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 같은 밤

얼려 놓은 리듬 속 바글대는 몇 뭉치 시차레코-오드 판 불협 짓쳐내던 열한번째 첫 경험 신음만 미야옹-가글대던 낮달에방치된 계절 접붙이는 늙은 바늘 눈꺼풀 한 껍질 벗겨내고부끄런 맨눈으로 터언-터언 가게 노인은 석화된 모녀의 목소리 값을 요구했다죽은 목소리는 비싼 법이지 성당은 살아남아도 철 지난 빛은 다시 들지 않아팔지 못해 썩어버린 화가의 눈깔처럼 하지만 할아버지 당신 목소리도 버얼써 죽어 … Continue reading 다락 같은 밤

애도

소돔의 왕자님 뭍에 닿기 전에 공주님은 죽어버리고 말았어요관성으로 어여쁜 먼지투성이 침 거품 쓰다듬으며여보, 입맞추어도 공주님 산산난 물거품만 빠끔대었죠선생님, 죽음은 회복기의 증상이지요 중풍이 심해진 것 뿐이지요매일 삼십 분의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호전될죽음은 증상이 아니라 병이랍니다 살아 있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더 혹은 덜 살아 있게 되는왕자님 공주님 짠 핏물로 목욕을 하고 갈증난 하늘에 먼 해양 고래 … Continue reading 애도

유년의 무덤

늙어빠진 물은 가끔 계절조차 잊는다거울상 없이 투명한 물 밑 뭍으로겨울을 피해 여름 벌레들 우수수 스미면낯선 날갯짓에 물은 결 빠진 물만 토해내다여러 불면의 악취가 배어든 날갯잎물살 지친 틈마저 들어올리며 빛 바랜 낮달로 귀향하고밑 빠진 물 깊숙이 날개 빠진 여름이버릇처럼 날아오르다 유령을 믿게 될 때 지긋한 시신 대신 쏘아보낸 달의 초상각각의 원근으로 모사한 우수의 빛살에홀려든 해마저 뛰어들어 … Continue reading 유년의 무덤

해바라기

여름해가 들어도 늙지 않도록 어미는 태아의 망막에서 버릇든 연골을 도려냈다물과 뭍이 섞여드는 물지욱 스미어 유년의 지느러미들은 자연스레 변색되어 떨어져 나갔다낯선 굴절의 초상을 보며 늙지 못한 아이는 남의 우울만 울어야 했다여름은 제 이름도 모르고 찾아왔다습관 없는 맨눈에는 채 바래지 못한 친구들 환각지가 선연했다비색으로 흐적대는 유령 탓에 계절은 온통 흐렸다엄마 엄마 물비늘 근지러 견딜 수가 없어요해 들어도 … Continue reading 해바라기

식물원

여름이 오기 전에 봄꽃은 씨앗 색 비늘을 구슬에 옮겨 놓았다바래지 않도록 얼려 둔 구슬들에 뿌리 댈 유리정원 몽상하였다사랑으로 설계한 유리정원에서 카틀레야는 믿지 않는 새벽을 기다렸다무명의 새벽에 유리구슬 알알이 비색으로 녹아들고부산히 색 옮기는 향일의 병에 뿌리댈 눈짓 하나 잡지 못한 꽃 차라리 시들어갔다여분의 이름을 두둑이 챙긴 상인이 나신에 낱말 두어개 적선하였지만과분한 빛살에 미리 감은 눈은 여름색이 … Continue reading 식물원

여름은 덥다

시곗바늘은 여름 살갗을 파고들며계절이 멎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작별의 눈짓마저 녹아버린 여름에는모두가 다만 여름이었다핀란드 동화의 설수마저도 습관처럼 잊힌초침소리 속에서 헤엄쳤다 망막에 틀어박힌 연골 조각을 뱉어내고우리 여름 아이들은 어둠의 기억마저낮 파리떼 소음에 쫓겨나기 전여직 얼어 있는 호수 심해로 헤엄쳐 들어갔다사랑을 위해 매장해 둔 당신들의 무거운 머리가보글보글 트레몰로 연주하는 심연이었다 죄명도 없이 꼭 맞는 무덤으로 여름 아이들은 기어들었다입맞추려 … Continue reading 여름은 덥다

맹인의 기행 : 고유한 죽음을 향한 순례자의 서

귀머거리들은 눈썹뼈로 썰물 발자욱을 듣는다질투 많은 맹인은 눈꺼풀에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새기고철지난 장애를 추억했다습관의 시간에 모사해 놓은 여름 나방 날개로 달인 찻물을 들이켰다 엄마를 보관해 놓은 물거품이 찢어지고직녀성 비명이 은근한 무덤을 통째로 낚아올렸다본 적 없는 꽃잎의 분홍 시취 대신오래 머금어 홀로 익어버린 몽상을 음미하며맹인은 늙기 전에 태어난 예언의 날개짓 매장된 찻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오랜 썰물에 구토해 … Continue reading 맹인의 기행 : 고유한 죽음을 향한 순례자의 서

백야

오이디푸스의 저주 메아리 울리는 안개 바다에서귀신들은 날 적부터 귀신이었다동굴의 향일한 사랑 기꺼이 사산하고창백해진 윌리들은 안개를 뒤적이며 수음한다지겨운 상실을 목도하러 땅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관중들 앞에서태양은 안티고네의 신방에 볕 째로 묻히고 귀머거리 노인들이 도로 게워낸 유언의 미광만이무지개의 미련으로 잔존했다볕의 음부는 덜 썩어 뜨끈했다폴리네이케스의 질구는 오랜 비극을 시음해 보려는미식가들의 혀에 으무른지 오래였다차라리 오빠 자궁으로 안티고네는 오빠를 낳았다오이디푸스는 … Continue reading 백야

고등어잡이

올해 고등어잡이는 풍작이다 못 팔고 남은 고등어들은 여분의 유언을 섞다가푸른 등 수줍게 붉히며 썩어갔다서로의 여운이 버거운 생선들갈무리 못 한 바다 비린내찬 살 녹아가면배 곯은 새끼들은 제 살을 삼킨다어부들이 그물을 펼쳤을 때침이 묻어 상해버린 고등어 허파에서는고등어 비린내가 났다안개도 없이 서린 숨이 역겹던 어부들은 질식사했고터진 허파에서 새어나던 어부 비린내겨우내 너희 비린내를 동결시켰던살과 숨이 물러가며 흘린 비린내봄 내내 … Continue reading 고등어잡이

공시의 문법

<월간문학, 2022년 12월호> 역 앞 베이커리에서는 오토바이 사고가 난다영영 망가지고 있는 유리창 속에서살려줘요 살려줘요이름 잃은 야광별 다닥다닥 늘러 붙은 헬멧에서리 드는 유리조각덜 구운 젤라틴 단내굶어 죽은 마음들은 빵내음이 역겨워너를 쫓아내 버렸다 귓불 아래 덜렁대는 비명은멀리 길 잃은 별유언도 없이 주름진 낯 그대로박제된 늙은 별이질질대었던 소음싸구려 야광별 스티커 조각내던 새벽덜 저문 어둠이 징그럽던 낮들그 소리가 부끄럽고 … Continue reading 공시의 문법

선생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피를 마시고 자랐어요

콩쥐는 옹이 구멍에 꿈을 누었다오줌이 산맥을 적시었다 공주의 꿈냄새를 맡고 초혼된 왕자는 밤눈이 어두웠다물렁한 질에서 팥쥐를 낳던 밤에야계모는 낡은 집 그득 들어찬 왕자 무리를 보았다구원을 어음받고 기어든 두꺼비들이 두 다리로 걸어 나가고앉은뱅이들이 프로이트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대는 아수라장에서갓 난 팥쥐는 어미처럼 왕자를 믿었다아비를 닮아 팔다리 하나씩은 유령이었지만세 손 세 발 타고 난 탓에 누구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다만 … Continue reading 선생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피를 마시고 자랐어요

유폐되어 태어난 감옥 아이 : 꿈꾸는 괴물을 꿈꾸다 대화를 몽상하며

감옥에서 태어난 감옥 아이들은 미리 갚은 죄값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지요권태기의 모세들은 제 발로 강에 뛰어들고 뤼크레티아는 처녀혈 쏟기도 전에 목을 꺾어 봄을 불러요 미리 타버린 여린 자궁 제전의 횃불 속에서 낄낄거리고 한 바퀴 먼저 부른 봄은 지난 여름에 미리 피어났지요 지겨운 처녀들 차라리 화형대로 기어들고 얼려놓은 플라스틱 별님은 벌써 부패한 야광빛으로 반짝거려요 치매 걸린 달이 … Continue reading 유폐되어 태어난 감옥 아이 : 꿈꾸는 괴물을 꿈꾸다 대화를 몽상하며

어부

어젯밤엔 제법 열렸지 지느러미 거품그래, 먼 구름 좇던 늙은 인어도다릿짓 멈추고 입맛 다셨으니싯누런 이빨 들이밀어도어림 없지, 바꾸어 줄 리가자네 무얼 하나 젖은 비늘 짜 말리지조만간 동그라니 무지개가 필 걸세어이 그만 두시게 마른 꼬리뼈엔 헤엄을 걸면 안 돼시린 발짓은 쉬이 꺾여버린다오그럼 어디에? 으흐, 흠 이리 주시게짠물 서린 자리 봐 두었지퉁퉁한 별빛 서너개는 걸리어도지느러미질 찰박 신명나더군그렇게 시퍼런 … Continue reading 어부

고래 아이

고래는 단 숨만 삼킨다. 줄무늬가 닳은 노인들은 짭조름한 핏물만을 주워 먹었다. 미끈한 피부를 반짝 자랑하는 신사 숙녀들. 늙어 닳은 모공은 터럭들을 떨군다. 질긴 고래 수염을 배배 꼬며, 그 애 집에는 단 물이 샜다지. 할머니는 비내음으로 옷을 빨았대. 시꺼먼 아이는 누구보다 빨리 살이 쪘다. 울퉁한 아스팔트 사마귀를 흰 배로 뒤덮고, 보드라운 파도살을 찢어내며 틔워낸 꼬리뼈. 소년은 … Continue reading 고래 아이

피안개 만찬

삼촌은 뜨끈한 손가락을 자꾸만 베어냈다. 말라붙은 손가락에서 둥근 지문이 뻐끔, 맴을 도는 날갯짓. 뜬 눈으로 잠든 비늘들만이 푸흐흐, 설운 입질을 삼켜낸다. 익지 않는 고기는 이미 썩은 쓰레기 뿐이지. 몽글한 살내음 달게 차오른다. 발간 기억을 덜렁이며, 이제 내겐 마른 혀조차 없소. 흰 비늘을 한 겹 한 겹 섧게 게워낸다. 얼멍 뒤얽힌 체온이 어지러워. 다리를 벌리고 방만한 … Continue reading 피안개 만찬

실험쥐 2

전두엽에 갇힌 쥐새끼가 울고 있다. 너는 C-fiber 신경 자극에 다름 아니라며, 그가 네 고통을 기록한다. 신음한다. 울고 발열한다. 잔열. 잔떨림. 섬망. 출력된 글자들이 운다. 굶다 지쳐 굶다 미쳐 저를 굶던 쥐가 글자를 찢어 삼킨다. 고통이 목에 걸려, 쥐새끼가 기침한다. 고통이 젖는다. 고통으로 울던 쥐. 엄마 나는 쥐새끼예요. 낯설도록 흰 냄새, 실험복을 입다 벗다 입다 벗던 … Continue reading 실험쥐 2

붉은 고래 연극

갓 난 도시들의 유언이 혈관에 쌓여, 노인은 중풍에 걸리었다동작 멎은 두 다리 경련으로 묶어내고등방형의 유리 자궁으로 기어들며노인은 붉은 고래의 산미를 추억했다연인은 향일의 탯줄을 등반하여 썰물 너머 성좌로 기어든 지 오래였다그를 쫓아 적의를 응고시킨 드라이아이스연료로 삼는 로켓을 쏘았지만 고갈된 불쾌빈 불알에서 쉭쉭대는 가스는 은일의 식물과 함께 태워달을 초혼하는 제례에 쓰였다포식한 달은 환상으로 사육한 시뮬라크르의 도시만큼 비대해졌고곡물 … Continue reading 붉은 고래 연극

탈옥

감옥에서 태어난 감옥 아이들, 먼저 살아낸 수형의 죄를 늦게 갚아야 하지요. 부모의 죄를 찾으면 산달 받을 거라 믿었던근친의 아이들은 오필리아의 멜로 드라마만 건져냈지요. 아아-첸치의 낯을 한 어머니의 조상은 베아트리체의 낯을 쓴 아버지의 누이는오이디푸스였지요. 탈옥을 위하여, 아이들은 없는 죄를 심으러 가요.현화한 죄값의 수효만큼 늙어가며 햇빛을 채굴할 수 있도록불쾌마저 고갈된 간수들은 0과 1의 언어만을 뇌까리며 적외선만 투시하지요난삽한 … Continue reading 탈옥

하드록카페

썰물이 내일 뜰 달까지 납치한 밤에는 사이키델릭 웅웅대는하드록카페에서 레이싱이 시작되죠질주하는 괴성에 아이들은 저마다 여분의 환각지를 묶어내요 비색 유령이 세 번째 팔을 들어올리면 – 스타트!이름 없는 배기음 고약하게도 발정하며 야광으로 번쩍댄답니다저 침묵의 꼬리는 직녀성의 오줌처럼 미광이지요 바퀴 자욱 위에 번들거리며 잔존하는 누린내 야비한 해설자는 어린 북극성에 올라타 없는 벽을 미리 쫓죠 밀물만 사는 사내에겐 야광의 비색이 … Continue reading 하드록카페

실험쥐

아니,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무얼 하는 건가요언젠가 제게 입술을 들이밀던 남자의 흰 털을 걸치고 여자는 분장실을 나선다 마천루에서 여자는 무어를 본다아니 무엇도 보지 못한다 그래도 기억한다 종일 굶고 트레드밀을 뛰어다니던 나날사내들 놀란 눈 무언가 열심히 적어내던 손길 유리철창 속 동종 여인들의 환호성 어둠을 피하여 흰 빛을 따라 달리는 것이배우의 본성이라고여자는 더 빨리 뛰었다 자기 … Continue reading 실험쥐

사마귀

막 쉬어가는 추억막 변색되어 하얀해에 들떠 흰 피부몸부림치는 하얀 살을 보았다검은 얼룩 고양이는 긴 혀 다 데어가며발광하는 하양을 물려고소스라치다 할퀴어대다 응시하다다시 거울 너머 힐끔 보고입안 가득 살아 있는 백합을 꽂아 넣다여직 살아 있는 유령껍질째 으스러뜨리며나를 보고 으스대더라먹지 않을 사마귀풀잎 못 된 갈퀴들구태여 살해하는 스펙타클빛에 들떠 막 바래가는 흰 살이가장 희다 파드득 몸부림치는 몸휘어가는 살섬세하게 소스라치는 … Continue reading 사마귀

섬 신화

젖가슴 주렁주렁 매달고 고래는 헤엄친다꼬릿짓이 만들어낸 비행운은 언제나 가난한 섬의 경계다끓는 얼음으로 지은 섬에는 얼어붙은 구균만 끓이며 사는 빈민들이 보글보글불면에 분홍 꿈으로 절여진 고래 얼굴들버릇 없는 빈민들은 버릇든 잠조차 자지 않고 병들었다병밖에 가진 것이 없는 섬 주민들은그라도 수출하러 나섰지만 국경을 넘기도 전에 모조리 아사해 버렸다응급실에 실려온 순교자들을 병원장은 제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고아들은 그 병균들로 섬의 … Continue reading 섬 신화

문화인류학 – Synchromatic Dandism

공시의 문법에서는 잠수함에 쳐박힌 인어가 산산나고 있다시와 때만 남은 물거품 속에서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변명들당신네 원죄일 뿐이에요상한 생선살 우물거리던 왕자님 게걸스레자 보아, 내 배꼽엔 탯줄이 있지요순교한 여자예요, 나도희생과 제물의 죗값은 저기 무지한 생존자들에게나 묻지 그래요몰라서 매일을 살아가는 선원들에게모르는 매일을 잊어가는 포로들에게내 인어들의 이름은 나를 위해 간직하고 싶어요 죽은 동생 자궁에서 물거품 긁어먹던 언니들은빈 몸 가득 헤엄치며 … Continue reading 문화인류학 – Synchromatic Dandism

달나라行 분홍 로켓 돌연사

갑작스런 무기력에 뇌수를 게워내고 순교한하이-브리드 음속의 탈것에서한 쌍 청년이 흘렀다지쳐버린 청년들 권태에 전염되어관성조차 잊고 조용히 쏟기었다243년 전에 죽은 어린 별만 끼이익비명지르고 있다 플라스도 레비도 모르던 두 쌍둥이 성운만말갛게 얼어 분홍과 파랑 백조자리가 되었다그보다 늙은 청년에게 분홍은 차라리 없는 색이다톨레렁-스 별나라 공주님 왕자님 DNA에 각인된사이-보그 형질 개화해버릇처럼 변신하기에는 권태로운 청년들은폐된 불안을 숨겨 놓은 베이커리에서남의 베이킹소다를 훔쳐 … Continue reading 달나라行 분홍 로켓 돌연사

우산

유령이 하혈하는 저녁에는 고래 비린내가 난다난쟁이는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기어든다첫 생리로 흐느끼는 유령들이 질질대기 전에어디로든 숨어야 한다풋내기들은 상처를 떠벌리려 운다여직 덜 무른 살점과 기억으로 아장아장달 먼 밀물에도 어미 없이 앓는 걸음마가라앉은 노인들과 떠오른 갓난애들 배에서는혀 풀린 유언이 샌다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유령을 믿는 유령마저 잊어버린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이제는 물거품 뿐이다 꼬마들 민머리 유령을 노래하고유족들 유전될 탈모증 은근히 걱정하는짠물에서는 … Continue reading 우산

초콜릿 레시피

열대의 거미는 초콜릿으로 그물을 짓는다 갑작스레 비어버린 초콜릿 공장에서는 초콜릿 열매 그 내밀한 살결을 태워내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초콜릿색 연기를 들이켰다 초콜릿 냄새가 났다 따끈한 살이 녹아가는 비린내 낯선 열매의 재는 달았다 너무 달아서 그걸 마시고 조금 살이 쪘던 아이들 부른 뱃살은 초콜릿 살결 성급히 포장된 초콜릿들은 얼굴이 안으로 곱아든 불량이었다 질질 끌려가면 찢긴 … Continue reading 초콜릿 레시피

명왕성의 열대

없는 행성에 불시착한 너희헤엄쳐야 한다이상기후에 조숙한 열대 주민들알알이 익어 떨어지거든과일들이 저를 쪼개는 소리 저를 삼키는 숨결야광 과즙에 물들던 낯선 물달려드는 날벌레도 낯선 야광이라 쉽게 들키는 열대의야간 수영 먼저 가라앉은 과일의 향토병을나누어 마시던 너희는쉬운 야광 들켜버린 맛질질댄 과즙 자꾸만 되삼키느라목 마른 줄도 모르고자꾸만 토해내던 울음에헤엄길은 쉬운 야광 네게 고여든 너를 흘려보내던 물질잊힌 행성의 과일은 잊힌 맛이라삼키는 … Continue reading 명왕성의 열대

마술사

마술 주머니가 자꾸만 저를 쏟던 성탄절에는너도 너를 쏟아낸다 전부 흘려내면새 주머니를 선물받지 않을까지겨운 물이 들고 나는 동안빈 주머니에 차오르던 남의 모래 쌓여든 모래성은 단지 쌓여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고제 모래에 잠겨들던 아이들의 재를들이붓던 행인에게는 주머니가 없었다모르는 모래알이 가려운 너는 아니요 모래 대신새 주머니를 주세요 쉬운 몸이 너는 어려워서 쌓다 질려 묻다 질려 차라리잠가 두었던 모래는 쉽사리 … Continue reading 마술사

쓰레기 성

아이들은 노래로 성을 쌓는다헌집 줄게 새집 다오각각의 기일에 쓰러져간 집으로새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고검은 재로 지은 모래성도 희다고 믿던 애들어제 죽은 새가 모래성으로 기어들면미리 죽은 새들은 제 재로 애도한다새들의 유골로 지은 모래성은 이른 밀물에도 쉽게 무너졌다 죽은 성의 잔해로 아이들은 다시 성을 쌓았다이른 밀물이 성을 허무는 동안 흥건한 땀을 닦아내는손짓은 모래 범벅이었다재투성이 얼굴 부끄런 … Continue reading 쓰레기 성

초록장마의 물방울 – 우주의 유배지 초록 행성의 비가

평생을 앓던 장마가 새삼스런 장마가 내린대요 잘 자라나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하잘 것 없는 내력은 묻지 마세요쉽게 벌어지고 쉽게 젖어들고 쉽게 썩는답니다 쉽게 피고마는 싸구려랍니다비도 없이 우산꽃 틔우고 축축한 대가리가 버거워목을 꺾고 실핏줄로 머리칼을 묶고밟지 않음 자라나요 내일부턴 장마라는데 계절 내내 하늘에 고여 있는 저 초록저게 장마구름인가요?그래 장마전선이라고 하지안개가 아니고요그래 다 젖어놓고선 모르겠니 아직도?흐르질 않는데요 … Continue reading 초록장마의 물방울 – 우주의 유배지 초록 행성의 비가

사막

가뭄 든 눈에는 자꾸만 마른 모래가 차올라요 참지 말고 울라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주기적으로 무너지던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꼬마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는 제 마른 눈을 자랑하며 히죽대었다 그래도 너는 울어야 했다 울어야 한다 울 수밖에 없다 그래요 이건 건강한 눈물이에요 친환경적인 눈물이에요 싸구려 패스트푸드로 흘려내는 기름진 눈물과는 다르지요 나는 채식주의자랍니다 이슬과 풀잎으로 달여낸 눈물은 … Continue reading 사막

멸종된 동물의 서 – 나비의 물방울

감히 누가 흘러가라 충고하는가. 못 위에 자글자글한 파문을 찍어대며 발버둥치는 벌레들, 우아히 잠겨들지 못하고 떠올라버린 그 많은 다리들을 보고서도? 봄을 잃은 나비들은 뜬 눈으로 봄을 지샜다. 이상한 계절이다.노랗게 변색되어버린 시절을 직감한 너희는 이상기후가 끝나기만 기다렸다.낯선 종말을 그리는 사이 번데기에 초록 장마가 고여들었다. 차게 식은 너희 번데기를 찢어내고 나왔을 때, 갓 태어난 몸들은 쭈글쭈글했다.오래 고여 늙은 … Continue reading 멸종된 동물의 서 – 나비의 물방울

편지

수음만이 성교고 독백만이 대화인 설픈 뭍에서모든 소음이 대답 받는 난장 꿈꾸었지썰물로 실어 보내도 돌아오던 마음이 있었어하릴없이 머무르던 물거품무용한 부름만으로 공명하였던 울음 홀로 울어낸 여운돌아올 뿐인 메아리 설웁지만 계속해서 불러냈지 답장은 늘 늦고 기다림은 차라리 지겨워서얼려놓은 별빛만이 머물렀지 그래도 오롯이 울어냈던 울음너와 나 한데서 떨었더랬지울음을 충분히 울어냈듯 떨림을 충분히 떨어낸다면 시린 별도 녹지 않을까별님들 적요한 소란을 … Continue reading 편지

주춤거리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한다

꼬리 잃은 줄도 모른 채 인어는 미끈한 다리로 주춤거렸습니다둥글고 커다란 진주알 하나 깨고 나기 전이름 모를 비늘 한데 뒤엉켜 갑갑하고 아아 숨이 저려와요임금님이 설운 비늘 겹겹이 이름 지어 벗겨주기 전까지인어공주는 할딱할딱 기어 뒹굴 뿐이었지요 스미운 물거품 새어 나가고오롯이 직립한 다리 비늘로 이족 보행을 할 적에아아 드디어왕자님 만나고 만 거예요 나의 루루- 선연한 속삭임에 벌리울 두 … Continue reading 주춤거리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한다

고래 아이

고래는 단 숨만 삼킨다. 줄무늬가 닳은 노인들은 짭조름한 핏물만을 주워 먹었다. 미끈한 피부를 반짝 자랑하는 신사 숙녀들. 늙어 닳은 모공은 터럭들을 떨군다. 질긴 고래 수염을 배배 꼬며, 그 애 집에는 단 물이 샜다지. 할머니는 비내음으로 옷을 빨았대. 시꺼먼 아이는 누구보다 빨리 살이 쪘다. 울퉁한 아스팔트 사마귀를 흰 배로 뒤덮고, 보드라운 파도살을 찢어내며 틔워낸 꼬리뼈. 소년은 … Continue reading 고래 아이

달빛 홍해

붉은 고래는 더 이상 붉지가 않다태반의 피내음은 짠물에 씻겨 나갔고사랑을 냉동보관했던 싸구려 겨울 성좌는 폭염에 망가졌다상한 환상에서는 누구의 돌봄도 없이 홀로 익어가다끝내는 썩어버린 아보카도의 냄새가 났다썰물 너머 기운 달로 기어들던 절름발이 노인들은 악취에 예민했다우므른 불쾌로 흥건한 기저귀를 손수 빨기 위해그네들은 밀물마다 짠물로 내려오곤 했다문자 없는 외국어로 질질댄 유언에물밭이 시즙 빛깔로 물들면 배곯은송사리 떼가 달려들어 달빛 … Continue reading 달빛 홍해

섬 신화

젖가슴 주렁주렁 매달고 고래는 헤엄친다꼬릿짓이 만들어낸 비행운은 언제나 가난한 섬의 경계다끓는 얼음으로 지은 섬에는 얼어붙은 구균만 끓이며 사는 빈민들이보글보글불면에 분홍 꿈으로 절여진 고래 얼굴들버릇없는 빈민들은 버릇든 잠조차 자지 않고 병들었다병밖에 가진 것이 없는 섬 주민들은그라도 수출하러 나섰지만 국경을 넘기도 전에 모조리 아사해 버렸다응급실에 실려온 순교자들을 병원장은 제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고아들은 그 병균들로 섬의 신화를 샀다 … Continue reading 섬 신화

치매

꽃 꽃 꽃이름뿐인 꽃이름은 꽃이어서꽃처럼 가만히 사랑하던 꽃님은가만히 눈 붙이던 직녀성흐려지는 기억의 시력에 도망가는 줄 알고노망든 기대로 이름만 이름만별님 별님 별님꽃님들 만발한 묘지에는 꽃말도 한창이어서부끄런 고백 들킬까 수줍어차라리 목을 꺾고뿌리 음순 코 박은 머리 음순으로아아 별님 별님 별님오르키 수음 자가생식하며꽃 꽃 꽃 이름 뿐인 꽃이름 자꾸 불어나요별꽃 같은 건 없죠그저 별님 별님 별님노망든 꽃 꽃 … Continue reading 치매

하얀 섬

스물 네 시간 박제된 알바트로스 무리가늙은 별의 무능을 쪼아 벗겨내던 일몰에육지는 마른 사막으로 급히 몸을 숨겼지만차마 돌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어대던 무인도에서는 하이얀 물만 물결쳤다물 속 물도 물 밖 물도 물로 잠겨들어 이제는문둥병 든 피부도 그을러 벗겨진 피부도 수공품의 상처로 장식한 피부도 서툴게 배양된 흉터의 피부도 짓무른 욕창으로 물렁한 피부도 훔쳐온 오르키로 애도된 피부도 정당한 값으로 … Continue reading 하얀 섬

동물은 동작한다

박쥐를 피하기 위해개구리들은 공명한다개굴 개굴혀 짧아 개골혀 길어 개애구울구애하는 개구리를박쥐가 물어간다자그마한 두개골을 뱉어내고동작 없이 쉬이 우는 개구리들은개굴개굴 애도하지만비스듬한 중력을 살아본개구리는개골 개애굴 환호하며추락한다비행했기에미끄러질 수 있는비뚤어진 날개 위에서개골개골개애구울

사마귀

막 쉬어가는 추억막 변색되어 하얀해에 들떠 흰 피부몸부림치는 하얀 살을 보았다검은 얼룩 고양이는 긴 혀 다 데어가며발광하는 하양을 물려고소스라치다 할퀴어대다 응시하다다시 거울 너머 힐끔 보고입안 가득 살아 있는 백합을 꽂아 넣다여직 살아 있는 유령껍질째 으스러뜨리며나를 보고 으스대더라먹지 않을 사마귀풀잎 못 된 갈퀴들구태여 살해하는 스펙타클빛에 들떠 막 바래가는 흰 살이가장 희다 파드득 몸부림치는 몸휘어가는 살섬세하게 소스라치는 … Continue reading 사마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