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음만이 성교고 독백만이 대화인 설픈 뭍에서모든 소음이 대답 받는 난장 꿈꾸었지썰물로 실어 보내도 돌아오던 마음이 있었어하릴없이 머무르던 물거품무용한 부름만으로 공명하였던 울음 홀로 울어낸 여운돌아올 뿐인 메아리 설웁지만 계속해서 불러냈지 답장은 늘 늦고 기다림은 차라리 지겨워서얼려놓은 별빛만이 머물렀지 그래도 오롯이 울어냈던 울음너와 나 한데서 떨었더랬지울음을 충분히 울어냈듯 떨림을 충분히 떨어낸다면 시린 별도 녹지 않을까별님들 적요한 소란을 … Continue reading 편지
[월:] 2022년 02월
주춤거리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한다
꼬리 잃은 줄도 모른 채 인어는 미끈한 다리로 주춤거렸습니다둥글고 커다란 진주알 하나 깨고 나기 전이름 모를 비늘 한데 뒤엉켜 갑갑하고 아아 숨이 저려와요임금님이 설운 비늘 겹겹이 이름 지어 벗겨주기 전까지인어공주는 할딱할딱 기어 뒹굴 뿐이었지요 스미운 물거품 새어 나가고오롯이 직립한 다리 비늘로 이족 보행을 할 적에아아 드디어왕자님 만나고 만 거예요 나의 루루- 선연한 속삭임에 벌리울 두 … Continue reading 주춤거리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한다
끝없음에 관하여(Om det oandliga, 로이 앤더슨)
오직 꿈 속에서만 서로를 품에 안고 날아오르는 삶의 단편들. 삶은 내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다. 참을 수 없이 외로운, 참을 수 없음에도 계속되는.
고래 아이
고래는 단 숨만 삼킨다. 줄무늬가 닳은 노인들은 짭조름한 핏물만을 주워 먹었다. 미끈한 피부를 반짝 자랑하는 신사 숙녀들. 늙어 닳은 모공은 터럭들을 떨군다. 질긴 고래 수염을 배배 꼬며, 그 애 집에는 단 물이 샜다지. 할머니는 비내음으로 옷을 빨았대. 시꺼먼 아이는 누구보다 빨리 살이 쪘다. 울퉁한 아스팔트 사마귀를 흰 배로 뒤덮고, 보드라운 파도살을 찢어내며 틔워낸 꼬리뼈. 소년은 … Continue reading 고래 아이
하모니움, 숨
남자가 인공호흡을 한다. 세 구의 익사체가 그의 앞에 있다. 그가 익사체들의 입에 숨을 불어넣는다. 멎은 심장을 몇 번이고 짓누르며 되살리려 한다. 내밀한, 절박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숨. 숨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그것은 점차 격렬해지지만 번져 흐르지는 않는다.
달빛 홍해
붉은 고래는 더 이상 붉지가 않다태반의 피내음은 짠물에 씻겨 나갔고사랑을 냉동보관했던 싸구려 겨울 성좌는 폭염에 망가졌다상한 환상에서는 누구의 돌봄도 없이 홀로 익어가다끝내는 썩어버린 아보카도의 냄새가 났다썰물 너머 기운 달로 기어들던 절름발이 노인들은 악취에 예민했다우므른 불쾌로 흥건한 기저귀를 손수 빨기 위해그네들은 밀물마다 짠물로 내려오곤 했다문자 없는 외국어로 질질댄 유언에물밭이 시즙 빛깔로 물들면 배곯은송사리 떼가 달려들어 달빛 … Continue reading 달빛 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