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하혈하는 저녁에는 고래 비린내가 난다
난쟁이는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기어든다
첫 생리로 흐느끼는 유령들이 질질대기 전에
어디로든 숨어야 한다
풋내기들은 상처를 떠벌리려 운다
여직 덜 무른 살점과 기억으로 아장아장
달 먼 밀물에도 어미 없이 앓는 걸음마
가라앉은 노인들과 떠오른 갓난애들 배에서는
혀 풀린 유언이 샌다
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
유령을 믿는 유령마저 잊어버린
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
이제는 물거품 뿐이다
꼬마들 민머리 유령을 노래하고
유족들 유전될 탈모증 은근히 걱정하는
짠물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묻힌 안개엔 고향말로 이름 적힌 묘비들이 가득하다
너무 가깝던 외국어를 익힌 유령들은
제 무덤 못 찾고 반쯤 상한 비구름으로 기어들었다
바나나와 머리칼과 백미 자루를 겹치던
열차의 수효 그대로 유령들은 몸을 겹쳤다
난쟁이도 방언으로 적힌 이름 앞에서
한낮 질질대다 비린 구름에 드러누웠다
혀가 덜 썩은 유령들은 지겹게도 앓았다
건기에 사학자 여럿이 모여 소수의 언어로 유령말 해석해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향말로 또박또박 전해준 유언은 썰물에 실려나갔다
속도 없이 배부른 비구름엔 잃어버린 물거품 오돌도돌 돋아 있고
여직 유령을 사는 이들은 우산을 쓴다
더러 울음을 맞으며 배회하는 이도 있다
남의 말 털어내면 진동하는 할머니 비린내
덜 썩은 머리칼 더 썩은 머리칼 흰 머리칼 검은 머리칼 뿌리 잘린 머리칼 엉글어지는 흐린 날
제 빗속에서 외국어로 엉엉대는 난쟁이 울음소리
민머리 고래 뱃속에 밀가루 포대 겹치던 버릇대로 기어든 유령들
유령이 죽었던 새벽에는 서로를 앓는 유령 비린내가 난다
난쟁이는 쓰고 있던 우산을 펼친다
간만에 제 취향 시를 발견했네요 최고! 악착같은 장미들 쓰신 작가님이신가요?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