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배신하기

소리를

질러주어야 할 순간을 깜빡 놓치고

번번이 놓치고, 에잇, 똥이나 처먹어라! 가

나의 첫 대사이자 마지막 대사야

(김언희, <아주 특별한 꽃다발>)

배신하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적합한 말과 적합한 순간을. 그래서 아주 무례해져버리기.

머리카락에 불이 붙는데,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김언희, <Ver. 1. 발화>)

나는 이 개다. 나는 개처럼 짖어서 말한다.

나는 개처럼 무례하다. 나는 나를 읽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개처럼 짖는다. 주님 앞에서 똥을 싸고 법 앞에서 시시콜콜 반론을 편다.

이 시편들 역시 독자를 선택할 것이다. ……배반하려고.

(김언희, 「트렁크」 시인의 말)

자기 죽음에 대해서 주절주절 털어놓기. 추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사성들에 대해서 떠벌리기.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들 앞에서 오줌을 지리기. 시시콜콜하게 까발리는 건 비밀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미쳤기 때문이다. 너는 너무 떠벌리고 있어, 네가 떠벌리는 건 너무 무례해, 하고 신이 천국의 문턱에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말하고 싶어요. 말하고 싶어서 죽어버리고 싶어요.

주님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너는 이미 죽었어!

제가 죽었나요? 나는 너무 행복해서 되묻는다.

아니, 너는 죽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죽지 않았잖아.

주님이 미친듯이 웃는다.

나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주님에게 내 죽음의 가장 사소한 부분을 시시콜콜 말한다. 나는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났어요. 29번 채널이 틀어져 있었고 돼지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나는 너무, 너무 슬펐어요.

주님이 웃는다. 너는 너무 무례해. 자기 죽음에 대해 떠벌리는 건 무례한 거야. 너는, 하고 주님이 묻는다. 배신하려고 하는 거니?

그리고 나는 웃는다! 당혹스러운 기쁨으로 웃는다. 나는 벌거벗었고 무례하다. 주님, 나는 무례합니다. 고양이-아버지-어머니의 입에 정성스럽게 똥을 싸 주는 김언희처럼. 나는 천국을 배신하고 내 죽음의 가장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집요하게 지껄여댄다. 나는 배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살아있음이니까. 배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배신할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