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 같은 밤

얼려 놓은 리듬 속 바글대는 몇 뭉치 시차레코-오드 판 불협 짓쳐내던 열한번째 첫 경험 신음만 미야옹-가글대던 낮달에방치된 계절 접붙이는 늙은 바늘 눈꺼풀 한 껍질 벗겨내고부끄런 맨눈으로 터언-터언 가게 노인은 석화된 모녀의 목소리 값을 요구했다죽은 목소리는 비싼 법이지 성당은 살아남아도 철 지난 빛은 다시 들지 않아팔지 못해 썩어버린 화가의 눈깔처럼 하지만 할아버지 당신 목소리도 버얼써 죽어 … Continue reading 다락 같은 밤

애도

소돔의 왕자님 뭍에 닿기 전에 공주님은 죽어버리고 말았어요관성으로 어여쁜 먼지투성이 침 거품 쓰다듬으며여보, 입맞추어도 공주님 산산난 물거품만 빠끔대었죠선생님, 죽음은 회복기의 증상이지요 중풍이 심해진 것 뿐이지요매일 삼십 분의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호전될죽음은 증상이 아니라 병이랍니다 살아 있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더 혹은 덜 살아 있게 되는왕자님 공주님 짠 핏물로 목욕을 하고 갈증난 하늘에 먼 해양 고래 … Continue reading 애도

유년의 무덤

늙어빠진 물은 가끔 계절조차 잊는다거울상 없이 투명한 물 밑 뭍으로겨울을 피해 여름 벌레들 우수수 스미면낯선 날갯짓에 물은 결 빠진 물만 토해내다여러 불면의 악취가 배어든 날갯잎물살 지친 틈마저 들어올리며 빛 바랜 낮달로 귀향하고밑 빠진 물 깊숙이 날개 빠진 여름이버릇처럼 날아오르다 유령을 믿게 될 때 지긋한 시신 대신 쏘아보낸 달의 초상각각의 원근으로 모사한 우수의 빛살에홀려든 해마저 뛰어들어 … Continue reading 유년의 무덤

해바라기

여름해가 들어도 늙지 않도록 어미는 태아의 망막에서 버릇든 연골을 도려냈다물과 뭍이 섞여드는 물지욱 스미어 유년의 지느러미들은 자연스레 변색되어 떨어져 나갔다낯선 굴절의 초상을 보며 늙지 못한 아이는 남의 우울만 울어야 했다여름은 제 이름도 모르고 찾아왔다습관 없는 맨눈에는 채 바래지 못한 친구들 환각지가 선연했다비색으로 흐적대는 유령 탓에 계절은 온통 흐렸다엄마 엄마 물비늘 근지러 견딜 수가 없어요해 들어도 … Continue reading 해바라기

식물원

여름이 오기 전에 봄꽃은 씨앗 색 비늘을 구슬에 옮겨 놓았다바래지 않도록 얼려 둔 구슬들에 뿌리 댈 유리정원 몽상하였다사랑으로 설계한 유리정원에서 카틀레야는 믿지 않는 새벽을 기다렸다무명의 새벽에 유리구슬 알알이 비색으로 녹아들고부산히 색 옮기는 향일의 병에 뿌리댈 눈짓 하나 잡지 못한 꽃 차라리 시들어갔다여분의 이름을 두둑이 챙긴 상인이 나신에 낱말 두어개 적선하였지만과분한 빛살에 미리 감은 눈은 여름색이 … Continue reading 식물원

여름은 덥다

시곗바늘은 여름 살갗을 파고들며계절이 멎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작별의 눈짓마저 녹아버린 여름에는모두가 다만 여름이었다핀란드 동화의 설수마저도 습관처럼 잊힌초침소리 속에서 헤엄쳤다 망막에 틀어박힌 연골 조각을 뱉어내고우리 여름 아이들은 어둠의 기억마저낮 파리떼 소음에 쫓겨나기 전여직 얼어 있는 호수 심해로 헤엄쳐 들어갔다사랑을 위해 매장해 둔 당신들의 무거운 머리가보글보글 트레몰로 연주하는 심연이었다 죄명도 없이 꼭 맞는 무덤으로 여름 아이들은 기어들었다입맞추려 … Continue reading 여름은 덥다

맹인의 기행 : 고유한 죽음을 향한 순례자의 서

귀머거리들은 눈썹뼈로 썰물 발자욱을 듣는다질투 많은 맹인은 눈꺼풀에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새기고철지난 장애를 추억했다습관의 시간에 모사해 놓은 여름 나방 날개로 달인 찻물을 들이켰다 엄마를 보관해 놓은 물거품이 찢어지고직녀성 비명이 은근한 무덤을 통째로 낚아올렸다본 적 없는 꽃잎의 분홍 시취 대신오래 머금어 홀로 익어버린 몽상을 음미하며맹인은 늙기 전에 태어난 예언의 날개짓 매장된 찻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오랜 썰물에 구토해 … Continue reading 맹인의 기행 : 고유한 죽음을 향한 순례자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