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은 여름 살갗을 파고들며
계절이 멎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작별의 눈짓마저 녹아버린 여름에는
모두가 다만 여름이었다
핀란드 동화의 설수마저도 습관처럼 잊힌
초침소리 속에서 헤엄쳤다
망막에 틀어박힌 연골 조각을 뱉어내고
우리 여름 아이들은 어둠의 기억마저
낮 파리떼 소음에 쫓겨나기 전
여직 얼어 있는 호수 심해로 헤엄쳐 들어갔다
사랑을 위해 매장해 둔 당신들의 무거운 머리가
보글보글 트레몰로 연주하는 심연이었다
죄명도 없이 꼭 맞는 무덤으로 여름 아이들은 기어들었다
입맞추려 기울였던 머리 내음이 찢긴 물살에서 새어나와
습관에 반하는 습관으로 슬그머니 지나던 낮달을 적셨다
명암에 바래지 않은 코로나는 튼튼하고 보드라웠다
뼈를 적신 숨이 채 마르기도 전에
비명횡사한 달님 시체는 오동통한 살 째로
한 덩이 유령이 되었다
혈족을 사랑하는 순교의 전통은 달보다도 늙은 밤이었다
아이들은 산 채로 묻힌 비극 속 누이처럼 달님을 어루만졌다
꽃잎 대신 길러낸 미광의 시취에 기꺼이 취했다
취기 오른 무뢰배들은 기울었던 입맞춤 박제해 둔 유리병 모조리 깨뜨렸다
산산난 물에 이름 없는 바닷물이 섞여들었다
밀폐된 유년의 감실에서는 엄마의 젖은 손톱이 욕망된 피로가 침묵에 불어 터진 흐느낌이 우연한 소독약 내음이 소진시킨 추억이 손가락을 뚫고 나온 미세한 숨들이 결도 없이 폭발하여
아이들 피부 사이사이 박혀들었다
고유한 죽음으로 착색된 여름 아이들은 주름도 없이 미끈한 노인들이 되어버렸다
유언할 글자 채 익히기도 전에 신방에 묻힌 여름은 그래
이별할 걱정 없이 순진하게 사랑했던 해즙으로 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