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어젯밤엔 제법 열렸지 지느러미 거품
그래, 먼 구름 좇던 늙은 인어도
다릿짓 멈추고 입맛 다셨으니
싯누런 이빨 들이밀어도
어림 없지, 바꾸어 줄 리가
자네 무얼 하나 젖은 비늘 짜 말리지
조만간 동그라니 무지개가 필 걸세
어이 그만 두시게 마른 꼬리뼈엔 헤엄을 걸면 안 돼
시린 발짓은 쉬이 꺾여버린다오
그럼 어디에?

으흐, 흠 이리 주시게
짠물 서린 자리 봐 두었지
퉁퉁한 별빛 서너개는 걸리어도
지느러미질 찰박 신명나더군
그렇게 시퍼런 그물이 우리에겐 필요한 걸세
그레테처럼 말인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직녀성 젖가슴보다 둥글게 맛든
파도일세 여직 어린 수염 퍼르라니
풋내 달큰한 어부 몇 놈도
단숨 빨려 시퍼렇게 익어갔네
자네 괜찮겠나 손이 찬데
걱정 말게 어쩌겠나
지느러미 거품 북실허니 걸치고 겨울을 나려면
누런 안개보다는 빨라야 하네
심술 난 인어 봄을 몰아오기 전에
자, 어서 가세
고래 단 숨 한 모금 삼키고
이렇게 짭잘한 바람이
우리에겐 필요한 걸세

주춤거리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한다

꼬리 잃은 줄도 모른 채 인어는 미끈한 다리로 주춤거렸습니다
둥글고 커다란 진주알 하나 깨고 나기 전
이름 모를 비늘 한데 뒤엉켜 갑갑하고 아아 숨이 저려와요
임금님이 설운 비늘 겹겹이 이름 지어 벗겨주기 전까지
인어공주는 할딱할딱 기어 뒹굴 뿐이었지요 스미운 물거품 새어 나가고
오롯이 직립한 다리 비늘로 이족 보행을 할 적에
아아 드디어
왕자님 만나고 만 거예요 나의 루루-

선연한 속삭임에 벌리울 두 다리만 남겨 두고
까슬한 비늘들 모조리 뽑아 버렸지요
매끄러운 각선미 밖 무수한 지느러미 휘적휘적
잃은 줄도 모른 채 인어는 아파했어요

사랑은 너를 죽일 거야
젖가슴만 남은 누이들은 칼을 건네주었죠
사산한 노래의 목뼈로 만든 무기였어요
어젯밤 음부에 숨겨 기른 노래 거품들
산산이 찔러 죽인 그 날붙이로
왕자님 찌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이제 사랑만을 사랑하는 인어공주
낡은 젖무덤에 포옹이 떨군 마른 시신 묻어 놓았지만
늠름하신 왕자님 유령 따윈 없답니다
쉬이 역류하여 몰래 부른 신음
물거품마저 알알이 터뜨렸지요

다른 비늘은 없어요 왕자님 살려주세요
다만 두 다리만 춤을 추며
마지막 신음 한 방울마저 부드러이 출혈하고
인어공주 63근의 고기 통째로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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