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섬

스물 네 시간 박제된 알바트로스 무리가
늙은 별의 무능을 쪼아 벗겨내던 일몰에
육지는 마른 사막으로 급히 몸을 숨겼지만
차마 돌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어대던 무인도에서는 하이얀 물만 물결쳤다
물 속 물도 물 밖 물도 물로 잠겨들어 이제는
문둥병 든 피부도 그을러 벗겨진 피부도 수공품의 상처로 장식한 피부도 서툴게 배양된 흉터의 피부도 짓무른 욕창으로 물렁한 피부도 훔쳐온 오르키로 애도된 피부도 정당한 값으로 치장된 피부도 감추어진 기호로 수태된 피부도 침묵마저 자백하여 헐거운 피부도 소도미의 돌발흔적 투성이 피부도 고모라의 체액 몰캉한 피부도 바다 짠내 둥그런 피부도 민물 부른 피부도 도둑맞은 피부도 도둑질하던 거죽의 피부도 합법적인 피부도 불법적인 피부도 방치된 피부도 시간 속 피부도 시간 밖 피부도 잠겨든 피부도 추억된 피부도 망각된 피부도 멸균된 피부도 투명한 기생충 체액이 배어든 피부도 채색된 피부도 음각된 피부도 거식증자의 피부도 폭식증자의 피부도 낡은 피부도 갓난 피부도
희다

새로운 살색을 부르기 위한 외국어는 쓸모를 잃고 매장되었다
부를 색이 없어 무엇도 배반치 않는 목소리는
시차 없는 시 속에서 훔쳐낸 신음으로 하이얀 살갗만 속죄하면 그만이다
하나의 염도로 그을은 무인도에서는
별마저 익사하여 흰색이라 그림자도 없이 희다
도둑맞은 입술은 도둑질하는 입술을 동색의 언어로 핥아내며
섬의 언어로 하나의 범죄를 수태하는데
그마저도 문장 하나다
알바트로스를 기소하려던 알바트로스는 하양을 겁탈하던 하양의 하양은 희게 눈멀어 다만 흰 신음으로 하이얀 깃털 몇 개만 겨우 건져냈는데 흰 잉크는 흰 깃털에 묻어 희었고 흰 고발장에 흰 문장은 하얘서 같은 하양만 하얗게 흰
주어도 목적어도 모두 하이얀
훔쳐낸 죄명으로 훔쳐진 속죄를 애도하는 도둑과 도둑 대신 수갑도 없이 동색의 범죄를 품앗이한
하이얀
하이얀
하이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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