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장마의 물방울 – 우주의 유배지 초록 행성의 비가

평생을 앓던 장마가 새삼스런 장마가 내린대요

잘 자라나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하잘 것 없는 내력은 묻지 마세요
쉽게 벌어지고 쉽게 젖어들고 쉽게 썩는답니다 쉽게 피고마는 싸구려랍니다
비도 없이 우산꽃 틔우고 축축한 대가리가 버거워
목을 꺾고 실핏줄로 머리칼을 묶고
밟지 않음 자라나요 내일부턴 장마라는데

계절 내내 하늘에 고여 있는 저 초록
저게 장마구름인가요?
그래 장마전선이라고 하지
안개가 아니고요
그래 다 젖어놓고선 모르겠니 아직도?
흐르질 않는데요 내리질 않아요 더럽게 게으르게 고여 있는데요
내리질 않아도 비인가요
그래 그게 장마란다 못 내린 비를 장마라고 부른단다
겨우내 잠자코 머무르는 초록을 장마라고 부른단다
왜요
왜요? 빠져들고 싶음 어쩌나요 가라앉고 싶은데요 이제는
잠겨 있잖니 너
물 없이 말라 죽는 사막의 고아들을 생각하렴
사치스런 투정일랑 관두렴
가라앉고 싶은데요 이제는
빠져죽고 싶은데요 이제는
어쩌니 너
아가미가 돋았잖니
잠겨 자란 너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마땅히 숨 쉬는 수밖에
장마란다 평생을 앓던 장마 평생을 앓는 장마 평생을 앓을 장마

영영 가시지 않을 초록전선이 온다는구나
예보도 없이요
이미 젖은 너희는 빨강 우산도 노랑 우산도 파랑 우산도
소용없잖니
장마야 장마 초록장마 내리지도 않고
네 한철 내내 장마야 초록이야 장마야 아으
새삼?
유난 떨지 마렴
안갯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어
조금 젖었다고 조금 척척하다고
장마에 익사하는 사람은 없단다
이렇게 지독한 장마라도요
안개핀 안개마을 안개꽃은 안개를 산단다 안개를 죽지 못해

아가미 달린 짐승은 익사할 수 없단다
헤엄을 안다면 떠오를 수밖에
한 번 떠오른 계절은 다신 가라앉을 수 없어
잠겨든 계절은 그래요 마땅히 평생을 잠들어요

청포도 알알이 터지는 봄 저를 트던 봄
초록 물 든 아이들이 찬란히 으깨어지던 봄
죽을 필요 없이 죽을 수 있기를 염원하는 아이들에게

계절은 영영 장마다
계절은 영영 초록이다
그치지도 내리지도 않고 잠든 초록 장마

아으 초록비가 내려요 초록비가 초록비가 초록비가
아니 장마라니까
장마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단다
아으 초록비가 초록비 초록비가 내려요
안 죽는다니까
초록이야 초록
초록 장마로 젖어든 초록
젖어서 더 지독한 초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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