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래는 더 이상 붉지가 않다
태반의 피내음은 짠물에 씻겨 나갔고
사랑을 냉동보관했던 싸구려 겨울 성좌는 폭염에 망가졌다
상한 환상에서는 누구의 돌봄도 없이 홀로 익어가다
끝내는 썩어버린 아보카도의 냄새가 났다
썰물 너머 기운 달로 기어들던 절름발이 노인들은 악취에 예민했다
우므른 불쾌로 흥건한 기저귀를 손수 빨기 위해
그네들은 밀물마다 짠물로 내려오곤 했다
문자 없는 외국어로 질질댄 유언에
물밭이 시즙 빛깔로 물들면 배곯은
송사리 떼가 달려들어 달빛 파도로 신음했다
거식증에 걸려 환청만 편식하던 아기 고래는
보름날부터 목소리마저 구토했다
수치 없이 환한 달밤 먼 신방 비밀이 노출되었다
어미달 분화구 구멍마다 노인들이 오줌을 누면
자지러지는 비명이 내렸다
출생의 비밀을 목격한 붉은 고래는
멜로 드라마의 오랜 관습에 따라 실어증을 앓게 되었다
발간 혓바닥에서 새어나오던 시뻘건 육즙이 멎어들자
바다는 달빛으로 오염되었다 똥물을 과식한
송사리들 배를 까뒤집고 떠올랐고
단물로 변해버린 바다에서는 녹아버린 적의의 악취가 진동했다
붉은 고래를 거두어 매장하기 위해 노인들은
널어놓은 기저귀 채 마르기도 전에
불알을 덜렁대며 내려왔다
놀랍게도 고래는 살아 있었다
붉지 않아도 붉었던 물 속에서 빠끔대고 있었다
사랑은 변해도 닳지는 않는다고
고래는 상한 사랑을 뱉었다 삼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달빛으로 병든 혈관에
삼켜내지 못한 부름들의 물거품이 걸려
중풍에 걸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베이킹파우더를 든 노인들이 고래에게 다가들자
한때 동물이었던 바다 정물은 기도에 걸린 최후의 물거품
두 방울을 삼켜내었다 적의 맺힌 열량을 태워내며
어머니의 복수를!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의 가랑이 사이 쭈글한 달 두 개를 물어뜯었다
거세된 상처에서 하혈한 시뻘건 물거품 흘러넘쳤고
피냄새에 꼬여든 이국의 왕자들로 바다는 소란하였다
적의를 날 세운 젊은 피라냐들은 신선한 핏물만 머금었기에
풋내만큼 비린 식욕으로 싱그렀지만 더 이상 붉지 않은 붉은 고래에게는
새 왕족들 유혹할 핏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달빛 고래만이 달빛으로 상해 갔기에
붉은 고래는 더 이상 붉지가 않다 다만
붉은 바다에서는 상해가는 달빛 고래만이 달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