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자의 물방울

나는 정말이지 참아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바닥을 술렁거리며 기어다니던 개미들이 달을 찢어발기고 내 신발 위로 타고 올라와 내 맨발을 찢어발겨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작고 부드러운 발가락이 잡아 뜯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 이모들은 낄낄거리면서, 무슨 일이니. 설마 겨우 개미 때문은 아니겠지. 귀여운 루시, 하고 물었다. 나는 개미를 고발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개미에게는 나를 해칠만한 의지도 죄를 책임질 수 있는 권력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청소를 마친 아이들이 책상 위에 거꾸로 매달린 내 의자만 남겨두고 다른 의자들은 전부 내려놓아도, 의자 다리에 고여 있는 먼지 뭉치가 내 이마 위로 떨어져도 참아야 했다. 아이들은 나와 닿을 때마다 소스라쳤고 이제는 나와 닿았던 물건과 닿을 때도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 애들은 내가 맨손으로 시궁쥐를 잡아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시궁쥐와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애들이 바퀴벌레의 매끈한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보는 아이 같은 손길로 내 뒷목을 어루만지고 스프링처럼 뒤로 넘어지며 소란을 피울 때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벙어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무어라 말이라도 꺼내려 하면 그 애들은, 넌 벙어리잖아, 벙어리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야 바보야, 하고 낄낄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벙어리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애들이 내 앞에서 서로 귓속말을 하면서 수군거려도, 얼굴 군데군데 내려앉은 검붉은 병변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쿡쿡거려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벙어리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참다 못한 내가 교무실로 찾아가 흐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도 선생은 얘야, 너는 벙어리잖니. 벙어리인데 설마 말을 할 참이니. 그래, 어서 말을 해 보렴, 하고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벙어리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엉엉 울기만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은 쿡쿡거리면서 내게 사탕을 내밀었다. 사탕을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니, 루시. 그렇지만 나는 사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만 열에 노출되어도 끈적하게 변하면서 가방에 필통에 연필자루에 호주머니에 끈적하게 녹아붙는 단물. 그 단물에 사족을 못 쓰는 손톱만 한 개미들이 수십 마리, 수백 마리 기어들면 발톱이 뜯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의 오줌처럼 싯누런 사탕 하나를 받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벙어리는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서도 매일같이 학교에 나갔고 부엌에서 꽃을 꺾어 유리화병에 물과 함께 채워넣는 어머니에게, 난 학교에 가지 않을 거예요 거기에서는 배울 게 하나도 없으니까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부엌에는 전지가위에 잘려나간 꽃도 유리화병도 어머니도 없었으므로. 레몬사탕도 딸기사탕도 아닌 알 수 없는 것을 들이마시고 둥그런 도자기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꺽꺽거리며 갈빛 물을 토해내는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버지도 없었으므로. 나는 검붉은 나무 타일이 엉성하게 짜여 툭 하면 내려앉는 교실과 끝까지 내려가지 않는 먼지투성이 의자와 툭 비져나온 녹슨 못, 덜 마른 걸레들이 무더기로 들어찬 사물함과 수백 개는 되는 것같은 다리들을 바르작거리며 창문을 횡단하는 벌레들이 흘려놓은 연녹빛 진액, 죽어가는 쥐들의 비명소리가 술렁거리는 검은 칠판, 칠판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색색의 자석스티커들도 갖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소유할 수 있는 아이들, 무대 앞까지 걸어나갈 수 있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난 보이지 않는 인력에 붙잡힌 채, 한 번도 매혹적인 비명소리들이 묻혀있는 칠판까지 다가갈 수 없었다. 그곳에 아주 자그마한 낙서조차 해 볼 일이 없었다.

사실 검은 칠판보다도 더 매혹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교단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 딱정벌레의 등처럼 반짝거리는 피부에 한 번이라도 손을 대 본다면, 수만 가지 음률들이 도사리고 있는 불가해한 장치를 주먹으로 두드려 본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었을 것이다. 벙어리라도 피아노를 칠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만 되면 무대의 전면을 허락받은 아이들이 겁 없는 참새떼처럼 우르르 몰려나와 작고 날카로운 부리로 피아노의 희고 검은 이빨들을 콕콕 두드려댔다. 난 악몽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아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들리지 않는 신음을 꺽꺽거리며 흐느꼈으나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벙어리는 원래 말을 못하니까. 나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할 말이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았다. 흙탕물처럼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허벅다리. 의사가 허락도 없이 내 다리를 벌리며, 루시 당신 아이는 죽었어요. 봐요. 이게 손이고 이게 머리고 이게 다리고 이게 고추인데 다 뭉개져 보이질 않죠, 하면서 쿡쿡거려도 나는 참아야 했다. 자궁을 드러내야겠어요. 원래는 난소만 제거해도 되지만 특별히 나팔관을 전부 드러내줄게요. 당신에게는 쓸모가 없는 기관일 테니, 하고 말해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가여운 아이,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쟁취하고 검붉은 고깃덩이로 돌아간 내 가여운 아이를 두 번 다시 낳을 생각은 내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벙어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으니까.

수십 개의 통통한 손들이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회초리로 내리치듯 두들겨대는 소리. 자궁을 다 드러내겠어요. 이젠 생리도 하지 않을 거고 유산도 하지 않을 테니 피를 흘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쿡쿡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아이는 병신일 것이 분명하기에. 병신이 아니더라도 태어날 권리보다는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더 갈구할 것이 분명하기에.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검은 개미들이 내 새끼 발가락을 물어뜯고 수천 개나 되는 다리들을 바르작거리는 벌레들이 내 사물함 구덩이에서 비명을 지를 때부터, 내 유일한 장소가 검고 하얀 이빨들이 쥐들의 비명소리가 끽끽거리며 이상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편평한 우주가 내게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내가 간절히 기다려왔던 무언가를 처음부터 쟁취한 내 가여운 고깃덩어리에게 내가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냉동실에 보관해 둔 세 마리의 고깃덩어리들을 난 의사에게 맡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벙어리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난 언젠가부터 생리혈과 산혈을 구분할 수 없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임신 기간에도 계속해서 월경을 했다는 말을, 한 달에 한 주씩 검고 끈적한 피가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끔찍하게 앙상한 배는 조금도 부르지 않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 말이 맞다. 그럼에도 앞서 삼 년 동안 내 생일마다 뱃속에서 비어져나왔던 손바닥만한 장기는 내 자궁도 대장도 아니고 당신 말대로 뭉그러진 팔과 뭉그러진 머리와 뭉그러진 다리, 뭉그러진 탯줄에 목이 감긴 채 나왔는데 나는 그 애가 기묘한 형상으로 굳어버린 월경액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달에도 나는 생리를 했으니까. 그 전달에도 그 전달에도 나는 거르지 않고 생리를 했으며 끔찍하게 앙상한 배는 조금도 튀어나오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증언을 해 줄 사람도 있다. 가령 내 담임교사는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며 나같이 더럽고 못생긴 년과 자고 싶어 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증언해 줄 수 있을 것이며, 같은 반의 남자 아이들도 쥐새끼한테 박을지언정 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년에게는 도무지 세울 수 없다는 걸 당신 앞에서 증명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매년 한 번씩 내 생일을 저주하듯 악마적인 형상의 덩어리가 내 배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고 나는 자궁을 찢어발기는 고통에 소스라쳐 신음하며 데굴데굴 구르면서 흐느꼈다.

부엌에서 꽃꽂이를 하던 엄마는 내 비명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엌에는 꽃도 엄마도 없었으므로.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구토하고 있는 아버지도 내 피냄새를 맡지 못했다. 왜냐하면 화장실에는 갈빛의 토사물도 아버지도 없었으므로. 텅 빈 원룸에서 꽥꽥대며 질러대는 비명소리를 옆집의 이웃도 아래층의 이웃도 1층 현관에서 멍하니 허공을 노려보고 있는 관리인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실 시끄러운 비명도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도 없었으므로. 나는 악몽과 현실을, 월경과 산혈을 혼동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내가 낳아서 목을 따고 검은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피가 새어나가지 않도록-왜냐하면 피냄새를 맡고 파리가 달겨들고 개미가 달겨들면 좋을 일이 없으니까-두 번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꽁꽁 싸매어 냉동실에 넣어두고는 노란색 테이프로 냉동고의 투명한 서랍의 틈을 밀봉해냈던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고깃덩이의 부패와 죽음을 모두 미루어두듯 냉동실의 작은 서랍에 이겨넣은 내 살과 피와 뼈로 만들어진 고기도 모두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냉동실에서 무참하게 느린 속도로 서서히 부패되고 있는 시뻘건 고기, 뭉그러진 머리와 뭉그러진 팔과 뭉그러진 발을 비틀고 누워 있는 고깃덩이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니까. 내게는 고기를 선물할 만한 사람도 없었고 고기를 대신 처리해 줄 만한 가사도우미도, 나 대신 냉동고를 정리하다가 사람을 닮은 악마적인 핏덩이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경찰에 신고해 줄 애인도 없었고 나를 고발해줄 검사도 없었고 나를 변호해줄 변호사도 없었다. 사실 나는 지금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말조차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벙어리의 침묵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법이니까,

그러니 판사님, 나는 당신이 흔하디 흔한 악몽 속의 등장인물인지 연극배우인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막은 내리지 않았다. 무대의 전면에 서서 대사를 읊는 기회는 악몽의 내부에서도 바깥에서도 내게는 처음 주어지는 기회이니 나는 결코 이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저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진짜 판사이든 가짜 판사이든 상관없이 계속 증언을 할 것이니 들어주시길. 혹은 듣는 척 해주시길. 판사님, 내 죽은 아이에게 전해줄 말이 없는지 묻는다면, 그건 정말 멍청한 질문이지만 만약 당신이 그렇게 물은 것이 맞다면, 내가 해 줄 말은 적어도 그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용서를 바란다는 말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으니까. 죄책감을 느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당신이 무언가 더 말하길 원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겠다.

아가, 네가 죽어버린 거라면, 최초의 사유가 깃들기 전에 죽어버린 거라면 정말 다행이야. 너는 닿을 수 없는 피아노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고 아무도 너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애인도 의사도 간호사도 심지어는 산모조차 없는 텅 빈 원룸에서 네게 속하지 않은 공간에서 죽은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고 벙어리로 살아갈 필요도 없고 너를 참아내지 않는 이들을 참아야 할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네게 허락되지 않은 행복을 가장하며 사는 척할 필요도 없고-너는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았으니까- 누구보다 천천히 죽어가리라는 생각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너는 진작에 죽었으니까. 아가, 만약 네가 죽은 채로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내게 고맙다고 했겠지. 쥐새끼와 같은 시궁창에서 들끓어오르는 사유를 견뎌가며 살아가지 않게 해줘서, 아무에게도 끌어안기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원해지지 않는 생을 오래도록 가장 끔찍하고 지난한 방식으로 죽어가지 않게 해줘서, 나날이 늙어가는 고통과 무력감을 견디지 않게 해줘서, 최초의 고독을 느끼기도 전에 절망을 구체화할 사유의 능력이 발생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끝내줘서, 내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아서, 지독한 멸칭이 될 것이 분명한 그 흔하디 흔한 이름, 흔하디 흔한 삶과 흔하디 흔한 절망 속에서 죽게 만들 그 모멸적인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이웃도 원수도 없는 텅 빈 우주에 홀로 남겨두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했겠지.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어. 오히려 네가 끈질긴 생을 이끌고 지금까지 내 뒤를 기어서 쫓아왔다면 그제야 내 가장 큰 죄에 대한 죄악감에 몸서리를 쳤겠지. 하지만 냉동고에 얼려 둔 네 죽음은 영영 부활하지 않을 거야. 네가 예수가 아니라면, 처녀수태한 모든 여자들이 신을 밴 것이 아니라면 네가 다시 살아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너는 내게 마음놓고 감사해도 좋아. 살아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준 건 뒤늦게 내 자궁을 적출해낸 의사도 아니고, 아이들의 살 권리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아니고 너희를 배고 적출해낸 나였으니까. 너희는 꼭 기억해야 해. 나를 꼭 닮아 무참하게 흉측한 너희들의 짐승 머리에 최초의 관념, 최초의 절망과 최초의 망설임이 깃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낸 것은 정말 다시없을 행운이라는 걸. 너희는 싯누런 이빨을 달그락거리면서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울음을 빽빽거리면서 끝을 애걸할 필요도 없고 더는 너희를 조롱하지도 않는 소란스러운 침묵 속에서 네 몸이 서서히 썩어가는 고통을 악취를 느낄 필요도 없을 거야. 그건 내가 기민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너희의 목을 부러뜨렸기 때문이야. 너희가 하염없는 망설임 속에서 목을 맬 매듭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해 절망하여 울어젖힐 필요도 없었던 것은 모두 내 덕분이야. 너희는 너희가 흉측하고 외로운 만큼 신이 너희를 사랑하리라는 터무니없는 착각조차 할 필요가 없고 죄조차 지을 수 없는 무력한 너희들에게 죄인들만을 사랑하는 신은 결코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것, 죄인들의 신은 너희들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깨달을 필요도 없을 거야.

가엾은 너희들은 어린 소녀 하나, 그 소녀가 무참하게 죽여버렸던 작은 고양이 하나 죽일 수 없었겠지. 너희는 영영 제대로 된 죄 하나, 신문의 일면에 실릴 만한 죄는커녕, 삼면에, 오면에 실릴 죄도 제대로 지을 수 없었을 거야. 먼지만큼 작고 먼지만큼 많은 날벌레 하나를 잡아 죽여놓고는 그 날벌레처럼 네가 뒈져버리기를 기도하는 일이 고작이었겠지. 너희는 착각하고 있어. 아무리 많은 날벌레를 죽여도 너희를 날벌레처럼 죽여줄 사람은 없다니까. 너희는 부모도 친구도 이웃도 원수도 없이 평생토록 혼자일 테니. 너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뜯어먹던 악몽 속의 짐승들은, 구석에서 죽은 너희를 내려다보던 너희의 눈빛들은 악몽 바깥까지 따라나오지 않을 테니까. 새하얀 도자기 변기에 악몽을 소리 없이 부드럽게 구토하고 출혈해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까. 얘야, 아무리 울고 소리쳐도 너희를 돌보러 돌아오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너희는 나와 같은 벙어리니까. 벙어리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너희는 목을 매달 플라스틱 샹들리에도 검푸른 느티나무도 찾지 못한 채 이 희고 끝없는 허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을 거야.

검은 이빨과 하얀 이빨을 수십 개의 통통한 손가락들이 동시에 내리치는 소리. 나는 귀가 찢어지는 고통에 귀를 막고 바싹 마른 허벅다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의사의 말처럼 적출해낸 자궁에서는 더 이상 죽은 피도 산 피도 흘러내리지 않았고 죽은 아이도 죽은 세포도 쏟겨내리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월경도 산혈도 출혈하지 않았으니 내게는 더 이상 죽일 수 있는 아이가 없었고 베풀 수 있는 죽음이 없었고 그건 정말 잘 된 일이지.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산비둘기의 끔찍하게 작은 머리를 보면 구역질이 나온다. 그래도 그것들이, 그 무수히 작은 머리들이 무수히 많은 곳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 최초의 절망도 관념도 싹트지 않은 너희, 아직 공간화되지 않은 고깃덩이는 정육점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찢긴 고깃덩이가 어째서 너희가 아닌지 의아해할 필요도 없어. 죽어가는 몸을 느끼면서 지독하게 오래 살아갈 필요도 없지. 나는 너희들을 질투했어. 내 현명한 판단의 영향을 받고 죽어버린 너희들, 아무런 절망도 고독도 없이 순식간에 끝나버린 너희들을. 나는 이제 너희들이 더 이상 사랑스럽지도 애틋하지도 가엾지도 않아. 그저 너무나 가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한 행복감을 이기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춤을 추는 공원의 모조 해바라기들처럼 살아있지 않은 너희, 추억도 미래도 기회도 회한도 현재도 없는 너희, 절망도 고독도 고통도 없는 너희 죽은 잔디 사이의 더러운 벌레들을 쪼아먹으며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퉁퉁한 비둘기의 끔찍하게 작은 머리를 보며 그 작은 머리들이 얼마나 오래 살아가는지 어림짐작할 필요도 없는 너희가.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았던 내 권리, 태어나지 않을 권리, 사유하지 않을 권리, 절망하지 않을 권리, 고독하지 않을 권리, 자라나지 않을 권리를 나는 내 가엾고 가증스러운 아이에게는 보장해주었다. 그건 내 아이를 특별히 사랑해서도 아니고 특별히 미워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그것이 하나의 생이 다른 생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악마 같은 빌어먹을 손가락들이 희고 검은 이빨들을 미친 듯이 두들겨대는데 미래도 행운도 추억도 없을 조악한 살덩어리에게 관념을 강요하는 일은 수천 년 동안 썩어문드러진 백골에게 기적과도 같은 부활을 구가하는 일과 다를 바 없이 터무니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아직까지도 아이를 낳고 아이의 아이를 낳고 아이의 아이의 아이들이 이름도 없이 희망도 없이 미래도 없이 개미처럼 순결하고 반짝거리는 등껍질을 유전하며 퍼져나가는 세계에서 당신들은 삶이 행복하며 동시에 가치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삶이 행복하다는 명제와 삶이 가치 있다는 명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삶은 죽음이다.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그 작은 애들을 조금도 연민하지 않았다. 내게 그와 같은 끝이 선사되었더라면 나는 분명 처녀수태한 내 어미에게, 월경 대신 산혈을 출혈하며 절망적인 복통에 손톱이 다 부러질 때까지 벽을 긁어대며 몸부림치던 어미에게, 녹슨 가위로 탯줄을 찢어내고 곧바로 내 연약하고 징그러운 목을 부러뜨린 어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판사님,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교단 옆에 있는 피아노에서 출렁거리던 작고 통통한 손가락이었으니까. 당신을 낳은 여자의 뱃속에는 싱싱하고 튼튼한 자궁이 있고 당신은 언제라도 그녀의 자궁을 덮은 가죽을 쓰다듬을 수 있을 테니까.

판사님,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지금 내 텅 빈 자궁에서는 생리혈도 산혈도 흘러내리지 않지만 또다시 악마적인 핏덩어리가 내 뱃속에서 새어나온다면 난 언제든지 그 애의 연약한 목을 부러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생리혈을 변기에 따라 내려보내는 여인들처럼, 내가 갓난아기를 변기에 내려보내지 않고 냉동고에 유예시켜 두었던 것은 오직 그 애들의 문드러진 머리 문드러진 팔, 문드러진 음부와 문드러진 발이 변기를 막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만약 그 애들이 햇볕 아래에서 늘러붙은 싯누런 캔디처럼 허벅다리에 녹아붙었더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변기에 그 애들을 내려보냈을 것이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배설물을 처리하는 데에 그만큼 깔끔한 방법은 없으니까. 그것이 오줌이건 똥이건 토사물이건 피건 상관없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떠내려보내는 방법은 내가 알기로 하얀색 도자기 구멍 속에 끔찍한 것, 더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부어넣고서 뚜껑을 닫고 헐거운 손잡이를 내리면 그만이니까. 다만 신중해야 한다. 덜 출렁이는 것, 덜 풀어지는 것, 덜 녹아내린 것을 함부로 쑤셔넣었다가는 결코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 쥐의 잘려나간 주둥이와 난자당한 탯줄, 검고 끈적한 발톱과 비둘기의 무참하게 작은 머리가 다시 역류할 수 있으므로. 아직 충분히 썩지도 녹지도 않은 미분화된 사유 이전의 덩어리들을 변기에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 문드러진 사지를 한 번 두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묶어서 밀봉한 검은 비닐봉투는 냉동고의 서랍 안에 간신히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내 몸뚱이, 그 어떤 고깃덩이보다도 더 피투성이에 더 역겨운 악취를 내뿜으며 더 오랫동안 부패해간 내 간절한 고깃덩이는 냉동보관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망설이는 사이 끔찍하게 자라버렸고 팔을 꺾고 다리를 벌리고 숨을 참고 발광을 해도 냉동고 서랍을 모두 빼내어도 냉동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고기는 너무 썩기 전에 냉동보관하거나 먹어버려야 한다. 나무가 집채만큼 자라나기 전에 쥐떼 같은 자살자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어 가녀린 가지마다 허리띠를 목매고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리기 전에, 작고 연약한 연녹빛 싹일 때부터 짓밟아 죽여버려야 한다. 그때라면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 버린 썩은 열매들도 쓰레기들도 없을 테니까. 대체 이 좁은 자리에 꾸역꾸역 매달려 뒈져버린 썩은 시체들을 누가 치운다고 생각하는 건지, 끔찍한 악취에 절어 투덜거리는 가여운 청소부도 사지가 마디마디 휘어버린 느티나무도 없을 테니까.

판사님, 당신은 내 정신이상을 참작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폐병과도 같은 절망을 배양하지 않는 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니까. 내 허파 깊은 곳에서 남몰래 키워나가던 소원들이 검게 문드러져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참아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이루어졌고 토끼의 자궁에서 길쭉한 주둥이를 내밀고 튀어오르는 설치류 새끼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니 나는, 내가 그 인구에 속해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나는 내게도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인류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자살자 명단에도 사고사 명단에도 추락사 명단에도 익사자 명단에도 없었다. 판사님, 당신은 지금 비웃고 있다. 끝나지 않는 악몽은 잠의 바깥까지 나를 쫓아온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목을 조르고 입을 맞추고 내 텅 빈 자궁 속으로 기어들던 새까맣게 젖은 들개들은 한 번도 꿈의 모서리 너머로 뛰어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무참한 악몽은 한 번도 현상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갈기갈기 찢겨 개들의 뱃속에서 녹아내리고도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건조한 입이 찢어질 때까지 입술을 활짝 벌리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자살한 임부의 뱃속에서 홀로 굶어죽어가던 아이에게 입이 있었더라도 그 애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 테니까. 오디세우스를 지나보내던 세이렌들은 그 검고 축축한 입안을 훤히 드러내고서는 침묵만을 노래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갈수록 적게 말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왔으니까. 지금에 와서야 단언할 수 있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위에서 춤추듯 수런거리던 손가락들은 나와 내 아이와는 전혀 다른 사물이었다는 것, 벙어리와 벙어리가 아닌 자가 다르듯, 페로몬으로 소통하는 개미와 음절과 몸짓, 문자로 소통하는 사람이 다르듯 그렇게 달랐다는 것, 끊임없이 내 고통을 외부와 분화시키던 선뜩한 절망이 언제나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짓눌러왔다고 생각해왔지만 절망도 고통도 언제나 내부에만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 내 존재는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억눌러오는 압력도 아니었고 내부에서 외부로 뻗치는 외침과 외부에서 내부로 밀고들어오는 구조 사이의 긴장도 아니었고 율동하는 뼈들에 대한 갈망도 아름다운 노래에 대한 욕망도 잊지 못하고 체념한 채 지상에 매달려 있는 앙상한 관념뿐이었으니, 판사님, 당신은 당신과는 전혀 다른 물질, 전혀 다른 힘과 구조로 이루어진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 나를 두고 물방울처럼 번져가던 둥근 고리 속에서 소스라치게 맑은 목소리로 속살거리던 발그스레한 얼굴들도 나를 배제한 채 아름답게 너울거리던 고리들도 전부. 판사님, 당신은 아까부터 내가 똑같은 소리만 쓸데없는 말만 재판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허튼소리만 주절거린다고 비난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 무덤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죽어가는 일밖에는 없으니까. 더 썩은 육골과 덜 썩은 육골 틈의 지층에 끼어 부패되어가면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판사님, 냉동포장해둔 내 고깃덩어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증거물로 제출된 내 피와 살을 남몰래 훔쳐먹었다던 마약탐지견은 아직도 살아있는지. 지금도 주둥이에 피칠갑을 한 예의없는 개새끼들이 자궁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아픈데, 정말 나는 자궁을 적출해낸 것이 맞는지. 잘려나간 팔이 가렵듯이 그렇게 아픈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냉동고에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더는 삶도 죽음도 유예시켜 놓을 공간이 없으니까.

아이들은 검게 썩거나 희게 바래버린 가여운 이빨들을 이리저리 들추어보며 말도 안 되는 불협을 쌓아대고 있었지만 선생은 그 비참한 소음을 제지하지 않았다. 악몽 속에서 불쑥 들이미는 시꺼먼 눈, 난 그 눈의 이름을 알 수 없었으나 그게 내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오직 그 검고 징그러운 눈을 통해서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깊이도 반영도 추억도 회한도 없이 반들거리는 시꺼먼 체액으로만 이루어진 검은 시선. 역사 없이 살아가는 수억 마리의 바퀴벌레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쥐새끼들처럼 그렇게 한없이 순결하고 신성한 두 개의 시선. 판사님, 당신이 그 검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살인죄에 대해서, 영아살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틀니도 아닌 뼈다귀들을 딱딱거리며 부딪히고 있는 검고 흰 건반들은 누구의 이빨도 아니었다. 그 이빨 위에서 하염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십 개의 통통한 손가락. 나는 그 빌어먹을 손가락 하나도 부러뜨릴 수 없었다. 판사님 당신은 알아야 한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붉게 문드러진 내 고깃덩이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데 내 고기를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공짜로 주겠다고 해도 받아드는 사람이 없었다. 내 허공, 이 끔찍하게 넓고 넓은 허공에는 개미 한 마리 없었으니까. 내가 먹지 않는다면 아무도 먹어줄 사람이 없는데,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으므로, 판사님, 먹지 않을 고기를 냉동시켜 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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