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의 저주 메아리 울리는 안개 바다에서귀신들은 날 적부터 귀신이었다동굴의 향일한 사랑 기꺼이 사산하고창백해진 윌리들은 안개를 뒤적이며 수음한다지겨운 상실을 목도하러 땅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관중들 앞에서태양은 안티고네의 신방에 볕 째로 묻히고 귀머거리 노인들이 도로 게워낸 유언의 미광만이무지개의 미련으로 잔존했다볕의 음부는 덜 썩어 뜨끈했다폴리네이케스의 질구는 오랜 비극을 시음해 보려는미식가들의 혀에 으무른지 오래였다차라리 오빠 자궁으로 안티고네는 오빠를 낳았다오이디푸스는 … Continue reading 백야
[월:] 2022년 08월
고등어잡이
올해 고등어잡이는 풍작이다 못 팔고 남은 고등어들은 여분의 유언을 섞다가푸른 등 수줍게 붉히며 썩어갔다서로의 여운이 버거운 생선들갈무리 못 한 바다 비린내찬 살 녹아가면배 곯은 새끼들은 제 살을 삼킨다어부들이 그물을 펼쳤을 때침이 묻어 상해버린 고등어 허파에서는고등어 비린내가 났다안개도 없이 서린 숨이 역겹던 어부들은 질식사했고터진 허파에서 새어나던 어부 비린내겨우내 너희 비린내를 동결시켰던살과 숨이 물러가며 흘린 비린내봄 내내 … Continue reading 고등어잡이
공시의 문법
<월간문학, 2022년 12월호> 역 앞 베이커리에서는 오토바이 사고가 난다영영 망가지고 있는 유리창 속에서살려줘요 살려줘요이름 잃은 야광별 다닥다닥 늘러 붙은 헬멧에서리 드는 유리조각덜 구운 젤라틴 단내굶어 죽은 마음들은 빵내음이 역겨워너를 쫓아내 버렸다 귓불 아래 덜렁대는 비명은멀리 길 잃은 별유언도 없이 주름진 낯 그대로박제된 늙은 별이질질대었던 소음싸구려 야광별 스티커 조각내던 새벽덜 저문 어둠이 징그럽던 낮들그 소리가 부끄럽고 … Continue reading 공시의 문법
선생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피를 마시고 자랐어요
콩쥐는 옹이 구멍에 꿈을 누었다오줌이 산맥을 적시었다 공주의 꿈냄새를 맡고 초혼된 왕자는 밤눈이 어두웠다물렁한 질에서 팥쥐를 낳던 밤에야계모는 낡은 집 그득 들어찬 왕자 무리를 보았다구원을 어음받고 기어든 두꺼비들이 두 다리로 걸어 나가고앉은뱅이들이 프로이트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대는 아수라장에서갓 난 팥쥐는 어미처럼 왕자를 믿었다아비를 닮아 팔다리 하나씩은 유령이었지만세 손 세 발 타고 난 탓에 누구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다만 … Continue reading 선생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피를 마시고 자랐어요
살해자의 물방울
나는 정말이지 참아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바닥을 술렁거리며 기어다니던 개미들이 달을 찢어발기고 내 신발 위로 타고 올라와 내 맨발을 찢어발겨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작고 부드러운 발가락이 잡아 뜯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 이모들은 낄낄거리면서, 무슨 일이니. 설마 겨우 개미 때문은 아니겠지. 귀여운 루시, 하고 물었다. 나는 개미를 고발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개미에게는 … Continue reading 살해자의 물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