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ANDOUT년 10월 1일 – WA1년 8월 10일

INANDOUT년 10월 1일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죄를? 사랑을 했습니다. 당신은 원죄를 가지고 있군요. 원죄가 당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십시오. 참회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더 사랑하십시오. 헨젤과 그레텔은 무덤 파는 남자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도시로 갔다. 헨젤과 그레텔은 어머니가 무엇을 하러 도시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도시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고 했다. 그곳에는 검고 … Continue reading INANDOUT년 10월 1일 – WA1년 8월 10일

i12년 1월 8일 – C10년 10월 27일

i12년 1월 8일 공고문 실종자를 찾습니다. 나이 : 만 14세 특징 : 경련. 실종자는 학교에서 귀가하던 중 사라졌습니다. 그 이전에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모든 주장을 상세하게 검토하는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실종자의 어머니는 시인 혹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실종자는 그것을 습관처럼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i12년 1월 9일 공고문 아파트에서 유령이 발견된다는 신고가 몇 차례 들어왔습니다. 항의를 한 주민분들께 … Continue reading i12년 1월 8일 – C10년 10월 27일

C10년 10월 27일 – i11년 7월 15일

배우1 : 너 무슨 연극 같은 거 하는 거야? 고양이 : 나는 하얀 벽을 닦으면서 기다렸지.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하얘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나는 여백, 서울의 하늘, 건물들의 텅 빈 유리창에 대고 무엇인가를 휘갈겨 쓰고 있었어. 그건 시였지. 적어도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언어가 시라는 걸 알고 있었어. … Continue reading C10년 10월 27일 – i11년 7월 15일

i11년 7월 15일

i11년 7월 15일 인간은 기원과 끝을 가진 존재이다. 존재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존재는 시작과 끝 사이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여자는 어느 날 자신의 날개를 보았다. 비둘기 :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감각하는 존재인 나는 살아있다. 교실. 오빠5는 새장 속에 들어 있는 여동생, 혹은 이름 없는 비둘기를 자기 책상 위에 … Continue reading i11년 7월 15일

WA1년 8월 12일 – WA1년 8월 12일

WA1년 8월 12일 하얀 벽, 여자는 그것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고, 살아 있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되지 않은 배우들의 기이한 생태계. 실종자의 언어, 유령의 언어, 이미 멸종된 짐승의 언어로 그녀는 침묵을 지껄인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녀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부들은 그녀를 떠났다. 청소부들의 시간도 청소부가 아닌 자들의 시간도 그녀를 떠났다. … Continue reading WA1년 8월 12일 – WA1년 8월 12일

i11년 7월 15일 – i12년 11월 9일

i11년 7월 15일 오빠2는 거울 앞에 있다. 그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말한다. 오빠2 : 마술사의 은화 같은 태양 아래 와해되어가는 공중의 무덤들. 내가 말하는 동안 내 입술이 녹아 없어지고 내 목구멍이 녹아 흘러내리고 이제 나는 완전히 망가진 육체의 틈을 벌려 빌어먹을 비밀들을 누설하고 있어. 그녀의 길고 연약한 목에 레이스 양산을 걸어 놓으렴. 그녀의 목은 … Continue reading i11년 7월 15일 – i12년 11월 9일

i12년 11월 9일 – i11년 11월 11일

끝인가? 이걸로 끝인가? 아니다. 여하간 나는 끝을 기다리고 있지만 끝은 찾아오지 않아. 왜냐하면 살아있음은 본질적으로 무한한 꿈이니까. 교통사고로 깨져버린, 연약한 세공품 같은 비둘기의 머리통, 그 얼굴과 머리 사이의 간극은 무한한 거야. 오 그러나 오직 비둘기에게만, 로드킬 당한 비둘기 자신에게만 무한한 것이지. 나는 멍청하게도 기다리고 있어. 거미줄에 매달린 장미 조각처럼. 거미는 그걸 건드리지도 않지. 그것이 처음부터 … Continue reading i12년 11월 9일 – i11년 11월 11일

i11년 5월 17일

i11년 5월 17일 어째서 그 애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까? 어째서 그 애는 내 옆에 있는 걸까? 오빠 : 그건 그 애가 유령이기 때문이야 지금 말하는 건 누구지? 아이들이 둥글고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며 손을 맞잡는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간격과 간격이 조금씩 좁아지고 나는 그 바깥으로 내몰린다. 어째서 그 애들은 나를 똑바로 마주볼 … Continue reading i11년 5월 17일

i11년 12월 1일 – i11년 12월 1일

i11년 12월 1일 혹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소년은 흠집이 난 책상을 작고 가무잡잡한 손으로 더듬었다. 소년의 얼굴은 길고 부드러운 달걀 같았다. 밤의 어둠에 그을은 검은 달걀. 소년은 어느 날 달걀과 함께, 달걀인 채로 여자의 질에서 밀려나왔다. 아니, 소년은 어느 날 존재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그를 감싸고 있는 검고 부드러운 달걀을 보았다. 소년은 서서히 자신이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1일 – i11년 12월 1일

i11년 5월 3일 – 7월 15일

i11년 5월 3일 수인들은 연극 연습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그 애와 함께 교실에 남아 노파가 입을 푸른 비단 드레스를 그렸다. 각자 한 장의 그리고 다른 한 장 한 장 한 장의 종이에 정성껏 색연필을 문질러 칠하고 칠하고 또 칠해서 그것을 이어 붙일 작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풍선들을 불어서 그걸 붙잡고 날 수 있지 … Continue reading i11년 5월 3일 – 7월 15일

Z3년 2월 1일 – I11년 1월 1일

Z3년 2월 1일 여자는 흰 벽처럼 순수했다. 그들이 여자로 씹질을 해대는 동안에도 여자는 순수했다. 그녀가 흰 벽처럼 단단하고 순수하지 않았다면, 빌어먹을 순수함이 없었다면 그녀는 검고 차가운 거리에 정물처럼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몇 개의 그림자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연푸른 눈동자와 장미비누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운 살. 여자는 쇼윈도 밖으로 쫓겨나온 … Continue reading Z3년 2월 1일 – I11년 1월 1일

a12년 4월 4일 – i11년 7월 15일

a12년 4월 4일 여자는 식탁 위에 아이를 올려놓았다. 아이는 갓 도축한 돼지처럼 붉었다. 시곗바늘은 4와 4를 가리키고 있었다. 긴 바늘이 4를 초과해 넘어가는 동안에도 짧은 바늘은 여전히 4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는 여자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것의 붉은 볼이 밀려올라갔고 그것의 둥근 이마가 더 붉게, 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여자는 아이를 올려놓은 하얀 접시 옆에 놓인 투명한 와인잔에 … Continue reading a12년 4월 4일 – i11년 7월 15일

i11년 12월 1일 – i11년 12월 1일

i11년 12월 1일 소년은 물질처럼 단단하고 지친 환영을 느꼈다. 소년은 가느스름한 상처를 벌려 떴고 그의 앞에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의 애틋한 반영이 있었다. 소년은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을 찡그렸다. 선생님 언제 내 이름을 불러줄래요? 내가 앞에 나가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소년은 오렌지빛 뺨을 떨며 흐느꼈다. 형이상학적 언어와 대수적 기호들이 일그러진 신체에 맞닿을 때 소년은 몸서리치며 작은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1일 – i11년 12월 1일

i11년 3월 1일

i11년 3월 1일 ​ ​ 작년 담임선생님은 내게 남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난 반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 종종 잠을 잔다. 잠을 자고 있을 때는 오렌지빛으로 팽창하는 은하의 꿈을 꾼다. ​ 맨 끝줄에 앉았다. 창가 자리였다. 하지만 곧 자리를 옮겨야 했다. 청소 시간에 책상과 의자들은 모서리가 잘려나간 별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자기소개를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일

i11년 3월 2일

i11년 3월 2일 오늘부터는 정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세계사와 수학, 영어, 국어, 미술 수업을 받았다. 교사가 아즈텍 문명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나는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즈텍의 유리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피를 흘리며 녹아가는 태양의 그림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태양신은 매일 태어나 지평선을 질주해야 하므로 우유를 마시는 갓난아이처럼 많은 피를 필요로 한다고 담임교사는 말했다. 수학과 영어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2일

i11년 3월 3일

i11년 3월 3일 ​ ​ 머리가 조약돌처럼 둥글고 새까만 남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에 앉았던 자리, 맨 끝 줄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이야. 그 애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화문을 읊듯이 말했다. 그 애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애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3일

a-5년 7월 2일

a-5년 7월 2일 ​ ​ 아이는 내게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난 시를 쓴다고 말했다. 시가 뭐냐고 그 애가 물었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구역질이 났다. 아이는 점점 많은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교차로에서 만났다. 내가 아이를 들어올리던 순간, 아이가 나를 들어올리던 순간을 우리는 끝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시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강박적으로 … Continue reading a-5년 7월 2일

i11년 3월 3일

i11년 3월 3일 ​ 그 애는 작년 담임선생님과 내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현기증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건 비밀이야. 나는 그 애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 비밀이어야 하는가? 집에 와서 혼자 울었다. 나는 비밀을 원치 않았는데, 어째서 비밀이어야 하는가? 그 애가 내게 말을 거는 게 싫다. 벌레 먹은 과일을 주워 먹듯이 나와 함께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3일

i11년 5월 7일

i11년 5월 7일 ​ 그 애의 집에 갔다. 우리는 함께 TV를 보았다. 그 애의 엄마는 주방 식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시를 쓰고 있는 거라고 그 애가 말했다. 우리는 29번 채널을 보았다. 세 마리 돼지가 늑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장면은 없는 거냐고 나는 투덜거렸다. 다른 장면도 있어. 그 애가 말했다. 저녁 9시가 지나면 옷장에서 외과의가 돼지들의 … Continue reading i11년 5월 7일

i11년 3월 4일

i11년 3월 4일 그 애가 또 말을 걸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말을 걸지는 않았다. 점심시간과 하교시간. 그 외의 시간에 그 애는 다른 애들을 보고 있었다. 친구를 가진 다른 애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면 그 애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 애의 이름을 알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4일

i11년 3월 5일

집은 하얀 사막처럼 넓다. 기어서 사막을 횡단하려 하는 눈사람. 밤이 지나면 눈사람은 녹아내릴 것이다. 눈사람은 푸른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우리는 사막 너머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을 것이다. 발은 모두 녹아 문드러졌고 사막은 밤보다 넓으니까. 그 애의 이름이 그 애를 닮았을지 궁금하다. 그 애의 목소리는 그 애를 닮았다. 어린 새처럼 높고 위태로운 목소리다. 그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5일

i11년 12월 15일

담임교사와 상담을 했다. 그녀는 내게 그 일 때문에 따돌림 당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아이들은 새에게 그러하듯 제게 관심이 없어요. 담임교사는 그 애를 괴롭히는 애들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도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어요. 아무도요. 그 애는 새처럼 날아가 사라졌을 뿐이에요. 선생님, 그 애는 죽었나요? 교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살아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15일

i11년 12월 16일

나의 희생자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의 학대자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의 살해자들이 웃으면서 죽기를 바란다. 혹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이 불행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14살 혹은 15살에 불과한데 가끔은 내가 아주 늙은 여자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반짝이 가루가 들어 있는 붉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물은 끈적한 초콜릿이다. 달콤한 냄새를 맡은 붉은 개미 떼와 검은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16일

i11년 3월 8일

i11년 3월 8일 오늘은 어떤 여자아이의 생일이었다. 여자아이의 친구들이 여자아이의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교실 전체로 번져나갔다. 여자아이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속삭였다. 여자아이는 친구들이 건네준 삼단 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었고 책상이 가득 찰 정도로 선물을 받았다.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누군가가 여자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여자아이의 눈은 밤처럼 젖어 있었다. 여자아이의 몸에서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8일

i11년 3월 9일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언젠가 눈이 썩어버릴까? 깨어나지 않으면 현실에는 곰팡이가 필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일기 검사를 했다. 교사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글씨로 편지를 쓰듯 내 일기장 한 면을 가득 채워 글을 적어넣고는 했다. 온화한 글씨들을 읽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삶은 갈수록 위태롭고 위험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불안정성보다는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9일

i11년 3월 10일

오늘은 정시에 등교했다. 등굣길에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럴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결국 오늘 죽을 가능성보다는 살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나는 죽지 않겠지. 사형수는 평생 그의 단두대를 찾아 헤맨다. 언젠가 그가 반드시 사형될 것을 알면서도 찾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피부를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0일

i11년 3월 11일

지금은 12일 밤이지만 나는 어제의 일을 쓴다. 어제의 언어가 비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애에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새벽까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등교할 시간이 되어 학교에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 애는 아마 실수로 메일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 메일을 쓰고난 뒤 지우려고 하다가 실수로 엔터키를 눌렀던가 했겠지. 난 관대하게 그 애의 메일을 잊기로 했다. 그 애의 메일을 삭제하고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1일

i11년 3월 12일

하루의 간격을 나는 마치 아무런 극간과 공백도 없는 것처럼 뛰어넘는다. 기실 모든 날들이 그렇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24시간의 밤 뒤에는 24시간의 밤이 있다. 밤과 밤, 아침과 아침은 언제나 빌어먹을 연속선상에 있다. 단 하루의 텅 빔도 없이. 빛을 향해 부풀어오르던 장미, 빛이 독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시간에 붉어진 매혹적인 입술로 독을 향해 부풀어오르던 장미. 그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2일

i11년 3월 13일

토요일이다. 아침엔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담장을 넘어서. 자물쇠가 잠긴 교실 창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창문을 위로 들어 열어젖히면 끝이다. 나와 관련되지 않은 사실들은 내게 쉽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은 내게 거북스러운 표징으로 주렁주렁 매달린다. 행복해야 할 이유는 믿을 수 없이 많고 행복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가 나를 가죽 밑의 심연으로 몰아붙인다. 나는 나의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3일

i11년 3월 14-16일

i11년 3월 14일 목소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유언을 기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저마다의 독특성을 증언하는 날 선 언어들. 분리불가능한 모항으로부터 떨어져나오려 분투하는, 피투성이의 문장 토막들. 상승하는 바탕과 와해되는 형상. 검어지는 빛과 희어지는 어둠. 그들의 목소리는 순간순간의 차이를 통해 언명되며 동시에 공동의 운명으로 녹아내린다. 실종과 부재의 운명으로. 운명조차 분배받지 못한 내 사랑하는 노마드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를 낳은, 나를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4-16일

i11년 12월 30일, i11년 3월 17-18일, i11년 3월 23일

i11년 12월 30일 그 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망각된 그 애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를 알아볼 방법을 잃어버렸기에, 네 얼굴을, 네 목소리를, 하나뿐인 네 가면을, 네 표징을 잃어버렸기에 나는 너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눈을 둥글게 뭉쳐 만든 작은 공을 달을 향해 던져 본다. 눈 공은 순식간에 스러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손 안에서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30일, i11년 3월 17-18일, i11년 3월 23일

i11년 3월 19-26일, a-3년 3월 20일, m-3년 8월 1, 23일

i11년 3월 19일 그 애는 우리 연극이 연극에 대한 연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렌지 껍질처럼 잘 벗겨지도록 개량된 과일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피부를 갈망하지. 왜냐하면 우리 피부는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고 악몽처럼 검게 번져가니까. 오렌지라고 해도 벗겨진 피부를 돌이킬 방법은 없다고 나는 말했다. 오렌지 역시 단 하나뿐인 피부를 가지고 있어. 껍질을 벗겨낸 오렌지, 축축한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19-26일, a-3년 3월 20일, m-3년 8월 1, 23일

k11년 3월 26-29일, i11년 3월 27-29일, x666년 8월 29일

k11년 3월 26일 1+2를 가르치기 위해 나는 3에 43+41을 더한 수를 곱한 뒤 84로 나누는 법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래. 루이스 캐럴의 방식이다. 나는 언제나 루이스 캐럴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학 교사가 되는 데 성공하였으나 루이스 캐럴이 되지는 못하였다. 스나크는 언제나 부줌이다. 부줌이 아닌 스나크는 없다. 심지어는 스나크가 아닌 것조차도 부줌이다. 나는 스나크를 찾아 헤매다 … Continue reading k11년 3월 26-29일, i11년 3월 27-29일, x666년 8월 29일

i11년 3월 30일-4월 2일, i11년 11월 30일, i11년 12월 1일

i11년 3월 30일 유원지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유치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귀신의 집 안에서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손을 꼭 붙잡고 걸었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뒤따라 걸었다. 내가 그 애들을 훔치고 있음을 들키지 않도록. 귀신들은 하얗게 벌어진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거나 웃었고 나는 그들을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30일-4월 2일, i11년 11월 30일, i11년 12월 1일

a-5년 4월 3일, a-3년 4월 4일, a+1년 4월 4일

a-5년 4월 3일 뼈들이 눈을 악물고 잠자는 소리. 목구멍의 긴 침묵 밑에서 내 뼈들이 부딪히는 소리 내 뼈들이 부르는 소리. 죽은 아름다운 탄식이 가시처럼 긴 뼈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신이 나를 위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신은 나를 위해 죽지 않았다. 신은 나를 위해 죽지 않았다. 신은 나를 위해 신은 나를 위해. … Continue reading a-5년 4월 3일, a-3년 4월 4일, a+1년 4월 4일

k11년 4월 5일 – a-3년

k11년 4월 5일 색색의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악기를 젓가락으로 두드려 연주한다. 온음과 반음까지 완벽하게 구현 가능하다. 방과후의 텅 빈 실험실에서 나는 남은 원색의 액체들을 유리 플라스크에 집어넣어 연주하고 있었다. 작고 촘촘한 발걸음 소리. 여자아이는 그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악기를 장미에 매혹당한 파리처럼 환하게 밝혀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금속 원뿔을 쓴 고양이들이 길고 유연한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걸 … Continue reading k11년 4월 5일 – a-3년

p-3년 4월 8일 – e년 12월 25일

p-3년 4월 8일 그녀는 눈을 감는다. 그녀는 웃는다. 지하철에서 만난 거지에게 그녀는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다. 거지는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밀쳤다. 그녀의 입술은 그의 드러난 환부보다 더 벌어져 있었고 더 젖어 있었다. 그녀는 하얗고 순결한 케이크 칼을 들고 있었다. 시간과 시간의 틈에 그녀의 생일이 있었으므로. 거지는 공포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건포도처럼 검고 … Continue reading p-3년 4월 8일 – e년 12월 25일

i11년 4월 10일 – i11년 4월 13일

i11년 4월 10일 꿈 속에서, 나는 베인 미소를 짓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녀는 한 순간 바래버린 사진과도 같은 납빛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묻자 귀신 아이는 말했다. 나를 기억해. 나를 기억해. 나를 기억해 나를 기억해 신은 살아 있다 숭배자 없이 그녀의 상처 속에 그녀의 찢김 속에 그녀는 숭배자 없는 신이었다. 추종자 여인들 … Continue reading i11년 4월 10일 – i11년 4월 13일

i11년 4월 13일 – i12년 1월 5일

i11년 4일 13일 나는 누군가에게 봉합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모든 너희는 있는데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누군가의 내장에 기생해서라도 살고 싶은 걸까? 나는. 나는. Writing does not reproduce visible, rather, it makes visible what is invisible. 벤야민. 방랑하는 유대인들. 그처럼 나도 아하스베루스다. 십자가에 오르는 신을 조롱한 죄로 신이 재림할 때까지 영원히 방랑하도록 저주받은. … Continue reading i11년 4월 13일 – i12년 1월 5일

i11년 4월 19일 – i11년 4월 20일

i11년 4월 19일 나 즐겼어와 너 즐겼어 사이의 심연. 가정 교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반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을 뽑아 보지 않을래? 아이들은 종이 한 조각씩을 배분받는다. 난 널 뽑았어.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애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널 뽑았어 널 뽑았어 널 뽑았어. 칠판에 나와 그 애의 이름이 적히고 우리는 교단으로 불려나간다. 가정 … Continue reading i11년 4월 19일 – i11년 4월 20일

i11년 4월 24-25일

i11년 4월 24일 무기도 편지도 될 수 없는 언어는 어디로 사라지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은 탈존할 수도 없는가? 도래하지 않은 과거를 나는 끔찍하게 기다리고 있어. 웃음으로 질식한 피에로 여자의 혀로 나는 유령의 시를 쓴다. 유령에게 얼굴이 있다는 말은 농담에 불과한가? 유령의 시간에도 유령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다. 유령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조차도 유령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 유령이 얼마나 존재할 … Continue reading i11년 4월 24-25일

i11년 7월 15일 – a년 a월 a일

i11년 7월 15일 학교장 : 7월 15일부터 7월 16일까지 양일간 연극제가 진행됩니다. 관객 여러분께서는 공연 시간 동안 휴대폰 전원을 꺼 주시고 입을 다물고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마시고 살인하지 마시고 태형을 기다리는 개 역할을 맡지 않은 배우를 때리지 마시고 자살하지 마시고 물 이외의 음료를 마시지 마시고 즐겁게 공연을 관람해주시기 바랍니다. 1막. 검은 산. 호랑이 : 곧 … Continue reading i11년 7월 15일 – a년 a월 a일

i11년 7월 15일

i11년 7월 15일 (관객들의 박수 소리. 헨젤과 그레텔과 호랑이-엄마가 손을 잡고 무대를 향해 인사한다.) 음악교사: 헨젤과 그레텔, 햇님과 달님 오누이 이야기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아주 독창적인 극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박수. 관객 : (박수를 친다.) 음악교사 : 그럼 다음은 x반 친구들이 준비한 하얀새 연극을 보겠습니다. 박수. 관객 : (박수를 친다.) (막이 열린다. 어머니와 소녀 등장.) 어머니 … Continue reading i11년 7월 15일