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에 대응하는 몸의 기억

김신록에 뫼르소 비평

발등에 뜨뜻한 햇볕이 쏟기었다. 그는 백치처럼 턱을 늘어뜨린다. 혀가 굳어 간지럼 타지 않는 여자를 두고 빛무리는 돌아간다. 아니, 돌아온다. 뫼르소는 차라리 달리며 비웃는다. 온몸을 흠씬 적신 땀은 덥기보다는 차다. 햇빛의 체온을 튕겨내며 뫼르소는 오한에 바르르 떤다. 다시, 햇빛이 밝아 나는 눈을 뜰 수가 없다. 마침내 나는 정박으로 신음한다. 햇볕의 수효에 꼭 들어맞는 화상을 입는다. 검게 얼룩진 피부로, 아라빈은 해울음만큼 데워진 눈물을 쏟는다. 등 위에서 햇살이 번식한다. 빛물에 온통 데어 얼지도 식지도 못한 아라빈은 화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태양에 대한 올바른 경외를 강요하는 이들 앞에서, 흰 피부의 여자는 어떻게 울어야 할 것인가. 해 속에 스미지 못하고 튕겨나간 이방인은 여린 피부를 데이지 않기 위해 두 가지의 전략을 선보인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외상 앞에서 그의 전략은 무력해지고 만다. 그는 화상과의 뒤엉킴에 적응하며, 불어나는 무게에 쓰러져 바닥을 긴다. 김신록은 네 가지의 몸의 양태를 현시함으로써, 화상에 대응하는 뫼르소의 몸부림과 그 이후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권력의 열기에 상응하는 울음을 체득하지 못한 이방인이, 몰아치는 햇빛에 대응하는 첫 번째 수단은 지연과 마비의 전략이다. 김신록은 햇살의 파장을 늘어뜨리고 일그러뜨리는 냉소의 전략을 위시함으로써, 통증의 원인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을 보여준다. 재판 선고를 내리는 판사의 목소리는 보이스웨어의 무감한 기계음으로 대체된다. 갈수록 우스꽝스럽게 늘어지는 기계 음성은, 태양의 폭력을 이미 식어버린 냉소로 무력화시킨다. 일그러진 기계음을 관조하며, 김신록은 관객들의 기대보다 느긋하고 지연된 몸짓을 보여준다. “목”이라는 말을 내뱉은 뒤, 그것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듯 목덜미를 쓰다듬고, “아픔” 이후에 잊은 버릇을 확인하듯 고통을 위시한다. 절제된 몸놀림은 태양이 너무 뜨겁다는 그의 말과는 대조적으로 차게 식어 있다. 지연되어 있는 동작과 표정은 그녀가 언표하는 감정에 쉽사리 이입되기 어렵게 만든다. 뫼르소 본인조차도 그녀가 부르짖는 감정에 무감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권태를 자랑하는 뫼르소의 둔감한 몸짓은 타자를 억누르는 이데올로기의 자긍심과 오만, 나르시시즘을 지나치게 촌스럽고 뜨거운 것으로 만든다. 느릿한 몸짓과 울음을 통해 불감증을 자처하고 댄디즘을 현시함으로써, 뫼르소는 ‘지나치게 느끼는 자들’의 열기로부터 물러나 해울음의 은총을 걸치고 있는 이들을 비웃는다.
“아,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햇빛이 다시 쏟아진다. 뫼르소는 두 번째 전략으로 태양을 내쫓는다. 발등에 따뜻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일별한 김신록은, 앞선 지연의 전략과는 대비되는 성급한 위악의 전략을 취한다. 맨 발을 적시는 열기만큼의 수효로 걷기를 명령하는 이들에 맞서, 차라리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도록 뛰어버리는 것이다. 어머니의 애인을 연기하며, 김신록은 선읍벽으로 느껴질 정도로 과잉된 몸짓을 선보인다. 다리까지 절며 헐떡이는 울음 소리와 갑작스러운 외침은, 앞선 마비의 태도와 대비되어 더욱 과장된 연기로 느껴진다. 노인의 개를 현시하는 장면에서는 엑스터시의 상태에 가까울 정도의 헐떡임과 함께 발작하듯 의자 주위를 뛰돈다. ‘너무 빨리 걷다보면 온몸이 흠뻑 젖어 오한이 난다‘는 간호사의 말처럼, 뫼르소는 햇살에 화상을 입기 전에 차라리 찬 땀을 먼저 질질대며 뜀박질을 해버리는 것이다. 성급한 몸짓과 울음으로 과장된 열기는 기실 텅 비어 있다. 해 그림자마저 당황하여 뒤쳐진다.
“이것 봐, 내가 훨씬 더 탔어.” 해울음에 물든 팔을 자랑하는 애인의 신음과 함께, 햇빛이 다시 쏟아진다. 뫼르소는 더 이상의 도피를 포기하고 양순히 화상에 젖어든다. 김신록의 몸짓은 더 이상 언표되는 현상들에 비해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정박의 날개짓에는 의식과 몸, 말과 행위, 태양과 이방인이 같은 체온을 입고 뒤얽혀 있다. 따라서 신체에 선행하거나 뒤처지는 단어들은 사라진다. 김신록은 행위의 박자보다 이르게, 혹은 늦게 뒤따라오던 말들을 내뱉지 않는다. 그녀의 몸짓과 연기는 그 자체로 말이며 행위로서 현존한다. 행위와 엇박을 이루며 이질적으로 분리되던 독백들은 몸짓에 정합한 의미를 현시하며 사실주의적인 연기의 양태로 나타난다. 앞선 위악의 전략들, 냉소나 선읍벽의 아방가르드적 성격과 대비되어, ‘진심’의 태를 입고 있는 그녀의 연기는 촌스럽고 감정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뫼르소는 태양의 체온에 꼭 들어맞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다. 생을 긍정하고, 죽음을 긍정하며 울부짖는 여자에게는 더 이상 댄디즘의 알싸한 향수 냄새가 나지 않는다. 태양의 수효에 꼭 들어맞는 땀 냄새만이 풍겨올 뿐이다. 흰 피부의 여자는 화상으로 온통 그을어져 이방인에게 걸맞는 태를 갖추게 된다. 아라한과의 대치 장면에서 김신록은, 열 손가락을 천천히 벌리는 동작을 통해, 긴장한 이방인의 발가락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멀어지는 뼈마디 사이사이의 공간으로 검은 울음이 스미며 뒤얽힌다. 검은 피부의 이방인과 해울음에 타버린 뫼르소의 발가락이 섞여든다. 칼을 비틀어 쥐며 방아쇠를 당기는 몸짓 역시 같은 색의 해 그림자 속에서 엉긴다. 주체를 확정지을 수 없이 던져진 김신록의 손동작과 외침은, 진심의 열기로 경련하는 울음 속에서 타자들의 보편으로 승화된다. 위악의 전략들에서 엇박으로 분리되었던 말과 몸짓 속에는 뫼르소 본인조차 스밀 수 없었지만, 칼을 비틀어 쥐는 손동작과 방아쇠를 당기는 손동작, 눈물과 열기가 뒤얽히는 파문의 관성 속에서 화상에 물든 이방인들마저 섞여들고 마는 것이다. 촌스러운 진심의 점성은 이처럼 이방인들의 합일, 그로 이어진 연대의 방향까지 암시하기에 이른다.
엉겨든 화상 자욱 위에서 햇빛이 자라난다. 다시, “아,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뫼르소는 벌어진 다섯 손가락으로 조명을 가린다. 온통 검게 그을은 피부에는 더 탈 자리가 없다. 정박의 체온으로 뒤얽히던 빛무리는 게걸스레 살오른다. 연대의 무게보다 선행하는 오랜 햇살이 검게 탄 등을 짓누르며 증식한다. 김신록은 함성보다 가까운 신음성을 흘려낸다. 이방인은 피아노 앞에 앉아 곱추처럼 움츠러든다. 화음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던져지는 피아노 선율은, 탐욕스레 재귀하는 햇빛 아래에서 이미 말라버린 눈물, 빛무리의 열기에 타들어가 뭉개져버리고 만 연대의 흔적을 암시한다. 아라한과 뫼르소는 햇빛을 피해 도망칠 땅굴을 채 파내기도 전에 압사하고 말았다. 조명이 되지 못하고, 해울음의 옷을 걸치지 못하고 그 맞은편에서 여린 피부를 태워내야 하는 이들은, 무력한 손가락 사이에서 조명 빛을 흘려내는 김신록이며, 검게 데어버린 뫼르소, 아라빈, 이방인, 쏟아지는 조명의 박자에 맞추어 양순히 동공을 벌려내고 조여내는 관객들이기도 하다. 검은 이방인들은 한 줄기 땀내음의 상흔을 다시 꼬아내어 태양 아래에 검은 땅굴을 건설해낼 수도, 차라리 숫제 타버려 가벼운 먼지로 떠돌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밝아지는 조명, 들이닥치는 햇빛 아래에서 김신록은, 당신들은, 나는 어떠한 리듬으로 춤 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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