 나는 그가 얼마나 음침하게 위장된 마조히스트인지 알고 있다. 그는 여자의 목덜미 위로 올라서서 케케묵은 환상으로 그녀들의 목을 부러뜨리려 날뛴다. 그는 자유로운 복종을 강요하며 내 목을 조르고 내가 썩은 고기이며 벌떼 같은 질병임을 속삭였다. 그것이 그의 역겨운 시였다. 어떤 시는 그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속삭인 모든 ‘사랑’의 시는 그의 말처럼 썩은 고기이며 벌떼 같은 질병이었다.

나는 결국 미적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내게 반복적이고 집요한 말들을 속삭였다. 나는 그와 결혼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 몸은 계속해서 도살장이었다. 그는 축사 같은 몸을 허물고 내게 캥거루의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암말을 학대하듯 미적분을 가르치며 내 뺨을 때렸다. 그는 내 무지를 내 공백을 내 침묵을 거침없이 조롱했다. 내가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직전에 그는 황급히 성기를 빼냈다. 그의 의도적인 불감증은 나를 질식시키기 위한 교묘한 장치였다.

그는 내가 창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다고 변명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나는 아직 미적분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처럼 웃으며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네가 그걸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전부 알고 있었어. 유리.

i11년 4월 5일

그 애의 엄마와 내 이름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심코 운명 같다는 말을 내뱉고는 곧 후회했다. 그 애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혹은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있는 뱡향에 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쪽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빨갛게 찢어진 장미처럼 웃고 있었다.

중간고사 준비는 잘 돼 가? 그 애가 물었다.

나는 문제집을 풀고 있다고 대답했다.

넌 좋은 대학에 갈 거야. 그 애가 말했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존재하는 것은 질식하기 전에 숨을 쉬는 일이다.

연극은 어떻게 할까? 내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애가 답했다.

천을 찢어발기는 새의 울음. 새의 발에 감긴 은빛 실이 베일을 쓰고 잠든 여자의 목에 걸린다. 새는 여자의 목과 여자의 경계와 여자를 밀어당기며 날아오른다. 여자는 잠에서 깨어나 허우적거린다. 그녀의 잘린 목에서 흐르는 붉은 피. 출혈 틈으로 비추어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 목뼈. 노파는 쇠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태아처럼 연약한 그녀의 두피가 찢어진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쇠빗의 끝들은 반짝이는 붉은 물방울로 빛난다. 가죽을 벗긴 토끼 같은 갓난아이는 여자의 검은 손에서 쇠빗을 옮겨잡고는 흔들어댄다. 피의 호선, 새의 비명, 머뭇거리며 그들을 비추는 햇빛의 원더랜드. 황금빛 원뿔을 쓴 아이는 케이크를 한 움큼 쥐어뜯으며 비명 같은 노래를 부른다. 존재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 너무 늦기 전에 숨을 쉬는 것.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진 얼굴을 쥐어뜯으면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곳으로. 노파는 흐느끼며 묻는다.

노파가 무어라고 말했는지 그 애는 듣고 있지 않다.

노파는 내 안에서, 지긋지긋하게도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다. 늙어 빠진 피부를 벗겨내고 연한 푸른색의 새틴으로 몸을 감싸면 그들은 나를 사랑하게 될까? 시간은 나를 끌어안고 함께 흘러갈까? 나는 사형대 같은 축사 같은 몸이 지긋지긋해. 존재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 나는 그녀에게 출구들을 알려주었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새의 울음으로 목을 감싸는 대신 날카로운 쇠빗으로 혈관을 열어젖히는 대신 죽음이 그녀를 더듬게 놔두는 대신 강제적인 자유와 자발적인 예속으로 죽는 대신 주름진 얼굴을 뜯어내었고 그 속이 텅 비지 않았음을 확인하였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원더랜드, 원더랜드, 성기를 젖게 만드는 환상적인 빛깔들은 어디로 사라졌지? 노파는 귀신의 얼굴을 하고 울었다. 나는 피투성이 이미지의 고유한 빛을 잠수하는 녹슨 추들로 그녀를 보았다.

피부가 벗겨진 노파를 푸른 새틴 천에 감싸 포장하여 그 애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갓 도축한 어린 토끼를 선물하듯.

어린 시절 오빠는 종종 내 앞에서 내가 아끼던 인형을 망가뜨리고는 했다. 길고 부드러운 고동색 머리칼을 쥐어뜯고 가위로 인형의 얼굴을 짓이기고 생일 촛불로 인형의 살을 태워버렸다. 타들어가는 플라스틱의 역겹고 달콤한 냄새. 생크림 자국이 묻은 분홍색 촛불이 어지럽게 빛나고, 오빠는 말했다. 이건 내 초니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야. 이걸로 네 입술과 머리를 태워버릴 수도 있는 거라고. 내가 주인이야 알았어? 내가 주인이라고.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인형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뭐라고? 오빠는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상관없어. 나는 주인이 되려 하는 게 아니야. 오빠는 촛불처럼 시뻘게진 얼굴로 울었다.

나는 오빠가 요구했던 연극을 거절했다. 나는 유사한 방식으로 많은 연극들을 내팽개쳤다. 존재하는 것은 숨을 참는 것. 개 역할을 맡은 아이는 네 발로 바닥을 기며 청소하고 있었다.

개 아이는 흐느끼고 있었다. 십수 명의 주인들이 개 아이를 둘러싸며 고맙다고 속삭였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개 아이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너희가 고맙다니 기뻐.

개 아이의 긴 속눈썹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주인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개 아이의 머리칼과 옷깃을 어루만지며 지민이는 정말 귀여워 하고 말했다.

맞아 정말 귀여워. 그리고 정말 착해.

역할을 거부한 자에게 주어지는 끔찍하고 거북스러운 고독으로 나는 조용했다. 나는 외로움이 토가 나오게 싫었지만 적어도 외로움 내부에서는 내 극본을 직접 쓸 수 있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개의 대본을 연기하는 대신-그 애들은 언젠가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며 내게 물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물어오지 않았고 그 애들은 끔찍하게 화를 냈다. 나는 극장에서 내쫓겼고 두 번 다시 개 역할에 대한 관대한 제의를 받지 못했다. 그 애들은 내가 무릎을 꿇고 공을 물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커다란 선물 상자들을 들고 뒤뚱뒤뚱 그 애들의 영역으로 기어 들어가기를.

피부가 발가벗겨진 노파의 대본을 썼다. 늙은 여자는 무두장이에게 자기 피부를 벗기도록 내맡겼지만 그녀는 무두장이에게 그것을 지시한 것이다. 무두장이는 늙은 여자가 선택한 것을, 그리고 그가 굴종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주인이 되려 하는 게 아니야. 주인과 하인, 지배와 굴종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그건 내 게임이 아니야. 오빠, 정말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오빠를 노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 극본을 직접 쓰는 일이야. 나는 너무 추워. 피부를 벗겨냈기 때문에 너무 춥고 아픈 거야. 푸른색, 혹은 붉은색 새틴 천, 적어도 내 뼈와 근육을 가릴 피부는 내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 아픔과 삶의 언어로 얼룩진 극본을 몸에 두르고 나는 노파의 연기를 할 것이다. 나는 자기 피부를 닮은 여자가 될 것이다. 밤의 심장을 겨냥한 내 손가락을 부러뜨리려 하던 그 모든 케케묵은 환상들을 찢어버리고. 나는 그을은 인형이 아니다. 오빠가 얼굴을 짓이기고 머리칼을 쥐어뜯고 살을 불태우던 그 인형은 내가 아니었어. 오빠는 그게 나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인형이 아니었어. 나는 플라스틱이 아닌 고깃덩이로 짜인 살이야. 그가 인형을 불태우며 내게 지배의 프로포즈를 했을 때 나는 거절했다. 그 애들이 공을 던지며 내게 지배의 프로포즈를 했을 때도 나는 거절했다. 나는 주인과 개의 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연극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놀이에 끔찍하게 서툴렀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런 연극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네가 유령처럼 느껴져. 나는 점심을 먹으며 그 애에게 말했다. 나만 볼 수 있는 유령 말이야.

나는 그 애가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집요하게 말했다. 어째서 아무도 네게 말을 걸지 않지? 어째서 네가 보는 애들은 너를 보지 않지?

그 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친구가 없었다는 것을, 내가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유령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말했다. 나는 곧 죽을 거고 나는 내 미래의 유령과 같으니까. 입 속에 빵을 우겨넣은 채로 나는 그 애에게 노파의 운명에 대해 지껄여댔다. 그 애는 디저트로 나온 오렌지 푸딩을 우물거리면서 내 말에 귀기울였다.

내가 말을 끝내자 그 애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어쩌면 나는 유령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살아있어.(존재도 죽음도 없이?)나는 살아 있어. 그 애는 견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봐.

그러면 그 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유령일지도 몰라. 생새우들이 핏줄을 뜯어먹는 것 같아.

나는 유리 해부대 위에 올려진 붉은 자궁을 본다. 황색 흑요석 칼이 자궁을 관통한다. 찢긴 채로, 자궁은 살아 있다.

a-x+1년 4월 6일

입마개로 재갈 물린 피투성이 입술로-네 입술에서는 재스민 향기가 나는구나. 그는 말했다.-나는 말한다. 나는 살아 있다. 삶에 미친 채로, 나는 살아 있다. 짓눌린 입의 색채와 형태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살아 있다. 그가 입맞춘 입도 그가 입맞춘 뺨도 없이 나는 살아 있다. 사라짐으로, 부재의 흔적으로 나는 살아 있다.

시를 쓰고 있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그는 내 어머니가 되려 하는 것 같았다.(언젠가 나는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낳을 생각은 없다. 그는 작은 인간들을 배양하는 자지에서 보지 달린 자신을 낳으려 하는 것인가? 나는 그의 변신을 위한 자궁인가? 나는 그를 잉태시켜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당신을 낳고 싶지 않아요. 나는 말한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나는 그와의 생활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상상할 필요조차 없는 미래다. 그로부터 버려진 미래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사실상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연장이다.

내가 삶에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핏줄을 물어뜯으며 쓴 피투성이 시들 위에는 굶주린 어린 파리들이 들끓는다. 그것들은 나만큼이나 생명에 미쳤다. 그것들은 내 언어를 가리고 내 언어를 수태한다. 나는 그것들보다 더 살고 싶다. 그 무엇보다도 더 살고 싶다. 오래됨 없이. 입도 뺨도 없이. 나는 그로부터 불감하여 그의 모욕에 저항하는 대신 지나치게 느끼는 것을 택했다.

그가 내 사라진 뺨을 만질 때 나는 부들부들 떤다. 그가 내 입마개 위에 입을 맞출 때 나는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른다. 나는 살고 싶다고 소리친다. 내 몸에서 자라나는 반점들이 얼마나 붉은지 그에게 말한다.

나는 아직도 미적분을 모른다. 나는 수치로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는 내가 즐겼으므로 그것은 강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내가 그를 사랑했으므로 그것은 강간이 아니었다고. 결혼은 우리의 극간이 남긴 증거마저도 휩쓸어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는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었는지. 씻겨가버린 내 몸이 증거다. 이 사라짐이 증거다.

신은 어린아이에게 특별한 초월적 능력을 주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 그 애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헐떡이고 있었고 그 애는 울고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고 그 애는 웃고 있었다. 그 애는 몸 속에서 요동치는 두더지들을 느꼈다.

죽음을 죽여야 해. 두더지들은 그 애의 어리고 활짝 열린 몸 속에서 속삭였다. 죽음을 죽여. 해피엔딩을 죽여. 행복을 죽여.

그 애는 웃었다. 그 애는 그 때가 바로 결정적인 순간임을 알아차렸다.

그 애는 되돌렸다.

두더지들은 말했다. 죽음을 죽여. 해피엔딩을 죽여. 행복을 죽여.

그 애는 되돌렸다.

두더지들은 말했다. 죽음을 죽여. 해피엔딩을 죽여. 행복을 죽여.

그 애는 되돌렸다.

되돌렸다.

되돌렸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되돌렸다.

그 애는 웃었다. 그 애는 결정적인 순간이 영원히 반복될 것임을 알았다. 왕자는 검은 숲의 유리관에서 긴 잠에 빠져 있는 여자에게 단 한 번의 키스를 할 것이다. 여자가 깨어나면 그는 번들거리며 축 늘어진 자지를 황급히 가리며 하얗고 차가운 낮이 있는 바깥으로 떠나갈 것이다. 그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며 깨어난 여자는 다시, 다시, 다시 반복할 것이다. 한 번의 키스가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여자는 그녀의 깨어진 잠과 함께 남겨질 것이다. 그녀는 무엇이 반복될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피의, 생명의 내밀한 수신자였다.

텍스트는 내 몸이다 그는 내 위에서 헐떡인다. 내가 그의 위로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 그는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가 두려워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창녀가 되고 싶은 거야?

나는 그가 창녀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았다.(어쩌면 창녀는 그일지도 모른다.)나는 쓴다. 독이 묻은 흰 잉크로. 열광적인 추락으로. 그는 내 육체 속에 여자를 묻어 두었다. 나는 추락하고 땅 위에서 그녀는 산산조각나며 흘러넘친다. 붉고 하얀, 골수를 흘리며 그녀는 비명을 지른다.

그녀는 웃는다. 그녀는 경이로운 고통의 쾌락을 느낀다. 고통은 경이롭다. 울렁거림, 메슥거림, 깨어짐, 그 죽을 듯한 통증은 경이롭다.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행복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하얗고 추상적인 정액의 거품으로부터 탈주했기 때문에. 공중을 따라 길게 흐르는 붉고 흰 탈주선.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깨진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산다. 그녀는 검붉은 독이 묻은 흰 잉크로 지상에 시를 쓴다. 그녀는 입술을 벌리고 젖은 숨결을 내뱉는다. 그녀는 복수하는 대신 분노하고 그의 품 속에서 질식하는 대신 추락한다. 나는 도망칠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웃고 있는 미친 여자의 품으로 달려들 것이다. 그녀는 기꺼이 나를, 그녀가 아닌 것을, 그리고 그녀인 것을 품을 것이다. 그녀는 이질성을, 타자를, 괴물을 잉태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괴물을, 독이 묻은 날카로운 조각들을 삼킬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감염될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죽어 태어날 것이다. 현재를 깨뜨리고 미래를. 도저히 흘러가지 않는 현재를 깨뜨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현재를 불러올 것이다. 내 시는 경이로운 불안으로 헐떡거린다.

그가 실패하였으므로, 그는 나 역시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너는 죽을 거야. 유리. 너는 시를 써서 죽을 거야.

그래. 나는 실패할 것이다. 나는 무덤 속에서 태어나 무덤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기원으로 돌아갈 때 소녀는 미지로, 검은 숲으로, 불가능 속 미미하지만 집요한 가능성으로 떠날 것이다. 소년이 어머니의 거대하고 곪은 젖가슴을 향해 떠날 때 소녀는 다른 것들의 삶과 아픔으로 부풀어오른 괴물의 자궁을 향해 떠난다. 소녀는 보다 더 삶이므로, 보다 더 글쓰기다. 엘렌 식수가 말했듯.

나는 그에게 엘렌 식수를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실패할 거야. 나는 루이스 캐럴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너는 엘렌 식수가 아니기 때문에 실패할 거야.

그래. 나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 것이다. 살아 있는 타자를 탐욕스럽게 잉태한 자궁으로, 그 불안스러운 우글거림으로, 나를 드나드는 향기로운 악몽들을 느끼며.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나를 파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나를 아프게 할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랑할 것이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어서 살 것이다. 나는 죽어서 태어날 것이다. 바퀴벌레의 찢어진 몸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내장처럼 집요한 이미지.

그가 나를 끌어안는 동안 나도 그를 끌어안았다. 그가 내 안에 삽입하는 동안 나는 무수한 다른 것들의 침입을 받아들였다. 오직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한 주체의 타자로의 외출이라고 엘렌 식수가 말한 그것을 그는 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착취하고 훔쳐가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선택한 것은 입마개에 가려진 내 입술에서 재스민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내가 곧 사형당할 여자였기 때문이다.(나는 기꺼이 단두대를 적실 것이다. 내 언어로, 피로 그것을 흠뻑 적실 것이다. 내가 사는 무덤은 비린 젖과 침의 냄새로 진동할 것이다.) 그래. 나는 엘렌 식수가 아니고 당신은 루이스 캐럴이 아니지. 당신은 당신의 실패를 덮기 위해 내 육체와 흐느낌을, 내 유령을 원하지만 나는 내 구멍을, 내 틈을, 내 결손을 막기 위해 당신을, 내가 아닌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피가 네 균열을 적시길 원한다. 그리고 네 피가 나를 적시길. 나는 나를 죽일 나의 미친 여자를 비밀스럽게 잉태하고 있다. 그녀는 내 언어와 이미지들을 게걸스럽게 들이마시고 자라나 나를 안에서부터 찢어발길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남긴 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치명적일 것이다. 그녀는 나를 완전히 죽이고 나를 낳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어머니인 것보다 더, 그녀는 내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녀는 당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더럽고 음험한 창녀다. 그녀는 어머니-창녀다. 그녀는 내 시의 내밀한 수신자고 내 근친적 연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다른 것들이다. 다시, 한 번의 키스. 여자는 눈을 뜬다. 그녀는 유리관 내부에서의 삶이, 찰나의 입맞춤과 상실이 무한할 것을 안다. 그녀는 포착할 수 없는 찰나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쓴다. 쓴다. 나는 우리를 운반하고 내팽개치는 은유들을 적는다. 해부대 위의 자궁과 유리 태양, 달걀, 거대한 난자들. 포옹으로 흠뻑 젖은 당신은 흐느끼며 당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웅얼거린다.

나는 언젠가 당신의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당신이 아니라는 것도.

그가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그가 웃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내가 그를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어쩌면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 하얀 잉크에 치명적인 독이 묻었다는 사실을, 내가 그 독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내 죽음 역시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메마른 죽음과 복수를 애무하는 동안 감탄할만한 히스테리 여인들의 흰 치아 사이에 깨물려 피 흘리는 언어의 살아 있는 육즙이 풍기는 향기를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언어가 척추가 잘린 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통사구조가 와해된 구조, 범죄적 허구에 존재를 부여하는 입이 비명을 지르는 장소인 글쓰기를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내게 한 번 키스했고 그리고 영원히 날아가버릴 것이다. 그 한 번의 파멸적인 깨어짐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 애는 나도 그도 아닌 것으로 자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무것도 낳지 않을 것이다. 내게 속해 있는,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무한한 익명들. 그가 나를 관통하는 동안 내 안에서 차오르는 느리고 달콤한 감염, 젖어듦, 삶, 벌레들의 우글거림, 추락과 깨어짐을 염원하는 마조히즘적인 비명들. 그가 침묵처럼 조용히 흐느끼는 동안 내 안의 강요된 침묵들은 조각난 몸으로 부산스럽게 소란한다. 너무나 분명하게도 피는, 생명은 여기 있다. 하얀 뼈들로 감싸인 무덤 속에. 이 끔찍한 고립 속에 너희들이 들끓고 있다. 나는 하얀 뼈들에 몸을 부딪힌다. 불가능한 추락으로 깨지며 환희의 비린내가 나는 액체를 쏟는다. 내동댕이쳐진 내 멍든 몸, 내 알, 내 죽음. 깨진 죽음의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명.

나는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속한 그것을 본다. 나는 다시, 그가 나를 풀어헤치는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가 나를 찢는 순간으로. 그와 동시에 그녀가 나를 찢어발기는 순간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그리고 안으로부터 밖으로의 이중적인 찢어짐. 양가적인 방향으로 뒤집힌 나는 하나의 길고 축축한 주름이 된다. 그 주름은 웃고 있다. 살아있음의 출혈로 흠뻑 젖은 채.

i11년 4월 7일

늦게까지 잠을 잤다. 강 속에 가라앉아 익사한 그림자들처럼. 나는 누운 채 내 것이 아닌 꿈들을 방랑했다. 느즈막이 학교에 갔을 때 정오의 그림자들은 눈부신 눈꺼풀을 드러낸 채 가라앉아 있었다. 교실 뒷문을 열었다. 잠시간 내게 꽂히던 시선들은 곧 거두어졌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책상을 모사하기 위해 영어 교과서를 꺼냈다. 오늘은 원어민이 아닌 영어 교사였다. 그녀는 칠판 한가득 숫자를 그렸다. 42. 그녀의 눈이 안경알 너머로 눈 먼 물고기의 눈처럼 반짝였다. 나는 42를 찾았다. 어렵지 않았다. 10 다음은 30 다음은 42니까. 연습문제를 풀어. 그녀는 내 책상 앞으로 와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문을 번역하는 연습문제들이었다.

문제. 다음 문장들을 영어로 번역하시오.

1. 너는 언제 집에 올 거야?

2. 너는 왜 말을 하지 않아?

3. 너는 내가 말할까봐 두려웠던 거야?

4. 푸른 책 속의 언어가 보이니?

5. 이질적인 시간들이 포개진 채로 살아 있니?

6. 죽은 나는 살아 있니?

7. 원인의 모방과 효과의 모방을 구분할 수 있니?

8. 구멍 안에서 차오르는 살이 보이니?

9. 살아 있니?

영어 교사는 내가 적어내리는 문장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When will you come home? Why don’t you say? Were you afraid afraid afraid that I would speak? Do you see the language inside the blue blue book? Are they alive? Heterogeneous times times overlapping each other? Am I who is dead dead damn dead alive? Can you differentiate between imitation of cause and imitation of effect? Do you see the flesh rising from the hollow? Alive? Alive? Alive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뭘 쓰는 거니? 연습문제를 풀라니까. 난 연습문제를 푼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쓴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틀렸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녀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행평가 점수를 감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Were you afraid that I would speak? 죽은 나는 살아 있니? Why don’t you speak? Because I was afraid that you would speak afraid you would not speak. 나 살보다 더 벌거벗은 언어 신경보다 더 민감한 언어 당신이 찢어발긴 신경다발보다 가위의 칼날에 묻은 갈색 얼룩보다 더 살아 있는 언어.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 살아있으면 죽을 수 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 중간중간 교과서 틈새에서 오래 전에 출발한 이미지들 그러나 집요하게 살아 있는 시간의 갈색 얼룩들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찢어발기는지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미쳤음을 증명하는 대신 묵묵히 감점을 받아들였다. 감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키득거렸고 그녀는 교단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 틀린 문장들과 함께 남았다. 문장들은 살보다 더 벌거벗은 언어 찢어발겨진 핏줄로 나를 무고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살아 있니? 구멍 안에서 차오르는 살이 보이니? 나는 살아있음을 견뎠다. 죽어-있음을 견뎠다. 죽은 나는 살아있다. 유관순도 살아있음을 견뎠다. 랭보도 식수도 리스펙토르도 살아있음을 견뎠다. 3월 1일에 거리를 물들이던 금지된 이미지들. 내 부모의 승리가 그들 부모의 승리였을 때, 그들은 빼앗길 몸과 언어와 이름으로 짜올린 금지된 이미지를 펼쳐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잘린 머리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찢어진 몸. 금지된 이미지들의 행진. 3·1운동의 의의를 서술하시오.

민족사적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일제의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뀌었다 민족기업건설운동

유관순은 살아 있었다. 그녀는 살아서 죽음이 아닌 삶이 되었다. 민족 말살 정책이 오기 전에 그녀는 그녀의 이미지를 새겼다. 일제는 금지된 이미지들을 짜올릴 언어마저도 빼앗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창검을 든 교사들 앞에서 일본어로 일본 역사를 배웠고 뺨을 맞고 칼등에 맞고 찢겨 죽었다.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은 조선인들 조선어를 공부하던 조선인들이 죽었다 일본 황국 신민의 서를 외우지 않은 조선인들 모욕을 치욕을 거부한 조선인들이 죽었다 그들 몸이었던 모어를 포기하지 못했던 조선인들이 죽었다 조선어로 글을 쓰던 시인들이 죽었다 거리에서 감옥에서 달처럼 창백한 얼굴로 죽었다 죽었다 그 때는 시가 죽음이던 시기였다 일본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조선인들이 죽었다 친구와 이웃과 연인과 부모와 형제의 살해자들에게 경배하지 않은 조선인들이 죽었다 살해자들을 숭배하지 않은 조선인들이 죽었다 어린 아이들은 조선어를 쓰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서로의 뺨을 때려야 했다 창검을 든 일본 교사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뺨을 때려 너는 너의 뺨을 너는 너의 뺨을 때려 뺨을 때려. 하지만 선생님 이제는 뺨이 남아 있지 않아요.

당신은 내 뺨을 때리지 못할 것이다. 내겐 뺨이 없으니까. 당신이 부수어버린 내 뺨. 당신은 내게 입맞추지 못할 것이다. 내겐 입술이 없으니까. 당신이 물어뜯어버린 내 입술. 당신은 내 종아리를 때리지 못할 것이다. 내겐 종아리가 없으니까. 당신이 부러뜨린 내 종아리. 당신은 내 심장을 애무하지 못할 것이다. 내겐 심장이 없으니까. 당신이 부수어버린 내 심장. 나는 심장을 뚝뚝 흘리며 속삭인다. 선생님 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뺨이 없는 사람의 뺨을 때리죠? 심장에 박힌 푸른 가시들을 뽑아내 미동도 없이 아픈 가시들을 행성의 목에 박힌 갈고리를 뽑아내. 진흙과 수초와 수련 아래에 가라앉은 오필리아.

그녀는 그녀를 부르는 것이 되어간다.

다음 문장을 번역하시오.

쓰이지 않은 모든 문장을 번역하시오. 비밀 시약으로만 비추어지는 은밀한 문장들을 번역하시오. 내가 쓰지 못한 문장을 번역하시오. 은폐된 문장들을, 아직 태어나지 못한 문장들을, 금지된 이미지들을, 문장들을 번역하시오 아직 삶의 공간을 갖지 못한 문장들을 문장들을 번역하시오. 침묵을 번역하시오.

a-3년

오늘은 달력에 없는 날이다. 달력에 없는 날짜, 유령들의 생일! 나는 투명하고 끈적이는 구멍을 삼킨다. 구멍 속에서 혀가 비어져나온다. 케이크를, 신의 살을 음미하기 위해 깊은 구멍 바깥으로 늘어뜨려진, 번들거리는 붉은 혀들. 구멍은 길게 비어져나온 붉은 살이다.

유령들의 생일에 우리는 투표를 행했다. 우리는 그녀를 성모로 선출했다. 그녀는 수줍게 웃는다. 광대들을 뽑는 신성하고 오랜 전통에 따라 선출된 그녀는 파란 입술을 움직여 선서한다.

모든 날들을 말하라. 모든 이름들을 모든 망각들을 말하라. 모든 말 없음을 말하라. 모든 말할 수 없음을 말하라. 나는 오늘 너희를 죽일 것이니, 내 길고 젖은 혀로 너희의 심장을 꿰뚫어 찢어발길 것이니, 더 속죄하기 위해, 더 기도하기 위해, 더 용서받기 위해, 더 검어지기 위해, 더 희어지기 위해, 더 순결해지기 위해 나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짜내려갈 것이니, 구원받을 희생자들이여, 내 사랑스러운 어린 주인들이여, 가엾고 어리석은 양들이여, 연분홍의 부드러운 배를 드러내고 누워라. 내가 너희 위에 올라탈 수 있도록. 내가 너희 배를 찢어발길 수 있도록. 사실 나는 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나는 너희 내장과 너희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단다. 하지만 나는 성모고 더 많은 죄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구원 더 많은 용서. 그러므로 너희는 내 앞에 배를 드러내고 누우렴. 나는 자비롭게 너희 죄를, 아직 죄가 아닌 너희를 가져가지 너희를 위해 기도하겠다.

광대를 뽑는 신성한 의식에 따라 오직 그녀만이 그녀가 된다. 시간은 다른 모든 이의 것이었고 그녀는 유령의 날짜 속에서 그녀의 것이 아닌 채 존재했던 시간을 물어뜯는다. 그녀의 입마개가 풀어지고 그 속의 향기로운 입,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난다. 암캐의 이빨. 삶에 미친 여자의, 입술도 뺨도 없는 여자의 이빨. 이빨은 벌어진 채로 말한다. 너 행복하구나, 가엾은 것. 내가 행복을 물어뜯어 주지. 너는 피를 흘리고 나는 기도할 것이다. 나는 네 죄를 내 것이 아닌 모든 죄를 삼켜 더 구원받을 것이다 더 용서받을 것이다. 그녀는 탐욕스럽게 죄를 짓고 게걸스럽게 기도한다. 그녀는 더, 더, 더 용서받는다. 더 죄이므로 더 용서이고-신은 모든 죄를 용서하니까- 더 죽음이므로 더 삶이다. 더 검으므로 더 순결해진다.

그녀는 그녀를 부르는 것이 되어간다.

나는 그녀에게 생일케이크를 준다. 어린 양들의 창자로 만든 케이크를 그녀는 달콤하고 황홀하게 베어문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낳은 내 어머니를. 우리는 공주를 잠재우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병든 어머니에게 물과 독을 탄 우유를 먹여 살해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젖을 주었던 우리의 어머니. 해변 너머로 떠내려가는 그녀의 유골 가루를 흰 거품과 모래로 축소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초라하고 왜소하다고,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흐느끼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모든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다. 흰 거품과 모래, 반짝이는 뼛가루의 모든 것. 우리는 그녀를 내던지지 않고 불그죽죽한 고깃덩이를 삽입하여 그녀를 정화하고 교육하고 순교시키지도 않는다.

그녀는 순교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그녀의 죄들과 생명들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물어뜯는다. 그녀는 죄들을 오가며 탐닉한다. 그녀는 길들여진 바깥이 아니다. 내 안의 여자를 잠과 상실, 주인의 꿈으로 인도하는 검은 유리관은 없다. 우리는 모든 다른 것의 꿈으로 간다. 모든 다른 악몽들로. 그곳에서 그녀는 탐닉한다. 붉고 검은 죄로 향긋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더욱 부풀리며. 삶을, 향기를, 피를, 죄를, 존재를 살포하는 향기로운 입술. 여성적 향유로 그녀는 먹고 마신다. 그녀는 더 기도하고 더 차오른다. 그녀는 부드럽게 확산된다. 그녀는 물거품처럼 퍼져나간 모든 것이다. 그녀는 바다 전체로 퍼져나간 뼛가루의 모든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출산하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를 살해할 성모를, 미친 여자를 잉태하는 미친 여자이다. 그녀는 풍요와 사랑과 상냥함의 결핍에 대한 강요된 죄책감 없이 죄를 삼킨다. 죄의 심장들을, 죄악감 없이. 왜냐하면 그녀는 성모이고 창녀니까. 그녀는 죄이고 죄의 사함이니까. 그녀는 슬픔과 고통을 애무하는 방법을 안다. 그녀는 젖가슴에서 하얀 피를 쏟으며 웃는다. 더 죄이고 더 기도인 그녀, 더 죄이고 더 삶인 그녀, 오늘은 그녀들의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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